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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0
존 스튜어트 밀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평점 :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런던이 고향인 그. 그에게는 엄청난 교육적 열정을 갖고 있던 아버지가 있었다. 그래서 또래 친구와 단절된 채 3살 때부터 초특급 영재 교육을 받는다. 남자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한다. 10살도 되기 전에 플라톤의 저서를 원어로 읽었고, 라틴어 고전도 뗐다. 한가할 땐 자연과학 서적을 읽었고, 12살 때부터는 스콜라 철학을 공부했고 13살 무렵에는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의 정치경제학 책을 읽었다. 이후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내로라하는 인사들과 활발히 교류한다. 가령 생시몽이라든가, 장 밥티스트 세 같은 사람들 말이다. 남자는 17살에 동인도회사에 입사한다. 퇴사할 때까지 회사를 다니는 동시에 연구와 저술 활동을 했다.
이 남자의 마음이 너무나 섬세했던 걸까. 이상과 다른 현실에 실망했던 것인지 스무 살 무렵 우울증에 걸렸고, 자살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 정서적 안정을 되찾고, 사람들의 행복과 자유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내이자 친구였던 해리엇 테일러와 나눴던 지적 대화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집약해 글을 썼고, 그 글은 불완전하게나마 아내의 손길을 거치고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책이 완성되기 전에 아내가 죽었다). 그 남자가 쓴 책 이름은 『자유론』, 그 남자의 이름은 바로 존 스튜어트 밀이다.
공권력의 폭정을 막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배적인 여론이나 정서의 폭정도 막아야 한다.
(- 38쪽)
고전이 고전일 수 있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함 때문이다. 밀은 160년 전에 이 책을 썼지만,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그래서 그의 『자유론』은 고전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자유'는 사회로부터의 자유다. 산업혁명으로 영국 내 권력 구조 변화, 프랑스의 피비린내 나는 혁명을 보았기 때문일까, 밀은 다른 폭정들(독재 등등)과 마찬가지로 다수파의 폭정을 경계한다. 귀족이나 정치인들의 폭정만 위험한 게 아니라, 개개인들이 집단적으로 누군가를 억압하고, 압력을 가하는 것도 너무나 위험하다고.
온 인류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고, 오직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갖고 있다고 해서 강제력을 동원하여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은 권력을 장악한 한 사람이 강제력을 동원해서 인류 전체를 침묵시키는 것만큼이나 정당하지 못하다.
(- 59쪽)
밀은 한 개인의 의견과 표현을 침묵시키는 것은, 사회에 심각한 해악이라고 보았다.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극히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이다. 과거에는 옳은 걸로 받아들여졌지만, 나중에 그것이 틀렸다고 드러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천동설이 그 예다.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아주 대단한 저작, 『알마게스트』 때문에 유럽은 1,500년 동안 오독으로 인한 무지의 검은 장막에 덮여 있었다.
인간은 토론과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 단지 경험만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고, 반드시 토론이 있어야 한다. 토론은 경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 65쪽)
장래가 촉망되는 수많은 지성들이 겁을 집어먹고서, 사람들로부터 불경스럽다거나 비도덕적으로 여겨지게 될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을 염려해서, 자신만의 사고를 대담하고 활발하게 추구해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 세계가 입게 될 손실이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91쪽)
현재 우리에게도 유효한 말들이다. 우리 사회는 변하고 있고, 달라지는 성 역할과 사회 어느 곳에든 존재하는 갑과 을의 관계가 비틀리고 진동하고 있다. 서로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의 말에 마음을 열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혐오 발언이나, 도발적인 행동으로는 한계가 있다. 잠시 잠깐 주의를 끌 수 있지만, 원하는 미래를 끌어당겨 올 수는 없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생각의 자유가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의 말에 경청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요즘 넷플릭스의 <더 크라운>을 보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드라마다. 재임 기간 동안, 영국 사회는 정말 많이 변했고 변한 사회의 요구에 따라 영국 왕실은 '타협' 혹은 '딜'을 하면서 변화를 꾀했다. 영국에 고고히 흐르고, 밀이 『자유론』에서도 말하는 자유주의 문화 때문인 것 같기도 한데,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처음엔 불쾌하고 상대방의 생각에 끝까지 동의하지는 않는다 해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인다는 인상이 강했다. 극 중 엘리자베스 여왕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도 일단 그 사람을 부르던지, 아니면 본인이 찾아가든지 대화를 하고, 그 후에 타협하거나 딜을 한다. 일단은 대화다. 그리고 대화는 자유라는 토대 위에서 자기 생각을 펼칠 때 할 수 있다. 자유가 없는 대화와 토론은, 이미 대화와 토론이 아니다.
『자유론』에서 밀은 개인의 개성도 강조한다.
사람들마다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 고통을 느끼는 예민함의 정도, 그런 것들에 대해 반응하는 육체와 정신의 기제 같은 것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맞게 개개인이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면, 자신이 본래 누릴 수 있게 되어 있던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고, 각자의 본성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정신적이고 도덕적이며 미적인 최고의 발전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 (- 159쪽)
밀은 이 책에서 영국 사람들이 개성이 줄어들고 있다며, 모두가 비슷해지고 모두가 똑같아지고 있다며 통탄한다. 아마, 20세기 대중문화를 봤다면, 밀은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모두 너무나 다 똑같이 보여서... 똑같은 머리, 똑같은 옷, 똑같은 말투, 똑같은 생각들. 모두 본인이 원해서 선택했다고 하지만, 알게 모르게 대중의 압력이 우리 개개인을 누르고 있다.
밀의 생각처럼, 개성은 개인의 자유의 근간이자, 자유의 발현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떤지, 다른 사람의 개성을 잘 존중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밀의 『자유론』은 어려운 책이 아니다. 고전은 어렵지만, 의외로 어렵지 않은 고전도 많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행동하기가 너무 어렵다. 위에 발췌한 내용인데, 오로지 한 명만 다른 의견을 갖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쉬울까, 묵살하고 억압하는 것이 쉬울까. 여전히 후자가 쉬운 세상이다. 앞으로 우리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쉽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다만 확실한 것은 권력에 대한 자유, 사회(대중)에 대한 자유는 앞으로도 계속 중요한 문제이리라 본다. 끊임없이 갈등이 생기고, 끝없이 투쟁할 것이다. 그런 만큼, 밀의 『자유론』도 계속해서 고전으로 읽힐 것이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유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