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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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아으, 그렇구나. 휘게 책 읽으며 품었던 의문들, 의구심이 이 책을 읽고 풀렸다. 뽝! 그들의 행복, 그들의 만족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이제 좀 감을 잡은 느낌이다요. 

일단, 작년부터 지금까지 휘게 관련한 책을 몇 권 좀 읽었다. ① 영국인 출신으로, 덴마크에 눌러앉아 그들의 행복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사람이 쓴 책, ② 덴마크 영화배우가 쓴 본격 휘게 라이프를 쓴 책, ③ 마지막으로 영국인이 휘게를 책으로 배워 자기의 엉망진창인 삶에 휘게적 삶을 실천한 사람이 쓴 책, 이렇게 세 권을 읽었다. 그리고 휘게만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지만 일본인들이 북유럽 삶을 동경해서 쓴 몇몇 인테리어 책과 북유럽 남자와 결혼해 북유럽적 삶을 살고, 북유럽스러운 가정을 꾸리는 내용의 책 몇 권 등등. 

내가 읽은 책들 모두 괜찮긴 했지만 사실 무척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몇몇 문장이 마음에 들었고, 다른 문화를 조금씩 알아가고, 북유럽을 향하는 세계적 트렌드를 이해하는 즐거움이 컸을 뿐이다. 왜 그들의 행복한 삶을 엿보았는데 왜 나는 이런 즐거움만 살짝 맛보았을까? 왜냐하면 뭔가 좀 앞뒤가 안 맞는 게 좀 느껴져서다. 만날 우리나라를 헐뜯는 사람들, 기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자주 등장하는 단골이다. 우리 자신들을 힐난하면서 외국인들은 학교 성적, 등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앞세우는데, 그런데 휘게 책을 읽으면 뭐에 1등, 뭐에 2등 등등 이런 소리가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처음에 그런가 보다 하지만 어느 책이나 행복을 계량화하고 어디서 1등하고 어디서는 2등을 했다느니 이런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학교 성적, 등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외국인들이 행복 지수는 왜 만들고, 왜 줄 세우기를 하는지. 뜨아함. 

정말 덴마크인을 필두로 해서 북유럽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그러하냐?! 

누구는 북유럽 사람들은 모델처럼 잘 생기고 예쁘고 키가 커서 좋겠다고 하는데, 문제는 모두 키 크고 잘생기고 예쁘다는 것. 딱히 혼자 부각되는 사람이 없다. 외모로 만족하는 건, 주위에 키 작은 오징어 외계인들만 가득 있을 때 느끼는 감정 아닐까. 

암튼 이런 의문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고 좀 풀린 듯하다. 그들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설문지에 응하는 건, 정말로 정말로 기대치가 낮아서 그렇다. 

세금? 덴마크의 직간접세는 58~72퍼센트로 살인적이다. 2/3는 떼 간다는 말. 이 책의 저자 말마따나, 달리 말하면 덴마크에서는 민간 부문에서 일하더라도 월, 화, 수, 목, 금 중에 월, 화, 수, 목요일 오전 부분까지 일한 건 고스란히 국가가 가져간다는 말이다.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하루 일한 몫만 근로자가 가져갈 수 있다. 

대부분 덴마크인들에게 세금 문제를 물어보면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어차피 자기가 자라면서 혜택을 받았으니 자신도 돈을 벌어서 자기가 받은 만큼 국가에 다시 내는 게 옳다고 말한단다. 이 책뿐만 아니라 내가 읽은 다른 휘게 책에서도 이렇게 다들 답변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 말로 끝나지 않는다. 덴마크에서는 탈세를 스리슬쩍 눈 감아 주기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암시장에 열광한다. 그리고 많은 덴마크인들이 독일에 가서 쇼핑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북유럽 여행기를 읽은 적 있는데, 이 사람들의 여행지 중 독일은 없었지만, 먼저 독일에 들렀는데 이유인즉슨 북유럽에 가기 전에 필요한 것을 쇼핑하기 위해서였다) 

또 휘게 책에서 언급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덴마크의 가계부채비율이다. 우리도 작년에 DTI 너 뭐니 하면서 가계부채비율이 너무나 심각하다고 연일 신문에서 떠들었다. 그런 우리나라도 북유럽 덴마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덴마크는 행복지수도 세계에서 1위지만, 빚도 세계 1위다. 세금도 1위!!

그들의 삶은 내가 볼 땐 팍팍하다. 빚이 세계 1위라는 건 여러모로 다양한 이유가 복잡적으로 작용해서겠지만 우선 단순히 생각해 보면, 국가가 세금을 너무 많이 뜯어가니가 가처분소득이 낮고, 그래서 뭐 좀 할라치면 빚을 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금도 1위, 빚도 1위라는 빛나는 결과를 얻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왜 행복지수가 1위일까. 그건 딱히 세상에 바라는 게 별로 없고, 기대하는 것도 별로 없기 때문인 듯. 그래서 아주 작은 것, 아주 사소한 것에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게 아닐까. 가령 방에 불은 다 끄고 촛불로만 생활하고 그 촛불만으로 행복을 느낀다거나, 모닥불을 보며 안도감 느끼는 그런 정도. 그렇지 않다면 세금도 1위, 빚도 1위인 세상에서 미쳐버리겠지. 

암튼 이와 관련해서 책 속에 재밌는 구절이 있다. 

영국 대사 로버트 몰즈워스는 『덴마크 이야기』라는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덴마크는 심하게 높은 세금으로 골치를 썩는 나라다. (...) 세금 부담은 이미 너무 커서 덴마크인은 자신들의 나라를 침략자로부터 지키기보다 차라리 침략 당하길 바란다. 잃을 재산이 없기 때문이다." (- 이 책의 95쪽에서)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덴마크인을 설명하는 게 재밌다. 

복지제도 극단주의자, 대출과 부채 극단주의자, 세금 극단주의자, 근무시간 극단주의자 등등 (- 이 책의 97쪽)
ㅋㅋ 맞는 말인 듯. 

이 책은 덴마크뿐만 아니라 다른 북유럽 국가인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를 다루고 있다. 저자의 부인이 덴마크인이라서 덴마크 장이 대해 유독 자세하고 저자의 생각이 많이 들어있지만, 얼추 고른 비중으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도 다룬다. 

으잉, 아이슬란드도?! 그렇다. 아이슬란드는 수백 년 전만 해도 범죄자, 쫓겨 다니는 자의 피난처로 사회의 낙오자들이 많이 모여든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스칸디나비아인의 언어가 아직 아이슬란드에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자기가 북유럽 국가에 포함된 걸 안다면 발끈하겠지만, 이런 이유에서 저자는 아이슬란드도 북유럽에 포함시키고, 2008년 경제 위기 때 거품 잔치하다 호되게 당한 아이슬란드를 자근자근 씹는다. (다른 나라는 문화, 역사를 다루면서 아이슬란드만은 경제 이야기를 함) 

핀란드는 저자가 사랑하는 나라로, 그냥 막막 핀란드를 애정하고, 스웨덴은 '라곰'으로 제2의 덴마크 휘게로 부상하고자 한다. 물론 자국민들의 노력이라기 보다 주위 나라, 영국이라든가 일본 사람들이 알아서 마케팅해 준다. 여전히 노르웨이는 주위 나라의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있고, 게으르고 나태하다며 딱히 근거도 없는 험담에 시달린다. (특히 덴마크인들이 노르웨이인들을 석유 때문에 게으르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라고 욕하는데, 웃긴 건 근무시간을 최대한 줄이고자 애쓰는 사람은 덴마크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물론 북유럽 자체가 오래 일을 하지 않는다. 여기 가도, 가게 문이 닫혀 있고, 저기 가도 가게 문이 닫혀 있는 곳이 바로 북유럽이니까. 

이 책을 읽고 제일 알차고, 흥미로웠던 건 북유럽이 타인의 눈에 보기엔 다 그 나라가, 그 나라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나라마다 문화나 사람들의 기질이 많이 달랐다. 덴마크는 북유럽에 포함되지만 그래도 유틀란트반도에 위치하고 독일과 접하는 국경이 길다. 그래서 나름 북유럽 사람치고 호방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핀란드는 우리 눈에는 다 똑같이 생겼지만, 핀란드는 덴마크와 스웨덴과 언어도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북유럽과 러시아의 경계선에서 오랜 세월 여러 차례 식민지배를 받았고, 그래서 무뚝뚝하고 말수가 별로 없다. 그리고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유달리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전히 스웨덴계 핀란드인은 같은 핀란드인이면서 자기들은 핀란드 인과 다르다는 우월의식을 갖고 있고, 여전히 중산층 이상, 상류층으로 생활하며 핀란드인들을 깔본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자꾸 술에 대해 지적하자 외국인의 시선, 시각에 민감한 핀란드인들은 금주에 집착하기 시작했는데.... 

"금주운동을 하는데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미 모두가 금주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 209쪽)
스웨덴은 다른 북유럽보다 좀 개방된 축이다. 사회적 실험도 많이 하고 있어, 몇 년 동안 이민자도 많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스웨덴과 서로 거울처럼 마주 보고 상대를 인식해온 덴마크인들은 스웨덴을 너무 답답하게 생각한다. 너무 스트레이트하기 때문이랄까. 모노 하기 때문이랄까.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어도 스웨덴인은 빨간 불에 도로를 건너는 걸 기겁하고, 여러 명이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도 굳이 혼자서만 타려고 애쓴다. (일본 사람들과 죽이 잘 맞겠다) 

노르웨이는 석유로 돈방석에 앉았지만 주위 나라들의 불평불만, 험담처럼 사람들이 게으르다. 인구의 1/3이 일을 안 하고, 학생들의 교과 이수능력도 많이 덜어진다. 문해력, 수학, 과학 등 아이들의 수학 능력이 유럽 평균을 밑돈다고 한다. 

이 책 속에는 이런 내용이다. 언론이나 책에서 소개되는 것과 북유럽은 생각보다 많이 딴 판이라고. 그렇지만 어느 정도 우리가 아는 이미지가 맞긴 맞다고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불평불만 늘어놓고 그들의 국민성에 뜨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북유럽 나라들을 사랑한다고. 암튼 영국식 애정 표현이다. 영국은 이렇게 비꼬는 걸로 자신의 애정, 자신의 관심을 드러내는가보다. (관심이 없으면 이런 책조차 쓰지 않을 테니) 

저자가 북유럽 책을 쓰면서 노력을 많이 했다. 사람도 많이 만나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고, 책도 신문도 잡지도 어마어마하게 수집하고 읽고 했던 듯하다. 하지만 아쉬운 건 좀 정리되지 않은 게 아쉽다. 대체로 구성이 산만하다. 좀 다듬고 뺄 건 빼고 했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 

어쨌든 북유럽 이미지에 품었던 의구심을 이 책을 읽고 푼 건 성공! 
그러니까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고, 언뜻 보기에 유토피아인 것처럼 보이는 곳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은 세상에 기대하는 바도 크게 없다. 욕망을 줄이고, 기대하는 바도 줄이고, 불만도 줄이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진다. 여름엔 영원히 낮만 지속될 것 같고, 겨울엔 영원히 밤만 지속될 것 같은 그런 극단적인 환경에 살면 자연스레 세상에 대한 바람,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은 차츰 줄어들기 마련이다. 매일 아침 해 뜨는 것만 봐도 기뻐할 수 있다. 얼마나 세상에 대한 기대치와 불만치가 낮아지는지, 나라에서 50~70% 돈을 떼가도 싱글벙글 웃으며 국가에 손 흔들어 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 상태가 되면, 북유럽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에 살아도 행복하리라. 일찍 퇴근만 시켜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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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례 시간 - 수업이 모두 끝난 오후, 삶을 위한 진짜 수업
김권섭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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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식 날부터 고등학교 졸업식 날까지, 방학 빼고 12년 동안 매일 들었던 조례와 종례. 적지 않는 세월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건 하나도 없는 것과 같다고 지금 기억에 남는 조례와 종례가 없다. 뭐 조례와 종례뿐일까. 사실 친구들도, 선생님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그들의 이름은 진즉에 잊어버렸고. 

며칠 전에 동네 카페에 갔다가 고등학교 동창을 봤다. 응, 만난 게 아니라 본 것. 같은 반이었던 적은 내 기억으론 한 번도 없었고, 그냥 같은 이과에다가 선택했던 제2외국어도 같았기에 복도를 오며 가며 자주 봤던 아이였다. 작년에도 그 카페에서 본 적 있었는데 그땐 배가 불렀었고, 지금은 아기와 함께였다. 그 친구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그때 같은 공간에서 앉아, 같은 방향을 향해 앉아 무수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그 친구들이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할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릴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 궁금했다. 당시 선생님들의 나이는 30~40대였으니, 지금 40~60대가 되었겠다. 어느 학교에서 교장선생, 교감선생 하고 계실까, 벌써 은퇴하셨을까, 여전히 그때 그대로의 모습일까, 많이 늙으셨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은 좀 젊은 축이었으니 대부분 아직 학교에 있을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은, 나이가 아주아주 많았던 분들이 몇 분 계셨으므로 (그래봤자 50대였겠지만... 그래도 그때만 해도 50대는 노인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돌아가신 분들도 있을 거라고 본다. 

한 공간에서 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기억에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니 좀 섭섭하다. 누구에게 무엇에 섭섭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세월에 섭섭한 것인지, 내 기억력에 섭섭한 것인지, 딱히 이렇다 할 학교생활을 하지 못한 나에게 섭섭한 것인지, 그냥 좀 그러하다. 나는 이만큼 나이를 먹어왔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꾸역꾸역, 오늘까지 살아왔는데 구멍이 뻥 뚫린 것 마냥, 허전한 세월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 시간들이 어디 갔을까. 지금 뚜렷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나를 이루는 깊은 기억 속에는 그 하루들이 다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 뉘엿뉘엿 해가 지는 늦은 오후, 책상을 앞뒤로 밀고, 쓸고 왁스로 마룻바닥을 광내고 다시 책상을 정렬한 후 친구들과 잡담을 하고 있으면 곧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노랗게 빛이 바란 풍경들, 그 풍경과 함께 선생님의 말씀이 노랗게 빛이 바란 채 들려오는 듯하다. 교실은 대부분 남향이었고, 낮 동안 교실 안에 직사광선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오후, 조례할 때쯤이 되면 그 특유의 빛깔로 해가 비치고 커튼을 쳤던 것 같은데 그래서 유독 나른했던 기억이 난다. (혹은 지금 내가 만들어낸 기억일까?) 말씀들은 어디로 가고, 풍경만 남았을까. 




김권섭 선생님의 『종례 시간』은 현직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들려줬던 말들 중 학생들이 좋아한 여든여덟 편의 이야기를 골라 담은 책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많은 책과 옛 선조들의 말씀을 참고하고, 선생님의 생각과 당부해주고 싶은 말을 덧붙인다. 실제로 이 분을 본 적도, 이 분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지만,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마음이 없으면 종례 시간에 학생들에게 해줄 말을 준비하지도 않을 테니까. 내 고3 때 담임은 편찮으신 부모님 때문에 야간자율학습 시간은 고사하고, 종례도 안 하고 퇴근하셨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병원비 때문에 고3 담임을 맡으신 것 같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담임을 맡지 말지, 참으로 무책임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수능을 마치고, 반 아이들이 대학 원서를 쓰는데 그때 아무런 조언도 못하고 쩔쩔매고 아이들과 갈등하던 담임선생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네.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고3 담임 선생님 이름을 제일 먼저 잊어버렸다. (으억,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인데. 딱 떠오름) 

그래서 아이들에게 들려줄 말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선생님이 내 담임 선생님을 맡았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달라졌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는데 그 영향이 크든 작든 어쨌거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라 본다. 

이 책에는 동양 고전에서 발췌한 많은 이야기들과 한자를 풀이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저자가 맡은 과목이 국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고전과 한자 풀이 참 재미있는데, 이 선생님이 내 담임을 맡았더라면, 어쩌면 적성에도 안 맞는 이과에는 가지 않았을 것 같고, 영 아니다 싶은 학과로 진학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쉽고 아쉬운 시간들... 뭐 어쩌랴, 나는 이렇게 흘러 흘러 살아온 것을. 

어쨌든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직접 들은 학생들이 부럽게만 느껴진다. 누군가의 인생은, 타인을 위해 진심을 기울여 애쓰고 노력했던 시간과 타인이 나를 위해 진심을 다하고 애쓰고 노력한 시간들로 채워지니까. 진심이 없는 시간은 텅 빈 시간, 곧 텅 비어버릴 시간이다. 

학생들에게 해줄 말을 생각하고, 찾은 이 책의 저자야말로 종례 시간을 제일 유의미하게 보낸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인생은 누군가를 위해 진심을 다한 시간들만이 의미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종례 시간 동안 성장했던 사람은 학생만은 아닌 것 같다. 누가 제일 많이 성장했을까. 바로 이 책을 쓰고, 바로 종례를 직접 한 저자가 아닐까 싶다. 부럽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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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숍 보이즈
다케요시 유스케 지음, 최윤영 옮김 / 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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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청춘 소설, 『펫숍 보이즈』




표지 느낌 그대로 가볍고 따뜻한 청춘 소설입니다. 총 6개의 이야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뤄져 있고 각 이야기마다 단서를 토대로 진실을 찾는 미스터리 형식의 소설입니다. 그런데 미스터리는, 미스터리 같긴 한데 미스터리 아닌 것 같은, 뭐 그런 느낌입니다. 

소설이지만 눈에 보이듯 쉽게 쓰여져 소설을 읽기보다 일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에요. 펫숍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시트콤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에피소드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각 에피소드마다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 인물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이 책의 화자이자 펫숍의 성실한 알바생, 
미나미 가쿠토
가쿠토의 입사 동기이자 동물을 너무나 사랑하는,
구리스 교타
이들에게 마음씨 좋은 형 같은 펫숍의 점장, 
가시와기 료야
방과후 교실처럼 학습장소이자 놀이 장소로 펫숍을 찾는 꼬마 손님, 
유리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한 말장난을 즐기는 단골 손님, 
호프만 씨
그리고 매일 고양이 통조림을 사가는 마음씨 좋아 보이는 할머니, 
브라운 씨

이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뿅뿅 등장해서 미스터리(?)하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펼칩니다. 여느 시트콤이 그러하듯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기를 바랐어요. 이 책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길 상상했거요. 그러면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질 것 같고, 안심될 것 같거든요.




등장인물들이 책 띠지 안에 그려져 있어요!
책의 배경이 되는 펫숍은, 위로는 훗카이도 아래로는 오키나와까지 있는 일본 내 최대 홈센터입니다. 주인공이 일하는 가미조 지점은 도쿄돔 두 채 규모의 부지에 자재 매장, 옥외 장식용품 매장, 푸드 코트까지 있어요. 이곳엔 포유류, 열대어, 곤충, 파충류 등 다양하고 많은 동물들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주인공 가쿠토는 성실하고 듬직한 알바생입니다. 그와 입사 동기인 교타는 늘 환하게 웃고, 분위기 띄워주는 말간 햇님 같은 존재죠. 그리고 점장 가시와기 씨는 가쿠토와 교타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형 같은 사람입니다. 제 근처에도 이런 사람들이 일하는 가게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단골이 되어 자주자주 놀러갈 텐데! 책 속 펫숍의 단골인 꼬마 공주님 유리, 말장난 왕인 호프만 씨, 그리고 브라운 씨 뭔가를 사러 오거나 심심해서 펫숍에 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직원들이 있기에 단골이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책의 맨 마지만 에피소드가 바로 이런 이야기죠!) 

이 소설은 제목대로 소설의 주요 배경은 펫숍입니다. 펫숍, 그러니까 반려동물을 사고 파는 곳이죠. 요즘 말 많고, 탈 많은 바로 그 펫숍! 며칠 전에도 뉴스가 났었죠. 동물카페를 운영하던 사장이, 가게에 있던 동물들을 방치해서 동물들이 떼로 죽거나 병든 상태로 발견됐다는 뉴스였습니다. 그 방치로 인한 학대 정도가 심각해서 동물 학대 사건으로 드물게 가해자가 구속됐다고 들었는데요, 이런 일이 일본에도 종종 일어나는 일인가봐요. 물론 우리보다 동물복지가 잘 마련되어 있지만 역시나 동물을 경시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나 봅니다. 

이 소설은 그러니까 그냥 단순히 펫숍에서 일어나는 사건만 적어놓지 않았어요. 2~3개 에피소드는 펫숍의 윤리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도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비윤리적인 펫숍과 돈 벌이에만 신경쓰는 브리더, 그리고 동물들을 단순히 귀여운 장난감처럼 사고, 키우고, 버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저자는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는데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사람을 굳건하게 믿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펫숍을 옹호합니다. 진심과 성심을 다해서 동물을 돌보고, 알맞은 가정과 연결해 주기 위해 애쓰는 펫숍을 말이죠.

작년에 시바견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쓴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일본에 거주하며 일하는 독신 남성이었는데요, 저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시바견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개 사랑과 배려는 참 따뜻했어요. 그리고 일본인들의 반려동물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보다 동물 복지가 앞서 있고, 번식, 브리더, 매칭 서비스 등등 이런 관리가 상당히 체계적이고 엄격한 것 같았어요. 사실 일본도 완벽하진 않지만 뭐랄까, 그럼에도 동물에 대한 사랑과 관리 체계에 대한 자부심이랄까, 믿음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자가 이런 소설을 쓸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런 펫숍 소설이 나오기 힘들죠.

이 책은 가볍고 따뜻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에 대해서, 그리고 그 동물을 파는 곳은 펫숍에 대해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계기를 줍니다. 단순히 소설을 소비하며 읽기 보다, 반려 동물을 키우거나 키우고 싶은 가정이라면 이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서툴고 미성숙한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사랑, 그리고 동물에 대한 사랑 모두요. 사랑이란 감정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의지를 가지고 배우고, 익히고,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인 거겠죠.

가볍고 따뜻한 일본 소설 좋아하시는 분, 그리고 동물을 사랑하고 펫숍에 대해 복잡한 시선을 갖고 계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에도 저는 여전히 펫숍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고, 또 펫숍을 반대하지만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펫숍을 억압하고, 매매/분양/입양을 불법으로 치부해서 음성화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양성화해서 법적으로 제대로 관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반려동물이 늘어나고, 펫 시장이 커지는 지금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일단 가볍게 소설로 접하고, 생각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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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만년 살 것 같지? - 멸종위기 동식물이 당신에게 터놓는 속마음 만화에세이
녹색연합 지음, 박문영 만화 / 홍익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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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만년 살 것 같지?"
"아, 네네. 머리로는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알지만 천년만년 살 것으로 믿고 있어요. 그래서 머리로는 오늘 하루를 허투루 살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행동은 망각과 어리석음으로 흥청망청입니다. 매일, 매일을 말이에요."
"뷁!!!!"
"깨갱.... ㅠㅅㅠ"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쓰고, 박문영 만화작가가 그리고, 홍익출판사에서 출판한 본격 멸종 위기 동식물 에세이, 『천년만년 살 것 같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멸종해 가는 많은 동식물들 중에서 스무종을 뽑아 그 사연을 쓴 책입니다. 그 사연을 카툰/에세이/그림카드 이렇게 3가지 구성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권을 읽는 거지만 세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느낌이에요.  




카툰은 만화작가 박문영 씨가 그리셨는데요, 친근한 그림체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상당히 쉽고 정확하게 표현했습니다.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만화 자체는 쉽고 재미있어요. 이해도 쏙쏙! 카툰을 보고, 박문영 씨의 전달력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카툰 다음에 오는 구성은, 녹색연합 활동가분들이 쓴 에세이가 나옵니다. 활동가분들의 경험담, 생각, 느낀 바가 진솔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 이야기들은 그림카드로 끝을 맺는데요, (아마도 편집자가 뽑은) 카툰에서의 한 컷과 가슴 울리는 글이 적혀 있어서 각 장마다 여운이 남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 생활을 하는 요즘, 우리나라에 어떤 동식물이 살고 있는지 많이 모르죠. 자연과 밀접한 산에 간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등산을 해도, 산에 가는 느낌이지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저 역시 매주 주말 아침에 뒷산에 가는데요, 작은 산이어서 그런지 산이라고 해도 마주치는 건 사람, 사람, 사람뿐입니다. 그리고 소나무만 알아볼 뿐 이게 무슨 나무인지, 저게 무슨 풀인지 잘 모른답니다. 눈으로 보고도 잘 모르는 이런 무지는, 바로 무관심 때문이겠죠. 그리고 무관심이 우리 산천의 동식물을 멸종 위기로 몰아넣고, 그들이 사라졌어도 사라졌는지조차 모르는 무지와 어리석음을 낳습니다. 반성! 반성!!!



이 책은 총 20종의 동식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동식물 이야기를 소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간략하게 나마 정리할까 합니다. 

1. 하늘다람쥐 
예전에 우리 산천의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녔던 하늘다람쥐. 하지만 나무는 벌목되고 그 자리에 콘도와 골프장이 지어졌죠. 살 곳이 줄어든 하늘다람쥐는 이제 멸종 위기종 2급이 되었습니다.  사육, 거래가 금지되었죠. 현재 인터넷 등에서 분양, 판매되는 하늘다람쥐는 미국에서 온 것이라고 해요. 배를 타고, 혹은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로 건너온 하늘다람쥐는 결코 안락하고 편안하게 건너오진 않았겠죠. 우리가 알면 경악할 수도 있을 일을 겪고 이곳에 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귀엽고, 희귀한 동물을 직접 가까이에서 보고 직접 키우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게 과연 그 동물에게도 좋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말 좋아한다면 직접 키우기보다는 원래 살던 곳, 수백 수천 년간 대를 이어 적응해 살던 곳에 그대로 머물게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겠죠.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그 생명을 진정으로 위하는 일이고요. 

2. 반달가슴곰
1980년 대 만해도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정부에서 직접 나서 곰 사육을 적극 권장했다고 합니다. 이후  많은 곰들이 철창에 갇힌 채, 산 채로 쓸개 빨리고 학대받아 왔습니다. 이런 학대는 곰의 대를 이어 내려왔습니다. 철창 속에서 태어난 엄마 아빠 곰이, 철창 안에서 새끼를 낳고, 그 새끼는 커서 또 철창에 갇힌 채로 새끼 낳기를 반복.... 학대가 대를 이어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현재 철창 속 곰들은 대부분 중성화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철창 안에서 태어나는 곰은 이제 없다고 해요. 하지만 여전히 갇힌 사육되는 곰은 존재합니다. 그 곰들은 팔, 다리가 없거나 정신이상이 와서 같은 행동을 무한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저도 예전에 동물원에 갔을 때 북극곰이 좁은 길을 왔다, 갔다 계속 반복하는 모습을 봤어요. 보고 있기가 무척 괴로웠는데요, 동물원보다 더 좁은 철창 속 에 갇혀 있는 곰들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영역이 엄청나게 넓은 곰을 좁은 철창, 좁은 동물원에 가두어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팔색조
팔색조는 우리나라 여름 철새로, 여름에 잠깐 조용하고 으슥한 우리 시골 산속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고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새죠. 하지만 문제는 이 아름다운 새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몰려오는 촬영 군단들!!!! 무시무시합니다. 팔색조의 아름다움을 찍기 위한 오랜 기다림, 그 노력은 정말 가상하지만 카메라 밖에서 벌어지는 서식지 파괴 문제, 부모 새를 찍기 위해 알이나 새끼로 유인하는 행동 등 여러 가지 나쁜 행동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사진 찍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피사체인 팔색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 꿀벌
꿀 채취하러 간 꿀벌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런 미스터리 한 일들이 세계 각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꿀을 채취하러 간 꿀벌들이 감쪽같이 사라져서 여왕벌과 애벌레들이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꿀벌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고 해요. 양봉업자도, 벌전문가도 모를 일! 일단 전자파 때문으로 추측하는데 그래도 의문점은 많습니다. 
어쨌든 꿀벌이 사라지면 상당히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과일나무 수정부터 큰 타격을 받습니다.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이죠. 이건 과실수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오이, 파프리카, 호박, 해바라기, 참깨, 들깨, 고추, 당근, 파, 완두콩, 목화, 양파, 가지 등등'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과일, 야채들이 꿀벌의 수정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5. 산양
절벽을 오르락내리락 뛰어다니는 산양, 산양은 태어난 절벽에서 죽을 때까지 산다고 합니다. 상당히 밀도 높은 행동반경이랄까요. 그래서 서식지인 절벽을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산양이 사는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쪽 산과 저쪽 산의 나무를 벌목하고, 건물이 들어서겠죠. 케이블카가 움직이며 내는 소음과 많은 관광객들로 환경이 파괴될 확률이 높고 산양은 살 곳을 잃고 말 겁니다. 

6. 저어새
물을 저어서 먹이를 잡는다고 이름이 저어새. 저어새는 갯벌 등지에 사는데요, 그러니까 저어새에게 갯벌은 먹이 창고이죠. 하지만 인간들 눈에는 갯벌이 쓸모없이 놀리는 땅으로 보이는 걸까요. 개발하지 못해서 애가 탑니다. 그래서 물길을 막고, 시멘트를 쏟아붓습니다. 물은 썩고, 낙지, 숭어, 갯지렁이들은 사라집니다. 이들이 없어지면, 이를 먹고 사는 저어새도 굶어죽을 수밖에요. 
갯벌은 아무것도 없는 땅, 질척거리기만 한 땅이 아니라 물을 정화하고, 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사는 생명의 보고입니다. 그 수많은 생명들 중에 저어새도 포함되는 것이죠. 

7. 단양쑥부쟁이
코스모스 같기도 한, 하늘하늘 아름답게 흔들리는 단양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는 우리나라 자생종으로 남한강 부근에서만 자라는 꽃이라고 합니다. 모래나 자갈밭 등 강변의 마른 곳에 군락을 이뤄 사는데, 그.... 그.... 4대강 살리기 때문에 단양쑥부쟁이는 죽어가고 있어요. 

8. 삵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상위 포식자죠. 설치류 등을 잡아먹으며 생태계를 균형 잡아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 좁은 땅덩어리에, 그물처럼 아주 촘촘히 깔린 도로 위에서 많이 죽는다고 해요. 가뜩이나 먹을 것도 많이 없을 텐데, 로드킬 당해 죽어가는 삵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9. 구상나무
한국 특산종으로, 생김새가 참 예뻐서 우리나라에 왔던 외국인이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했다고 해요. 그 결과는.... 말 안 해도 뻔하죠. 그리고 급격한 기후 변화로 침엽수인 구상나무가 살아가기 점점 더 힘들다고 합니다. 겨우내 눈이 소복이 쌓여야, 봄이 올 때까지 눈으로부터 수분을 섭취하는데 비나 눈 자체가 드문드문 오다보니 구상나무는 목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침엽수에게 치명적인 한여름의 폭염. 구상나무가 뿌리내리고 살 곳이 자꾸만 좁아지고 있어요. 

10. 주목
붉은 나무여서 주목.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원시림에 많이 있다고 합니다. 아주 천천히 자라지만, 그대신 아주아주 오래 사는 주목. 수명이 수백년은 족히 됩니다. 하지만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으로 많이 벌목되고, 옮겨 심어졌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옮겨 심었더니 잘 사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해요. 얼마 전에도 다큐로 방송되었죠. 착잡한 심정입니다. 이 책에 쓰여있듯 15일 남짓한 이벤트를 위해 500년을 넘게 산 나무들을 베어내고 죽이는 일이 마음을 복잡하게 해요. A4 용지 1장 만들려면 물 10ℓ가 필요하고, 30년 된 나무는 꼴랑 A4 용지 4박스를 만들 뿐입니다. 종이 한장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고, 쉽게 쓰고 버릴 수 없네요. 

11. 매미
땅속에서 7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7년 만에 땅 위로 올라와 단 며칠동안 구애하고, 번식하고, 죽는 매미. 하지만 시끄럽다는 이유로, 그리고 크고 징그럽다는 이유로 박해받고 미움받는 매미. 

12. 황조롱이
절벽 틈새에 둥지를 트는 황조롱이는 아파트나 고층 빌딩을 절벽으로 착각하고 알을 낳기도 하죠. 위험하고 아슬아슬합니다. 그리고 건물 유리에 비친 산과 하늘을 풍경인 줄 알고 그대로 유리창으로 날아와부딪혀 죽고 맙니다. 

13. 수달
일본에서는 이미 멸종된 수달. 일본 학자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수달 똥만 봐도 그렇게 기뻐하고 놀라워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요, 때로 수달이 하천 근처의 슈퍼나 가게에 들어가 몰래 음식을 먹는다고 미움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수달이 우리가 사는 곳을 침범해 들어왔다기 보다 우리가 그들이 사는 곳을 침범해 들어간 게 아닐까요. 수달의 습성을 좀 더 배우고, 함께 살 방도를 찾아야겠어요. 

14. 점박이물범
중국 얼음 바다 위에서 태어나 잠시 우리나라 몇몇 섬에서 쉬다가는 점박이물범. 그런데 기후온난화로 유빙이 자꾸 없어져 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15. 연산호
제주도 앞바다에 군락을 이뤄 살아가는 연산호. 참 예쁘다고 해요. 하지만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생기면서 군락지가 파괴되고 있다 합니다. 그리고 생활쓰레기들, 특히나 플라스틱과 미세 플라스틱이 바닷속 생태계를 교란시켜 생명들을 떼죽음으로 몰고 있습니다.

16. 맹꽁이
양서류인 맹꽁이. 때가 되면 이동하는 습성으로, 도로 위에서 떼로드킬 당해 죽고 있어요. 그리고 미세먼지 등 공기 질 저하로, 양서류들은 점점 더 살기가 힘듭니다. 우리도 숨쉬기 힘든데, 피부로 호흡하는 양서류들은 오죽할까요. 

17. 귀신고래
엄청나게 줄어든 고래 개체 수 때문에 포경이 금지되었죠. 그런데 다른 고기를 잡으려고 쳐 둔 그물에 고래가 걸려 죽으면 신고 후 고래 판매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한해 평균 신고되는 혼획 고래의 수가 1,969마리! 거의 2,000마리입니다. 한 해 동안이라니, 어마어마한 숫자이죠. 우연찮게 그물에 걸려 죽은 것인지, 누군가가 의도하고 그물을 쳐놓았는지 그건 모를 일이죠. 

18. 산천어
다른 설명 없이 이 한 설명이면 될 것 같아요. 2018년 1월 산천어 축제 때 방류한 산천어가 190톤입니다. 산천어 입장에서 보면 축제는 축제인데 정말로 떼죽음 당하는 축제인 카니발입니다. 

19. 연어 
산속 시냇물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 다시 고향 산골 시내로 돌아가 산란하고 죽는 연어. 알다시피 강 곳곳에 놓인 댐과 보에 가로막혀 고향으로 돌아가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20. 남생이 
우리 토종 남생이, 그리고 외국에서 들어와 생태계 교란종으로 미움받고 있는 붉은귀거북. 그런데 이 모두 개체가 모두 줄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 글을 적은 분의 말씀 따나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이 과연 붉은귀거북인지, 우리 인간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붉은귀거북을 엉뚱한 데 갖다 놓고는, 생태계 교란종으로 빨간 딱지 붙인 건 아닐까요. 



제가 지구상의 동식물을 위해 딱히 적극적으로 하는 일은 없습니다. 또 그들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 하는 노력도 별로 없고요. 다만, 가끔  『천년만년 살 것 같지?』 같은 책을 읽거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보고 놀라워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해 할 뿐이죠. 얼마 전에도 좋은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BBC에서 제작한 <헌터>와 <블루 플래닛>이었어요. 보는 내내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살아서 기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에게 기쁨으로 주고,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이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제가 죽고 난 다음에도 계속 대를 이어 번성했으면 합니다. 정말로, 꼭이요. 

환경 오염이 심각해져서 인간이 지구에서 더 이상 살기 힘들어지면, 지구를 버리고 화성으로 이주하자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그냥 헛되고,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연구되고, 실험하고 있는 일입니다. 우주를 이해하고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그 목적은 잘못된 것 같아요. 우주에 호기심을 갖고, 우주로 나가는 것은 좋지만 결코 지구를 버리고 떠날 생각은 해선 안됩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지구에서 풍요롭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아, 제발 좀 일 저지르고 책임은 지지 않은 채 다른 곳으로 도망칠 궁리 좀 하지 마라!)

『천년만년 살 것 같지?』는 다른 나라의, 어느 모를 생명에 대해 쓴 책이 아닙니다. 바로 이 땅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왔고 지금은 인간에 의해 존재를 위협받고 있는 생명에 대해 쓴 책입니다. 한 번쯤 읽고, 우리 땅에 누가 사는지, 그들과 함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책 중간 중간에, 작은 노력으로 지구를 아끼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는 작지만 큰 실천도 소개되어 있으니, 그 실천들 하나하나 실행해 봅시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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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소주의 생활 - 연연하지 말 것, 낭비하지 말 것, 신경쓰지 말 것
샤오예 지음, 오수현 옮김 / 청림출판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할까. 저자의 미니멀 라이프를 다룬 에세이는 확실히 아니고, 명상록도 아니고, 주부/생활 서적도 아니고, 단순히 자기계발 서적도 아니고. 음,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자기 계발서가 적절할까. 

이 책의 저자 샤오예는 중국인으로, 직업은 여행 작가이자 디자이너이다(정확히 중국 어느 지역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국이 너무 넓고, 몇몇 지역은 중국이라 하기도 애매하고 아니라 하기에도 애매한 지역이 있어서... 중국인이 쓴 책을 번역한 책은 저자 소개에 저자의 출신지, 활동하는 지역도 써주면 좋겠다. 중국은 각 지역마다 가치관과 문화가 많이 달라서 말이다.) 일본에도 체류한 적 있는 사람으로 일본의 미니멀리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예전에도 비우는 삶을 살긴 살았지만 그래도 뭔가 정돈되지 않은 삶 속에서 갈팡질팡, 어수선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갈증, 허기를 느꼈고 그리하여 주위 사람과 일본 문화에서 접하게 된 비움의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소위 일본의 단샤리 열풍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퍼져나갔나 보다. 이 책 말고 지난달에 읽은 책, 『집의 모양』이라는 책 저자는 대만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도 일본의 미니멀리즘에 깊은 영향을 받고, 본인의 집을 1년 동안 완전 미니미니멀하게 바꿨다. 책에는 1년 동안의 집 공사 전개 과정과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 가치관, 집에 대한 생각 등을 써놓았는데, 여기서도 약간 충격. 그냥 미니멀리즘보다는 일본의 아시아 문화 유행에 미치는 영향력이랄까, 그런 게 생각보다 크다는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었다. 이 책도, 중국인의 미니멀라이프보다 일본의 문화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구나, 싶은 깨달음이 컸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 샤오예의 주변 지인들이 복잡하고 정리되지 못한 삶을 살다가, 저자의 영향이든 혹은 다른 이유 때문으로든 미니멀리즘을 접하고, 본인의 삶을 개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간간이 저자의 생각과 미니멀리즘 팁을 싣고 있다. 

사실 중국인과 미니멀리즘은 좀 어울리지 않는다. 빨갛고, 황금색 번쩍이는 요란한 문화의 나라. 도가와 유가의 나라, 불가의 문화도 깊이 밴 나라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래도 중국은 뭔가 가득가득 채워진 나라다. 중국의 비움의 문화는 차라리 조선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보는데, 그 후손인 내가 보는 중국은 미니멀과 참 멀고 먼 나라. 그런데 재밌게도 일본에서 불기 시작한 미니멀리즘의 바람이 중국에까지 부는 것이 참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책에 이런 말이 언급된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모두 공짜다. 비 온 뒤 청명한 하늘, 향긋한 꽃내음,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님이 그렇듯. (p.18)
- "잉여 재산으로는 잉여 물건을 사들일 뿐이다. 그러나 정작 인간의 영혼에 꼭 필요한 물건은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소로우,『월든』 재인용, 167쪽)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꼭 필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다고, 밖에 나가서 얼마든 만날 수 있다고. 현재 중국에 공유경제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데, 그 흔적도 뚜렷하진 않지만 이 책에 녹아 있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상황, 시기가 맞아떨어져서 중국 사람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흥미롭게 읽었다. 

아쉬운 건 저자가 본인의 미니멀라이프를 이야기하기 보다, 주변 사람이 변하게 된 일화 위주로 책을 썼다는 것. 나는 누군가의 진정성 깃든 미니멀라이프 경험담과 그의 간소하고 정갈한 집과 방을 보고 싶었따이요. 아무튼, 자기계발 서적을 읽는 느낌이 다분히 들었는데, 그래서 혹 누군가 미니멀라이프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이 책을 든다면 살짝 아쉬울 수 있겠다. 그러니까 '무인양품으로 미니멀 라이프 실천!', '내 방 정리 일지' 뭐 이런 책은 아니라는 말. 

미니멀라이프를 다루지만, 보다 삶의 질과 자기만족감을 높여주려는 자기 계발서에 가깝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이 적혀 있지만 문체가 구체적이기보다 약간 추상적이다. 미니멀 라이프의 실용적 팁보다, 가치관이나 그 정신에 관심 있는 분께 추천한다. 

미니멀 라이프란, 
소유를 아예 포기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종류의 소유'
-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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