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키퍼스 와이프
다이앤 애커먼 지음, 강혜정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눈물 없이는 못 본다는 폴란드 역사의 한 토막을 다룬 논픽션입니다. 

  1930년대 후반,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바르샤바 동물원'. 바르샤바 동물원은 당시 유럽의 다른 동물원들과 달랐습니다. 인간들의 단순 볼거리로 동물을 전시, 진열해 놓았던 여타 동물원과 달리, 바르샤바 동물원은 동물의 습성, 생리, 심리를 세심하게 고려해서 조성한 동물원이었죠. 비록 동물원에 갇힌 신세긴 했지만 동물들은 적응을 잘 했습니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육사도 사육사였지만, 극진히 동물을 돌봐주는 안토니나 자빈스키 덕분이었습니다. 안토니나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로, 동물들과 교감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민하고 흥분했던 동물도 안토니나와 함께 있으면 온순해졌습니다. 

  안토니나 자빈스키는 바르샤바 동물원의 안주인이라 할 수 있었어요. 남편, 얀 자빈스키는 바르샤바 동물원의 원장이었습니다. 얀이 대표로서 모든 걸 결정하고 진두지휘했고, 안토니나는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모든 일이 잘 돌아가게금 했지요. 자빈스키 부부는 동물을 무척 사랑하는 부부였습니다. 동물원의 동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죠. 

  그러다가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자빈스키 부부는 잠시 피난을 떠났지만, 곧바로 동물원으로 돌아옵니다. 동물들이 걱정이 돼 돌아온 것이죠. (잠시 동물원을 떠났던 이유는 본인들의 목숨 걱정보다 어린 아들의 안위 때문이었습니다.)

  땅을 뒤흔들며 바르샤바 거리를 돌아다니는 탱크들, 저공비행하며 폭탄을 쏟아붓는 전투기들. 그야말로 지옥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연기가 솟구치는 아비규환의 현장입니다. 그래도 동물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동물원에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동물원의 우리가 폭탄에 부서지고, 녹아내려 성나고 흥분한 동물들이 우리 밖으로 뛰쳐나왔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사나운 고양잇과 동물들, 덩치 크고 위험한 포유류는 사살했습니다. 자빈스키 부분은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한 달 남짓 독일의 일방적 공격으로 바르샤바는 물론 폴란드 전역이 초토화되었고 폴란드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독일군들이 폴란드로 물 밀듯 밀려들어왔습니다. '열등한 슬라브족은 비켜라 우월한 아리안족이 이 땅을 차지하겠다' 뭐 이런 논리였습니다. 폴란드인들은 밀려나거나, 그들 아래에서 억압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 유대인들은 더 찬밥신세입니다. 찬밥보다 더 못한 신세죠. 그들은 따로 '게토'라는 곳에 격리됩니다. 처음엔 단순히 데려간다고만 생각했지만 곧 흉흉한 소문이 돕니다. 전쟁통에서의 소문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이 소문보다 더 지독하고 끔찍했습니다. 

  자빈스키 부부는 동물원 우리와 그리고 그들이 사는 빌라에 유대인을 숨겼습니다. 동물원에는 독일인도 자주 들락거렸기 때문에 오래 머물 곳은 못 되었습니다. 게토 탈출 후 잠시 머물다 떠다는 임시 숙소 같은 곳이었죠. 자빈스키 부부는 전쟁 발발 1939년부터 1945년까지 300여 명의 유대인을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얀 자빈스키는 낮엔 동물원장으로, 밤엔 레지스탕스로 맹활약합니다. 독일군 기차를 폭발시키거나, 독일군들이 먹는 돼지고기에 유해한 세균을 넣어 납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게토로 들어가 직접 유대인을 구해냅니다. 목숨을 내놓다시피 한 위험한 일이었죠. 당시 폴란드에서는 유대인을 숨겨주는 것은 물론이고, 물 한 잔 건네는 것조차 안되었습니다. 그러면 사형이었죠. 독일군은 프랑스, 스위스 등 여러 나라에서 못되게 굴었지만, 폴란드에서 더 차별적이고, 더 지독하게 행동했습니다. 폴란드인은 슬라브족이었고, 독일인은 그들을 열등하게 봤기 때문이죠. (아,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과 믿음이냐. 순수혈통에 대한 맹신이 인간의 눈을 가린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독일이 폴란드를 지배한 적 있기 때문에 더 차별적으로 대했던 것 같아요. 폴란드에서 독일군의 만행은 입에 담기도 힘듭니다. 길을 가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이 다반사였으니까요. 

  책에는 유대인을 구하던 아슬아슬한 일들이 많이 나옵니다. 소설보다, 영화보다 더 위험했고, 더 극적이었던 순간이 많았을 겁니다.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글로, 영상으로 느껴지는 것보다 실제로는 얼마나 긴박하고 숨이 터져버릴 듯 무서웠을까요. 그건 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영화로도 결코 담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씁쓸했던 것은, 인간이 동물원 우리에 숨어서 동물이 음식물을 받아먹듯 인간이 음식물을 받아먹는 모습, 우리에 한 덩이 어우러져 지내는 모습이었습니다. 보통 같으면 놀랄 노 자겠죠. 하지만 참 말하기 뭐 하지만 동물 우리이든 빌라의 어느 한구석이든 그 어디든 동물원 안이라면 안전하고, 아늑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생지옥인 게토에서 도망 나온 유대인에게는 동물 우리 속이 천국이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어떤 게토는 독일 고위 인물이 이리저리 도망치는 유대인 아이들을 사냥하듯 총으로 쏴 죽입니다. 단지 자기 기분이 따라 만행을 저지른 거죠. 그런 곳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에게 동물 우리가 어떻게 천국이 아닐 수 있겠나요. 

  세상에서 제일 철두철미하고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독일인들. 유대인 죽이는 데도 서류가 제일입니다. 대단하달까, 어이없달까 싶은 관료주의 정신이죠.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이나 로맹 가리가 쓴 여타의 소설을 보면, '신분증명서', '출생증명서' 등등이 꽤나 중요하게 다뤄지고, 집착하리만큼 애쓰는 것이 느껴지는데 『주키퍼스 와이프』를 읽으면 로맹 가리가 쓴 내용보다 실제로는 더 심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산더미처럼 쌓인 위조 서류들, 곧 무너져 내릴 만큼 많았죠. 몇 장의 종이로 한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으니, 위조 서류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렇게 애를 쓸 수밖에요. 그리고 살려야 할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에 이르렀으니, 서류에 압사당할 만큼 서류가 산더미인 거죠. 


  이 책은 위에도 언급했듯이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이게 실화냐? - 네, 실화입니다) 쓴 논픽션입니다. 안토니나 자빈스키의 일기를 바탕으로, 저자의 직업이 박물학자인 것에 걸맞게 그 시대의 방대한 자료를 모아 1939-1945 (살짝 그 이후까지)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처럼 막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자빈스키 부부 이야기를 하다가, 당시 상황들, 에피소드들, 배경 설명 등등에 할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주로 안토니나 자빈스키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동명의 영화에서는 그녀가 주인공으로 나오죠. 이 책에서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웅적으로 묘사하진 않습니다. 저자가 연민, 애틋한 마음으로 안토니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책에, 안토니나 자빈스키는 용감하지만 보통의 여자이고, 보통의 여자이면서도 용감하고 자신의 일을 책임 있게 처리하는 여자로 비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요즘 핫한 '페미니즘'은 다루지 않습니다. 그녀를 무시하는 남편과 그 남편을 똑빼닮아 똑같이 행동하는 어린 아들도 종종 안토니나를무시하니까요. 그 당시 폴란드의 한계, 젠더 인식의 한계일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당시로서도 유럽에서 폴란드는 미신이 강했던 곳이니까요. 어쨌든 페미니즘적 요소를 원하시는 분들은 이 책 읽고 뒷목 잡을 부분도 있으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기대 않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이 책을 읽고 폴란드의 역사를 알고 싶어졌어요. 눈물로 얼룩진, 한으로 가득한... 그리고 영화도 보고 싶어요. 이 책은 약간 박물적인 부분도 있는데, 영화는 그런 것 다 제하고 스토리에만 집중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살짝 예고편을 봤는데, 참말 보고 싶어졌어요. 동화 같으면서도 악몽과 비극적 분위기로 표현을 잘한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안토니나 자빈스키 옷이 다 예뻐...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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