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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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로운 것을 싫어한다. 바쁜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무슨 일이든 가급적 효율적으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싶다. 아마도 귀찮기 싫어서 그런 듯하다. 밥 먹는 것도 그렇다. 예전에는 블로그든, 책이든 이것저것 찾아서 해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싫고 귀찮다. 아니, 무엇보다 겁이 난다고 해야 하나. 사진을 보면 '맛깔난다', '먹어보고 싶다', '한 번 만들어봐야지', 싶어서 레시피를 보면 대부분 낯설다. 낯선 재료들, 우리 집엔 없는 재료들. '아, 그럼 사러 가야 하나', 싶은데 마트에서도 본 기억이 없다. 백화점에 가야 있으려나, 싶어 그냥 입만 쩝, 다시고 요리책을 덮었다. 낯선 재료를 보면 덜컥 겁이 나는 것이, 먼 곳에 가서 재료를 사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가격도 만만찮겠다 싶어 먼저 단념부터 하는 것이다. 이제는 인터넷으로든 마트에서든 낯선 재료들을 예전보다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예전에 한창 요리에 관심을 가질 때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책은, 신세계로 나도 그 세계에 가고 싶은데 거대한 장벽에 막혀 가지 못하는 그런 세계였다. 그래서 보기만 좋아하고 직접 음식을 만드는 건 엄두를 못 내다가 언젠가부터는 요리책도 안 보게 되었다. 그런데 요리책은 안 보지만, 음식에 대한 책, 맛에 대한 책, 食을 논하는 책은 계속 꾸준히 읽고 있다. 의, 식, 주. 내 삶에서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죽을 때까지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행하는 '食'이니까. 





여기 아프로 헤어를 한 이나가키 에미코 씨가 새로운 책을 냈다. 이나가키 에미코 씨로 말할 것 같으면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퇴사하신 분이다(...응?!)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에너지 절약을 하다가, 어쩌다 보니 전자레인지도, 가스레인지도, 냉장고까지 다 처분하신 분이기도 하다(응? 응?!). 이전 책 두 권에서도 먹는 것에 관해 약간 언급하긴 했지만 그건 주로 냉장고 없이 어떻게 음식을 보관하는지, 가스레인지나 전자레인지 없이 조리는 어떻게 하는지, 맛은 어떤지 간략하게 적었을 뿐 요리하고 먹고 마시는 일에 관해 자세하게 적어놓지 않았다. 그때 제대로 풀어 못한 '음식'과 '먹는 것'에 대한 썰을 이 책에 본격적으로 풀어 놓은 것. 


일단 추측 가능하겠지만, 이나가키 에미코 씨의 식탁은 소박하고 정갈하다. 

밥, 국, 채소절임!!

요 세 가지만 있으면 한 끼는 그냥 뚝딱!! 
이 책은 밥과 국(좁게 말하자면 된장국), 채소절임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책이다. 이 세 가지만 있어도 충분히 맛있고,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나 역시 동감하는 것이, 학생 때 살을 뺀답시고 저녁을 한동안 먹지 않았다. 처음 결심했을 때는 절대 흔들림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단단히 먹었던 마음도 슬며시 풀어지고, 배가 고픈 것이 참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남들에게 흔들리는 모습,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혼자 몰라 부엌에서 전기밥솥 뚜껑을 딸깍 열고 밥주걱으로 맨밥을 살짝 퍼먹었다. 맛은 전혀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허기진 배만 조금 채우자고. 그런데, 그런데... 

우아, 달다! 진짜 맛있어!!

그때 처음 알았다. 밥이 그렇게 달다는 것을. (feat. 이나가키 에미코 문투)

이나가키 에미코 씨와 내 밥상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얼추 비슷하다. 나는 밑반찬을 마련해 놓고, 쉽고 간단히 할 수 있는 국이나 찌개만 있으면 된다. 화려한 요리는 하지 않는다. 복잡한 요리도 하지 않는다. 최대한 간단하게, 최대한 그 맛을 느낄 수 있게. 반찬도 한 그릇에만 낸다. 뭔가 그럴싸한 요리를 먹고 싶으면 외식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밖에서 먹는 음식이 부담스럽다. 몇 입만 먹고 쉽게 질리고, 또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다 먹기가 힘들다. 남기는 것도 힘들고. (음식 버리는 거 싫어요!) 그래서 더 집 밥을 좋아하게 되었고, 웬만하면 도시락을 싸다닌다. 이나가키 에미코 씨처럼 매일이 똑같은 반찬, 똑같은 메뉴라고 해도. 매번 그 맛이 다르다! 도시락은 거의 항상 볶음밥인데 똑같은 재료를 넣어도 맛은 항상 다르고, 저녁으로 먹는 고구마도, 같이 산 고구마라도 매일 그 맛이 다르다. 어쩔 때는 이나가키 에미코 씨처럼 매일 먹는 똑같은 메뉴인데도 어서 먹고 싶어 애가 달을 때도 있다. 




화려함을 덜어내고, 최대한 심플하게, 그래서 그 음식이라는 것에 가까워지면 맛을 좀 더 민감하게 느끼고,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이나가키 에미코 씨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것도 말하자면 이런 거다. '화려할 필요 없어요,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되어요, 제철 음식으로 최대한 간단하게, 에너지는 적게 써서 만들어 먹어요, 간도 많이 할 필요 없어요, 조미료도 막 넣을 필요 없어요. 적당히 소금이나 된장, 간장으로 간만 하면 됩니다!'

화려한 음식, 공을 들인 음식, 세계요리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술의 경지와 문화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또 이런 요리를 만들고 싶으면 만들면 된다. 하지만 그런 성격이 아닌 사람이 억지로 화려하고 복잡한 요리를 따라 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 자취를 처음 하는 학생이나, 신혼 초, 혹은 아이들 밥을 챙겨줘야 하는 엄마들이 이런 중압감을 가지는 듯하다. 이런 중압감은 툭툭 털어내 버리고, '나는 내 성격에 맞는 요리를 하겠어, 그래도 충분히 맛있을 수 있어!'라고 결심하고 간단하게 요리하면, 보다 수월하고 가뿐하게 기쁘게 즐겁게 요리를 하고, 밥도 행복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먹고 마시는 일은, 곧 그 사람 그 자체다.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에 행복감을 느끼고 즐거운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서 그 삶을 온전히 살면 된다. 이 책은, 사람이 먹고 마시는 다양한 삶의 방식 중 하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이나가키 에미코 씨의 삶에 한 표. 
밥이 사실은 얼마나 달고 단지 아는 사람은 이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본다. 

그리고 세상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단맛'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이나가키 에미코 씨의 삶에 한 표를 던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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