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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ㅣ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평점 :
연초부터 벽돌 3권 격파! 매일 밤 눈알 빠지게 읽었다. 책 한 권, 한 권이 다 두툼하고 무거워 어디 들고 다닐 수 있어야지!! 게다가 『유라시아 견문』 3권은 1, 2권보다 3권은 더 두껍다. 매일 밤 씻고 전기매트 빵빵하게 틀어놓은 아늑한 이불 세상 속에서 책장을 넘겼다. 매일 밤 읽었다. 마치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천일야화'를 읽는 기분으로 유라시아의 여러 나라에 깃들어있는 과거와 지금 현재를 읽었다. 내 몸은 이불 속 아늑한 곳에 있으니, 책 속에 펼쳐지는 유라시아 격동의 서사시가 흥미롭고 재밌게 느껴졌다. 분명 이 재미는, 웃기는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20세기 유라시아 대륙 이곳저곳, 구석구석 피바람 불지 않은 곳이 없다. 구석이라서 더 잔인하고 잔혹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이 책이 역사 한 장면마다의 잔혹성에 집중하지 않고, 길고 넓은 역사의 흐름 그 줄기를 따라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니 어떤 유익함이랄까. 이런 데서 느껴지는 재미가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읊는 역사는, 우리에게 대부분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미지의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 다닐 때 세계사를 배웠고, 성인이 된 후에도 틈틈이 취미 삼아 세계사 관련 책을 꾸준히 읽어 왔는데 대부분 낯설고 신기하고 기이했다. 저자가 견문한 나라들, 분명히 내가 뻔히 보고 있는 세계 지도에 그려져 있는 나라들이지만, 미처 그 나라들에 대해선 잘 모른다. 우리가 포르투갈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우리가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었던 사라예보에 대해선 잘 알고 있는가(잘 모른다. 항상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이야기할 땐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보스니아 사라예보에 갔다가 세르비아 계 청년의 총에 죽어 전쟁이 발발했다'고만 할 뿐 그 이전과 그 이후의 '보스니아', '세르비아'에 대한 이야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헝가리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는, 유라시아 극동부지역은?!!

내가 아는 것은 세계사의 극히 일부 이야기고, 그것도 영미와 서유럽 사람들에 의해 작성된 세계사다. 딱 곰브리치가 새파랗게 젊었던 26살에 할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내며 썼던 재밌지만 어리숙한 『곰브리치 세계사』 수준일 것이다. 곰브리치가 쓴 세계사 책을 읽으며 많이 의아했는데, 책 제목은 '세계사'이지만 세계사라기보다는 '축의 이동 이야기'였다. 고대 그리스부터 이야기하기엔 인류가 탄생 직후부터 우주 문명 못지않게 발전했던 것 같으니 에둘러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이야기 짧게 하고 그다음 장구한 서유럽의 역사를 시작한다. 그리스와 로마의 위치가 모두 '서유럽'과 떨어진 곳에 위치함에도 귀결은 서유럽이다. 이외의 지역은 검은색으로 칠해진다. 지중해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웠던 그리스와 페니키아 이야기도 페니키아는 검은색이다. 엄연히 카르타고 등 북아프리카, 지중해 여러 섬에서 '오래전부터 살던' 사람들임에도, '세계사'에서 침입자, 이방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서술하며, 배제되어야 할 외부자로 묘사한다. 그 사람들에 대한 역사는 서술하지 않는다. 서유럽과 이어진 혹은 (당시 서유럽 지성인이 연결되고 싶은) 축만 있을 뿐 결코 온 세계를 다 담지 못하는데도, '세계사'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게 딱 서유럽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사이고, 우리도 이 정도의 세계사만 알고 있다. 아무리 이집트, 중동의 여러 대국, 제국들은 싸운 대상으로만 언급되어 있다. 세계사의 중심은 서유럽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자국 중심주의 시각을 지금의 서유럽인들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와 중국에 대한 이야기도 허울만 있을 뿐이고, 동유럽에 대한 이야기도 극히 적다.
그냥 내가 아무리 세계사 책을 읽어도, 세계사 상식이 협소하구나 싶었는데 이번에 『유라시아 견문』을 읽고 그 이유를 알았다. 그동안 내가 봤던 책들이 철저하게 동유럽,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등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랬기 때문에 세계사 책을 아무리 읽어도 내 지식은 넓어지거나 깊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유라시아 견문』을 읽고 조금 눈을 뜨게 되었다. 우리가 노는 물(?)이 얼마나 좁은지를. 『유라시아 견문』에 나오는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내가 몰랐던 이야기다. 아니, 관심이 없어 몰랐던 게 대부분. 나의 눈은 대체로 미국, 아니면 서유럽이다. 요즘은 휘게, 라곰, 팬츠드렁크 등 소확행 바람을 타고 북유럽에도 조금 시선을 돌린다(근데 이 북유럽 바람도 북유럽에서 직접 불어왔다기 보다, 일본을 거쳐 와서 관심을 갖게 됨).
『유라시아 견문』을 읽고 진짜 '세계사'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단연, 동남아시아와 인도에 대한 이야기가 탁월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 이야기는 1권과 2권이 수록되어 있는데 읽고 말 그대로 개안(開眼)한 느낌이었다. 왜 요즘 지성인들이 동남아와 인도를 주목하라고 하는지, 이 책을 읽고 깨우쳤다. 동남아와 인도는 부상할 수밖에 없겠구나. 단지, 불어나는 인구 때문만은 아니다. 흐름이, 이쪽으로 흘러간다. 그동안 인도나 동남아를 유럽의 식민국가로 여겨왔고, 이후 독재와 공산체제 때문에 우리가 무지하거나 무시했던 바 큰 것 같다.
이번 3권에서는 동유럽과 러시아를 완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특히 동유럽. 옛날 소련에 속해 있던 나라여서 그런지, 우린 동유럽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 그리고 우리도 곡절 많은 20세기를 지내오면서 나라는 두 동강나고, 그래서 하나의 프레임으로밖에 세상을 읽지 못하는데 이게 우리의 발목을 크게 잡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저자와 폴란드 사상가 '리샤르트 레구트코'와의 대화다. 대화보다 인터뷰에 가깝다. 1949년 공산체제 하의 폴란드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반체제 운동(반공)을 한다. 그러다 소련은 무너지고, 폴란드는 자유민주화의 길을 걷게 되고 EU에 가입한다. 현재 리샤르트 레구트코는 EU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공산체제에서 살다가 자유민주주의에서 사는 리샤르트 레구트코의 성찰이 깊이 있다. 단순히 공산주의나 자유민주주의를 비난하기보다 이분처럼 두 체제의 비슷한 점, 장점과 단점을 찾아 숙고하고 고쳐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이 분 주장처럼 분단국가에 사는 나도 느끼는 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쌍둥이처럼 너무 닮았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극동 지역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북극 항로 개척도 문제도 있고 우리에게도 지정학적으로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유라시아 견문』는 세계사 인식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다만, 저자의 '빠'가 좀 거슬린다. 1권에서는 중국빠, 2권에서는 이슬람빠, 3권에서는 러시아... 그것도 푸틴빠다. 대놓고 푸틴을 좋아한다고 한다. 특히 1권 읽을 때 충격이 컸다. 우리나라에서 듣도 보도 못한 친중(정확히 말해 친중보다 친중화)적 태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2권을 읽고, 3권이 되면 그나마 익숙해져서 괜찮다. 저자가 푸틴을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여유 있는 마음으로 '아, 좋아하시구나' 하며 가볍게 넘긴다.
내가 이 책을 소화하기로는, 저자가 서유럽이 장악하고 있는 지금이 비정상적 상태로 보며 옛날 이슬람, 인도, 중국이 강성했던 때를 '정상시대'로 보고 있다. 큰 충돌 없이 동과 서가 교류했고, 벵골만과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이 중국과 아프리카까지 이으며 교역했다고 보는 것이다. 충돌보다는 공존의 시기였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과연 그랬던가. 모두 공존하고 화합했던 행복한 시대였던가. 인류가 아프리카 초원에 발을 딛고 이동하기 시작한 이후로, 킬링필드가 만연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비정상의 시대, 정상의 시대 구분을 못하겠다. 희구하는 시대가 없다. 언제 어디서나 핍박받는 사람은 존재해 왔다. 태평성대였다던 고대 그리스 때도, 로마제국 때도 그랬으며, 중국이 잘 나가던 때도 그랬고, 이슬람이 잘 나가던 때도 그랬고 결코 정상이었던 시대가 있었나. 아라비아 상인들이 바닷길을 이용해 동과 서를 무력 없이 이었다는데, 국가 무력 없이 동과 서를 이은 건 맞지만, <처용가>만 보아도 아라비아 상인이 남의 여염집에 들어가 여성을 겁탈한 이야기가 있듯 그 시대를 아름답게만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게 과연 스케일의 문제일까. 나는 나라 이름, 정치/경제 체제, 지리에 따른 문화/풍습은 다를 수 있어도 인간 본성은 똑같다고 본다. 인간이 똑같은데, 그 인간들이 사는 시대를 정상의 시대와 비정상의 시대로 나눌 수 있을까.
다만, 저자가 말했던 '수신과 수양'엔 동의한다. 필히 지금 세상이 수신과 수양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보며. 그게 종교가 됐든, 철학이 됐든 간에 말이다(저자는 종교색이 짙은 나라를 견문하므로 철학보다 종교 이야기가 많이 언급한다). 저자는 1894년, '동학'을 말한다. 지금 우리와 너무나 멀어져 버린 단어, 그 정신. 저자의 주장에 솔깃하다.
역시, 사람을 설득하고 움직이는 건 역사의 재해석이다. 과연 누가 동학을 우리의 길로 만들어 줄까. 티비에 나오는 정치인들 얼굴을 떠올리면, 암울해진다.
덧> 3권, 바티칸 챕터에서,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 이야기를 하며 교황이 나고 자라고, 오랜 시간 활동했던 아르헨티나에 대해 소개한다. 유라시아 견문이지만, 우리에게 낯설고 먼 남아메리카 이야기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 그러고 보니 저자는 '교황빠'이기도 하다. 저자는 참 많은 사람과 많은 나라를 좋아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