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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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아으, 그렇구나. 휘게 책 읽으며 품었던 의문들, 의구심이 이 책을 읽고 풀렸다. 뽝! 그들의 행복, 그들의 만족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이제 좀 감을 잡은 느낌이다요. 

일단, 작년부터 지금까지 휘게 관련한 책을 몇 권 좀 읽었다. ① 영국인 출신으로, 덴마크에 눌러앉아 그들의 행복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사람이 쓴 책, ② 덴마크 영화배우가 쓴 본격 휘게 라이프를 쓴 책, ③ 마지막으로 영국인이 휘게를 책으로 배워 자기의 엉망진창인 삶에 휘게적 삶을 실천한 사람이 쓴 책, 이렇게 세 권을 읽었다. 그리고 휘게만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지만 일본인들이 북유럽 삶을 동경해서 쓴 몇몇 인테리어 책과 북유럽 남자와 결혼해 북유럽적 삶을 살고, 북유럽스러운 가정을 꾸리는 내용의 책 몇 권 등등. 

내가 읽은 책들 모두 괜찮긴 했지만 사실 무척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몇몇 문장이 마음에 들었고, 다른 문화를 조금씩 알아가고, 북유럽을 향하는 세계적 트렌드를 이해하는 즐거움이 컸을 뿐이다. 왜 그들의 행복한 삶을 엿보았는데 왜 나는 이런 즐거움만 살짝 맛보았을까? 왜냐하면 뭔가 좀 앞뒤가 안 맞는 게 좀 느껴져서다. 만날 우리나라를 헐뜯는 사람들, 기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자주 등장하는 단골이다. 우리 자신들을 힐난하면서 외국인들은 학교 성적, 등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앞세우는데, 그런데 휘게 책을 읽으면 뭐에 1등, 뭐에 2등 등등 이런 소리가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처음에 그런가 보다 하지만 어느 책이나 행복을 계량화하고 어디서 1등하고 어디서는 2등을 했다느니 이런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학교 성적, 등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외국인들이 행복 지수는 왜 만들고, 왜 줄 세우기를 하는지. 뜨아함. 

정말 덴마크인을 필두로 해서 북유럽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그러하냐?! 

누구는 북유럽 사람들은 모델처럼 잘 생기고 예쁘고 키가 커서 좋겠다고 하는데, 문제는 모두 키 크고 잘생기고 예쁘다는 것. 딱히 혼자 부각되는 사람이 없다. 외모로 만족하는 건, 주위에 키 작은 오징어 외계인들만 가득 있을 때 느끼는 감정 아닐까. 

암튼 이런 의문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고 좀 풀린 듯하다. 그들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설문지에 응하는 건, 정말로 정말로 기대치가 낮아서 그렇다. 

세금? 덴마크의 직간접세는 58~72퍼센트로 살인적이다. 2/3는 떼 간다는 말. 이 책의 저자 말마따나, 달리 말하면 덴마크에서는 민간 부문에서 일하더라도 월, 화, 수, 목, 금 중에 월, 화, 수, 목요일 오전 부분까지 일한 건 고스란히 국가가 가져간다는 말이다.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하루 일한 몫만 근로자가 가져갈 수 있다. 

대부분 덴마크인들에게 세금 문제를 물어보면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어차피 자기가 자라면서 혜택을 받았으니 자신도 돈을 벌어서 자기가 받은 만큼 국가에 다시 내는 게 옳다고 말한단다. 이 책뿐만 아니라 내가 읽은 다른 휘게 책에서도 이렇게 다들 답변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 말로 끝나지 않는다. 덴마크에서는 탈세를 스리슬쩍 눈 감아 주기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암시장에 열광한다. 그리고 많은 덴마크인들이 독일에 가서 쇼핑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북유럽 여행기를 읽은 적 있는데, 이 사람들의 여행지 중 독일은 없었지만, 먼저 독일에 들렀는데 이유인즉슨 북유럽에 가기 전에 필요한 것을 쇼핑하기 위해서였다) 

또 휘게 책에서 언급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덴마크의 가계부채비율이다. 우리도 작년에 DTI 너 뭐니 하면서 가계부채비율이 너무나 심각하다고 연일 신문에서 떠들었다. 그런 우리나라도 북유럽 덴마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덴마크는 행복지수도 세계에서 1위지만, 빚도 세계 1위다. 세금도 1위!!

그들의 삶은 내가 볼 땐 팍팍하다. 빚이 세계 1위라는 건 여러모로 다양한 이유가 복잡적으로 작용해서겠지만 우선 단순히 생각해 보면, 국가가 세금을 너무 많이 뜯어가니가 가처분소득이 낮고, 그래서 뭐 좀 할라치면 빚을 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금도 1위, 빚도 1위라는 빛나는 결과를 얻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왜 행복지수가 1위일까. 그건 딱히 세상에 바라는 게 별로 없고, 기대하는 것도 별로 없기 때문인 듯. 그래서 아주 작은 것, 아주 사소한 것에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게 아닐까. 가령 방에 불은 다 끄고 촛불로만 생활하고 그 촛불만으로 행복을 느낀다거나, 모닥불을 보며 안도감 느끼는 그런 정도. 그렇지 않다면 세금도 1위, 빚도 1위인 세상에서 미쳐버리겠지. 

암튼 이와 관련해서 책 속에 재밌는 구절이 있다. 

영국 대사 로버트 몰즈워스는 『덴마크 이야기』라는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덴마크는 심하게 높은 세금으로 골치를 썩는 나라다. (...) 세금 부담은 이미 너무 커서 덴마크인은 자신들의 나라를 침략자로부터 지키기보다 차라리 침략 당하길 바란다. 잃을 재산이 없기 때문이다." (- 이 책의 95쪽에서)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덴마크인을 설명하는 게 재밌다. 

복지제도 극단주의자, 대출과 부채 극단주의자, 세금 극단주의자, 근무시간 극단주의자 등등 (- 이 책의 97쪽)
ㅋㅋ 맞는 말인 듯. 

이 책은 덴마크뿐만 아니라 다른 북유럽 국가인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를 다루고 있다. 저자의 부인이 덴마크인이라서 덴마크 장이 대해 유독 자세하고 저자의 생각이 많이 들어있지만, 얼추 고른 비중으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도 다룬다. 

으잉, 아이슬란드도?! 그렇다. 아이슬란드는 수백 년 전만 해도 범죄자, 쫓겨 다니는 자의 피난처로 사회의 낙오자들이 많이 모여든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스칸디나비아인의 언어가 아직 아이슬란드에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자기가 북유럽 국가에 포함된 걸 안다면 발끈하겠지만, 이런 이유에서 저자는 아이슬란드도 북유럽에 포함시키고, 2008년 경제 위기 때 거품 잔치하다 호되게 당한 아이슬란드를 자근자근 씹는다. (다른 나라는 문화, 역사를 다루면서 아이슬란드만은 경제 이야기를 함) 

핀란드는 저자가 사랑하는 나라로, 그냥 막막 핀란드를 애정하고, 스웨덴은 '라곰'으로 제2의 덴마크 휘게로 부상하고자 한다. 물론 자국민들의 노력이라기 보다 주위 나라, 영국이라든가 일본 사람들이 알아서 마케팅해 준다. 여전히 노르웨이는 주위 나라의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있고, 게으르고 나태하다며 딱히 근거도 없는 험담에 시달린다. (특히 덴마크인들이 노르웨이인들을 석유 때문에 게으르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라고 욕하는데, 웃긴 건 근무시간을 최대한 줄이고자 애쓰는 사람은 덴마크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물론 북유럽 자체가 오래 일을 하지 않는다. 여기 가도, 가게 문이 닫혀 있고, 저기 가도 가게 문이 닫혀 있는 곳이 바로 북유럽이니까. 

이 책을 읽고 제일 알차고, 흥미로웠던 건 북유럽이 타인의 눈에 보기엔 다 그 나라가, 그 나라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나라마다 문화나 사람들의 기질이 많이 달랐다. 덴마크는 북유럽에 포함되지만 그래도 유틀란트반도에 위치하고 독일과 접하는 국경이 길다. 그래서 나름 북유럽 사람치고 호방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핀란드는 우리 눈에는 다 똑같이 생겼지만, 핀란드는 덴마크와 스웨덴과 언어도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북유럽과 러시아의 경계선에서 오랜 세월 여러 차례 식민지배를 받았고, 그래서 무뚝뚝하고 말수가 별로 없다. 그리고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유달리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전히 스웨덴계 핀란드인은 같은 핀란드인이면서 자기들은 핀란드 인과 다르다는 우월의식을 갖고 있고, 여전히 중산층 이상, 상류층으로 생활하며 핀란드인들을 깔본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자꾸 술에 대해 지적하자 외국인의 시선, 시각에 민감한 핀란드인들은 금주에 집착하기 시작했는데.... 

"금주운동을 하는데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미 모두가 금주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 209쪽)
스웨덴은 다른 북유럽보다 좀 개방된 축이다. 사회적 실험도 많이 하고 있어, 몇 년 동안 이민자도 많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스웨덴과 서로 거울처럼 마주 보고 상대를 인식해온 덴마크인들은 스웨덴을 너무 답답하게 생각한다. 너무 스트레이트하기 때문이랄까. 모노 하기 때문이랄까.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어도 스웨덴인은 빨간 불에 도로를 건너는 걸 기겁하고, 여러 명이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도 굳이 혼자서만 타려고 애쓴다. (일본 사람들과 죽이 잘 맞겠다) 

노르웨이는 석유로 돈방석에 앉았지만 주위 나라들의 불평불만, 험담처럼 사람들이 게으르다. 인구의 1/3이 일을 안 하고, 학생들의 교과 이수능력도 많이 덜어진다. 문해력, 수학, 과학 등 아이들의 수학 능력이 유럽 평균을 밑돈다고 한다. 

이 책 속에는 이런 내용이다. 언론이나 책에서 소개되는 것과 북유럽은 생각보다 많이 딴 판이라고. 그렇지만 어느 정도 우리가 아는 이미지가 맞긴 맞다고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불평불만 늘어놓고 그들의 국민성에 뜨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북유럽 나라들을 사랑한다고. 암튼 영국식 애정 표현이다. 영국은 이렇게 비꼬는 걸로 자신의 애정, 자신의 관심을 드러내는가보다. (관심이 없으면 이런 책조차 쓰지 않을 테니) 

저자가 북유럽 책을 쓰면서 노력을 많이 했다. 사람도 많이 만나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고, 책도 신문도 잡지도 어마어마하게 수집하고 읽고 했던 듯하다. 하지만 아쉬운 건 좀 정리되지 않은 게 아쉽다. 대체로 구성이 산만하다. 좀 다듬고 뺄 건 빼고 했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 

어쨌든 북유럽 이미지에 품었던 의구심을 이 책을 읽고 푼 건 성공! 
그러니까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고, 언뜻 보기에 유토피아인 것처럼 보이는 곳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은 세상에 기대하는 바도 크게 없다. 욕망을 줄이고, 기대하는 바도 줄이고, 불만도 줄이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진다. 여름엔 영원히 낮만 지속될 것 같고, 겨울엔 영원히 밤만 지속될 것 같은 그런 극단적인 환경에 살면 자연스레 세상에 대한 바람,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은 차츰 줄어들기 마련이다. 매일 아침 해 뜨는 것만 봐도 기뻐할 수 있다. 얼마나 세상에 대한 기대치와 불만치가 낮아지는지, 나라에서 50~70% 돈을 떼가도 싱글벙글 웃으며 국가에 손 흔들어 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 상태가 되면, 북유럽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에 살아도 행복하리라. 일찍 퇴근만 시켜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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