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봉 -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수배자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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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성, 『윤한봉 - 5.18 민주화운동 마지막수배자』, 창비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출판사 『윤한봉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안재성, 윤한봉

성찬성은 그해 4월 유치장에서 만난 후배 윤한봉의 첫인상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때 마주한 그이의 얼굴은 수척했었지만 다부지고 시국과는 무관하게 매우 희망적이었다. 전남대 수괴다운 비범한 풍모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를 만난 그 짧은 순간에 그이는 초면부지의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그이의 진지한 모습은 당시 그이의 처지와 어울리지 않아 나는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좋은 세상이 올 테니 열심히 살자고 했다. 하지만 어디 그럴만한 세상이었던가?”

 

- 안재성, 윤한봉, 창비, P241.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학창시절 역사 수업시간을 통해, 그리고 여러 대중매체와 자료들을 통해 익히 들 어와 이미 어느 정도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영화 화려한 휴가를 어머니와 극장에서 보았고, 황석영 작가님의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후 대학에 진학한 이후 도서관 책장 한편에 자리한 그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러나 20175, ‘윤한봉이라는 그 이름 석 자를 처음 들었고 내가 아는 역사는 극히 일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으로부터 12년이 지난 후 서울에서 태어난 나에게 그 사건은 역사적으로 무섭고 참담하게 받아들여진다. 도저히 발생해서는 안 될 사건이었고 그 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신 많은 분들의 안타까운, 있어서는 안 될 죽음에 대한 슬픔과 함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정권에 저항하신 모든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공존한다. 그런데, 기실 그 존경심의 너머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맞서고 싸우고 투쟁해 지켜내고자 하신 광주의 시민 분들에 대한 영웅적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자리하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마치 일제 강점기 시절 많은 독립투사들이 일제의 제국주의에 맞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셨듯이.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가 일제 식민치하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이자 영웅으로 여겨지듯이 말이다.

그러나 합수(合水)로 불리는 윤한봉 선생님의 삶을 처음 마주하면서, 윤한봉이라는 한 사람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알아가면서 이런 나의 생각이 참으로 일면만을 보는 것이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책을 읽으며 알아가게 된 윤한봉이라는 사람은 결코 영웅이 아니었다. 여기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분들이 영웅이 아니라니 당췌 무슨 이야기인가 의문을 던질 수 있는데, 분명 시대의 의인(義人)임이 분명하지만, 윤한봉을 비롯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당시,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참여적으로 연대한 그 청년들이 우리와는 다른 마치 유충렬이나 조웅과 같은- 고전소설 속 영웅들처럼 신이한 출생과 비범한 풍모를 지니며 적()을 물리쳐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그런  영웅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같이 그저 평범한 한 개인이었을 뿐이라는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독재자의 등장이 없었고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이 억압되고 짓눌리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윤한봉은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열사/투사가 아니라 그저 평화로이 강호에서 자연을 벗하며 삶의 깨달음을 글로 옮기는 시인이 되어 한국 문단에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즉 독재정치의 그늘이 그저 지금의 나와 같은, 한 청년이 꿈꾸고 미래를 그려나갈 기회를 송두리째 빼앗아 버린 것이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후배 최권행은 윤하농 안에는 시인이 있었노라고 말했다. 그는 윤한봉이 시적 열정으로 가득했고, 막힘없는 묘사와 구수한 달변, 유머, 역사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최권행의 말대로 윤한봉 안에는 시인이 들어 있었다. 시절이 하 수상하지 않았다면 풍요로운 강진 땅에서 목장을 하며 바다와 산을 시로 그렸을 것이다. 개인적 사색에 빠질 마음의 여유가 없던 바쁜 와중에도 그는 고통스럽게 살다 간 이 땅의 민초를 그린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미국에서 쓴 세월의 의미라는 시도 그중 하나다.

- 안재성, 합수,윤한봉, 창비, P272.

 

당대 독재정권은 희생된 이들 뿐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이 그저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 또한 앗아버렸다는 점에서 평생을 속죄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한편, 그렇다고 해서 윤한봉이 평범한 개인들과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윤한봉은 다른 이들이 쉬이 가질 수 없는 삶의 가치관과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순결하여 하얀 별과 같고 따뜻하여 봄 햇살과도 같아 우리는 그를 삶의 나침반이자 소외된 이들의 벗이라 일컬었으나 그는 다만 자신을 합수(合水)라 불리기를 바랐다.’ 그의 별명 합수(合水)란 두 줄기 끈이 합쳐진다는 뜻으로, 호남 지방에서는 재래식 화장실의 똥과 오줌이 합쳐진 똥거름을 말한다. 역사와 민중을 위해 인생을 바쳤노라고 말하는 이들은 많지만, 명예도 지위도 돈도 모두 마다하고 스스로 퇴비가 된 이는 드물다. 윤한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 안재성, 책머리에,윤한봉, 창비, P7.

 

 심인보만이 아니라 윤한봉과 오래 활동한 사람일수록 그의 인본주의적 민중운동가로서의 면모를 강조한다. 실제 생활에서도 그랬다. 그가 민족학교에서 맡은 직함은 심부름꾼인 소사(小使)였다. 그리고 진실로 소사처럼 살았다.

 비난의 표적이 된 초창기의 민족학교에는 반년이 되도록 찾아오는 이 하나 없었다. 그래도 윤한봉은 손에서 걸레를 놓지 않았다. 문틈이고 창틀이고 닦고 또 닦아 먼지가 앉을 틈이 없었다. 민족학교가 세 든 건물 주위에는 담배꽁초나 종잇조각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바닥에 물걸레질할 때는 꼭 무릎을 끓고 앉아 양손으로 걸레를 밀고 다녔다. 나선 사람이 본다면 생김새며 옷차림이며 하는 짓이 영락없는 청소부요 학교 소사였다.

- 안재성, 고립,윤한봉, 창비, P86-87.

민족학교 창립 반년이 지나면서 청년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일단 윤한봉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청년들은 그에게 빠져들었다. 권력욕도 전혀 없고 궈위적이지도 않은 솔직한 성품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운동권 선배 중에는 좀처럼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빙글빙글 웃으며 누구에게나 좋은 소리만 하면서 실제로는 상대방을 떠보고 배후에서 조종하는 이들이 있었다. 무슨 일에서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상대방을 지도하려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윤한봉은 상대방을 이용해 먹으려는 정치적인 태도나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는 자세라고는 전혀 없었다.

- 안재성, 고립,윤한봉, 창비, P94-95.

 

 

 윤한봉의 성품, 인격에 대한 서술은 여러 사람들의 입을 거쳐 증언된다.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그 사람을 보아 온 이들보다 윤한봉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이러한 윤한봉의 성품과 인격을 통틀어, 윤한봉이야말로 진정한 서번트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권위나 지위를 내세우기보다 낮은 자리를 자처해 오로지 희생하고 헌신을 통해 봉사하는 모습, 사실은 민족학교의 교장이라 할 만함에도 불구하고 소사(小使)의 역할을 자처하며 실제로 소사처럼 먼저 나서 낮은 자리에서 겸손된 모습으로 봉사하며 인격적 모범을 보이는 모습, 그리고 특히 소수자와 약자로 향하는 이타주의의 덕목까지 모두 그가 진정한 서번트 리더십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면면들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이태석신부님께서 갖추고 있었던 그 성품과 풍모가 윤한봉에게서도 느껴졌다. 자연히 그가 한국의 예수로 불리었다는 이유에 대해서도 짐작이 갔다. 대표적인 서번트 리더가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잘못된 인간관을 가진 사람이 올바른 대중관을 가질 수 있어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올바른 인간관이란 무엇이냐? 인간은 존엄하다. 피부의 색깔이 어떻든, 몸매가 뚱뚱하든, 빼빼하든, 작든 크든, 지체의 부자유자든 아니든, 배웠든 안 배웠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관계없이! 무당이건 똥 푸는 사람이건 시체 화장하는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늙어서 추해진 노인들이건 똥만 내지르는 갓난애건 모든 인간은 위대한 것이고 존엄한 것이다! 만물 중에서 가장 주체적이고 창조적이고 의식적인 우수한 생명체다! 이런 인간관을 토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 중에서도 서럽고 쓰라린 생활을 하는 민중들, 그들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이 생기는 거죠. 여러 손가락 중에 가장 아픈 손가락에 신경을 더 많이 쓰듯이, 어머니가 제일 못한 자식한테 애정을 쏟듯이! 올바른 인간관에서 올바른 대중관이 나오고 올바른 대중관에서 올바른 대중노선이 관철되고, 올바른 대중노선이 관철될 때만이 올바른 대중운동이 되는 거예요!”

- 안재성, 돌쇠와 곰바우들,윤한봉, 창비, P103-104.

 

 참담하고 서러운 광주의 한복판에서 시민들의 뜻을 따라 미국으로 도주한 이후 윤한봉은 단 한 번도 그의 가치관과 태도를 저버리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민족학교를 통한 한청련 조직 뿐 아니라 문화운동, 인권에 대한 강조, 나눔에 기초한 대동정신 등....... 특히 당장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곳에서 끊임없이 통일 조국에 대한 이상을 그리며 그에 대한 준비도 지속해 온 바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많은 청년들과 재야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 독재에 맞섰다면 윤한봉은 후방에서 비록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묵묵히 소임을 다하며 독재에 맞서온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귀국한 윤한봉이 본 대한민국 사회 역시 결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귀국 후 나는 변화된 조국 사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엄청나게 돈이 많은 사회, 그러나 정신도 혼도 원칙도 질서도 없고 꿈도 감동도 없는 사회, 악독하고 살벌한 사회, 허세와 과시와 쾌락이 넘치는 사회…… 사람의 생명은 별것이 아닌 사회가 되어버렸다.”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42-343.

 

차별보다는 화평을 추구하고 작은 다름보다는 큰 같음을 추구하는 정신, 사적인 것보다는 공적인 것,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정신, 세상 사람을 다 한 가족처럼 생각하는 정신인 대동정신이 대동단결과 도덕적 항쟁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47.

 

특히 시민운동 쪽에서 대동정신을 등한시해요. 삶의 문제, 빈곤의 문제, 실업자 문제, 비정규직 문제, 차상위층이라든지 하는 문제들을 등한시해요. () 우리가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 해도 세계 15위 안에 듭니다. 엄청난 부자입니다. 그런데 이 안에서 엄청나게 갈라지기 시작하는 거죠. 비정규직 비율이 호주 스페인 한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제일 높습니다. 이 황당한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앞으로 대동정신을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대동세상이란 화평한 세상이고, 평화의 핵심은 나눠 먹는 것이며, 모든 부당한 것에 대해 저항하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윤한봉의 견해였다.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48.

 

 윤한봉이 귀국한 것이 1993년이라고 한다. 24년이라는 시간동안 분명 2017년의 대한민국의 경제적 측면은 눈부시게 발전해 IT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이 아닌 사회의 건강성이나 도덕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후퇴하지 않았나 싶다. 행정부 수반의 권력 남용, 검찰이나 국회의원의 부정부패 등은 모두 윤한봉이 말한 대동정신의 가치를 따르지 못한 채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을 찍으며 사회에서 배제하고 자기 자신의 권력욕과 물질에 대한 탐욕을 채워가려는 이기주의, 금권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라 여겨진다.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데 합수 형님은 통일운동가가가 아니라니까요. 그분은 소수와 약자를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에요. 그분은 우리는 어디를 가더라도 거기에 있는 소수와 약자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만약에 그런 날은 안 오겠지만 만약에 한반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미국에서 코리안이 다수가 되고 백인이 소수가 되면 여기서 백인을 위해서 일을 해야 된다고 했어요. 우리는 죽어서도 어딜 가든지 소수와 약자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거였거든요.”

- 안재성, 신노선,윤한봉, 창비, P319.

 

 2017년 봄, 행정부의 수반이 새로 선출되어 내각이 다시 구성되면서 우리 사회도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정치인, 법조인, 교육자 등 리더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윤한봉이 지니고 있던 서번트 리더십의 태도를 닮아 모범을 보이며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정의와 배려를 우선에 두는 정책들이 마련된다면, 언론들이, 그리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권을 수호하고 부당한 것을 비판하며 끊임없이 사회의 방향을 점검한다면 또 다른 괴물들이 나타나는 일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당한 정권과 비정상적인 사회, 이기적인 개인들에 의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희생된 이들이 꿈꾸던 세상을, 그들 한 명한명이 지니고 개인적인 꿈을 늘 기억하고 그들이 지니고 있던 가치와 태도를 그려내는 작업을 계속 해 날 때 비정상적인 사회의 4.19, 민청학련 사건, 5.18을 지나 4.16에 이르기까지, 부정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고 그려내며 추모할 때 우리 사회도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 그리고 김탁환 작가님의 거짓말이다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4.16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려내는 작업이라면, 이 책이 황석영 작가님의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함께 5.18, 그리고 윤한봉과 더불어 5.18을 겪고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많은 이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려내는 책으로 오래도록 함께 읽혔으면 한다.

 

가장 무서운 이들이 사람이라고 하지만 결국 김탁환 선생님의 소설 제목처럼, 아름다운 그이 또한 사람이기에, 사람들 안에서 받은 상처는 사람들로 인해 치유될 수 있다.

아름다운 그 이, 윤한봉을 만나 의미있는 20175월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걸은 적이 있었기에 이 행성은 아름답다."

진정 윤한봉 같은 사람이 있기에 인간의 바다는 썩지 않고 살아 숨 쉬는 것이리라.

- 안재성, 대동정신,윤한봉, 창비, P375.


 

 

 

 

 

 


 http://pedagogics.tistory.com/84 [Magister Lu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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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정치의 시대
최강욱 지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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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욱, 정치의 시대 -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창비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출판사 『정치의 시대 소책자 사전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중략)

유일하게 주권자인 국민에게만 권력을 딱 한 번 쓴 것입니다. 이 말은 곧 헌법이 권력이 가지고 있는 속성, 본질에 대해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헌법의 정의대로라면 주권자가 인정하지 않는 권력은 권력이 아닌 셈입니다. 권력은 주권자에게만 있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떻습니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헌법이 그 사실을 보장하고 있다는 게 의외라고 여겨질 정도로 헌법의 가치가 폄하되고 있고, 오남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헌법에서 규정한 권력에서 크게 벗어나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 그들을 옹호하는 구체적인 판결을 예로 들 것도 없습니다.

                                                                                               - 최강욱, 정치의 시대, 창비, P6-7.

 

나는 고등학생 때 수능 사회탐구 선택과목 중 하나로 법과 정치를 공부하고, 대학 신입생 때 법학과 전공기초 과목인 법학개론을 수강했을 정도로 -심지어 법학과를 부전공하고자 했다. 물론 심리학 복수전공과 교직수업의 방대함으로 인해 취소하고 말았지만- 법학이나 정치 등 사회의 정의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다소간의 관심을 가져온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의 대한민국을 지켜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행정부 수반이 주체적으로 자기 몫을 하지 못하고 한 개인에 의존하는 모습, 심각한 정경유착 등이 공개되고 난 후 충격을 금치 못했다. 물론 정치인이나 법조인들의 관행이나 관습,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해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암흑기(독재정치)를 역사책으로 공부한 내게 있어 행정부의 수반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심각성이 피부로 와 닿았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는 유독 정치인들에 특히 국정운영의 중심을 이루는 행정부의 수반(대통령)-대한 국민(책에서 인민이라는 단어의 필요성에 대해 더 명확히 나오지만, 편의상 국민으로 통칭한다.) 들의 기대가 높은 편이다. 이게 나라냐는 자조 섞인 질문 또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헌법 제 1조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듯 보이는 국가. 사리사욕에 앞서 국민들을 우선하지 않는 국가.

많은 국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며 매우 추운 겨울을 견디어 올해 초 헌재의 탄핵가결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이 책의 제목을 질문으로 던져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최강욱 변호사)는 첫 페이지에서부터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 이는 한국 사법의 구조적인 문제탓이다. 실망스러울지 모르나 생각을 전환시켜 본다면 사법의 구조적인 문제가 변화된다면 법이 정치를 심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 사법의 두 축인 검찰법원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제시한다. 두 조직 모두 위계질서에 따른 서열화가 핵심 문제로 등장한다. 우선 검찰의 경우, 검사들이 지니고 있는 막강한 권력인 기소권이 이와 관련해 쟁점이 되는데 이 기소권의 행사에 있어 대상에 따라 기준이 바뀌거나 검찰 조직 내부의 윗사람(검사장 등)의 개입이나 압력에 의해 검사 개인의 법적 판단이 침해 될 수 있다. 법원(사법부)의 경우 법관들의 임명에 있어서, 특히 대법관의 임명에 있어서 여당과 야당, 그리고 여야합의에 의해 선출하는 방식이 적용되고 있는 만큼 정치적 성향에 대한 고려가 이미 선출에 있어 고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두 조직 모두 서열화문제는 심각한데 가령 성적이 좋지 못하거나 윗선의 눈 밖에 나게 되면 서울중앙지검에 다시 돌아오지 못해 검사로서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승진의 기회가 막혀버리며 판사(법관)의 경우에도 초기 발령을 성적순에 따라 획일적으로 배치할 뿐 아니라, 고등법원 부장판사라는 요직에 승진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뒤따른다.

이렇듯 저자가 지적한 법조계의 문제는 몇 달 전 읽었던 김두식 선생님의 불멸의 신성가족의 화두와도 정확히 일치했다. 국민들을 위해 헌신해야 할 법조인들이 소수의 국민들에게만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점, 그리고 정치인 뿐 아니라 판사나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지나치게 신성화 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특히 성적이나 조직 내 순위에 의해 서열화 되어 같은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차별을 두는 것은 그 권력과 권위를 명확히 구분하는 신성화작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과 일부 판사들은 정의의 여신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은 눈을 떠서 당사자의 사정을 세세하게 살피고 헤아리며, 그런 후에 저울에 달아서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판단을 해보다가, 그래도 부족하면 책을 펼쳐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정확한 판결을 내린다.

(중략)

대다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은 당사자의 신분과 지위를 확인해서 봐줄 사람인가 아닌가를 식별한 후에 형식적으로 저울에 다는 척을 하다가, 손에 든 장부를 보고 나에게 뭘 갖다준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한 다음 심판한다.

어떻습니까? 후자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릴 듯한데, 바로 이 점이 대한민국 사법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 최강욱, 정치의 시대, 창비, P21-22.

 

 

 

 

검경 조직이 자신의 법적인 양심에 따라 기소권을 행사하고, 법원이 약자들의 편에서 공정한 재판을 가할 때, 즉 그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올 때 비로소 판사로서, 그리고 검사로서 이상적 모범이 되는 법조인들이 증가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법조계 내부의 자성적 기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기에, 사법 조직 개혁을 단행하려면 행정부나 국회 등 정치권의 문제의식이 자리해야하며, 법조계와 이해관계가 없는 인물이 개혁을 진행해야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조국교수의 민정수석 임명은 첫 단추가 잘 꿰매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절차와 행정절차의 관계를 재정립해 나가고자 하는 데 그 방향을 지니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개혁이 다시금 실패하지 않으려면 이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갈등과 충돌에 있어 국민들의 건전한 법 상식을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치인과 법조인의 유착과 정경유착 등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교육현실에서 해결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겠다. 법조인들은 학창시절 성적이 뛰어나 모범생’, ‘우등생으로 불리는 이들이었고,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 이후에도 끊임없이 내부의 서열화가 자행되어 있어 우수한 인재로 상급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즉 학창시절 우등생으로서 급우들을 통제하는 한편 교사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개개인의 정체성을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저 당연히 해야 될 것이기에, 명령을 따라야 인정받을 수 있기에 그 어떤 비판의식 없이 상급자(대통령, 검사장, 부장판사 등)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제 2의 아이히만을 양산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될 것이다. 때문에 법조인들이나 정치인들의 그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고자 할 때 이를 제어하고 비판할 수 있는 국민들의 시선, 그리고 법조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나와는 멀리 있는저 너머의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라 법적 도움을 제공하는 조력자일 뿐이며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신성화의 해체가 필수적이다.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서열화되어 있으며 획일화된 학벌위주의 교육 현실을 바로잡고 대학진학 및 직업 선택에 있어 특정 직업군의 이들이 지나치게 신성화되지 않고 고유한 직업윤리를 지닐 수 있도록 윤리 및 가치관교육, 직업의식, 그리고 교육 평준화가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특목고나 자사고 등 학습자 간 교육 격차를 확대할 수 있는 학교들의 폐지 또는 전환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단적으로 의사 면허는 합법적 살인 면허라는 한 의대생의 발언은 특정 직업을 신성화하며 특권화 해 온 우리 사회의 부정적 단면이라 하겠다. 서열화를 통해 학습자들을 줄 세우고 끊임없이 비교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유하고 토론하고 논의하여 나와 다른 의견과 생각, 가치를 지니고 있는 타자의 의견을 조화롭게 반영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 문화를 변화시켜 나갈 때 법조계와 정치계의 문제도 해결되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법이 정치를 심판하는 도구가 되기보다 정치를 통해 올바른 법이 만들어지고, 법을 집행하거나 법을 통해 판단하는 이들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주권자의 입장에서 가장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올바른 정치는 주권자의 뜻이 그대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진다면 법은 당연히 정치의 아래에 놓여야 하지요.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법이 올바로 만들어지고 올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주권자에겐 일종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최강욱, 정치의 시대, 창비, P111.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출처: http://pedagogics.tistory.com/83 [Magister Lu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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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창비 책읽는당 『아몬드 사전 서평단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출간 전 비매품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손원평, 아몬드』, 창비, 2017.

 

*본문의 인용구 페이지는 출간된 도서를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위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애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아몬드는 어딘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 손원평, 아몬드, 29.

 

이 작품에는 편도체-아미그달라의 이상으로 감정-특히 공포나 불안, 두려움 등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조금 특별한 17세 소년 윤재(선윤재)의 성장과정이 그려져 있다. 유년 시절 눈앞에서 한 아이의 죽음을 보고도,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윤재의 열일곱 생일날 한 남자의 무차별 살인으로 인해 갑작스레 닥친 할멈(할머니)의 죽음과 칼에 찔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도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윤재를, 사람들은 마치 이상한 괴물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시선으로 대한다.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으로 인해 학교에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윤재의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윤재가 정상적인’, ‘평범한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감정과 감정의 반응에 대해 교육시켜왔다.

 

‘- 복잡한 것까진 몰라도, 기본은 꼭 알아야 해. 그렇게만 해도 조금 메말랐다는 소릴 들을지언정 정상범주에 속할 거야.

사실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미세한 단어의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따위는 내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 손원평, 아몬드, 38.

 

 

- 엄마도 네가 이렇게 지내는 걸 원하시지는 않았을 거다.

- 엄만 제가정상적으로 살길 원하셨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가끔 헷갈리긴 하지만.

- 바꾸어 말하면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 평범…….

내가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과 같은 것. 굴곡 없이흔한 것.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평범하게 졸업해서 운이 좋으면 대학에도 가고,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을 얻고 맘에 드는 여자와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그런 것. 튀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한 것.

-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이루기 가장 어려운 가치란다.

- 손원평, 아몬드, 89-90.

 

 

 한편 곤이(윤이수) 또한 윤재와 같이 사람들에게서 괴물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곤이는 유년 시절 놀이동산에서 부모님과 헤어져 이후 보호시설에서 지내다 입양 후 다시 파양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여러번 사고를 쳐 소년원에 들락거리는 삶을 살아가 부모님을 다시 만난다. 걸핏하면 폭력을 휘드르고, 교사들의 수업 진행을 방해하거나 잦은 욕설을 사용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는 곤이는 소위 문제아로 불리며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윤재는 비록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지 못할지언정 그 누구보다도 타인과 소통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독서량이 풍부해 지식이 많을뿐더러 성장과정에서 할멈과 엄마로부터 받은 충만한 사랑을 늘 추억하고 있다.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 손원평, 아몬드, 171-172.

 

 

곤이 또한 그가 정말 천성이 나쁜아이라서, 폭력을 행사하고 반항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을 찾지 못한 후 곤이는 여러 번 거처를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파양당하며 버려진 경험이 있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부모님을 찾았지만 친어머니의 임종도 떳떳하게 보지 못했고 , 아버지는 자신과 소통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버려지고,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내적 자아를 지니고 있는 곤이는 다시 고통 받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버려지지 않기 위해 강해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다만 그 강함을 어른들이 규정해 둔 세계에 반항하고 질서를 위반하는 과시적 욕구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곤이가 신뢰할 만한 어른들에게, 혹은 학교/청소년상담사와 상담을 받으며 유기되는 것에 대한 불안’, ‘이해와 소통의 욕구를 해소한다면 곤이의 문제행동 또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에게 고통이라는 감정에 공감하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나비의 날개를 찢으면서까지 윤재와 소통하고자 하는 장면을 통해 곤이의 진실성과 순수성 또한 엿볼 수 있다. 그러한 윤재의 내면을 이해하며 곤이를 좋은 아이라고 바라보는 것은 윤재뿐이다. 바로 그 때문에 곤이는 윤재와 단 둘이 있을 때만은 다른 누구에게 보이지 않는 속마음을 깊이 터놓을 수 있었다.

 

 

- 그 남자는 말이야…….

곤이가 말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애들과 어울렸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 그 사람이 날 만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게 뭔 줄 알아? 강남에 있는 학교에 날 처넣은 거였어. 거기 가면 내가 모범적으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라도 갈 줄 알았나봐. 근데 첫날 가보니까 나 같은 놈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물인거야. 날 보는 눈빛 하나하나에 그렇게 써있더라고. 그래서 깽판을 좀 쳐 줬지. 거긴 얄짤 없더라. 하루 만에 쫓겨났어.

곤이가 콧바람을 불었다.

간신히 전학시킨 게 여기야. 그나마 인문계라 체면은 섰겠지.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시멘트를 쫙 들이붓고 그 위에 자기가 설계한 새 건물을 지을 생각만 해. 난 그런 애가 아닌데…….

 

- 손원평, 아몬드, 166-167.

 

 

불과 몇 달 전의 기억이 아련하게 머릿속을 오갔다. 나비의 날개를 찢던 날, 곤이가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다가 실패한 그날, 어스름이 내리던 무렵, 바닥에 짓이겨진 나비의 잔해를 닦아 내며 곤이는 몹시 울었다.

- 아무런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싶어.

눈물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조금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기엔 넌 너무 감정이 풍부하거든. 넌 차라리 화가나 음악가가 되는 편이 더 어울릴걸.

곤이가 웃었다. 물기 어린 웃음을.

 

- 손원평, 아몬드, 248.

 

 

 

윤재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과 곤이의 마음 깊은 곳 진실한 내면을 바라보면서, 한 개인이 지닌 외적인 부분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해 그 내면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성급히 낙인찍는 편견을 경계해야 한다는 중요한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특히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음에도 타인의 고통, 타인이 위험에 처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나서서 돕기보다 외면하고 회피하는 범인凡人들과 달리 윤재는 곤이가 위험에 마주했을 때 진심을 전하고 곤이를 구해내고 싶다는 욕망으로 인해 직접 위험과 대면하는 용기를 보인다.

즉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편도체의 크기와 같은 장애나 질환, 혹은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한계로 인해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삶의 방향을 어디에 두고 실천하느냐의 문제에 달려있음을 되새기게 된다.

세월호 유가족이나 실직(해고)된 노동자 등 사회 문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 아픔에 공감한다는 문제도 바로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공감하는 마음을 그저 마음에만 품고 있지 않고 실천적 행동으로 옮기는 것. 나 또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행인 중 한명이 아니었던가 싶은 마음에 부끄러워진다.

 

 

내게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처음엔 할멈을 찌른 남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점차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중략)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엄마와 할멈을 뻔히 바라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그날의 사람들은? 그들은 눈앞에서 그것을 목도했다. 멀리 있는 불행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거리였다. 당시 성가대원 중 한 사람이 했던 인터뷰가 뇌리에 떠다녔다. 남자의기세가 너무나 격렬해,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다고.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 손원평, 아몬드, 244-245.

 

윤재는 엄마와 할머니가 칼에 찔린 그 사건 뒤로 심박사에게 삶의 조언을 얻고, 곤이와 소통하며 진실한 우정을 배우고 고통과 두려움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통찰했으며 도라(이도라)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깨달을 뿐 아니라, 특별한 존재가 된 도라에게는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내밀한 마음을 고백한다.

 

 

불을 끄고 책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내겐 풍경처럼 익숙한 냄새였다. 그런데 거기 무언가 다른 게 실려 있었다. 갑자기 마음속에 탁, 하고 작은 불씨가 켜졌다. 행간을 알고 싶었다. 작가들이 써 놓은 글의 의미를 정말 알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을 알고 깊은 얘기를 나누고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누군가가 가게로 들어왔다. 도라였다.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말하고 싶었다. 마음에 떠오른 불씨가 꺼지기 전에.

- 나 언젠간 글을 쓸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 도라의 눈망을이 뺨을 간질였다.

- 나도 이해 못하는 나를,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 이해.

 

- 손원평, 아몬드, 206-207.

 

 

 

즉 기존의 세계에서 가족을 상실한 후 새로운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결과적으로 윤재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어머니도 기적적으로 회복되며 마무리된다. 편도체의 문제로 감정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평가하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의사들의 확정적 진단을 넘어서 윤재의 소통하고 이해하며 진심을 다하고자 하는 내면의 노력이 결국 뇌(편도체)의 문제를 극복해낸 것이다.

 

 

그렇지만 말이야, 사람의 머리란 생각보다 묘한 놈이거든. 그리고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박사가 웃었다.

-자란다는 건, 변한다는 뜻인가요.

- 아마도 그렇겠지. 나쁜 방향으로든 좋은 방향으로든.

나는 곤이와 도라와 함께 보낸 지난 몇 개월을 짧게 회상했다. 그리고 곤이가 후자로 자라고 변하기를 바랐다. 그 전에 좋은 방향이 어떤 것인지부터 고민해야겠지만.

 

- 손원평, 아몬드, 252-253.

 

 

책장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너무나 마음을 울리는 문구들이 많았던 이 소설은 인간관계를 통해 사랑, 우정, 고통과 두려움, 불안 등 감정들을 다룰 뿐 아니라 진정한 공감이란 실천적 행동의 수반에 있음을, 그리고 삶의 좋은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이 찾은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을 위해 노력해 나갈 때 변화성장을 이룰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좋은 방향을 고민하며 그저 달리는 개개인 모두의 삶이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이 소설을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고민하고 아파하는 청소년들, 새로운 관계를 마주하며 청소년기에 마주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변화와 성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청년들, 외적인 문제행동만으로 학습자(청소년)들을 쉽게 낙인찍으려하는 일부 교사들을 비롯해 선입견을 지니고 타인을 바라보는 어른들, 상실의 아픔을 겪은 이들……. 그들 모두와 함께 읽고 소통하며 성장해나가고 싶다. 삶을 살아가며 그 삶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히는 만큼, 자신이 느끼는 것 그대로 행동하는 만큼 어느 새 한 발짝 나아가 있을 것이다.

 

누워있는 동안 같은 꿈을 자주 꿨다. 운동회가 한창인 운동장이다.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태양 아래 나와 곤이가 서 있다. 무척 뜨겁다. 앞에서 달리기 시합이 펼쳐지고 있다. 곤이가 씩 웃으며 내 손에 뭔가를 쥐여 준다. 손을 펼치자, 반투명한 구슬이 손바닥 위를 또르르 구른다. 중간에 웃는 표정 같은 둥근 선이 붉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구슬을 굴리자 붉은 선이 방향을 바꾸며 울었다 웃었다 한다. 자두 맛 사탕이다. 사탕을 입안에 넣는다. 달콤하고 새콤하다. 침이 고인다. 혀로 사탕을 굴린다. 이따금씩 사탕이 이빨과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낸다. 갑자기 혀가 저릿하다. 짭짜름하고 시큰하다. 비리기도 하고 쓰기도 하다. 그 사이로 다디단 향이 올라와 나는 정신없이 코를 킁킁댄다.

, 어디선가 출발 신호가 공기를 울린다. 우리는 지면을 밀어내며 달리기 시작한다. 시합이아니라, 그저 달리기다. 우린 그냥 몸이 공기를 가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 손원평, 아몬드, 249-250.

 

 

 

여기서부터는 아주 다른 얘기다. 새롭고, 알 수 없는.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 따윈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일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 손원평, 아몬드, 258-259.

 


 

 

 

 

 

 

 

 

 

 http://pedagogics.tistory.com/67 [Magister Lu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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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칵 마음이 쏟아지는 날 - 아무 일 없듯 오늘을 살아내는 나에게
가와이 하야오 지음, 전경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가와이 하야오, 왈칵 마음이 쏟아지는 날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이버 카페 MBTI&Health 서평 이벤트 활동의 일환으로,  예담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 느낌, 감각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것들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왈칵 쏟아져 나와서 일상에 제동을 걸기도 합니다. 이렇듯 마음이란 우리 삶에 관련되어 나타납니다.’

-P12.

 

마음의 실체는 눈으로 볼 수 없기에 때때로 다양한 모양과 상태를 가진 날씨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날씨와 같다면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바람도, 눈보라도 일어나지 않는 잔잔한 상태를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폭풍우, 천둥, 번개, 안개, , 소나기 전부 포함해야 날씨가 되는 것입니다. 눈부시게 햇빛이 비치면 그런 날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1년 내내 햇빛이 쏟아진다면 마냥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땅이 메마르고 농작물이제대로 자라지 못해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되겠지요. 그런데도 우리의 생각은 한가지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P15.

 

 

이 책은 일본의 칼 융 학파 정신분석자로서 분석심리학을 일본에 최초로 소개한 가와이 하야오의 연재 글을 엮어 출간된 책이다. 저자는 담담한 어조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 갈등, 그리고 인간관계의 문제를 기술하고 있다.

대인관계에서 갈등이 있어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 간의 문제로, 혹은 자기 내면의 무의식을 탐색하는 등 수많은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내고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독자에게 책은 마치 활자 너머의 가와이 하야오가 직접 마주해 건네주는 이야기로 다가와, 상담에 대한 간접 경험을 제공한다.

한편, 책 중후반 즈음에는 저자가 꿈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서술되는데, 요컨대 확고한 과학주의자였던 저자는 학업과정 중 지도교수와 수없이 논쟁을 거치기도 했으나, 자신의 꿈에 대한 분석을 받으며 꿈이 내면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과정에서 꿈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 매료되고 소명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저자 뿐 아니라 분석심리학을 확대 및 공고화시킨 칼 융 그 자신 또한 목사인 부친과 신경장애를 앓았던 모친의 사이에서 집안의 종교적 영향을 받으며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리고 기묘하고 끔찍한 꿈들로 인해 신경쇠약을 앓으며 학창시절 학업을 잠시 쉴 정도로 고독하고 불안했던 그가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하며 내부의 문제들을 해소해 간 것을 상기한다면,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내적인 갈등과 고민, 불안, 정신세계, 무의식 등의 요소를 이해 수 있을 때 자기를 인식해 통합된 인격을 갖추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융은 완전한 자기실현을 달성하는 것보다는 자기를 인식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권한다. 자기 인식은 자기실현으로 가는 길이다. 이는 중요한 구분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자기실현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즉각적인 완성을 원해서 순식간에 완전히 자기를 실현한 사람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끊임없는 수련과 지속적인 노력, 최고의 책임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사람의 인생에서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융 심리학 입문E-book, 문예출판사, P77.

 

비록 저자가 직접적으로 융의 정신분석학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원형, 무의식(집단 무의식), 개성화 등 의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는 있지 않으나, 결국 융이 정신분석학의 여러 개념들을 통해 실현시키고자 했던, 개인의 개성화를 통한 자기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독자에게 충분히 유의미한 가치를 제공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만 25년 가까이 살아오며 대인관계에 있어 갈등상황에 대한 불안, 거절민감성이 적지 않게 자리했던 편인 내게 실패나 좌절로 끝난 대인관계는 마음 한켠에 늘 아쉽게 자리해 왔는데 다음 문장을 통해 내가 대인관계에서 범했던 본질적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제공해 준 바 있는데, 바로 평가와 같은 인지적 과정을 배제한 채 그저 들어주어야한다는 점이 그러했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대인관계에서 상대의 고민을 들으며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도와주어야겠다는 문제와 더불어 오해하고 있는 부분, 모르고 있는 부분에 대해 가르쳐주고 정정해 주어야겠다는 생각- 어쩌면 상대에게는 자신을 평가하는 것과 같이 여겨질 수 있는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다. 대학시절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문학(국어교육)과 상담이라는 두 전공을 모두 살려 학교현장에서 교육자로, 상담자로 자리하고자 학업을 지속하며 준비 중인 내게, 가와이 하야오의 이 책은 결국 개인적인 대인관계의 고민을 해소해 주는 상담자가 되기도 했고 앞으로 상담을 지속하려는 젊은이에게 수퍼바이저의 기능까지 제공해 주었다.

개개인의 독자마다, 처한 상황이나 환경 및 심리적 문제, 배경지식, 독서 동기 등에 따라 이 책을 펼치는 심경은 다르겠으나, 독자들 개개인에게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웃으로, 내담자의 문제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존중과 격려를 보내는 상담자로, 상담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수퍼바이저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는 책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들어준다는 느낌으로 이해하면 상하관계의 입장이 됩니다. 상담은 진지하게 받아들일수록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관계’, 즉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이나 부모가 학생과 자식을 대할 때도 자신이 어른이고 위에 있기 때문에 아래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가르쳐준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친구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담하는 사람이 상담 받는 사람과 같은 위치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말에 귀 기울여야 진정한 관계가 싹틉니다. 그런 관계는 생각보다 찾기 힘듭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가르쳐주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학문은 가르쳐줄 수 있지만 인생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독할 정도로 서로가 다른 개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P 2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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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사랑하는 것들과 곁에 있는 것, 정겨운 것들과 기쁨도 단란함도 함께하는 것, 햇살이 비껴드는 방과 맨드라미가 자라는 뜨락이 있고 강아지 한 마리가 있는 것,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었던가. 그것이 사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고향이 있고 남아 있는 가족이 있다. 산다는 것의 의미도, 믿음도, 가치도 다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그 마지막 그루터기, 그 사랑, 그것이 남아있기에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제 나는 그 소중함을 안다.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사이의 사랑이라는 것을. 사람과 사랑이다. 이제 안다. 마지막까지 기대고 부둥켜안아야 하는 것은 사람이며, 사람 사이의 사랑이다. - 『군함도』2-2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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