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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주말 동안 서해문집에서 펴낸 『유럽민중사』를 읽었다. 두툼한 두께만큼 묵직한 주제를 다룬 책이다. 편집자 측에서도 꽤 신경을 썼는지, 초판 1쇄인데도 눈에 띈 오탈자는 없었다.

번역자의 글을 보니, 2016년 여름에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싸고 온갖 의혹들이 제기되던 때였다. 가을이 되자, 의혹과 증거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그해 겨울과 이듬해 봄, 대한민국에 한 번도 쓰인 적 없는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 2016년 겨울,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 물결을 기억한다. 얼마 전 일이지만,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그때가 마치 10년 전, 20년 전의 일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기억나는 건, 당시 소소한 충돌과 방화, 사고로 인한 사망 사건(한 시위자가 떨어트린 물건이 다른 시위자 머리에 떨어져 사망했던 사건으로 기억)이 있었지만 대부분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집회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헌법과 국회가 정한 절차로 대통령을 탄핵했고, 역시 헌법과 국회가 정한 대로 국민이 투표를 해서 새 대통령을 뽑았다. 이런 평화적인 정권 교체는 세계사에도 길이 남을 일로 생각한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완고한 역사학자들이, 우리나라의 의미 있고 상징적인 정권 교체를 세계사에 편입해 서술할지 의문이다. 북한의 독재자 이야기엔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할애해도, 우리의 평화적 정권 교체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을 것 같다. 어쨌든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은 진정 긍정적이고, 역사에 기록되어야 할 ‘아래로부터의 역사’였다고 생각한다. 이 '아래로부터의 역사'에서 아래는 바로 '민중'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역사 때문에, 빨간색 비슷하게나마 그런 색이 보이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민중'이란 단어보다, '국민'이란 단어를 더 선호하지만 말이다.)
어쨌건 역사는 언제나 멈춘 적 없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새롭게 해석된다. 그런 의미에서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몰랐던 것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를 반추해야 한다. 우리 역사도, 그리고 남의 역사도! 그래서 읽어보자. 요 책, 『유럽민중사』!

이 책은 중세 붕괴부터 21세기 초까지의 유럽 민중사를 다루고 있다. 책 자체는 지엽적이지 않고, 문체도 간결해서 읽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친절하게 모든 걸 다 설명해주는 책은 아니다. 그래서 대강이나마 유럽사의 전체 흐름과 주요 사건은 알고 있어야 매끄럽게 읽을 수 있다. 소위 중세 시대라 불리는 시기의 유럽 경제 구조와 권력 구조는 어떠했는지, 르네상스 이후로는 어떤 양상으로 바뀌었는지, 그리고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어떻게 유럽 전역을 흔들었는지, 19세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등장과 20세기 극우주의의 득세가 어떤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심각할 줄 몰랐다, 양차 대전!'과 미소 냉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그 후 등등 그 배경지식을 좀 알고 있어야 수월하게 이 책이 읽힌다. (물론 이런 기본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이 곧바로 이 책을 읽을 것 같진 않다)
자자, 이 책을 읽은 저의 소감은요~
‘의문에 의문을 더해준 책’, '그래서 살짝 머리가 아팠던 책', '그래서 좋았던 책'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 이유인즉슨, 이러하다. 음, 이 책 제목에 등장하는 말이기도 한 ‘민중’이라는 개념이 아리송송하다. 민중이란 게 뭘까. 알긴 알겠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책 속에서도 민중의 의미, 그 경계는 모호하다. 나는 민중일까, 민중에 포함될까. 나는 언제나 '나'라고 하는 개인으로 존재했는데. 어리둥절.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중세 농도들에게, 산업혁명기의 영국 노동자에게, 바스티유 감옥의 문을 열어젖힌 프랑스 성난 군중에게 가서 ‘당신은 민중입니까?’라고 물으면 ‘네, 그러합니다’라고 그 사람들이 대답할까? 파업으로 유서 깊은 곳인 프랑스 리옹에서 일어나는 파업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을 같은 무리로 묶을 수 있을까.
나는 유치원에 입학한 그날부터 언제나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에 민중이라는 말도, 그들의 연대 의식도 사실 머리로 느끼고 상상할 뿐, 마음으로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하겠다. 지방 사람이라 2016, 2017년의 촛불 속에 나는 한 번도 있은 적이 없다. 딱 한 번, 여러 사람들과 일체 됐다고 느꼈던 때는 2002년 월드컵 때 한 번 뿐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16강까지만, 8강부터는 뭔가 지겨워져서 다시 주변인으로 되돌아왔었다.
나는 언제나 개인으로 존재했고, 내 편의에 따라 무리에 들어가기도 했고, 한 발 슬쩍 뺀 채 주변인으로 맴돌면서 그 어느 조직, 어느 무리에도 제대로 소속된 적이 없다. 그런 나이기에, 이 책을 읽고 민중이란 누구인지 의문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민중은 그 모습을 여러 번 바꾼다. 중세 때는 '농노'로, 르네상스 이후 종교 개혁기에는 이쪽과 저쪽에 포함되지 못한 채 죽어나간 '유대인, 무슬림, 여성(마녀)'로, 양모 산업이 급부상하자 공유지 밖으로 쫓겨나간 농민으로, 이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갔고, 산업혁명 때 자본가들에게 골수를 빨아먹힌 공장 인부로 나온다. 그중 제일 착취당한 것은 여성이고 어린이였다고. 인클로저 운동으로 공유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공장에서도 기계 때문에 소외되고 착취당한 자들. 기계에 짓눌리고 그 위의 자본가들에게 짓눌린 자들. 굶주림에 지치고, 폭발적으로 뛰는 물가 때문에 화가 난 사람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도망치는 왕과 왕비를 붙잡아 목도 댕강 잘라버린다. 모든 게 바르게 될 거라고 믿었던 때에도 기득권들은 여전히 기세등등 사람들을 옥죄고, 몇 번의 혁명이 반복된다. 절대 마르크스주의자인 적이 없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이 사람들은 각기 공산주의자로, 사회주의자로 여러 길로 나아가고 이들과 의견이 맞지 않는 자들은 파시스트로 나아간다. 여러 무리들은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고, 다시 또 여러 갈래로 나뉘길 반복. 서로를 미워하고, 어쩔 수 없이 타협, 협력, 반목하면서 역사를 써내려왔다. 이렇게 이 책은 기득권층에 억압당하거나 항의한 자들을 민중이라 본다. 얼굴은 각기 다른데, 모두 똑같은 표정의 사람들, 그 무리들.
바뀌는 세상, 바뀌는 군중들. 시대가 흐르고, 사람은 바뀌지만 사람은 구분 짓길 좋아해서일까, 편견과 차별을 좋아해서 일까, 언제나 억압받는 자, 차별받는 자가 있다. 이 역시 피라미드 꼴로 나뉜다. 처음엔 타고난 신분으로, 그다음엔 머릿속에 든 지식으로, 그다음엔 가진 재산으로, 그다음엔 소속된 국가나 집단, 종교로, 그다음엔 여성이냐 남성이냐로, 그다음엔 어른이냐 어린이냐, 그다음엔 인종으로.
이렇게 적고 보니, 책에서 말하는 민중이 뭔지 조금 알겠다. 이름 없는 소외자, 약자의 무리로구나. 분명히 존재하고, 그 수가 많지만 평상시엔 존재하는지 인식조차 되지 않는 자들. 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대단히 불합리한 일이 일어난다고 느끼면 거리로 달려나왔고, 그렇게 민중이 되었다. 민중에 대한 정의는, 시대마다, 그리고 맥락에 따라 매번 달리 정의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각 챕터마다 민중이라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다르다. 각 챕터마다 보통은 남성 간의 계급 대결을 주로 다루고, 그다음엔 매번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좌든 우든, 자본가이든 노동자든, 어디든 분간 않고 남성들에게 공격받은 여성들, 그래서 역사에 거의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책 사라져 간 세계의 절반, 여성들을 다룬다. 그렇다고 여성을 많이 다룬 건 아니다. 계속 여성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그 분량이 많지 않다.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다룬 역사 책이 아니어서 그런 것도 같은데 어쨌든 시대 흐름 때문인지, 저자가 정말로 여성을 진심으로 생각해서인지 여성을 계속 언급하긴 한다. 그래도 역사는 남성 위주로 쓰였기 때문에 사료 속에 여성이 차지하는 공간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여성은 이 책 속에서도 주변에 머물러 있다.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역사는, 정말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은, 소수의 권력집단이 주요한 결정을 하고, 전쟁을 한 이야기를 다룬 역사 책이 아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억압받던 자들, 불합리한 구조로 착취당한 자들의 분노와 그 행동을 다룬 책이다. 문체는 평이하다. 그렇다고 냉정한 말투도 아니다. 여성과 어린이를 대할 땐 특히나 번역이어도 저자의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하지만 역사가는 역사를 서술할 때 감정에 치우쳐선 안되겠죠. 그러니 평이, 평이하게-
저자는 미국인 학자다. 유럽 속이 아닌, 유럽 바깥사람, 그것도 유럽의 피를 받은 외국인이 쓴 유럽민중사. 유럽 문화 속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자란 사람과 사뭇 다른 시각으로 쓴 책이다. 흥미롭게 잘 읽었다. 무엇보다, 저자는 집에서 고양님을 모시고 사는 집사로서, 늘 노동을 해야만 하고, 어쩌다 한번 주인님이 내리신 은총에 감지덕지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파란만장한 역사 속의 유럽 민중을 십분 잘 이해하는 사람 같았다.
이 책을 한 번 읽고 다 이해했다고 할 순 없다. 다루는 범위가 방대하고,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이 상당히 많다(물론 언급되지 않은 역사적 사건도 있지만). 여러번 읽어야하겠지. 일단 첫번째 독서에서는, '민중은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그 의문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을 찾았다. 다음에 읽을 땐 또 어떤 의문과 마주하게 될지, 기대된다.
추가>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역사'를 읽고 든 생각은, 사람들이 출몰하길 원하는 유령은 마르크스의 유령이 아니라, 관중의 유령이 아닐까 싶다. 유럽인이 원했던 건 빵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한 만큼 받는, 정당한 처우와 복지였다. 빵과 복지, 자존을 쟁취하기 위해 연대하고, 함께 파업을 했으나, 궁극적으로 원한 건 각자의 아늑한 삶이 깃든 따뜻한 집이었다. (마르크스가 진정 원했던 세상도 이런 세상이 아니었나) 모두가 바란 건, 여유 있고 아늑한 그리고 평화가 깃든 '개인'의 삶이기 때문에 민중 운동은 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듯.
어쨌거나 소외된 자, 억압받는 자, 착취당하는 자 없이 모두 건강하게 일하고, 등 따시고, 배부른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 근데 문제는 이거죠, 과연 '어떻게'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