제목만 보고 응, 그냥 공작의 꼬리깃 나오는 예의 그 흔한 진화심리학의 성선택 얘기구나 하며 (어쨌든 재밌는 이야기니까)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진화심리학에 투사된 성차별적 편향을 지적 하는데 있어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나 ‘테스토스테론 렉스’ 같은 본격적인 제목의 책들보다 훠얼씬 설득력 있었다. 사실 위 두권의 책들을 읽으며 뭐랄까 고개가 시원히 끄덕여 지지 않는 찜찜함이 있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진화심리학을 떠나 보내고 난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 듯하다. 올 상반기의 베스트로 꼽겠다.+종종 과학책을 읽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 같은게 있는데 책 읽다 이게 대체 뭔소리지 한참 헤매다가 귀류논증인걸 깨닫고 이마를 탁 칠 때, 모든게 짜릿하게 선명해지는 그 순간이 과학책을 읽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H. G 웰스의 ‘타임머신’을 뗄감으로 삼아 시간여행에 대한 문화적, 과학적 고찰을 밀고 나가는 책인데 믿고 읽는 제임스 글릭이지만 첫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정보에 정신없이 허우적대다 매 챕터가 끝날 때쯤 정신 차려보면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거지? 싶어진다. 글 재밌게 쓰고 박식한거 인정하는데 아는거 많은 사람 특유의 그 자세히 부연 안하고 이거 몬주 알지,로 넘기는 부분이 적잖아서 그냥 맥락으로 넘겨짚게 될 때가 많다. 이 수다스러움의 수준이 재미와 혼란스러움의 경계에 있어 독자의 기호에 따라 갈릴듯. 암튼 내겐 좀 정신없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