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린터 - 언더월드
정이안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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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대박. 대박이다, 대박. 
장르물은 나랑 안 맞아서 안 읽는데(가장 최근에 읽은 장르물이, 몇 년 전에 읽은 황금가지에서 나온 모리스 르블랑의 『뤼팽 전집』이다) 이 책은 <책 소개>가 마음에 들어서 읽었다. 별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첫 장 읽을 때부터 두근두근 하더니, 끝까지 두근두근거리네?! 

책의 전체적인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흡입력 있다. 그래요, 가타부타 배경설명으로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소설의 구성은 보통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인데 이 책은 그중 <발단-전개> 부분이 단 몇 페이지로 상당히 짧고, 곧장 '위기'로 빠져든다. 주인공들 어리둥절!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위기야!


이런 장르를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진짜 나, 장르물이라곤 안 읽어서!) 좀비물과 비슷하게, 평화로운 일상에 있다가 갑자기 위기의 상황에 처한다. (아니, 주인공 처지는 딱히 평화롭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설 내내 겪은 일들에 비해선 평화롭고, 아늑하고, 행복한 일상이었죠) 갑자기 동시다발적인 지하철 테러로, 지하 세계와 지상 세계가 '뚝!'하니 단절되고 주인공 아이들은 지하철 통로에 완전히 갖혀 버린다.(뭐, 아이들이라곤 해도 열아홉살입니다. 크긴 다 컸어요.) 다른 지하철 역에서 부상 당해 옴짝달싹 못하는 어머니를 찾아 나서는데, 갑자기 웬 괴물들이 지하 어디선가 떼거지로 나타나 '키에에엑, 키에에엑' 거리면서 사람들을 잡아 먹고, 패대기치고 죽인다. 지하철 역사는 모두다 막혔는데!!! 절체절명의 위기!!!!!

일상의 붕괴, 일상의 깨짐. 이런 건 좀비물에 흔히 나오는 설정일 것이리라. 그런데도 읽으니 막 또 빠져드네?! 심장은 쫄깃쫄깃 해지네?!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인간들을 아작아작 씹어 먹고,  미스터리하게 부상자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간다(그게 하필 또 왜 주인공 엄마냐?!). 언제 또 나타날지, 도대체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다. 책을 읽다 보면 괴물들이 좀비처럼 무작정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공격하고 먹는 게 아니었다. 사연 없는 사람 없듯, 사연 없는 괴물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궁금하여 더 홈빵 빠져들 된다. 

물론 장르물의 특성상, 이 책의 캐릭터들은 정형적이고도 정형적이다. 플롯도 정형적이다. 그러나 복선이랄지, 이야기의 흐름이 모든 게 매끄럽게 잘 연결되어 있어서 판에 박힌 듯한 정형성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어쩌면 이런 편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데 좋으리라. 좋은 소설이란 나는 이래야 한다고 본다. 내가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읽는 내내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서, 그러니까 작위적인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서 좋아한다. 이 책, 『스프린터 언더월드』도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물론 위에 말한 대로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 흐름은 정형적이라 작위적이라 할 수 있지만 설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잘 짜여져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별로 못 받았다. 이야기가 참 매끄럽게 잘 짜여져 있다. 그러니까 허술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니라는 말! (그렇다고『호밀밭의 파수꾼』과 『스프린터』가 대등하다는 건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나에게 영원한 고전이자, 스테디셀러다)

『스프린터』,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를 머릿속에서 플레이하는 느낌이었다. 캐릭터 하나하나 생생히 살아있다. 하나 같이 내 눈앞에서 달리고, 넘어지고, 소리치고, 비명 지르고, 도망가고, 피 흘리고, 바위 뚫고(응?), 투명해지고(응?응?), 텔레파시로 대화하고(응?응?응?) 그런다. 모든 설정들이 이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법한 설정인데, 그럼에도 하나같이 리얼하다. 저자가 시나리오를 썼던 작가여서 그럴 것이다. 분명 책을 읽는데,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머릿속에 깨끗이, 그리고 온전히 그려진다. 단, 캐릭터의 얼굴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얼굴에 대한 묘사가 없어서 모든 이의 얼굴이 뿌옇게, 얼굴없는 사람들이다. 단 한 명의 얼굴만 뚜렷이 상상되었는데 그냥 스치고 지나가 사라진 <노아에서 화니를 알아본 노숙자> 얼굴만은 구체적으로 상상이 가더라. 수북한 수염이라는 표현과 꾀죄죄한 노숙자라는 설정 때문이다. 책의 뒤편에 캐릭터 그림이 두 점 실려 있다. 신야는 '그래, 그래, 이렇게 생겼을 거야'라며 공감했으나, 주인공인 단이 얼굴은 참 아닌 것 같았다! 좀 더 남자다운 얼굴이어야 할 것 같던디!


장르물이라는 게 이런 것인지, 새로운 눈을 뜨게 만들어 준 책이다. 총 3부작이라고 하던데, 어서 2권도, 3권도 읽고 싶다.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ㅁ+ 2권, 3권에서도 지금 같은 재미 유지해 다오, 제발. 그러니까 이야기가 산으로 가지 말아다오. 아무튼 신난다. 재밌는 책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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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키퍼스 와이프
다이앤 애커먼 지음, 강혜정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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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없이는 못 본다는 폴란드 역사의 한 토막을 다룬 논픽션입니다. 

  1930년대 후반,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바르샤바 동물원'. 바르샤바 동물원은 당시 유럽의 다른 동물원들과 달랐습니다. 인간들의 단순 볼거리로 동물을 전시, 진열해 놓았던 여타 동물원과 달리, 바르샤바 동물원은 동물의 습성, 생리, 심리를 세심하게 고려해서 조성한 동물원이었죠. 비록 동물원에 갇힌 신세긴 했지만 동물들은 적응을 잘 했습니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육사도 사육사였지만, 극진히 동물을 돌봐주는 안토니나 자빈스키 덕분이었습니다. 안토니나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로, 동물들과 교감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민하고 흥분했던 동물도 안토니나와 함께 있으면 온순해졌습니다. 

  안토니나 자빈스키는 바르샤바 동물원의 안주인이라 할 수 있었어요. 남편, 얀 자빈스키는 바르샤바 동물원의 원장이었습니다. 얀이 대표로서 모든 걸 결정하고 진두지휘했고, 안토니나는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모든 일이 잘 돌아가게금 했지요. 자빈스키 부부는 동물을 무척 사랑하는 부부였습니다. 동물원의 동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죠. 

  그러다가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자빈스키 부부는 잠시 피난을 떠났지만, 곧바로 동물원으로 돌아옵니다. 동물들이 걱정이 돼 돌아온 것이죠. (잠시 동물원을 떠났던 이유는 본인들의 목숨 걱정보다 어린 아들의 안위 때문이었습니다.)

  땅을 뒤흔들며 바르샤바 거리를 돌아다니는 탱크들, 저공비행하며 폭탄을 쏟아붓는 전투기들. 그야말로 지옥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연기가 솟구치는 아비규환의 현장입니다. 그래도 동물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동물원에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동물원의 우리가 폭탄에 부서지고, 녹아내려 성나고 흥분한 동물들이 우리 밖으로 뛰쳐나왔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사나운 고양잇과 동물들, 덩치 크고 위험한 포유류는 사살했습니다. 자빈스키 부분은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한 달 남짓 독일의 일방적 공격으로 바르샤바는 물론 폴란드 전역이 초토화되었고 폴란드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독일군들이 폴란드로 물 밀듯 밀려들어왔습니다. '열등한 슬라브족은 비켜라 우월한 아리안족이 이 땅을 차지하겠다' 뭐 이런 논리였습니다. 폴란드인들은 밀려나거나, 그들 아래에서 억압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 유대인들은 더 찬밥신세입니다. 찬밥보다 더 못한 신세죠. 그들은 따로 '게토'라는 곳에 격리됩니다. 처음엔 단순히 데려간다고만 생각했지만 곧 흉흉한 소문이 돕니다. 전쟁통에서의 소문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이 소문보다 더 지독하고 끔찍했습니다. 

  자빈스키 부부는 동물원 우리와 그리고 그들이 사는 빌라에 유대인을 숨겼습니다. 동물원에는 독일인도 자주 들락거렸기 때문에 오래 머물 곳은 못 되었습니다. 게토 탈출 후 잠시 머물다 떠다는 임시 숙소 같은 곳이었죠. 자빈스키 부부는 전쟁 발발 1939년부터 1945년까지 300여 명의 유대인을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얀 자빈스키는 낮엔 동물원장으로, 밤엔 레지스탕스로 맹활약합니다. 독일군 기차를 폭발시키거나, 독일군들이 먹는 돼지고기에 유해한 세균을 넣어 납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게토로 들어가 직접 유대인을 구해냅니다. 목숨을 내놓다시피 한 위험한 일이었죠. 당시 폴란드에서는 유대인을 숨겨주는 것은 물론이고, 물 한 잔 건네는 것조차 안되었습니다. 그러면 사형이었죠. 독일군은 프랑스, 스위스 등 여러 나라에서 못되게 굴었지만, 폴란드에서 더 차별적이고, 더 지독하게 행동했습니다. 폴란드인은 슬라브족이었고, 독일인은 그들을 열등하게 봤기 때문이죠. (아,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과 믿음이냐. 순수혈통에 대한 맹신이 인간의 눈을 가린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독일이 폴란드를 지배한 적 있기 때문에 더 차별적으로 대했던 것 같아요. 폴란드에서 독일군의 만행은 입에 담기도 힘듭니다. 길을 가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이 다반사였으니까요. 

  책에는 유대인을 구하던 아슬아슬한 일들이 많이 나옵니다. 소설보다, 영화보다 더 위험했고, 더 극적이었던 순간이 많았을 겁니다.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글로, 영상으로 느껴지는 것보다 실제로는 얼마나 긴박하고 숨이 터져버릴 듯 무서웠을까요. 그건 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영화로도 결코 담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씁쓸했던 것은, 인간이 동물원 우리에 숨어서 동물이 음식물을 받아먹듯 인간이 음식물을 받아먹는 모습, 우리에 한 덩이 어우러져 지내는 모습이었습니다. 보통 같으면 놀랄 노 자겠죠. 하지만 참 말하기 뭐 하지만 동물 우리이든 빌라의 어느 한구석이든 그 어디든 동물원 안이라면 안전하고, 아늑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생지옥인 게토에서 도망 나온 유대인에게는 동물 우리 속이 천국이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어떤 게토는 독일 고위 인물이 이리저리 도망치는 유대인 아이들을 사냥하듯 총으로 쏴 죽입니다. 단지 자기 기분이 따라 만행을 저지른 거죠. 그런 곳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에게 동물 우리가 어떻게 천국이 아닐 수 있겠나요. 

  세상에서 제일 철두철미하고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독일인들. 유대인 죽이는 데도 서류가 제일입니다. 대단하달까, 어이없달까 싶은 관료주의 정신이죠.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이나 로맹 가리가 쓴 여타의 소설을 보면, '신분증명서', '출생증명서' 등등이 꽤나 중요하게 다뤄지고, 집착하리만큼 애쓰는 것이 느껴지는데 『주키퍼스 와이프』를 읽으면 로맹 가리가 쓴 내용보다 실제로는 더 심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산더미처럼 쌓인 위조 서류들, 곧 무너져 내릴 만큼 많았죠. 몇 장의 종이로 한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으니, 위조 서류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렇게 애를 쓸 수밖에요. 그리고 살려야 할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에 이르렀으니, 서류에 압사당할 만큼 서류가 산더미인 거죠. 


  이 책은 위에도 언급했듯이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이게 실화냐? - 네, 실화입니다) 쓴 논픽션입니다. 안토니나 자빈스키의 일기를 바탕으로, 저자의 직업이 박물학자인 것에 걸맞게 그 시대의 방대한 자료를 모아 1939-1945 (살짝 그 이후까지)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처럼 막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자빈스키 부부 이야기를 하다가, 당시 상황들, 에피소드들, 배경 설명 등등에 할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주로 안토니나 자빈스키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동명의 영화에서는 그녀가 주인공으로 나오죠. 이 책에서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웅적으로 묘사하진 않습니다. 저자가 연민, 애틋한 마음으로 안토니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책에, 안토니나 자빈스키는 용감하지만 보통의 여자이고, 보통의 여자이면서도 용감하고 자신의 일을 책임 있게 처리하는 여자로 비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요즘 핫한 '페미니즘'은 다루지 않습니다. 그녀를 무시하는 남편과 그 남편을 똑빼닮아 똑같이 행동하는 어린 아들도 종종 안토니나를무시하니까요. 그 당시 폴란드의 한계, 젠더 인식의 한계일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당시로서도 유럽에서 폴란드는 미신이 강했던 곳이니까요. 어쨌든 페미니즘적 요소를 원하시는 분들은 이 책 읽고 뒷목 잡을 부분도 있으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기대 않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이 책을 읽고 폴란드의 역사를 알고 싶어졌어요. 눈물로 얼룩진, 한으로 가득한... 그리고 영화도 보고 싶어요. 이 책은 약간 박물적인 부분도 있는데, 영화는 그런 것 다 제하고 스토리에만 집중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살짝 예고편을 봤는데, 참말 보고 싶어졌어요. 동화 같으면서도 악몽과 비극적 분위기로 표현을 잘한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안토니나 자빈스키 옷이 다 예뻐...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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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서양미술사 1 - 미술관에 가기 전, 교과서에 나오는 화가 이야기 10대를 위한 서양미술사 1
노성두 지음 / 다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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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책이지만, 10대인 척 읽어봤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쉽고, 간략한 미술사 교양서적입니다. 


책의 구성은 서양 미술사조 흐름에 따라, 각 시점마다 꼭 알아두어야 하는 작가를 뽑고 그 작가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림보다 작가가 주인공인 책이죠. 작가들의 자식인 대표작은 곁가지처럼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가를 소개하기 위해 수록됐달까요. 작품은 대부분 어디서 본 것이나, 처음 보는 작품도 있어서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아주 쉽고, 재미난 책이지만, 전문가가 쓴 책이 그렇듯이 쉬운 글, 행간 사이사이로 저자의 내공이 엿보입니다. 


쉽고 재미있어요. 저자가 정성 들여 쓴 것이 보이고, 편집자도 심혈을 기울인 게 느껴집니다. 오탈자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마 없겠죠? 저는 하나도 못 봤어요. 미술에 관심 있으신 분께 추천해요. 아이와 함께 읽어도 상당히 좋을 것 같네요. 



+ 미술사 책을 읽으면, 책장을 넘기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방금 읽은 것이 머릿속에서 사라집니다. 망각의 속도는 빛의 속도와 비등한가 봅니다. 지금까지 영차영차 힘들여서 여러 권의 미술사 책을 읽었는데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놀라울 따름이에요. 망각의 능력은 혀를 내두릅니다. 학교 다닐 때, 암기식 공부, 벼락치기 공부의 폐해인가요?! 암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외우고 바로 잊어버리는 암기, 나머지 하나는 외우고 계속 기억하는 암기. 학교 다닐 때 주입식 교육은 외우고 바로 잊어버려도 되는 교육이었습니다. 그때의 몹쓸 습관이 내 몸에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네요. 매사, 만사, 오만것, 때만것이 금방 잊혀 버립니다. 꼭 외우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쉽게 망각되어 슬프네요(외운 거 또 외우기도 귀찮고. -ㅅ-ㅋ). 그런데 잊고 싶은 기억들은 왜 그렇게 잊히지 않는 걸까요? 


삶에, 배움에 암기는 정말 중요하고, 배우고 익혀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더욱이 중요한데, 외운 것을 금방 잊는 습관이 몸에 배어 힘드네요.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암기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미술사조와 그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작가들은 꼭꼭 암기하고픈 여러 가지 것들 중 하나입니다. 일단 청소년들도 꼭 알아야 하는 작가들, 작품들 위주로 암기하고, 이해해 나가도록 해야겠어요.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 기억하는 것도 좋겠군요. 제대로 이해한 것은, 저절로 스토리가 내 마음에서,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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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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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1949년부터 1969년까지 20년 동안 미국의 가난한 작가가 영국 고서점에 편지를 보내어 양질의 고전들을 저렴하게 산다는 내용으로, 소설이 아니라 실제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서간집이다. 이 책은 출간 후 히트를 쳤고,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무명 작가가, 자기가 쓴 작품으로는 주목 받지 못하고, 편지로 유명해지다니) 

인터넷 평을 보면 이 책에 대해 칭찬 일색, 좋은 말 일색인데 나는 이 책을 못 읽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읽은 것도 아니다.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았고, 기분도 딱히 좋아지지 않았다. 내 감정이 매말랐냐옹?! 


어쩌면 내가 편지 속 작가와 서점 직원의 로맨스를 기대하고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휴, 클리셰를 싫어하면서도 본능적으로 클리셰부터 찾는 나를 보게!) 하지만 이 책엔 로맨스 따윈 없다. 미혼인 작가에겐 기대해볼만했으나, 영국 서점 직원은 이미 결혼을 했고, 애도 둘이나 딸린 아버지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떤 기대의 끈이 탁 끊어져 버림. 내 기대 물려내~) 




예의 바르고 깍듯한 서점 직원, 프랭크. 서점의 피고용인이나 영국 신사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편지를 주고 받은 첫해인 1949년부터 1969년 사망할 때까지 한결같다. 고객인 헬렌 한프는 시원시원하고 농담도 곧잘 한다. 때로는 심술궂은 여왕처럼 군림하며 까다롭게 책을 주문하거나 받은 책에 대해 불평불만을 해댄다. 헬렌의 무리한 요구에도 프랭크는 엄청난 직업 정신을 발휘해 구하기 힘든 책도 요령껏 구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그녀에게 보내 준다. 


이 책을 소개한 글을 보면, 미국 작가와 영국 고서점 직원을 이어준 것은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하던데, 내 생각엔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책'이 이 책의 핵심이고, 관계의 '매개'이지만 둘을 끈끈하게 이어줬던 건 '책이' 아니라 바로 '가난'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은 승전국이었음에도 전쟁 동안 잇따른 공습으로 초토화됐다. (그나마 영국이어서 덜 파괴됐을 테지만) 종전 후 4년이나 됐지만, 영국은 여전히 배급제를 시행한다. 돈이 있어도 필요한 물건과 음식을 구할 수 없었다. 영국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에도, 부활절에도 먹고, 입을 것이 부족했고, 아이들에게 신길 양말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이럴 때 헬렌이 미국에서, 영국 서점 직원들에게 계란도 보내주고, 양말도 보내주고, 귀하디 귀한 고기도 보내준다. 서점 직원들이 얼마나 기쁘고 기뻤을까. 전쟁 이후, 보지도 못했던 귀한 음식들, 귀한 물자를 받고서! 


배급제가 시행되던 해의 편지들은 애틋하다. 서점 직원들이 앞다퉈가며 헬렌에게 답장쓰고 싶어 한다. 프랭크의 이웃집 할머니까지 그녀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단순히 책만 가지고, 서점 직원과 미국 작가가 끈끈하게 이어졌다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이후 인프라가 복구되고, 배급제도 끝나면서 오고가는 편지도 급속도로 줄어든다. 애틋한 마음으로 빼곡히 채워졌던 편지는 짧아지고, 차가워지고, 딱딱해진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서점 직원들과 미국 작가 간의 식어가는 마음이 느껴져서 난 오히려 씁쓸하더라. 시간이, 우정과 애틋한 마음을 더해주는 건 아니었다.  이게 참 슬프더라. 한결 같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오고 가는 편지뿐일까. 우리들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다가왔다가 물러가는 시간의 파도에, 많은 것들이 쓸려나간다. 소중한 것, 소중한 관계는 손에 꽉 쥐고, 놓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나브로 사라지고 없어져버리고 만다. 



[이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

+ 실패한 작가라 해도, 작가의 독서량, 독서 깊이는 상당했다. 

+ 영국 고서점 직원은 엄청난 식견과 지식이 있어야 하는 전문직이었다. 과연 우리나라 고서점, 헌책방 사장님과 직원은 그러하신가 궁금했다. 글쎄 잘 모르겠다. 알록달록한 책들이 중구난방으로 쌓이고, 꽂힌 우리나라 헌책방들을 보면 딱히 식견과 전문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헌책방에 갈 때마다 안 좋은 기억들을 쌓았던 나로서는, 이런 직업정신과 서비스정신이 투철한 헌책방을 애용할 수 있었던 외국인들이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다. 내게도 헌책방에서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빼앗긴 기분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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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섭의 글쓰기 훈련소 - 내 문장이 그렇게 유치한가요?
임정섭 지음 / 다산초당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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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쳐든 당신! 글쓰기 훈련소에 입소하신 겁니다!! 짝짝!! 

글쓰기 훈련과정은 총 4단계로 이루어집니다. 
- 1단계에서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글에서 잘못된 글쓰기 사례를 살펴봅니다. 잘못 쓴 남의 글을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것이지요. 혹은 자신도 범했던 실수를 되짚고 공부하는 단계입니다. 
- 2단계에서는 글을 잘 쓰기 위한 기본적인 태도와 마음가짐과 글의 장르에 따른 글쓰기 기술을 익히는 단계입니다. 
- 3단계에서는 실전처럼 글쓰기를 연습하는 단계입니다. 글을 구성하는 연습을 하고, 글의 장르에 따라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을 익힙니다. 
- 4단계에서는 글쓰기에 유익하고 실용적인 연습 방법을 훈련합니다. 

[1단계 오답노트]
① 에세이 : '나는', '내가 보기에', '~라고 생각하다' 등의 표현은 빼는 게 좋다고 합니다. 흔히 말하듯이 에세이를 써서, 문장이 길어질 수 있는데요, 이는 좋지 않은 습관으로 간결하게 쓰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② 홍보문 : 주어, 술어 호응 단디 확인하기! 문장이 길어지면 주술 호응이 깨질 우려가 크니, 문장은 짧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③ 공지문(안내문) : 일상적인 안내문에도 문학적인 표현을 과도하게 쓸 때가 많은 데요, 그럴 경우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흐트러지니 공지문 등에는 문학적인 표현을 자제해야 합니다. 
④ 번역문 : 번역서를 읽다 보면 문장이 애매모호하고 난해한 문장이 많지요. 그리고 영어나 일본어는 수동태를 많이 쓰는데, 이를 그대로 번역에 반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말은 수동태보다 능동태를 많이 쓰니, 우리 말에 맞게 번역하는 것이 좋겠죠. 
⑤ 판결문 : '판결문 쉽게 쓰기' 장려 운동을 해도 여전히 판결문은 어렵고, 법원의 보도 자료 글도 문제점이 많습니다. 쉬운 우리말, 짧은 문장, 간결한 문장으로 쓰도록 해야 합니다. 판결문도, 보도 자료도 이해 당사자는 물론 관심 있는 국민들을 위한 글이니 독자에게 맞는 글을 쓰는 게 맞겠죠. 
⑥ 학술논문 : 글은 압축의 묘미가 있어야 하죠.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 단어 수식과 문장 구성은 지양해야 합니다. 
⑦ 공문서 : 공문서의 경우 관행대로 쓰기 쉽습니다.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치기 쉽다는 말인데요, 이를 고쳐야 하고, 정리 안 된 보고서, 분량만 많은 보고서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산만해질 수 있으니 한 장으로 줄여 쓸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2단계 이론학습] - 태도 / 기술
① 태도  :글쓰기에는 여러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 태도에는 용기, 끈기, 간결, 단정, 명쾌, 공평, 자신, 책임, 소박, 품위를 들 수 있습니다. 잘을 잘 못 쓴다고 하더라도 용기를 내어 글을 써야 하고, 또 많이 써야 글쓰기 실력도 느니 끈기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합니다. 사족은 빼고, 주어 술어를 일치시킨 단정한 글, 깔끔하고 논리적으로 적절한 단락 짓기! 불필요한 단어와 표현, 문장은 빼고 빼서 명쾌하고 깔끔한 글쓰기! 의도적이지 않는 한, 같은 단어, 같은 표현은 쓰지 않도록 하고, '~인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라는 표현은 자신감 없어 보이니 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성이 드러난 글이 좋으며, 감정 과잉 등 과도한 표현으로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해칠 수 있으니 과잉보다 약간은 부족하더라도 소박한 글을 써야 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품위! 리듬감 있는 대구 표현과 문체의 간결성은 문장의 품격을 높입니다. 
② 기술 : 우선 글쓰기 전에 어떤 글을 쓰는가(장르)가 중요하겠죠. 장르를 선택한 후 글의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화제, 정보, 감동, 이슈' 이 4가지 중 하나가 꼭 들어가야 글을 읽는 사람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글의 포인트를 정하고,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제목이나 첫 문장에 씁니다. 그 이후 핵심 문장을 뒷받침하는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편집을 잘 하고, 퇴고도 냉정히! 

[3단계 실전 연습] - 구성 / 장르
① 구성 : 개요 짜기, 과제 분석, 문제 파악하기, 문제 분석, 글 확장하고 읽는 사람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글의 앞부분에 간결하면서도 사람들이 궁금해할 글을 적습니다. 글쓴이의 독특한 의미 부여도 글 구석구석에 넣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글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고, 두괄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좋습니다. 
② 장르 : 여기서 말하는 장르는 판타지, 로맨스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요, 기본 보고서, 공지문, 기안문, 설명문, 이메일, 보도 자료, 현황 보고서, 문제 해결 보고서, 기획서 등 글의 종류를 의미합니다. 이 부분은 1단계, 오답노트 부분에서도 조금 언급된 부분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글의 종류에 따른 적절한 훈련을 합니다. 

[4단계 습관 기르기] 
글쓰기 연습에 좋은 학습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① 신문 사설, 칼럼 요약하기 ② 필사하기 ③ 어휘 공부하기 ④ 다작하기(설명문 작성 일상화하기!!) ⑤ 몰입하기(생각도 매일 해야 생각 근육이 키워집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보세요!) ⑥ 1일 1상하기(매일 하나 아이디어 쓰기!) ⑦ 남을 위해 뉴스 배달해보기(흥미로운 뉴스거리를 직접 글로 써서 소개하는 것도 글쓰기 연습에 상당히 유용한 방법) ⑧ 명문 탐색 (감명받은 문장 곱씹어 보기! 좋은 글을 자주 접해야 글을 보는 감각이 키워지고, 자연스럽게 글도 잘 쓸 수 있겠죠)
- 신문 사설과 칼럼은 글쓰기 실력 향상에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될 듯합니다. 칼럼 안엔 당연히 그날그날의 이슈를 다루니 시사 상식 쌓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고, 생각하기/논리적으로 글쓰기에도 도움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실행에 옮겨야지. +ㅁ+ 




[이 책의 좋은 점]
- 예시문이 풍부하게 실려 있어서, 어떤 글이 잘 쓰인 글인지, 어떤 글이 잘못 쓴 글인지 익히기 쉽습니다. 이것만 잘 알고 있어도 글쓰기의 많은 도움 되죠.  특히, 1단계 오답노트 부분에서 글쓰기에 참고할 사항이 많습니다. 

[이 책의 아쉬운 점]
- 글을 이루는 하나, 하나의 문장은 다 괜찮고 좋은데, 범위를 확장하여 각 단락과 각 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보면 좀 산만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예시문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같은 장에 들어갈 내용이라도 그 내용이 다르다면 소제목을 더 잘게 쪼개 따로 배치하거나, 맥락에 안 맞는 부분은 삭게 했으면 한 아쉬움이 있네요.

[추천 대상]
이 책은 실용문 쓰기에 좋은 팁이 많으니, 보고서, 안내문 등 실용문 많이 쓰시는 분들이 읽기 좋습니다. 문학적인 글은 다루지 않으니 소설 작법, 시 작법 훈련을 기대하고 읽지는 마시길! 

+ 똑같은 사건, 똑같은 느낌을 표현하려고 해도 다른 어휘, 수만 가지의 편집 방법이 있습니다. 망망대해, 하나의 배로, 하나의 뱃길을 내는 것과 같은 느낌인데요, 넓디넓은 바다는 아무렇게나 가도 될 것 같지만 바다 위도 좀 더 나은 길이 있습니다. 풋내기 선원으로서는 좋은 뱃길을 찾기 힘듭니다. 경험 많은 선장이 그간 쌓은 지식과 직감으로 찾아낼 수 있는데요, 글도 그렇다고 봅니다. 좋은 글 많이 읽고, 글에 대한 지식도 많이 쌓고, 그러면서 글도 많이 써보아 직감을 키워야 합니다. 공부에 왕도(王道) 없고, 글쓰기에도 왕도(王道) 없으니 말이죠. 물론, 무엇보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의욕이 제일 먼저일 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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