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끝에 철학 - 쓸고 닦았더니 사유가 시작되었다
임성민 지음 / 웨일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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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돼서 기쁜데, 봄이라서 싱숭생숭하고, 봄이라서 갈 곳 많은데 봄이라서 어리둥절하다. 따뜻한 햇살, 따스하게 데워진 공기, 설렘 가득한 세상. 겨우내 앙상하게 비어져 있던 세상이 예쁜 꽃과 연두색 새순으로 가득 채워졌다. 집에만 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공원으로 쏟아져 나온다. 괜찮은 곳은 모두 사람으로 꽉꽉 차 있다. 생명, 활력, 사람들이 거리와 공간을 가득 메운다. 

봄이 되니 산에도 가고 싶고, 강에도, 바다에도 가고 싶다. 맛있는 거 먹으러도 가고 싶고, 도시락 싸 들고 놀러 가고 싶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이렇게나 많았나 싶을 만큼 정신을 못 차리겠다. 좋기도 하고, 참 마음이 싱숭생숭, 어리둥둥절.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오!!!
청소!!!

안 입는 옷, 안 좋아하는 옷 버린다. 찬장 놓은 곳 넣어둔 그릇도 다 꺼내 상태 체크하고 그동안 이 나간 것, 앞으로 다시 안 쓸 것 미련 없이 버린다. 겨우내 쌓인 먼지 빗자루로 쓸어내고, 물 묻힌 걸레 꽉- 쥐어짜고 바닥을 빡빡 닦는다. 진짜 뽝뽝 닦는 게 이 청소의 백미. 커튼도 떼서 씻고, 이불도 자근자근 밟아 빨고, 욕실도 깨끗이 씻는다. 햐- 집안이 반짝반짝, 뭔가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기분이 달라지고 공기가 달라졌다. 후련하고, 시원하다. 내가 청소한 건 비단 집만이 아니라, 내 마음, 내 머릿속이다. 정리, 정돈 그리고 비어짐. 

진짜로 2월부터 3월까지 슬럼프였다. 잘 지내다가 1~2년에 한 번씩 슬럼프에 빠진다. 이 슬럼프는 꼭 일에 굳한 된 게 아니라 내 삶의 전반이랄까, 그냥 뭐랄까 딱히 뚜렷한 이유는 없는데 기운이 쳐지고, 삶에 의욕이 떨어진다. 불안, 소심, 근심 걱정, 짜증, 분노, 진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은 다 느끼고, 다 발현하며 지내는 시기이다. 참 옛날부터 이런 슬럼프의 반복이었다. 흡사, 사춘기 때 아이들의 세상 불만족, 갈증 그런 것과 비슷한 감정 같다. 사춘기는 원래 신체가 거의 다 자란 아이들이 이제 독립을 해야 함을 보내는 신호다. 인간 외의 많은 동물들은 이때가 되면 미련 없이 가족을 떠나는데(반대로 부모가 미련 없이 애지중지하던 새끼를 고개 한 번 돌려 보지 않고 떠남) 인간도 동물인 이상, 마음에 원인 없이 어떤 불만족스러운 기운이 감돈다면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그래서 했다. 뭔가 불만족스러울 땐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뭐가 됐든 간에 行이 있어야 한다. 이 중 제일 저렴한 비용과 제일 결과가 좋은, 효율성 높은 行은 바로 청소이다. 

버리고, 정리하고 정돈하고, 이렇게 청소를 하고 청소 후에 다시 내게 더 이상 필요 없는 게 또다시 보이더라. 그것들은 다시 버리고, 필요한 건 새로 샀다. 뭔가 대단한 거 시도하지 않고, 청소만으로도 많은 게 정리되었다. 내 주변도, 내 머릿속도 말이다. (어쩌면 내 미래까지도 정리되고 새로 방향이 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때 가서 알 수 있는 일) 

청소를 하니까, 예전엔 그렇게나 소중했던 것들이 이제는 소중하지 않고 게다가 필요조차 하지 않게 됐다는 걸 알았다. 반대로 예전엔 전혀 관심 없고, 필요 가치도 없었던 것이 이제는 정말 절실히 필요해진 것도 있었다. 청소를 하면, 이전과 달라진 나를 깨닫게 된다. 비우고, 채우고, 다시 비우고 채운다. 청소로 나를 알게 되고, 또 청소로 나를 만들어 나간다. 



이 책은 3월 말, 내 슬럼프의 막바지 즈음 내 슬럼프를 정리하면서, 그리고 내 주위도 정리하면서 읽은 책이다. 내 주변도, 내 머리도 정리하고 청소하면서, 화룡점정이랄까 마지막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랄까, 슬럼프를 종지부 짓기 위해서 읽었다. 단단히, 확실히 매듭짓기 위해! 꽝꽝!!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의 반복이며 인간은 변화와 유지를 동시에 원한다. 굳이 힘과 시간을 들여 '전처럼 새롭게' 만드는 청소는, 반복과 변화와 유지를 동시에 가로지르는 행위다.

저자의 '청소'에 대한 통찰은 정말 공감이 간다. 이 책을 읽고, 정말로 청소는 철학과 맞닿아 있음을 느꼈다. 그래, 철학이 별거냐. 청소 끝에 어떤 깨달음, 어떤 느낌을 느낄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철학이고, 또 논리 정연함이나 설득이 철학이라 하면 청소는 정말로 철학이다. 뽝!

이 책은 청소에 관한 인문학 서적으로, 제목은 『청소 끝에 철학』이지만 철학보다 '인문학'이 좀 더 적절하지 않나 싶다. 저자 개인적으로의 생각, 깨달음이 있어 저자에겐 이것이 '철학'이겠지만, 독자가 읽기엔 철학보다 이 책이 다루는 범위가 넓다. 약간의 역사, 약간의 인류문화등이 다뤄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어떤 건 청소와 밀접한 이야기, 어떤 건 청소와 아예 관계가 없는 듯한 이야기인데 저자는 청소와 엮어 항상 글을 마무리한다. 진짜롱, 청소 끝에 철학이다. 

이 책에 부처님 이야기도 나오지만, 청소는 어떤 진리에 가닿고자 하는 사람이 일상을 떠나 진리의 세계로, 구도의 세계로 들어간 사람 혹은 도제식 수업으로 이뤄지는 곳에서는 입문한 사람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바로 청소이다. 과거 버리기, 소유물 버리기, 관계 버리기. 일단 기존의 것을 버리고, 끊고,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또 현실적으로도 이 입문자들이 제일 처음 하는 일도 청소이다. 청소, 빨래, 음식 재료 씻기 등. 

사실 진리의 세계든, 도제식 세계든, 이곳의 세계든 매일의 일상이 반복되는 건 어느 곳이든 똑같다. 진리든 뭐든 기본의 기본은 바로 우리 일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청소를 사람마다 달리 생각하는 것은 마음가짐 차이 때문이 아닐까. 원해서 하는 일, 싫은데 억지로 해야 하기 일의 차이. 또 누가 시켜서 수동적으로 하는 청소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고 스스럼없이 하는 것과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청소는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청소 끝에 철학을 얻을 수 있는 건, 청소를 주어진 의무라 생각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럼없이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깨달음이, 그리고 자유가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자유' 챕터도 따려 마련되어 있음!)

청소는, 정말로 간단한 일인데 자의에 의해서 하느냐, 타의에 의해서 하느냐 뚜렷이 나뉘고, 여기서 바로 본인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의무로서 청소를 매일매일 하지만, 그러면서도 물걸레질을 하면서 어떤 자유를, 어떤 깨달음을, 그리고 어머니(모든 이의 '인생 거울'인 어머니!)를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청소라는 사소한 것에도 많은 것이 녹아 있고, 그래서 많은 것을 느끼고 알 수 있다. 

이 책은 청소에 관한 책이지만, 진짜 청소에 관해 설명하는 실용서적이 아니다. (물과 베이킹파우더 비율 등등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는 말씀!) 청소에 관한 단상, 청소에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인문학적 이야기를 다룬다. 청소 관련해 다양하고 많은 것을 읽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그리고 청소가 필요한, 마음에 갈증이 있는 분들께도 추천. 읽고 나면 물걸레를 들고 방을 뽝뽝 닦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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