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작은 료칸이 매일 외국인으로 가득 차는 이유는?
니노미야 겐지 지음, 이자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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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산속 작은 료칸이 매일 외국인으로 가득 차는 이유'를 말해주는 책이다. 

산속 작은 료칸은, '야마시로야'라는 료칸으로 한 가족이 운영하는 작그마한 료칸이다. 료칸(旅館)을 우리 한자 음으로 읽으면 그대로 '여관'. 그러니까 이 책 제목의 의미는 한때 융성했으나 쇠락을 맞은 온천지역, 그 온천에 있는 자그마한 여관에 매일 외국인으로 가득찬다는 의미로 '어때, 궁금하지?'란 제목이다. 우리가 생각해봐도 궁금증 뿜뿜. 



저자는 오랫동안 금융기관에서 일했고, 짬짬이 아내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료칸 일을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가업을 돕기 위해 료칸에 머물며 살며, 이제는 완전히 료칸 일만을 업으로 살아간다. 다른 일에 몸 담고 있다가 료칸 일에 뛰어들어서 일까, 처음부터 료칸 일만 했던 사람과 다른 특별한 뭔가가 있다. 시대를 읽는 안목과 홍보의 중요성, 서비스 정신이 여타 료칸 운영자와 다른 것 같다. 그런 능력에 더불어, 쇠퇴해 가는 지역을 어떻게든 부활시키고 싶다는 염원까지 더해져 작은 온천지에 기적을 일으켰다. 

그 시작은 사소한 것에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잡지 편집자에게 정보를 하나 알게 된다. 한국 잡자사 두 곳이 '규슈의 온천지'라는 테마로 근처에 취재를 온다는 정보였다. 저자는 자신의 료칸이 있는 온천지에도 들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행히 한국 잡지사 두 곳 모두 이 분의 료칸에 들렸고, 이 지역의 명소, '유노히라의 돌길' 사진이 우리나라 잡지에 실리게 되었다. 

이후 저자는 지역 스포츠 이벤트에도 참여하고, 우리나라 강원도 대관령에서 열리는 스포츠 이벤트에 참여하며 문화 교류도 성사시켰다. 이후에는 타이완, 홍콩 등 작지만은 기회가 될 때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노히라 온천'을 홍보했고 이때부터 일본 노인 관광객이나 소수의 젊은 커플이 아닌 외국인 손님이 이 지역과 저자의 료칸인 '야마시로야 료칸'에 오기 시작했다. 

저자는 홍보만 열심히 한 게 아니다. 료칸의 인프라도 외국인에게 적합하도록 바꾸었다. 전화 예약이 아닌 인터넷 예약으로, 료칸 홈페이지도 자주 오는 나라의 언어로 서비스 하기 시작했다. 문화가 달라서, 혹은 처음이라 모를 수 있는 사항은 동영상 제작 등으로 친절히 설명해 준다. 본인이 해외 여행에서 겪었던 일들, 느꼈던 점들을 바탕으로 외국인 손님들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깊이 생각하고 실천했으며, 변화는 작고 저렴했으나, 결과는 아주 효과적이고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현재 '야마시로야 료칸'은 무인역에 그것도 1시간에 한 대밖에 기차가 서지 않고, 역과 마을을 잇던 버스도 이제 인구 감소로 없어졌을 만큼 아주 작은 시골에 있다. 그런데도 거의 100퍼센트 객실 가동률을 자랑한다. 시대가 변했고, 그 변화를 저자가 잘 캐치했기 때문이다. 위에 잠깐 썼듯이, 잡지사와 인연이 잠깐 닿았을 때 그 기회를 잘 잡았다. 저가 항공사가 활발히 운영되는 이 시대에,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아시아 사람들이 일본에 가기 쉬워졌고, 저자는 이런 외국인 관광객을 잘 타켓했다. IT 발전도 한몫했다. 홈페이지,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를 잘 활용했다. (료칸에 무료 와이파이도 빵빵!) 

보통 산업을 육성하려면 지역 대학과 잘 협력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작은 료칸 운영주는 이것도 잘 활용했다. 인근 대학의 유학생을 고용해 홈페이지에 다국어 서비스는 물론, 각 나라에 잘 맞는 감성으로 홈페이즈를 꾸며놨다. 시골 작은 료칸에서 세계화를 이룩했달까. 

확실히 저자는 사업 감각이 있고 뭐랄까,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도 갖고 계신 분이다. 사고의 전환으로 남들이 덮어두고 '안 될 거야'하는 일도 성공해 냈다. 덕분에,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됐고. 여러 모로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던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떠올랐던 책이 있는데 마스다 무네아키의 『라이프 스타일을 팔다』라는 책이다. 사업의 스케일은 다르지만, 두 분의 사업 감각, 미래를 꿈꾸는 방식,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해 내는 모습이 참 많이 닮았다. 대단하고, 참 인상깊다. 

깊은 산속 쇠락해 가던 온천 지역이 어떻게 다시 부활하고, 작은 료칸이 어떻게 객실 가동률이 100퍼센트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간략하면서도 핵심만 꼭꼭 집어 쓴 책이다. 가독성 높고, 이해하기도 쉽게 잘 쓰였다. (저자가 작가가 아닌 만큼, 출판사 편집진이 많이 도와준 것 같기도 함) 

본격적으로 초고령화, 급격한 인구 감소에 접어든 우리나라로서도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실 저자는 일본 온천 여행객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서 해외로 눈을 돌린 케이스다) 이 책이 숙박업이나 관광분야에 종사하시는 분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 종사자에게도 유익할 책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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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좋은 날, 경복궁 - 경복궁에서 만난 비, 바람, 땅, 생명 그리고 환경 이야기
박강리 지음 / 해나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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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좋아서 읽은 책.  
이 책을 읽기 전에 저자 약력을 보니 10년 전에 한 권의 책을 쓰셨다. 제목이 낯이 익다. 10년 전에 읽었던 책이다.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기』. 제목처럼 책 내용이 좋았고 따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함께 살기’도 아니고, ‘함께 살아가기’다. 저자의 의지와 따뜻한 힘이 느껴지지 않나?! 저자가 지은 제목인지, 출판사 사람이 지은 제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기』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강령 뭐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은 아니고, 환경史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ex. 레이첼 카슨, 러브록 등)에 관한 책이었다. 이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지구의 모든 것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찬찬히 설명하는데, 저자의 가치관이나 저자가 세상만물을 유기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풀이해내려는 의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 책 『바람 좋은 날, 경복궁』은 10년 전 책과 같은 듯 다른 듯, 다른 듯 같은 책이었다. 저자의 약력을 읽기 전, 책 제목과 대충 책 내용만 훑어 봤을 때 경복궁 안내도서 같은 책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내 추측과 다른 책이었다.  

우선 10년 전 책과 비슷하게, 상당히 ‘유기적인 시각’으로 쓰였다.  예를 들어 경복궁 근정전 하나를 이야기해도 이 건물에 대해서만 쓰지 않았다. 우선 궁궐의 주 재료였던 소나무에 대해 말한다. 조선시대 때 소나무는 나무 중 가장 으뜸이고 최고의 나무였다. 그래서 으뜸 나무로, 조선 으뜸 집인 궁궐을 짓는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음은 근정전 앞마당에 깔린 박석 이야기다. 박석은 납작한 화강암으로 근정전 앞에 깔려 있다. 많은 신하들이 앉거나 서고 또 중요한 행사를 하던 곳이니 흙보다 돌바닥이어야 한다. 흙이나 잔디밭은 비가 오면 여러모로 불편하다. 여러명이 밟아도 불편하다. 경복궁은 북악산 산줄기가 자연스럽게 완만해지는 기울기를 그대로 두고 지어졌다고 한다. 이 박석이 깔린 근정전 앞도 마찬가지다. 비가오면 빗물이 자연스럽게 건물이나 마당 가장자리로 흐른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이용하면서 인간에게도 편리하고 쾌적하게 만들었다. 다음, 박석의 모양. 박석은 화강암으로 만든 얇은 돌판인데, 화강암은 아주 단단한 돌이다. 적당한 두께로 자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상들은 적당한 두께로 화강암을 잘랐다. 그런데 재밌게 두께는 나름 일정한데, 가장자리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 가장자리가 생긴그대로 자연스럽다. 중국이나 일본의 네모반듯한 돌이 아니다. 물론 일정한 크기와 모양으로 돌을 다듬는 기술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최대한 자연 미를 살려서 돌을 다듬었다. 우리 특유의 자연스러움을 사랑하는 취향이랄까, 저자는, 이 박석 사이사이에 틈이 있어, 그 틈에 흙이 있고 어디선가 날아온 씨가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고 한다. 정말 ‘자연스럽’고, ‘자연’스럽다. 근정전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과 실제하는 동물들,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와 나무로 지어진 궁궐을 화재로부터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조상들이 짜낸 지혜들이 적혀 있다. 예로 물을 담아 비상시 쓸 수 있도록 한 큼지막한 독인 ‘드므’와 방화부적, 경회루 연못에서 출토된 용(조상들은 용이 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자칫 불이 날 수 있으므로 땔나무가 아닌 숯으로 궁궐 난방을 한 이야기, 불과 쇠를 먹어치운다는 상상의 동물인 불가사리를 궁궐 내 불 쓰는 곳곳에 놔두었다는 이야기 등이 적혀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경복궁에 대해 명칭 이야기나 각 건물의 쓰임새, 역사적 사실 등에 집중하는 책이 아니다. 독자와 함께 경복궁을 가볍게 산책하는 느낌으로 경복궁 내 건물의 이런 저런 이야기와 그 건물을 이루는 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또 생태적으로 얽혀 있음을 말하고, 당시 조선시대 사람들의 자연관과 지금 우리들이 생각해 봐야 할 것들에 대해 차분한 어조로 쓰고 있다.  

제목이 『바람 좋은 날, 경복궁』이지만, 책에는 ‘비 오는 날,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저자도 비 오는 날 경복궁을 즐겨 찾으시는 듯한데, 나는 지금까지 경복궁에 여러 번 가긴 했지만 비 오는 날에 가본 적은 없다. 그런데 비 오는 날 경복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는 건 뭐지?! 실제로 그 속에 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차분해지면서 몸과 마음은 가벼워지고, 청아해지는 그런 느낌이 아닐까. 상상은 되지만 내 상상과 내 느낌이 맞는지 꼭 한 번 비 오는 날 경복궁에 가보고 싶다.  

유교의 나라 조선은, 중국 고전인 『주역』이 정말 중요했던 나라다. 『주역』은 단순히 점을 치는 책이 아니고, 자연과 운명을 유기적인 관점에서 한데 묶어 책이다(단순히 묶었다고 할 수 없지만... 음, 『주역』에 대해서는 진짜 말로 잘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조선 최고의 집이자 관공서(?!)인 ‘경복궁’이 ‘유기성’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게 이어지지 않은 게 없고,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않은 게 없다. 이 세상을 이루는 ‘자연’도 긴밀하게 모두 다 이어져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경복궁’은 그런 자연과 잘 담았고, 또 닮았다. 자연과 닮은 조선 최고의 집, 궁궐이다. 자연과 생태에 관심이 많은 저자가 왜 경복궁을 좋아하는지 여기에 답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저자의 10년 전의 책과 이 책은 다른 듯, 같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고 ‘바람 좋은 날’ 또 ‘비 오는 날’ 경복궁에 나들이 가면 좋을 것 같다. 재미있게도, 보물찾기와 비슷한 숙제(?)를 저자가 내놓았다. 겸사겸사. 

늘 같아 보이는 날도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듯, 경복궁도 늘 그대로인 듯 하면서도, 매번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만큼, 우리가 보려고 하는 만큼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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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과 서쪽으로
베릴 마크햄 지음, 한유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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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아름답다.  




1902년에 영국에서 태어난 베릴 마크햄은 1906년 아버지와 단 둘이 아프리카 케냐로 이주한다. 그녀는 아프리카 원주민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데 같이 싸움도 하고, 위험한 사냥도 한다. 어느 정도 컸을 무렵 극심한 가뭄으로 아버지 농장이 망하자 베릴 마크햄은 홀로 길을 떠난다. 그 후 온갖 일을 겪으며 많은 일들을 하나씩 이뤄내는데 그 기록들이 놀랍다. 하나를 꼽으라면, 혼자 비행기를 몰고 혼자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때가 1936년, 34살 때다.  

지금도 아프리카는 다른 대륙에 비해 낙후된 곳이다. 100년 전 아프리카는 정말 어떤 곳이었을까. 이 책을 보면 뭐랄까, 참담하다고 말할 정도다. 가뭄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은, 인류가 농경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겪었을짐한 일 아닌가. 아프리카 역시 아메리카처럼 골드러시로, 아프리카 시골에 몰려든 혹은 밀려든 사람들이 많았다.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왔으나 그들이 얻은 건 소량의 금 부스러기와 죽을 병이다. 그들은 처참하게 죽어간다. 죽기 직전의 사람은, 이미 사자(死者)의 형상이 뚜렷이 있다. 산 자는 그 모습을 편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붙잡는다. 1년 이상 듣지 못한 나이로비에 무슨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며칠, 혹은 내일, 어쩌면 몇 시간 후에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나이로비 소식이 궁금하다. ‘충족되지 않은 호기심은 죽음을 그토록 힘들게 한다. (52쪽)’ 

“사람들은 잊죠. 한 집단이 사람 하나 잊는 것은 쉽지만, 이런 데서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그간 만났던 사람들을 하나씩 전부 기억하게 됩니다. 한 번도 호감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도 걱정하게 되죠. 심지어는 앙숙이었던 사람들도 그리워집니다. 전부 생각할 거리가 되고, 그게 도움이 되죠.” (55쪽)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남자는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면서. 베릴 마크햄은 거짓말을 한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의 안부를 전해준 것이다. 그녀는 떠났고 그녀가 떠난 지 얼마 안 돼서 그 남자는 죽었을 것이다(그녀는 죽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남자를 구하러 가기 위해 떠났다). 세월이 지나 베릴 마크햄은 죽어가는 남자가 안부를 물었던 그 남자를 만난다. 하지만 그 남자는 죽은 남자를 기억하지 못했다. 역시나 오지에 떨어져 있는 사람만이, 예전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그들의 안부가 궁금한가 보다.  


이 책은 베릴 마크햄의 파란만장한 삶이 적혀 있다. 아프리카에서의 삶은 때론 거칠고, 때론 위험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답다. 아프리카는 석양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아름다운 석양의 영향 때문일까. 베릴 마크햄의 문체만 보면 감수성 있고,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영국 상류층 여성이 쓴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강한 생명력과 모험심 강한 여성이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아슬아슬하게 놓인 아프리카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글 여기저기에 철학이 깊이 배어있다. 죽음을 가까이 둔 사람은 철학인이 될 수밖에 없다.  


약간 냉소주의자 기질이 있었던 사람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그저 살아갈 뿐,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배운 것들이 있다.  
나는 살고 사랑했으며 모든 지난날을 깊숙이 묻어둔 곳을 반드시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 최대한 미적거리지 말고 가능한 빨리 떠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절대로 돌아보지 말고 기억에 남은 시간들이 더 행복했다고 생각하지 말 것. 그 시간은 이미 죽었으니까. 지나간 세월은 이미 정복돼 안전하게 보인다. 반면 미래는 만만찮게 보이는 구름 속에 살아있다. 미래로 걸어 들어가면 구름은 걷힌다. 나는 이 사실을 배웠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뒤늦게야 배우게 됐다.  (206쪽)

위 글은 베럴 마크햄이 '은조로 농장'을 떠난 이야기를 시작하는 부분에서 발췌했다. 은조로 농장은 그녀의 아버지 농장인데, 극심한 가뭄 때문에 문을 닫았고, 그녀는 떠난다. 떠남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떠남과 동시에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한다. 이래저래 변화의 시점에 놓인 내가, 그럼에도 여전히 밍기적거리고 있는 나에게 특히나 와닿았던 글이다. 

그냥 그렇게 떠나면 된다. 간단한 소지품 몇 가지만 챙긴 채. 미지의 새로운 길을 걷다보면, 짙어보이던 구름과 안개가 어느새 걷혀 뚜렷이 모든 게 드러나고, 그게 현실이 되고, 정복이 되고, 다시 안전하게 보이는 과거가 된다.  

아름답고 여성적 에세이이지만, 힘이 있고 여성/남성이 아닌 ‘인간’이 걸어야 하는 길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었다.  참 멋있는 사람, 참 아름다운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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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사이언스 : 그냥 시작하는 과학 - 보통 사람을 위한 감성 과학 카툰 아날로그 사이언스
윤진 지음, 이솔 그림, 이기진 감수 / 해나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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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느낌의 과학 책 한 권 읽었다. 무려 감성 과학 카툰! 
글은 남편이 쓰고, 그림은 아내가 그렸는데 그래서 그런가, 과학인데 딱딱하거나 차갑지 않고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보통 과학 책은 그냥 빠른 속도로 직진인데 이 책은 음 살짝살짝 여유 부리고 차 한 잔 마시며 과학 하는 것 같다. 이렇게도 과학을 할 수 있구나. +ㅁ+ 




아날로그 느낌 나나요? +ㅁ+
과학사 책은 아니고, 과학 교과서를 추린 책도 아니고, 요즘 핫한 양자역학에 관한 책도 아니다. (양자역학은 투비컨티뉴우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디서부터 시작할끄낭. 바로, 리처드 파인만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과학보다 에세이로 핫한 오빠님)

파인만은 '세상은 모두 oo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oo이란? 바로 원자다! 
이 책은 원자에서 출발해 원자의 대부분을 차기하고 있는 빈 공간과 원자와 분자의 운동, 그걸 발견해낸 사람, 원자를 이론적으로 밝혀낸 사람, 실험적으로 밝혀낸 사람 등 차곡차곡, 한 다리 한 다리씩 짚어간다. 

그리고 이 책에 제일 자주 등장하고 제일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은 바로 '아인슈타인'. 원자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확고히 밝힌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며, 빛과 시간, 공간 등 인간의 모든 고정관념을 1905년 한 해 동안 완전히, 모두 뒤바꾼 사람! 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제대로 일한 사람 중, 어쩌면 수천 년간 철학자들의 공로보다, 아인슈타인 한 사람의 공로가 더 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가볍게 이 세상과 이 세상을 구성하는 것들을 가볍게 이해해보자는 책이다. 그런데 다루는 내용이 내용이니 만큼 살짝 이해가 안 가거나 머리가 아파서 살짝 넘어가고픈 부분도 있었는데(인터넷 리뷰를 보니 막 쉽다는 평이 많아서... 나는 꼭 그렇진 않았는데. @ㅅ@ 제 머리가 나쁜가요?!) 어쨌든 교양 과학 서적은 취미로 꾸준히 읽고 있고, 지금까지 읽었던 다른 책들과 비교해 볼 때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사려 깊게 글 쓰고, 그림을 그린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책이다. 

과학 지식보다도, 따뜻함과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이 책을 다시 펼칠 것 같다. (벌써 재독 하긴 했지만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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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집 무너지는 거리 - 주택과잉사회 도시의 미래
노자와 치에 지음, 이연희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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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생각한다면, 미래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생각하는 것도 필수. 
그래서 읽어 보았다, 요 책!!!





뭔가 제목이 세기말적 분위기를 풍긴다. 책 디자인도 세기말적 느낌이 뿜뿜. 

일본은 급격한 초고령화에, 인구와 세대수는 줄고 있는데 주택은 엄청난 속도로 늘고 있단다. 주택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초고층 맨션 건설! 도쿄의 경우 2020년 올림픽 특수를 노리고, 선수촌 인근에 초고층 맨션이 쑥쑥 올라가고 있단다. 도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여러 대도시에서 초고층 맨션 짓기 붐이 불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고층 빌딩이나 고층 아파트가 별로 없다. 지진과 해일 등 잦은 천재지변 때문인데, 그래도 요 근래에는 일본에서도 초고층 건물을 많이 짓나 보다. 일본 사람들도 주거용 고층 건물의 쾌적함을 한 번 맛봤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파트에 살기 전엔 닭장 같은 아파트에 들어가 살기 싫다 했어도, 아파트에 한 번 살아본 후에는 아파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는 것처럼 일본 사람들도 그런 듯.

우리나라 많은 중산층이 아파트를 사서 아파트값이 오르면 팔고 그 차익으로 돈을 모아 아파트를 또 사고,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한 단, 한 단 오른 사람들이 많은데, 역시나 사람 심리는 나라를 막론하고 마찬가지인가(물론 거품 경제 때 세계 부동산을 쓸어 담던 사람들이 일본인 아닌가!). 일본 역시 도쿄 올림픽 특수로 한몫 챙기고 빠지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 책에 언급됐는데, 올림픽 선수촌 인근 초고층 맨션을 구입한 사람들 중 올림픽 때쯤 집값이 최고로 올랐을 때 팔 거라는 사람이 많단다. 또는 외국인에게 임대해서 수익을 얻으려는 사람도 있고. (지진 때문에 영구적으로 초고층 맨션에 살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왜 갑자기 일본에 초고층 맨션 건설 붐이 불었을까. 초고령화 진행, 인구수는 줄어들고 세대수까지 줄어드는 마당에!

일본에서 초고층 맨션 건설 붐이 일어난 이유는 위에 언급한 올림픽 특수도 있겠지만,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다. 글쓴이는 지방정부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 때문이라고 한다. 지역 주민, 지방 의원, 지방 정부가 전부 미래 세대를 위한 도시계획 보다, 근시안적으로 목표로 규제를 완화해서 꼭 화전식 농업 마냥 마구잡이로 택지를 넓히고 있다. 구시가지는 내팽개치고, 농지 등 원래 농사짓던 땅이나 공터에 새로운 집을 짓고 난개발을 반복한다. 새로 지은 집이 또 낡아져서 보수 비용이 많이 들면 구시가지를 재생하는 게 아니라, 또다시 택지를 만들고 또 새집을 짓는다. 그래서 계속 택지만 늘어나고 구시가지엔 빈집들이 늘어나 치안에 구멍이 생기고 황폐해진다. '인간들아, 이래가지고 뒷감당이 되겠느냐'라고 저자는 묻는다. 

우리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어서 참 공감도 하고, 저자와 함께 고민과 걱정도 하고 (난개발을 하는 행태를 욕도 하며 >ㅁ<) 읽었다. 사실 이건 일본과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거의 전 세계적인 문제인 듯. 특히나 2차 세계 대전에 영향을 많이 받고, 그때 베이비부머가 있었던 나라는 다 안고 있는 문제(일본, 유럽 등)이다. 우리는 한국전쟁 때문에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략 10년 뒤에 나타나는데 일본이나 미국, 유럽이 노후화된 구시가지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도시계획을 하는지 본받기도 하고 반면교사 삼기도 해야 한다. 

이 책은 화전식처럼 번지는 택지 난개발과 초고층 맨션의 난건설 문제를 짚고 그 해법을 제시한다. 해법은 7가지로 조금 추상적이긴 하지만 저자의 진정한 바람이 잘 녹아있다. 해법 7가지는, 음... 일단 책을 직접 읽어보시고 알아 보라는 의미로 비밀로 남겨둔다. ㅋㅋ 

저자가 진정 미래 세대를 위해 걱정하고, 지속 가능한 건강한 도시계획을 바라는 마음에서 쓴 책 같았다. 저자는 일본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라 건축학과 교수다. 그러니 근시안적인 시각이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고, 도시나 나라 전체를 유기체적으로 생각하고 파악하고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나라 집값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일본 사례를 읽어보려는 분들이 읽어도 좋은데 그보다는 우리나라 토지 정책, 도시계획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관심 있으신 분들께 추천한다. 안목을 키우고 싶은 분께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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