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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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뇌과학자의 뇌졸중 경험담. 37세, 촉망받는 뇌과학자로서 뇌졸중 경험담이 생생하다. 그리고 뇌졸중 극복 과정과 그 과정에서 느낀 점, 깨달음이 더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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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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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살, 촉망받는 뇌과학자.


여느 아침처럼 출근하려고 일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눈 뒤쪽으로 찌르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느낀다. 예전부터 편두통을 앓아왔기 때문에 운동하면 나아질까 싶어 운동 기구에 오른다. 하지만 운동 기구 위에서 달리는 자신의 몸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바라보던 자신의 몸이 아니다. 자기 눈높이가 아니라, 전지적 시점, 저 우주에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는 것 같다.


운동하는 것보다 샤워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욕실로 간다. 그런데 욕실의 불빛이 너무 밝아 눈이 아프고, 자신의 몸을 때리는 샤워기 물의 느낌이 기묘하고 낯설다. 자신의 몸이 자기 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과 자신의 구분, 사물과 자신의 구분이 잘되지 않는다. 기묘하고 낯선 느낌, 자신에게 이상이 생겼음을 알아채고 욕실 밖으로 나온다. 이때 자신의 오른쪽 근육들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오른쪽 팔이 꼭 자신의 몸이 아닌 양 축 처져 자신의 몸뚱이를 때린다. 이때 깨닫는다. 뇌, 졸, 중.


그녀는 두려웠을까, 무서웠을까, 어땠을까.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와 이거 멋진데!’ 일시적으로 황홀한 마비 상태에 빠졌다. 내가 이렇게 복잡한 뇌의 작용을 예기치 않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실은 다 생리적 이유를 알고 있어서였다는 생각이 들자 묘하게 우쭐한 기분이 되었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자신의 뇌 기능을 연구하고 그것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 과학자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인간의 뇌가 현실을 인지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놀라운 통찰을 안겨주는 뇌졸중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9, 윌북 (30쪽)






이 책은 37살, 촉망받는 하버드대 뇌과학자가 겪은 뇌졸중 경험과 극복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경험과 더불어, '우리의 뇌는 무엇이고, 행복을 위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를 이 책에 담았다. 단순히 뇌졸중 경험을 담은 책이 아니다. 환자, 환자 가족에 대한 현실적 조언을 담은 책도 아니다.


뇌 과학자답게 최대한 사실적이고 논리적인 과학적 서술로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뇌과학자로서 가지고 있는 지식을 뇌졸중 경험과 접목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올바른 지식'을 전하고, 그들에게 '힘'을 보태주기 위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 머릿속의 좌뇌와 우뇌가 우리 몸의 명백히 다른 분야를 처리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뇌졸중 경험으로 좌뇌와 우뇌는 확실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저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좌뇌와 우뇌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이 이해를 바탕으로 누구나 '행복을 선택'할 수 있음을 알리고자 이 책을 쓴 것이다.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천적으로 뇌혈관 기형이었다. 오랜 세월 편두통에 시달렸는데, 추측하기로 오랜 세월 미량의 뇌출혈이 계속 있었고 이것이 편두통의 원인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뇌졸중을 일으킨 날, 소위 피떡이 터져 좌뇌의 세포가 피로 뒤덮였고, 이로 좌뇌가 관장하는 많은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 좌뇌가 이런 쇼크 상태에 빠지자, 그동안 잘 인지하지 못했던 우뇌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졌고 저자는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왜 이러지? 예전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나? 이런 기분이 든 적이 있었나? 마치 편두통 같아. 뇌 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집중하려고 애쓸수록 생각들이 휙휙 지나가 버렸다. 내게 필요한 대답과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서서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내 삶과 나를 단단히 묶어놓았던 끊임없는 뇌의 재잘거림이 잦아들자 그 자리에 평온한 행복감이 밀려와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두려움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가 이런 낯선 상황에 놀라 나를 공포 상태로 몰아가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좌뇌의 언어 중추가 침묵하고 삶의 기억들이 저편으로 멀어지면서 편안한 감정이 찾아왔다. 고차원적인 인지능력과 일상과 관련된 세세한 부분들이 기억에서 사라지자 내 의식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의 수준으로 도약한 것 같았다. 마치 우주와 ‘하나가 된’ 듯했다. 


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9, 윌북 (26-27쪽)


그녀의 정신은 열반의 경지에 들어갔지만, 신체 능력과 인지 기능은 갓난아기 수준으로 돌아갔다. 멍하고, 말뚱말뚱 쳐다보는 얼굴, 침을 흘리고 제대로 일어나 걷지도 앉지도 못한다. 몸은 37세, 여성이나 모든 기능이 갓난아기로 돌아간 것이다.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에 어머니가 도착한다. 어머니는 모든 걸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저자를 갓 태어난 아기처럼 보살피고 교육한다. 침대 위에서 몸을 흔들흔들거리며 몸 뒤집기 하는 갓난아기를 보고 응원하듯, 몸을 흔들흔들거리며 앉는데 애쓰는 갓난아기를 보고 응원하듯,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는 갓난아기를 보고 응원하듯 저자의 어머니는 놀라움과 기쁨으로 아기를 돌보는 산모처럼 저자를 돌본다. 불안해하지 않고, 불행해 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으며.


어머니의 지극하고 현명한 케어로 저자는 우뇌의 행복에만 머물지 않기로 한다. 어머니가 있는 세계, 충분히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길 바라며 고통스러움이 뒤따르는 좌뇌의 세상으로 조금씩 돌아오려고 애를 쓴다. 이 모든 것은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고, 응원하고,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어머니 덕분이었다.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어머니의 절대적인 믿음이 저 행복의 세계에서, 논리적이고 소통의 세계로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를 이끈 것이다.


놀라운 책이다. 뇌과학자가 겪은 뇌졸중도 놀랍지만 이를 극복한 그녀의 의지와 노력도 놀랍고, 단지 뇌졸중 극복에 머물지 않고 본인이 겪은 것을 과학자답게 최대한 논리적이면서도 사람들이 이해 가능토록 설명하려 애쓰는 것도 대단하다.


사실 이 책은 뇌졸중에 걸린 사람이 쓴 책치고 너무나 논리 정연하고, 생생하다. 이에 대해 그녀는 좌뇌에 출혈이 있었지만 우뇌는 멀쩡했었다고 설명한다. 우뇌가 당시 모든 걸 다 인지했고, 후에 뇌졸중에 차도가 있자 관련 전문가 자신이 겪은 것을 재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할 때 조금씩 과거가 달라지듯, 그녀의 설명도 완전한 것이 아닐 수 있겠지만 완전히 허구는 아니라 생각되며 거의 대부분 진실하다 여겨진다.


이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뇌졸중에 걸린 분, 뇌졸중을 앓고 있는 가족을 둔 분, 뇌에 관심이 있는 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데 관심 있는 분, 행복에 관심 있는 분 등등 각기 이 책을 다른 느낌으로, 다른 생각으로 읽을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딸의 재활을 돕는 어머니, 저자 스스로의 노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두고두고 기억해 나의 지침으로 삼고 싶다.


이하 인상 깊었던 구절들.


- 우리는 회복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히 구분했다. (90쪽)


- 나는 집중력을 발휘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완성한 후의 짜릿한 성취감 때문에 더 하고 싶었다. (93쪽)


- 읽는 법을 다시 배우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훨씬 힘들었다. (...) 읽는다는 개념 자체가 어려웠다. (95쪽)


- 읽기를 배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옆에서 지속적으로 동기를 부여해야 했다. 먼저 꼬불꼬불한 그림마다 각기 이름과 연관된 소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했다. 이어 꼬불꼬불한 그림들이 모여 특별한 소리의 조합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소리의 조합이 길게 연결되면 의미를 가진 하나의 소리, 즉 단어가 만들어졌다! 맙소사, 한번 생각해보라! 여러분이 이 책을 읽는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뇌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사소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96쪽)


- 주의의 부정적인 기운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가 어려웠다. (...) 바쁜 세상을 마주하는 것은 두렵고 겁이 나는 일이었다. (99쪽)


- '평화는 생각하기 나름이야. 평화를 이루려면 지배적인 왼쪽 뇌의 목소리를 잠재우기만 하면 돼.' (107쪽)


- 나의 뇌는 새로운 자극에 흥분했고 적절한 수면으로 균형을 맞춰주면 기적이라 할 만한 치유력을 보여주었다. (107쪽)


- 가령 시각의 경우, 한쪽 눈에 안대를 씌워 시각 피질 세포로 들어오는 자극을 막으면 이 세포들이 인접 세포들과 접촉하여 다른 할 일이 없는지 알아본다. 나는 주위 사람들이 뇌의 가소성을 믿고, 그것의 성장과 학습 및 회복의 능력을 믿어주기를 바랐다. 세포의 물리적 치유 과정에서 충분한 수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08쪽)


- 나의 경우 회복 과정에서 수면의 치유력이 정말로 중요했다. (109쪽)


- 주위 사람들의 격려가 필요했다. 내가 아직 가치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내겐 차근차근 실현시켜나가야 할 꿈이 있었다. (110쪽)


- 에너지가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을 아주 신중하게 선택해서 배분해야 했다. 나는 가장 절실히 되찾고 싶은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고 다른 일에는 기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111쪽)


- 도움을 받으며 매주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갔다. (114쪽)


- 성공적인 회복을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는 매일 내가 거둔 성취를 축하하며 내가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가에 대화의 초점을 맞췄다. (...) 내가 회복에 성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비결 중 하나는 회복 과정 중에 현 상황을 넘어서려고 의식적으로 계속 노력했다는 점이다. (115쪽)


- 내가 회복에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모든 과제를 더 작고 단순한 과정들로 나눌 줄 아는 능력 덕분이었다. (116쪽) 


- 그리고 회복하려는 내 시도에 응답해준 뇌에게 하루에도 수천 번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 나름이다. 나는 가급적이면 내 인생에 고마워하는 쪽을 택했다. (126쪽) 


- 지금은 닌텐도 '두뇌 훈련 게임'과 '말랑말랑 두뇌 교실'로 연습하고 있다. 뇌졸중 환자뿐만 아니라 마흔이 넘은 사람들도 이런 두뇌 훈련 도구를 활용하면 좋다. (127쪽)


- 몸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기분이 어떨지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127쪽) 


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9, 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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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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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벽돌 3권 격파! 매일 밤 눈알 빠지게 읽었다. 책 한 권, 한 권이 다 두툼하고 무거워 어디 들고 다닐 수 있어야지!! 게다가 『유라시아 견문』 3권은 1, 2권보다 3권은 더 두껍다. 매일 밤 씻고 전기매트 빵빵하게 틀어놓은 아늑한 이불 세상 속에서 책장을 넘겼다. 매일 밤 읽었다. 마치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천일야화'를 읽는 기분으로 유라시아의 여러 나라에 깃들어있는 과거와 지금 현재를 읽었다. 내 몸은 이불 속 아늑한 곳에 있으니, 책 속에 펼쳐지는 유라시아 격동의 서사시가 흥미롭고 재밌게 느껴졌다. 분명 이 재미는, 웃기는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20세기 유라시아 대륙 이곳저곳, 구석구석 피바람 불지 않은 곳이 없다. 구석이라서 더 잔인하고 잔혹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이 책이 역사 한 장면마다의 잔혹성에 집중하지 않고, 길고 넓은 역사의 흐름 그 줄기를 따라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니 어떤 유익함이랄까. 이런 데서 느껴지는 재미가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읊는 역사는, 우리에게 대부분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미지의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 다닐 때 세계사를 배웠고, 성인이 된 후에도 틈틈이 취미 삼아 세계사 관련 책을 꾸준히 읽어 왔는데 대부분 낯설고 신기하고 기이했다. 저자가 견문한 나라들, 분명히 내가 뻔히 보고 있는 세계 지도에 그려져 있는 나라들이지만, 미처 그 나라들에 대해선 잘 모른다. 우리가 포르투갈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우리가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었던 사라예보에 대해선 잘 알고 있는가(잘 모른다. 항상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이야기할 땐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보스니아 사라예보에 갔다가 세르비아 계 청년의 총에 죽어 전쟁이 발발했다'고만 할 뿐 그 이전과 그 이후의 '보스니아', '세르비아'에 대한 이야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헝가리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는, 유라시아 극동부지역은?!!




내가 아는 것은 세계사의 극히 일부 이야기고, 그것도 영미와 서유럽 사람들에 의해 작성된 세계사다. 딱 곰브리치가 새파랗게 젊었던 26살에 할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내며 썼던 재밌지만 어리숙한 『곰브리치 세계사』 수준일 것이다. 곰브리치가 쓴 세계사 책을 읽으며 많이 의아했는데, 책 제목은 '세계사'이지만 세계사라기보다는 '축의 이동 이야기'였다. 고대 그리스부터 이야기하기엔 인류가 탄생 직후부터 우주 문명 못지않게 발전했던 것 같으니 에둘러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이야기 짧게 하고 그다음 장구한 서유럽의 역사를 시작한다. 그리스와 로마의 위치가 모두 '서유럽'과 떨어진 곳에 위치함에도 귀결은 서유럽이다. 이외의 지역은 검은색으로 칠해진다. 지중해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웠던 그리스와 페니키아 이야기도 페니키아는 검은색이다. 엄연히 카르타고 등 북아프리카, 지중해 여러 섬에서 '오래전부터 살던' 사람들임에도, '세계사'에서 침입자, 이방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서술하며, 배제되어야 할 외부자로 묘사한다. 그 사람들에 대한 역사는 서술하지 않는다. 서유럽과 이어진 혹은 (당시 서유럽 지성인이 연결되고 싶은) 축만 있을 뿐 결코 온 세계를 다 담지 못하는데도, '세계사'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게 딱 서유럽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사이고, 우리도 이 정도의 세계사만 알고 있다. 아무리 이집트, 중동의 여러 대국, 제국들은 싸운 대상으로만 언급되어 있다. 세계사의 중심은 서유럽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자국 중심주의 시각을 지금의 서유럽인들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와 중국에 대한 이야기도 허울만 있을 뿐이고, 동유럽에 대한 이야기도 극히 적다.


그냥 내가 아무리 세계사 책을 읽어도, 세계사 상식이 협소하구나 싶었는데 이번에 『유라시아 견문』을 읽고 그 이유를 알았다. 그동안 내가 봤던 책들이 철저하게 동유럽,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등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랬기 때문에 세계사 책을 아무리 읽어도 내 지식은 넓어지거나 깊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유라시아 견문』을 읽고 조금 눈을 뜨게 되었다. 우리가 노는 물(?)이 얼마나 좁은지를. 『유라시아 견문』에 나오는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내가 몰랐던 이야기다. 아니, 관심이 없어 몰랐던 게 대부분. 나의 눈은 대체로 미국, 아니면 서유럽이다. 요즘은 휘게, 라곰, 팬츠드렁크 등 소확행 바람을 타고 북유럽에도 조금 시선을 돌린다(근데 이 북유럽 바람도 북유럽에서 직접 불어왔다기 보다, 일본을 거쳐 와서 관심을 갖게 됨).


『유라시아 견문』을 읽고 진짜 '세계사'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단연, 동남아시아와 인도에 대한 이야기가 탁월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 이야기는 1권과 2권이 수록되어 있는데 읽고 말 그대로 개안(開眼)한 느낌이었다. 왜 요즘 지성인들이 동남아와 인도를 주목하라고 하는지, 이 책을 읽고 깨우쳤다. 동남아와 인도는 부상할 수밖에 없겠구나. 단지, 불어나는 인구 때문만은 아니다. 흐름이, 이쪽으로 흘러간다. 그동안 인도나 동남아를 유럽의 식민국가로 여겨왔고, 이후 독재와 공산체제 때문에 우리가 무지하거나 무시했던 바 큰 것 같다.


이번 3권에서는 동유럽과 러시아를 완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특히 동유럽. 옛날 소련에 속해 있던 나라여서 그런지, 우린 동유럽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 그리고 우리도 곡절 많은 20세기를 지내오면서 나라는 두 동강나고, 그래서 하나의 프레임으로밖에 세상을 읽지 못하는데 이게 우리의 발목을 크게 잡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저자와 폴란드 사상가 '리샤르트 레구트코'와의 대화다. 대화보다 인터뷰에 가깝다. 1949년 공산체제 하의 폴란드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반체제 운동(반공)을 한다. 그러다 소련은 무너지고, 폴란드는 자유민주화의 길을 걷게 되고 EU에 가입한다. 현재 리샤르트 레구트코는 EU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공산체제에서 살다가 자유민주주의에서 사는 리샤르트 레구트코의 성찰이 깊이 있다. 단순히 공산주의나 자유민주주의를 비난하기보다 이분처럼 두 체제의 비슷한 점, 장점과 단점을 찾아 숙고하고 고쳐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이 분 주장처럼 분단국가에 사는 나도 느끼는 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쌍둥이처럼 너무 닮았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극동 지역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북극 항로 개척도 문제도 있고 우리에게도 지정학적으로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유라시아 견문』는 세계사 인식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다만, 저자의 '빠'가 좀 거슬린다. 1권에서는 중국빠, 2권에서는 이슬람빠, 3권에서는 러시아... 그것도 푸틴빠다. 대놓고 푸틴을 좋아한다고 한다. 특히 1권 읽을 때 충격이 컸다. 우리나라에서 듣도 보도 못한 친중(정확히 말해 친중보다 친중화)적 태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2권을 읽고, 3권이 되면 그나마 익숙해져서 괜찮다. 저자가 푸틴을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여유 있는 마음으로 '아, 좋아하시구나' 하며 가볍게 넘긴다.


내가 이 책을 소화하기로는, 저자가 서유럽이 장악하고 있는 지금이 비정상적 상태로 보며 옛날 이슬람, 인도, 중국이 강성했던 때를 '정상시대'로 보고 있다. 큰 충돌 없이 동과 서가 교류했고, 벵골만과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이 중국과 아프리카까지 이으며 교역했다고 보는 것이다. 충돌보다는 공존의 시기였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과연 그랬던가. 모두 공존하고 화합했던 행복한 시대였던가. 인류가 아프리카 초원에 발을 딛고 이동하기 시작한 이후로, 킬링필드가 만연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비정상의 시대, 정상의 시대 구분을 못하겠다. 희구하는 시대가 없다. 언제 어디서나 핍박받는 사람은 존재해 왔다. 태평성대였다던 고대 그리스 때도, 로마제국 때도 그랬으며, 중국이 잘 나가던 때도 그랬고, 이슬람이 잘 나가던 때도 그랬고 결코 정상이었던 시대가 있었나. 아라비아 상인들이 바닷길을 이용해 동과 서를 무력 없이 이었다는데, 국가 무력 없이 동과 서를 이은 건 맞지만, <처용가>만 보아도 아라비아 상인이 남의 여염집에 들어가 여성을 겁탈한 이야기가 있듯 그 시대를 아름답게만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게 과연 스케일의 문제일까. 나는 나라 이름, 정치/경제 체제, 지리에 따른 문화/풍습은 다를 수 있어도 인간 본성은 똑같다고 본다. 인간이 똑같은데, 그 인간들이 사는 시대를 정상의 시대와 비정상의 시대로 나눌 수 있을까.


다만, 저자가 말했던 '수신과 수양'엔 동의한다. 필히 지금 세상이 수신과 수양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보며. 그게 종교가 됐든, 철학이 됐든 간에 말이다(저자는 종교색이 짙은 나라를 견문하므로 철학보다 종교 이야기가 많이 언급한다). 저자는 1894년, '동학'을 말한다. 지금 우리와 너무나 멀어져 버린 단어, 그 정신. 저자의 주장에 솔깃하다.


역시, 사람을 설득하고 움직이는 건 역사의 재해석이다. 과연 누가 동학을 우리의 길로 만들어 줄까. 티비에 나오는 정치인들 얼굴을 떠올리면, 암울해진다.



덧> 3권, 바티칸 챕터에서,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 이야기를 하며 교황이 나고 자라고, 오랜 시간 활동했던 아르헨티나에 대해 소개한다. 유라시아 견문이지만, 우리에게 낯설고 먼 남아메리카 이야기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 그러고 보니 저자는 '교황빠'이기도 하다. 저자는 참 많은 사람과 많은 나라를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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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네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그림은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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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뭐라고 해야 할까. 감수성 짙은 운문집이라고 해야 할까. 한때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중2의 감성' 혹은 옛 시절 싸이월드 갬성이라고 해야 할까. 폄하나 놀림의 의미로 쓰는 게 아니라, 읽다 보면 그 시절 우리들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진지하게.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은' 님의 에세이집이다. 에세이집이라고 해도 산문이 아닌 운문 형식이라 시집 같다. 이 책에 실린 글과 그림은 7년 동안 작업한 글과 그림 중 인기 있었던 작품과 새로운 작품을 실었다고 한다. 이 책에 정확한 설명은 없지만 네이버 그라폴리오에 올리셨던 작품을 이 책에 실은 듯하다. 음, 그러고 보니 그라폴리오 감성도 느껴진다.


이 책에 실린 글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기보다 ''특정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이다. 가령 처음 사랑에 빠진 사람, 처음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고 가슴앓이 하는 사람, 꿈과 현실의 간극을 느끼고 있는 사람, 본인의 글과 그림이 남들에게 전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읽혀 힘든 사람 등. 나는 아쉽게도 이 시기를 다 지나 버린 사람이라 새롭게 공감되는 건 크게 없었다. 다만, 옛날 내가 떠올랐고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 내 상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별에 관해-

이 책에서 저자는 이별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데, 나는 언젠가부터 이별에 힘들지 않게 되었다. 아마 옛날 같았으면 몇 날 며칠, 몇 달 혹은 길게 몇 년을 마음 아파하며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눈물 자국과 함께 일기장에 남겼을 테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사실 한 달 전에 3년 정도 만난 사람과 헤어졌다. 이별 당일에 잠깐 눈물이 났었고 이후로 울지 않는다. 일기장에도 '헤어졌다'로 끝. 나이 탓일까. 마음속에 꽉 차 있던 감수성이 나이가 들어 다 증발해 버렸는 것인지도. 혹은 내가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걸까. 그건 아니다. 지금도,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그 사람이 제일 예쁜(남자지만 예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미소를 지었다. 지금도 그 미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그리고 그 사람 나름대로 나에게 잘 해주어 섭섭한 것도 화나는 것도 없다. 그냥 나랑은 좀 아니라서 헤어졌다. 안 좋아서 헤어진 게 아니라, 뭔가 미래를 계속 함께 하기엔 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헤어진 것. 어쩌면 나이를 먹을수록,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기 때문에 헤어짐에 크게 미련도 아쉬움도 슬픔도 없는 것 같다. 혹은 아직 내가 덜 외로운 사람이거나. 그리고 나는 본인만의 뜻을 세운 사람이 안락하고 사랑이 가득한 집을 떠나 혼자만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을 상당히 멋있게 생각하는데, 그 생각 때문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감성이 메말라 간다고 해야 할까,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고 해야 할까. 우선은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변하는 나 자신을 순순히 인정한다.


꿈에 관해-

사실 나는 꿈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행복했던, 기분 좋았던 순간이 언제였냐면 하루하기로 한 분량만큼 다 해냈을 때 온 세상을 다 얻은 만큼 기쁘고 자신만만했고, 행복하고 기분 좋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식대로 말하자면 완전한 '소확행'을 맛보았다. 지금도 자존감 떨어졌을 때, 하루에 해야 할 일보다 조금 더 보태 약간 무리다 싶은 분량만큼의 일을 잡고 해본다. 처음엔 싫고, 짜증 나고, 겁나고 때로는 그냥 마냥 하기 싫어서 미루기도 하는데 어느 순간 차분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行하다 보면 그날 잡았던 무리한 계획을 다 해낸다. 아마도 집중력 덕분에 시간을 아낀 것일 테다. 이런 날이면 정말로 득의양양하고 뭐든 다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친다. 이때가 나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고, 갈등 중인 사람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되고 그 사람도 나를 좋게 생각할 것 같은 막연하지만 단단한 자신감. 이런 순간을 몇 번 맛보고 나니까 꿈이라는 게 없어지고 단지 목표와 계획만 남았다. 그래서 꿈을 이뤄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냥 오늘 하루만 남아 있게 되었다. 사람들의 나에 대한 판단도 내가 이겨낼 수 있는 가벼운 것이 되어버린다.


​사랑이나 꿈, 기타 많은 것들로 스트레스받고 마음 아파하는 것들을 가볍게 생각하는 건 전혀 아니다. 그냥 각자의 인생마다 흐름이 있고 그 사람이 놓인 환경이나 시간, 나이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책을 읽고 느꼈다.


'예전에 나도 이랬지, 지금의 나는 이렇지.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앞으로의 예전과 지금의 나와 달리,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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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 망국의 신하에서 일본 경제의 전설이 되기까지
시부사와 에이이치 지음, 박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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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 근대화의 토대를 닦은 인물,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자서전이다. 입지전적의 인물. 일제강점기 우리는 그들의 경제와 금융, 산업 전반을 강제로 이식받았고, 광복 후에도 일본 경제를 롤모델 삼아 고도성장했으므로 일본 경제 근대화의 토대를 닦은 인물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읽었다.

읽고 난 소감은, 우리에게 직접적 해코지를 한 인물은 아니지만 넓게 보아서 우리나라를 일본의 병참기지화해 식민 수탈을 하게 한 사람으로 우리가 봤을 땐 '수탈의 아버지'라고 봐야 옳겠다 싶었다. 그러나 개인 인생만 따져 봤을 때 역시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난 인물'이었고 상황 판단이나 생각, 결단력은 본받을 바 많았다.

짧다고 생각하면 한순간도 아니고, 길다고 보면 천 년도 더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일생이다. 하지만 짧은지 긴지는 꼭 흐른 세월의 숫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은 일들이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또는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내 생애를 말하자면, 옛날 고향에 있을 때는 쟁기와 소쿠리를 짊어졌고, 장마에는 나비가 밀을 먹어버릴까 걱정했으며, 가뭄에는 묘판에 물이 부족한 것을 원망하며 살았다. 그러나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한탄하여, 겁 없게도 국가의 우환을 자신의 우환이라고 여겨 줄곧 살아왔던 초가집을 떠나 서쪽의 수도[교토]로 갔다.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21세기북스 (p. 14)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작은 농촌 마을에서 농사꾼으로 태어났다. 부지런하고 엄한 아버지가 가계를 일으켜 세웠고,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에는 글 공부하고, 좀 자라서는 농사와 상업을 배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아버지를 무척 존경하고 사랑했던 것 같다. 비록 뜻이 달라 각자의 삶을 살게 되지만, 어린 시절을 회고한 글을 보면 그가 아버지에게 배운 바 많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 혼나거나 잔소리 때문에 섭섭했던 일도 있었지만 커서 보니 아버지의 올바른 우려였다고 받아들인다.

그의 아버지가 정말로 멋진 분이었던 게,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 뜻을 도모하려 했을 때 그가 아버지와 밤새우며 토론했다는 일화다. 시부사와는 도쿠가와 막부 시대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농사꾼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아버지께 말씀드리니 아버지는 농사꾼으로 태어난 이상, 농사 지으며 신분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이윽고 아들의 뜻을 인정하고,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도록 자유인으로 풀어준다.


"이제 아무 말도 않겠다. 좋다,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니 맘대로 해라. 지금까지의 토론으로 시세도 잘 알게 되었다. 그런 것을 알고 나서도 그게 네 몸을 망칠 씨앗이 될지, 아니면 이름을 날릴 바탕이 될지 그건 난 모르겠다. 그래, 시세를 잘 알더라도 모르는 것처럼 나는 보리를 기르며 농민으로 세상을 보낼 거다. 설령 정부가 잘못되었더라도, 관리가 무도한 짓을 하더라도 그에 상관하지 않고 복종할 생각이다. 그런데 너는 그럴 수 없다고 하니 하는 수 없지. 오늘부터 너를 자유로운 몸으로 해 주겠다. 그렇다면 이제 종류가 다른 인간이니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겠다. 앞으로는 부자가 각각 자기 좋은 바에 따라 움직이는 게 오히려 깔끔할 것이다."고 하시며 마침내 14일 아침 내 몸의 자유를 허락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21세기북스 (p. 52)

"앞으로는 결코 네 행동에 이래라저래라 지시하지 않을 테니 행동에 잘 주의하여 어디까지나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한 조각 성의를 실천하여 인인 의사라고 칭해진다면 생사와 행불행에 상관없이 나는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훈계하신 것은 지금도 여전히 귓전에 있는 듯하여 얘기를 하다가도 곧잘 눈물이 난다.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21세기북스 (p. 53)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큰 인물로 키운 건 바로 그의 아버지 덕분이 아닐까. 떠날 때 이런 말씀을 해주고, 어떤 믿음을 주는 분이 아버지라면 세상 두려울 것 없을 것 같다. 우리와 역사적 관계를 떠나서 오로지 인간으로만 따졌을 때 그는 참 좋은 아버지를 두었고, 그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마음속 저 깊은 곳에 소중한 보물을 심어주셨다. 부럽네. 난 세상에 심드렁해서 질투도 부러움도 잘 느끼지 않지만, 좋은 아버지와 존경할 수 있는 아버지를 둔 사람만은 정말로 부럽다.

이 책에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파란만장했던 젊은 날들이 서술되어 있으나,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던 어린 시절의 일화가 제일 와닿았고 가슴 먹먹했다(위의 발췌문은 나 개인적으로 정말 감동했다).

고향을 떠난 시부사와는 거물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나 같이 뜻을 도모한 사람이 끝까지 반대해 결국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그는 처음엔 화가 났으나 곧이어 그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고 믿게 된다. 이후 방랑의 시간이 이어지고, 그를 좋게 본 사람의 추천을 받아 민부공자(미토의 군공 도쿠가와 요시아쓰의 아들, 도쿠가와 아키타케)를 모시고 프랑스 만국박람회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유럽 문물을 받아들인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관찰력이 뛰어나고, 설득력 있는 말을 잘해 중재도 잘하며 이재에도 밝았다. 아마 이런 능력으로 짧다면 짧았다고 할 수 있는 유럽 방문 때(사실 이 기간보다 더 많은 기간 동안 해외 유학해도 별것 배운 바 없이 돌아오는 사람도 많다) 많은 것을 빨아들이듯 서구 문명과 문화, 그들의 제도를 흡수해 온다.

이것이 일본 경제 근대화의 토대가 되었고, 우리 조선을 옥죈 근본 원인이 된다(식민 경제의 근간을 받아 온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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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 교수님의 번역이 상당히 좋다. 예스러우면서 리드미컬하게 흐르는 좋은 문장을 구사하신다. 다만, 일본 번역이므로 일본식 문장이 눈에 조금 띄는데 그래도 대부분 우리 식의 문장을 유려하게 쓰셨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시는 분인가 보다. 그런데 이 책은 일본 근대를 살았던 한 개인 자서전으로 지엽적인 고유명사(이름, 지명 등)나 일본의 독특한 제도 등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일본 근대 역사나, 일본 관련 기본 지식이 없는 분들은 읽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본 근대화에 관심 있으신 분, 일본 근대화의 격변기 때 한 개인의 인생을 길라잡이 삼아 그 시대를 읽고 싶은 분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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