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베틀북 그림책 13
프리드리히 헤헬만 그림, 미하엘 엔데 글, 문성원 옮김 / 베틀북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제가 좋아하는 책은 재미있고,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책입니다. 게다가 쉽다면 금상첨화이지요. 이런 나의 취향에 꼭 맞는 책을 쓰는 작가는 미하엘 엔데 입니다. 주제 넘은 생각이지만, 저는 그의 글을 읽고 깨닫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니, 제가 얼마큼 좋아하는지 대충짐작하실 겁니다.

거의 어느 책이고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아주 얇디얇은 그림책에서 조차 그러 했으니까요. 미하엘 엔데는 아이들을 위한 책도 썼습니다. 동화책이지요. 그러나 읽어보면 정말 아이들을 위한 책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기도 하니까요. 그러면 또, 아이는 읽기 힘드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미하엘 엔데는 모두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썼습니다. 아이들일 읽으면, 재미있고, 어른들이 읽으면 감동받는 그런 책 말입니다.  

저는 소수의, 소수인에 의한, 소수인를 위한 어려운 책보다, 쉬우면서도 깊은 무엇이 있는 것 같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런 책이 더 좋고, 그런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도 쉽게 풀어서 쓸수 있는 능력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런 놀라운 능력을 미하엘 엔데는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요. 또 그의 책을 읽었습니다. 자꾸 읽어도 질리지 않거든요. 오늘은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을 읽었습니다.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작고 오래된 도시에 사는 어느 부부가 딸아이를 한 명 낳았습니다. 부부는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연극배우가 될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아주아주 유명한 '오필리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커서 연극배우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연극배우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요. 그렇게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오필리아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너무나 많이 바꼈습니다. 도시에 집집마다 텔레비전을 들여 놓았고, 도시엔 영화관이 생겨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자그마한 극장에 오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극장은 문을 닫게 되었지요.  

극장이 문을 닫는 그날, 오필리아는 감상에 젖어, 극장에 혼자 있는데, 외로운 그림자가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게 되죠. 할머니는 야박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 그림자를 혼자 내버려 둘수 없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외로운 그림자를 거둔다는 할머니의 소문이 그림자들 사이에 돌았습니다. 나중에는 차고 넘치도록 많은 그림자들이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웃사람들은 할머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야박한 집주인은 할머니를 쫓아 냈습니다. 은혜를 아는 그림자들은, 할머니께 배운 연극을 재주삼아, 온 시골을 유랑합니다.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이라는 이름을 달고요. 또다시 할머니의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죠.

그러던 어느 아주 추운 겨울날, 눈에 갖혀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었을 때, 할머니가 만날 마지막 그림자를 만나게 되죠. 그 그림자는 그 어떤 그림자보다도 어둡고 컸습니다. 그 그림자의 이름은, <죽음>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다른 그림자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그림자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드립니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행복한 죽음을 맞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행복하게 저 세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데리고 다니던 그림자들도, 또다시 외롭게 이승에 머무르지 않겠금 같이 올라 갔지요. 할머니가 간 곳은, 천국이었습니다. 천국도 극장이 있었죠. 그곳에서 할머니와 그림자들은 계속해서 그들이 좋아하는 연극을 계속했답니다. 가끔 하느님도 그 극장에 들리셨다고 해요. 그 극장의 이름은, 바로 <오필리아의 빛의 극장>이었답니다. 

 


그대로 받아드림

 
그림자의 이름들은 하나같이, 소외되고 어둡고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림자들을 할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고 받아들이죠. 할머니의 포용력, 참 대단하죠. 아무나 할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림자들이 만날 다투고 그 숫자가 너무 많이 불어나 이웃사람들의 수근거림을 들었어야 했음에도 할머니는 그림자들에게 다그치거나 뭐라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그들이 화목하게 잘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요. 그리고, 시골에서 문화적 헤택을 못받는 사람들을 찾아가  연극으로써 그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안겨줍니다. 할머니와 그림자들도 행복했고요.  

이승에서 그림자 극장이, 천국에 가서 빛의 극장이 된 것은 다만 이승과 천국의 차이를 이야기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자도, 빛도 서로 있어야 생기는 거 잖아요. 모든 불편하고 어두운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 때, 비로소 행복의 빛이 자신에게 주어질 수 있겠죠.  

세상에는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에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부터 혼자 있을 때 드는 외로움까지. 하지만 이런 세상 속에서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죠. 행복한 사람은, 사는데 불편한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불편한 것까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죠. 오필리아 할머니는 그런 분이셨어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죠. 그러니 죽어서 천국에 갔을 때까지, 이승해서 행복을 느꼈던 일을 계속할 수 있었을 거에요. 간혹 하느님까지 찾아오시는 특권까지 누리고 말이죠. (단, 하느님이 진짜 찾아가셨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 ^^)
 

예전에 생텍쥐페리의 서간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을 꾸미는 능력부터 키울 것이 아니라 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요. 읽으면서 백번 천 번 공감했는데, 이렇게 보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 중 한 명이 미하엘 엔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포용력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 이런 멋진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람들마다 이 책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겠지만요 - 아무 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저도 그만 좀 화를 내고 세상을 포용해야겠습니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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