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2006-07-06
마흔의 빛 마흔의 빛
이선이
바람이 오동의 진보라 속꽃 꺾는 소리에 놀라
잠을 놓친 새벽
진 꽃자리 밟고 서성이는 내게
꺼질 듯 떨고 있던 살별 하나가 걸어들어 왔다
그 빛이 내 꽃자리로 흘러들고 난 후부터
굳고 검붉은 내 입술에도 보랏빛 꽃빛 어려와
순한 빛으로 떠다니곤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들 속에 섞여 걸어도
나만의 보폭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걷게 되었다
그 만큼의 거리나 틈새가 인간적이라고 믿게 되었다
잡담에 몸을 섞어도 혀가 감기지 않았다
거친 말의 덫에서 바람처럼 유유히 걸어 나와
침묵의 엷은 그늘 속에서 혼자 쉴 줄 알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어도 눈치 보지 않고
온전히 밥 한 그릇의 생애에 기댈 수 있었다, 그 만큼
내 허기에 정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내 몸의 어디에서도 옹이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꺾인 희망에 아파하는 일은 없으리라, 아니
옹이에 새겨진 기다림의 나이테가 아프지 않은 것이다
바람처럼 흘러들었다 돌아나가는 한 사람을
말없이 배웅하고 돌아와
조용히 내 후회의 손바닥을 매만질 수 있을 것이다
아플 때 오히려 편안한 마음이듯
나는 고요해 질 것이다
그 빛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그 새벽이 언제였냐고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다
세상의 후미진 곳에 홀로 서 있는 벽오동 진보라 속꽃 진 새벽
빈 몸으로 달려온 빛 하나가 내 몸 속에 사뿐히 흘러들었을 뿐
나를 다 지워버린
그토록 희미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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