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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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읽은 역사서가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이다. 처음 읽을 땐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어서 실소가 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속이 쓰리고, 가슴이 답답하다가 결국에는 눈물이 난다. 지금까지 3번 정도 읽은 것 같은데, 매번 읽을 때마다 이런 감정의 도돌임이다. 다 읽고 나선 가슴도, 머리도 먹먹해져서 한동안 역사책을 멀리하게 된다. 하지만 역사책을 덮어버리라고 서애 류성룡 선생님이 힘겹게 『징비록』을 쓰신 게 아니지. 읽고 또 읽어서 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경계하라고 쓰신 글이지. 그래도... 참 갑갑해서 우리 역사를 대면하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읽은 책이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1』이다. 그런데 나라가 망할 때는 다 비슷한지, 『징비록』의 내용이랑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징비록』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셨고 이후에도 조선의 역사는 이어지고 조선은 더욱 보수적이 되어 고구마 사회가 된다. 『조선왕조실록1』에서는 함경도 출신 무장 이성계가 고려의 역사를 완전히 끊어버린다. 그러곤 새 나라를 세우고 사이다 사회가 됐을까? 역사는 결코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여기서 또 등장하는 고구마 타임, 가슴이 턱턱 막히는 시간. 



역사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 역사를 다룬 책을 읽을 땐 그렇지 않은데, 유독 우리나라 역사를 읽을 땐 감정이입이 심하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설 즈음의 이야기를 읽을 때 나는 은연중에 누군가를 응원하고 있었다. 포은 정몽주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 고려를 응원하고, 권문세족의 횡포와 조준, 정도전이 민생을 위한 개혁을 주장할 땐 신진 세력을 응원했다. 고려나, 조선이나 모두 이 땅의 역사인데 글을 읽는 나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았다. 


역사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측은지심'이나 '수오지심'이 수시로 발동해서 온갖 잡생각이 떠오르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응원한다. 절개를 지킨 포은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철퇴를 맞아 죽을 땐 측은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고, 그래서 이방원은 미운데 그러면서도 후대 왕들(특히나 세종)을 위해 공신들이나 외척들의 세를 팍 죽인 이야기에선 이방원을 응원하고 있다(1권에는 이 이야기를 안 다루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얼마나 살랑거리던지. 이성계가 홍건적이나 왜구를 물리칠 땐 참 좋은데, 기존에 유지되어온 고려 왕실을 뒤흔들 땐 또 묘하게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역사는 감정이입을 할 수 있어 재미있는데, 감정이입을 할 수 있어 역사를 제대로 못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과도기가 지나면 좀 괜찮아지려나. 역사라는 게 대부분, 편이 갈라져 싸운 이야기들이라, 아마도 조선이 안정기로 접어든 이야기에서도 내 마음은 계속 살랑거릴 것 같긴 하다.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 역사 분야와 인터넷에서 설왕설래가 많은 것 같은데, 그 글들을 읽으니 나는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이 질문이 떠올랐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의 한글 번역본이 아니고, 실록을 해설한 책도 아니다. 저자가 조선사를 이야기로 풀어쓴 책으로 조선시대 재위했던 왕 순서대로 당시 중요했던 일들, 여러 사건과 인물을 재구성해 쓴 책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르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며, 횡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상황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1』을 읽고,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역사 중 모르는 것을 많이 알았다. (사실 나는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원나라 녹을 먹던 사람인지도 몰랐음) 지명에 어둡고, 인물도 교과서에 실린 몇 사람 말고는 깜깜한 수준이라 새롭게 알게 된 것이 꽤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오로지 사실만 담은 교과서 같은 책이 아니고(교과서도 오로지 '사실만' 담을 수는 없다고 본다), 저자의 생각이 많이 반영되었다.


나는 어떻게 역사를 바라봐야 하지? 저자가 쓴 입장에 따라 내 생각은 마구 살랑이는데... 로맹 가리의 자서전을 보면, 역사를 그의 엄마에게 배웠다고 하던데, 나도 로맹 가리 엄마처럼 누군가에게 우리 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어떻게 역사를 구성해 말해줄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다. 이 질문을 기준으로 역사책을 읽고, 재구성해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요즘, 역사에 '지리'라는 변수를 더해 읽는 것이 트렌드인 것 같은데 이런 것도 필요한 것 같고. 


처음으로 돌아가 서애 류성용 선생이 『징비록』을 생각해 보면, 서애 선생이 『징비록』을 지을 때 후손들은 역사를 비판적이며 능동적으로 읽길 바라셨을 것 같다. 무엇 하나 곧이곧대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며 참고하고 경계하라고. 책을 읽을 때도, 역사를 대할 때도 그런 자세를 견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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