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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안의 알약
슈테피 폰 볼프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블랙 코미디.
내가 이 책에서 받은 느낌은 한 마디로 이야기하라면 저 말밖에 할 수 없다.
16세기, 18세 소녀(소설에서는 소녀로 안 나온다. 노처녀다)가 우연찮게 발명하게 된
피임약 때문에 마녀로 몰리고,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는 이야기다.
혼자 도망가는 건 아니고, 같이 피임약을 발명하게 된 맏언니 뻘 체칠리에,
어떻게 하다가 피임약을 먼저 사용하게 되어서 쫓기는 몸이 된 콘스탄체,
사형 집행을 맡고 있는 베르트람은 라우렌티우스, 브라반투스의 도움을 받아
이 세 명을 구하고 나중에는 함께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또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 교회를 불태워야 한다며 합류하게 되고,
또 그다음에는 로빈훗이 등장하고, 또 그다음에는, 또 그다음에는.
아무튼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역사적인 인물이.
“역사가 이렇게 우스워도 되는 것일까?”
라고, 이 책의 뒷표지에는 적혀있다. 16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맨 끝에보면, 한 장 반에 걸쳐 무엇이 진짜 사실인지 말한다.
그리고 그 다음 이 한 마디가 나오는데, 압권이다.
“이 소설에서 사실로 묘사된 모든 내용은 허구이다.”
그래, 411쪽에 달하는 이야기에서 사실에 관한 이야기는 한 장 반밖에 안된다.
그러니까, 뒷표지의 저 말은 책의 전체적인 내용에 비추어 봤을 때 적절하지 못한 말이다.
그러나, 16세기가 페스트가 창궐했고, 마녀사냥의 시기였다는 것은 정말 정말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배경이, 이 소설을 블랙코미디로 만들었다.
그 시대 자체가 블랙 코미디 시대였으니까.
자기 부인에게 질린 남편은, 자기 부인을 고소하여 다른 여자와 새로 결혼하기도 하고,
질투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밀고하기도 했다.
종교는 권력을 유지, 강화시키기 위해서 무수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다.
평민들은 교회나 이웃들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 썼고.
하루가 멀다하고 마을 광장에서는 공개처형이 있었다.
대부분 그들의 죄명은 악마와 내통했다는 것.
그런데 문제는 악마와 내통했다는 걸 본 사람도 없고,
악마와 대화하는 걸 들은 사람도 없었는데도, 악마와 내통했다는 죄명이 붙었다.
그냥, 고문해서 마녀(?)들이 자백해서 악마와 내통했다고 하는 것이다.
자백을 안 하면, 악마와 약속을 해서 말을 안한다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50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하나같이 블랙 코미디일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작가는 웃기게 쓸려고 한 노력이 보이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작가는 성문제도 많이 다뤘다. 이것도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백작부인이 이 문제에 집착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그걸 위해 이들 무리에 들어오게 된다.
사실 정숙한 백작, 공작 부인들이 많은 추문을 일으키고 다녔다는 것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카사노바의 회고록을 보면 잘 알수 있다던데, 아직 안 읽어봤다
)
엽기적인 방법들을, 글을 읽고 쓸줄 알는 작위있는 사람들이 글로 남겼기도 했고.
이 소설 말고, 최근에 봤던 <궁녀>에서도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공포, 스릴러 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블랙 코미디의 느낌이었다.
아마도 과거라는 것이, 내게 블랙 코미디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 보면, 어이없는 것들이 그때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고도 중요한 것이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