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린터 - 언더월드
정이안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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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대박. 대박이다, 대박. 
장르물은 나랑 안 맞아서 안 읽는데(가장 최근에 읽은 장르물이, 몇 년 전에 읽은 황금가지에서 나온 모리스 르블랑의 『뤼팽 전집』이다) 이 책은 <책 소개>가 마음에 들어서 읽었다. 별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첫 장 읽을 때부터 두근두근 하더니, 끝까지 두근두근거리네?! 

책의 전체적인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흡입력 있다. 그래요, 가타부타 배경설명으로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소설의 구성은 보통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인데 이 책은 그중 <발단-전개> 부분이 단 몇 페이지로 상당히 짧고, 곧장 '위기'로 빠져든다. 주인공들 어리둥절!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위기야!


이런 장르를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진짜 나, 장르물이라곤 안 읽어서!) 좀비물과 비슷하게, 평화로운 일상에 있다가 갑자기 위기의 상황에 처한다. (아니, 주인공 처지는 딱히 평화롭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설 내내 겪은 일들에 비해선 평화롭고, 아늑하고, 행복한 일상이었죠) 갑자기 동시다발적인 지하철 테러로, 지하 세계와 지상 세계가 '뚝!'하니 단절되고 주인공 아이들은 지하철 통로에 완전히 갖혀 버린다.(뭐, 아이들이라곤 해도 열아홉살입니다. 크긴 다 컸어요.) 다른 지하철 역에서 부상 당해 옴짝달싹 못하는 어머니를 찾아 나서는데, 갑자기 웬 괴물들이 지하 어디선가 떼거지로 나타나 '키에에엑, 키에에엑' 거리면서 사람들을 잡아 먹고, 패대기치고 죽인다. 지하철 역사는 모두다 막혔는데!!! 절체절명의 위기!!!!!

일상의 붕괴, 일상의 깨짐. 이런 건 좀비물에 흔히 나오는 설정일 것이리라. 그런데도 읽으니 막 또 빠져드네?! 심장은 쫄깃쫄깃 해지네?!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인간들을 아작아작 씹어 먹고,  미스터리하게 부상자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간다(그게 하필 또 왜 주인공 엄마냐?!). 언제 또 나타날지, 도대체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다. 책을 읽다 보면 괴물들이 좀비처럼 무작정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공격하고 먹는 게 아니었다. 사연 없는 사람 없듯, 사연 없는 괴물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궁금하여 더 홈빵 빠져들 된다. 

물론 장르물의 특성상, 이 책의 캐릭터들은 정형적이고도 정형적이다. 플롯도 정형적이다. 그러나 복선이랄지, 이야기의 흐름이 모든 게 매끄럽게 잘 연결되어 있어서 판에 박힌 듯한 정형성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어쩌면 이런 편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데 좋으리라. 좋은 소설이란 나는 이래야 한다고 본다. 내가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읽는 내내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서, 그러니까 작위적인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서 좋아한다. 이 책, 『스프린터 언더월드』도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물론 위에 말한 대로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 흐름은 정형적이라 작위적이라 할 수 있지만 설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잘 짜여져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별로 못 받았다. 이야기가 참 매끄럽게 잘 짜여져 있다. 그러니까 허술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니라는 말! (그렇다고『호밀밭의 파수꾼』과 『스프린터』가 대등하다는 건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나에게 영원한 고전이자, 스테디셀러다)

『스프린터』,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를 머릿속에서 플레이하는 느낌이었다. 캐릭터 하나하나 생생히 살아있다. 하나 같이 내 눈앞에서 달리고, 넘어지고, 소리치고, 비명 지르고, 도망가고, 피 흘리고, 바위 뚫고(응?), 투명해지고(응?응?), 텔레파시로 대화하고(응?응?응?) 그런다. 모든 설정들이 이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법한 설정인데, 그럼에도 하나같이 리얼하다. 저자가 시나리오를 썼던 작가여서 그럴 것이다. 분명 책을 읽는데,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머릿속에 깨끗이, 그리고 온전히 그려진다. 단, 캐릭터의 얼굴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얼굴에 대한 묘사가 없어서 모든 이의 얼굴이 뿌옇게, 얼굴없는 사람들이다. 단 한 명의 얼굴만 뚜렷이 상상되었는데 그냥 스치고 지나가 사라진 <노아에서 화니를 알아본 노숙자> 얼굴만은 구체적으로 상상이 가더라. 수북한 수염이라는 표현과 꾀죄죄한 노숙자라는 설정 때문이다. 책의 뒤편에 캐릭터 그림이 두 점 실려 있다. 신야는 '그래, 그래, 이렇게 생겼을 거야'라며 공감했으나, 주인공인 단이 얼굴은 참 아닌 것 같았다! 좀 더 남자다운 얼굴이어야 할 것 같던디!


장르물이라는 게 이런 것인지, 새로운 눈을 뜨게 만들어 준 책이다. 총 3부작이라고 하던데, 어서 2권도, 3권도 읽고 싶다.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ㅁ+ 2권, 3권에서도 지금 같은 재미 유지해 다오, 제발. 그러니까 이야기가 산으로 가지 말아다오. 아무튼 신난다. 재밌는 책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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