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네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그림은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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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뭐라고 해야 할까. 감수성 짙은 운문집이라고 해야 할까. 한때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중2의 감성' 혹은 옛 시절 싸이월드 갬성이라고 해야 할까. 폄하나 놀림의 의미로 쓰는 게 아니라, 읽다 보면 그 시절 우리들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진지하게.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은' 님의 에세이집이다. 에세이집이라고 해도 산문이 아닌 운문 형식이라 시집 같다. 이 책에 실린 글과 그림은 7년 동안 작업한 글과 그림 중 인기 있었던 작품과 새로운 작품을 실었다고 한다. 이 책에 정확한 설명은 없지만 네이버 그라폴리오에 올리셨던 작품을 이 책에 실은 듯하다. 음, 그러고 보니 그라폴리오 감성도 느껴진다.


이 책에 실린 글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기보다 ''특정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이다. 가령 처음 사랑에 빠진 사람, 처음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고 가슴앓이 하는 사람, 꿈과 현실의 간극을 느끼고 있는 사람, 본인의 글과 그림이 남들에게 전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읽혀 힘든 사람 등. 나는 아쉽게도 이 시기를 다 지나 버린 사람이라 새롭게 공감되는 건 크게 없었다. 다만, 옛날 내가 떠올랐고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 내 상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별에 관해-

이 책에서 저자는 이별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데, 나는 언젠가부터 이별에 힘들지 않게 되었다. 아마 옛날 같았으면 몇 날 며칠, 몇 달 혹은 길게 몇 년을 마음 아파하며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눈물 자국과 함께 일기장에 남겼을 테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사실 한 달 전에 3년 정도 만난 사람과 헤어졌다. 이별 당일에 잠깐 눈물이 났었고 이후로 울지 않는다. 일기장에도 '헤어졌다'로 끝. 나이 탓일까. 마음속에 꽉 차 있던 감수성이 나이가 들어 다 증발해 버렸는 것인지도. 혹은 내가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걸까. 그건 아니다. 지금도,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그 사람이 제일 예쁜(남자지만 예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미소를 지었다. 지금도 그 미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그리고 그 사람 나름대로 나에게 잘 해주어 섭섭한 것도 화나는 것도 없다. 그냥 나랑은 좀 아니라서 헤어졌다. 안 좋아서 헤어진 게 아니라, 뭔가 미래를 계속 함께 하기엔 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헤어진 것. 어쩌면 나이를 먹을수록,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기 때문에 헤어짐에 크게 미련도 아쉬움도 슬픔도 없는 것 같다. 혹은 아직 내가 덜 외로운 사람이거나. 그리고 나는 본인만의 뜻을 세운 사람이 안락하고 사랑이 가득한 집을 떠나 혼자만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을 상당히 멋있게 생각하는데, 그 생각 때문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감성이 메말라 간다고 해야 할까,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고 해야 할까. 우선은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변하는 나 자신을 순순히 인정한다.


꿈에 관해-

사실 나는 꿈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행복했던, 기분 좋았던 순간이 언제였냐면 하루하기로 한 분량만큼 다 해냈을 때 온 세상을 다 얻은 만큼 기쁘고 자신만만했고, 행복하고 기분 좋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식대로 말하자면 완전한 '소확행'을 맛보았다. 지금도 자존감 떨어졌을 때, 하루에 해야 할 일보다 조금 더 보태 약간 무리다 싶은 분량만큼의 일을 잡고 해본다. 처음엔 싫고, 짜증 나고, 겁나고 때로는 그냥 마냥 하기 싫어서 미루기도 하는데 어느 순간 차분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行하다 보면 그날 잡았던 무리한 계획을 다 해낸다. 아마도 집중력 덕분에 시간을 아낀 것일 테다. 이런 날이면 정말로 득의양양하고 뭐든 다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친다. 이때가 나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고, 갈등 중인 사람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되고 그 사람도 나를 좋게 생각할 것 같은 막연하지만 단단한 자신감. 이런 순간을 몇 번 맛보고 나니까 꿈이라는 게 없어지고 단지 목표와 계획만 남았다. 그래서 꿈을 이뤄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냥 오늘 하루만 남아 있게 되었다. 사람들의 나에 대한 판단도 내가 이겨낼 수 있는 가벼운 것이 되어버린다.


​사랑이나 꿈, 기타 많은 것들로 스트레스받고 마음 아파하는 것들을 가볍게 생각하는 건 전혀 아니다. 그냥 각자의 인생마다 흐름이 있고 그 사람이 놓인 환경이나 시간, 나이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책을 읽고 느꼈다.


'예전에 나도 이랬지, 지금의 나는 이렇지.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앞으로의 예전과 지금의 나와 달리,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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