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좋은 날, 경복궁 - 경복궁에서 만난 비, 바람, 땅, 생명 그리고 환경 이야기
박강리 지음 / 해나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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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좋아서 읽은 책.  
이 책을 읽기 전에 저자 약력을 보니 10년 전에 한 권의 책을 쓰셨다. 제목이 낯이 익다. 10년 전에 읽었던 책이다.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기』. 제목처럼 책 내용이 좋았고 따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함께 살기’도 아니고, ‘함께 살아가기’다. 저자의 의지와 따뜻한 힘이 느껴지지 않나?! 저자가 지은 제목인지, 출판사 사람이 지은 제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기』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강령 뭐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은 아니고, 환경史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ex. 레이첼 카슨, 러브록 등)에 관한 책이었다. 이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지구의 모든 것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찬찬히 설명하는데, 저자의 가치관이나 저자가 세상만물을 유기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풀이해내려는 의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 책 『바람 좋은 날, 경복궁』은 10년 전 책과 같은 듯 다른 듯, 다른 듯 같은 책이었다. 저자의 약력을 읽기 전, 책 제목과 대충 책 내용만 훑어 봤을 때 경복궁 안내도서 같은 책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내 추측과 다른 책이었다.  

우선 10년 전 책과 비슷하게, 상당히 ‘유기적인 시각’으로 쓰였다.  예를 들어 경복궁 근정전 하나를 이야기해도 이 건물에 대해서만 쓰지 않았다. 우선 궁궐의 주 재료였던 소나무에 대해 말한다. 조선시대 때 소나무는 나무 중 가장 으뜸이고 최고의 나무였다. 그래서 으뜸 나무로, 조선 으뜸 집인 궁궐을 짓는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음은 근정전 앞마당에 깔린 박석 이야기다. 박석은 납작한 화강암으로 근정전 앞에 깔려 있다. 많은 신하들이 앉거나 서고 또 중요한 행사를 하던 곳이니 흙보다 돌바닥이어야 한다. 흙이나 잔디밭은 비가 오면 여러모로 불편하다. 여러명이 밟아도 불편하다. 경복궁은 북악산 산줄기가 자연스럽게 완만해지는 기울기를 그대로 두고 지어졌다고 한다. 이 박석이 깔린 근정전 앞도 마찬가지다. 비가오면 빗물이 자연스럽게 건물이나 마당 가장자리로 흐른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이용하면서 인간에게도 편리하고 쾌적하게 만들었다. 다음, 박석의 모양. 박석은 화강암으로 만든 얇은 돌판인데, 화강암은 아주 단단한 돌이다. 적당한 두께로 자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상들은 적당한 두께로 화강암을 잘랐다. 그런데 재밌게 두께는 나름 일정한데, 가장자리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 가장자리가 생긴그대로 자연스럽다. 중국이나 일본의 네모반듯한 돌이 아니다. 물론 일정한 크기와 모양으로 돌을 다듬는 기술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최대한 자연 미를 살려서 돌을 다듬었다. 우리 특유의 자연스러움을 사랑하는 취향이랄까, 저자는, 이 박석 사이사이에 틈이 있어, 그 틈에 흙이 있고 어디선가 날아온 씨가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고 한다. 정말 ‘자연스럽’고, ‘자연’스럽다. 근정전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과 실제하는 동물들,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와 나무로 지어진 궁궐을 화재로부터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조상들이 짜낸 지혜들이 적혀 있다. 예로 물을 담아 비상시 쓸 수 있도록 한 큼지막한 독인 ‘드므’와 방화부적, 경회루 연못에서 출토된 용(조상들은 용이 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자칫 불이 날 수 있으므로 땔나무가 아닌 숯으로 궁궐 난방을 한 이야기, 불과 쇠를 먹어치운다는 상상의 동물인 불가사리를 궁궐 내 불 쓰는 곳곳에 놔두었다는 이야기 등이 적혀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경복궁에 대해 명칭 이야기나 각 건물의 쓰임새, 역사적 사실 등에 집중하는 책이 아니다. 독자와 함께 경복궁을 가볍게 산책하는 느낌으로 경복궁 내 건물의 이런 저런 이야기와 그 건물을 이루는 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또 생태적으로 얽혀 있음을 말하고, 당시 조선시대 사람들의 자연관과 지금 우리들이 생각해 봐야 할 것들에 대해 차분한 어조로 쓰고 있다.  

제목이 『바람 좋은 날, 경복궁』이지만, 책에는 ‘비 오는 날,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저자도 비 오는 날 경복궁을 즐겨 찾으시는 듯한데, 나는 지금까지 경복궁에 여러 번 가긴 했지만 비 오는 날에 가본 적은 없다. 그런데 비 오는 날 경복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는 건 뭐지?! 실제로 그 속에 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차분해지면서 몸과 마음은 가벼워지고, 청아해지는 그런 느낌이 아닐까. 상상은 되지만 내 상상과 내 느낌이 맞는지 꼭 한 번 비 오는 날 경복궁에 가보고 싶다.  

유교의 나라 조선은, 중국 고전인 『주역』이 정말 중요했던 나라다. 『주역』은 단순히 점을 치는 책이 아니고, 자연과 운명을 유기적인 관점에서 한데 묶어 책이다(단순히 묶었다고 할 수 없지만... 음, 『주역』에 대해서는 진짜 말로 잘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조선 최고의 집이자 관공서(?!)인 ‘경복궁’이 ‘유기성’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게 이어지지 않은 게 없고,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않은 게 없다. 이 세상을 이루는 ‘자연’도 긴밀하게 모두 다 이어져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경복궁’은 그런 자연과 잘 담았고, 또 닮았다. 자연과 닮은 조선 최고의 집, 궁궐이다. 자연과 생태에 관심이 많은 저자가 왜 경복궁을 좋아하는지 여기에 답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저자의 10년 전의 책과 이 책은 다른 듯, 같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고 ‘바람 좋은 날’ 또 ‘비 오는 날’ 경복궁에 나들이 가면 좋을 것 같다. 재미있게도, 보물찾기와 비슷한 숙제(?)를 저자가 내놓았다. 겸사겸사. 

늘 같아 보이는 날도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듯, 경복궁도 늘 그대로인 듯 하면서도, 매번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우리가 아는 만큼, 우리가 보려고 하는 만큼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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