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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매일 철학 - 일상의 무기가 되어줄 20가지 생각 도구들
황진규 지음 / 지식너머 / 2018년 6월
평점 :
법원의 언어, 재래시장의 언어, 유치원의 언어, 조폭의 언어가 별도로 존재한다. (...)
심지어 동일한 단어라도 삶의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용례로 사용될 수 있다. (- 282쪽)
철학 언어를 일상 언어로 쉽게
어떤 학문이든 그 학문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많이 다르다. 각 학문마다, 사용하는 고유 언어와 언어 체계, 규칙이 다 따로 있다. 그걸 익히지 않고서는 한글로 쓰인 것이라 해도 글이 내포하는 의미를 이해하긴 어렵다.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그 학문의 언어 규칙과 고유 뜻을 스스로 배우던가, 아니면 통역가를 통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번역해 들어야 한다. 여기서 통역가라 하면, 학교 선생님이나 교수님 혹은 대중을 위해 풀어쓴 교양서적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책은 철학 오타쿠, 황진규 분이 쓴 철학 교양서다. 이 책 속엔 스무 명의 철학자와 그들이 깊은 사유 끝에 내놓은 새로운 개념이 들어 있다. 철학이 우리 삶과 동떨어진 채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철학의 언어와 우리 일상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인데, 이 책은 우리 일상 언어와 철학 언어의 간극을 좁혀준다. 그리고 앎이 앎에 머물지 않고,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철학자들이 창안한 개념을 우리 일상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쉬운 일상 예시를 들어 설명해 준다.
그러니까 우리를 혼돈으로 빠트리고 괴롭히는 철학 개념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 풀이한 달끄나. 하지만 일반인을 위해 쉽게 쓴 책인 만큼 군데군데 비약적인 말로 좋게, 좋게 넘어가는 부분도 꽤 있다.

비약적인 부분이 a little bit-
가령, 두 번째로 다룬 파스칼의 '허영'이라는 개념.
파스칼은 모든 인간은 허영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냉소적인 진단을 내린다. (...) 허영은 실제 자신의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꾸미려는 것이다. (...) 왜? 그래야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36쪽)
저자는 파스칼의 '허영'이라는 개념을 요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사람들은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SNS에 '나 이렇게 잘 살아요'라는 사진을 올린다고. 그러면서 '인정투쟁(kampf un Anerkennung)'을 언급하는데,
우리에게 저주처럼 뿌리내린 허영은 언제나 불안과 허무, 외로움으로 내몰지만 오직 하나의 경우만은 예외다. 사랑하는 이! 그 사람 앞에서의 허영만큼은 예외다. 그 허영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마음껏 허영을 부리자.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 42쪽)
저자는 좋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이렇게 쓰고 글을 마무리했지만, 그런데 말입니다!
이 구절을 읽고 떠오른 건 '어린 왕자'의 장미였다. b612 소행성의 장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허영 뿜뿜. 어린 왕자는 장미의 아름다움에 홀려, 장미가 요구하는 건 뭐든지 다해주지만 결국 장미의 허영에 질리고, 지나친 요구에 지쳐서 우주여행을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어린 왕자가 장미를 버린 것이다. (에긍, 장미나 어린 왕자나 둘 다 너무 극단적이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허영을 벗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진정 사랑하기 위해, '진정한 관계'를 맺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안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려요. ;ㅅ;
개념 찬 개념어
더 이상 철학은 주어진 대로 개념을 받아들여 그것을 갈고닦아 윤을 내는 일로 자족할 수는 없다. 철학은 우선 개념들을 만들고, 창조하고 확고히 세워서 사람들이 그것들을 이용하도록 설득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 98쪽, 니체, 「즐거운 학문」에서 재인용)
철학은 개념을 다루는 개념 학문이다. 기존 개념에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학문. 근데 이 창조라는 것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아니고, 지금까지 있었으나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눈에 보이도록 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스무 명의 철학자와 스무 가지의 질문으로 시작하지만, 스무 명의 철학자들이 만들어 낸 개념을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으나 당최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철학자들의 개념들을 이 책 덕분이 많이 알게 됐다. 저자의 바람대로 그 개념들을 내 일상, 내 삶 속에 잘 적용시킬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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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판 1쇄라 오탈자도 좀 눈에 띄었고, 몇몇 챕터에서 논리적 비약이 조금 있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어려운 철학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해 준 부분은 참 좋았다. 필기도 많이 함!
# 내가 생각할 땐 최고의 자기 계발서는 '철학책'이 아닐까 싶다. 철학은 기존의 삶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감고 있던 눈을 뜨게 해준달까. 내용을 곱씹고 완전히 체득하면 더 좋고.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