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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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완서 작가님의 짧은 소설(콩트)를 모은 『나의 아름다운 이웃』 


작가님이 70년 대에 쓰신 작품들인데, 어휘에서 시대에서 그 시절 그 느낌이 나지만, 지금 읽어도 재밌고 가슴에 와닿는 바 큽니다. 본디 이 책에 실린 콩트는 작가님이 등단하고 10년이 채 안 됐을 때 쓰신 글들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글들을 모아 1981년 『이민 가는 맷돌』이라는 제목을 달고 한데 묶여 책의 형태로 태어났습니다. 이후 절판되었다가 1991년 출판사 작가정신에서 현재의 제목과 같은 『나의 아름다운 이웃』으로 출판되었고, 세월이 흘러 이번에 개정판으로 세상에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러는 동안, 박완서 작가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뉴스로 박완서 작가님의 부고를 들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8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군요. 육신은 유한하나, 글은 무한할 테지요. 시간이 흐르고, 글을 쓴 작가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럼에도 남기신 글을 지금도 언제고 다시 읽을 수 있어 반갑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70년 대를 배경으로 한, 70년 대 소설. 세월이 읽히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손색 없이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이 읽힙니다.  글쎄, 지금의 어린이와 십 대, 이십 대는 어떨지 잘 모르겠네요. 저의 경우, 어린 시절에 1919년, 그 삼일운동이 있었던 해에 태어나신 친할머니와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살았고, 1970년을 다 털어내지 못하고 1970년 대의 중산층을 흠모하고 흉내 내던 1980년 대 2층 양옥집 동네에서 자랐던 지라 이 책 속에 실린 모든 글들이 잘 이해되고 좋았습니다. 젊은 남녀의 연애관, 결혼관, 어머니의 삶, 할머니의 삶, 그 시대 시대상. 이 책을 관통하는 모든 걸 저도 보고 느끼고 그 속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실린 콩트는 가벼운 글도 있고, 가벼운 겉피를 둘러쓰고 있지만 그 속에는 묵직한 감정선이 흐르는 글도 있습니다.  변해가는 세상을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소중한 뭔가를 영영 잃어버린 듯 애처로운 글도 있습니다. 눈물이 나는 글도 있었고요. 


눈물이 났던 글로는 <어머니>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올해 팔십이 된 노모를 사는 딸이, 점점 작아지고 기가 눌린 채 살아가는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간 이야기입니다. 딸은 절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절에서의 천태만상을 보고 기가 막혀 합니다. 가정 형편에 따라 제각각인 기간으로 자식 대학 합격을 비는 인등불을 비롯해, 칠성당에 이름을 새기면 화를 면하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 사람들이 앞다투어 많은 돈을 시주하는 모습, 아기 명줄이 짧을까 봐 명다리라고 하는 무명필을 사람 키보다도 높이 단 모습, 장수와 재수, 관운 등 5복을 비는 칠성당은 절에서 제일 인기가 많아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그곳에서 절하는 보살님의 얼굴은 시장 바닥에서도, 노름판에서도 본 적 없는 세속적이고 물욕으로 가득한 얼굴을 띠고 있습니다. 딸은 불쾌했습니다. 그러나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아름다운 한 분이 계십니다.


나의 이런 혼란과는 상관없이 어머니는 여러 신도들 사이에 끼어서 어떤 신도와도 닮지 않은 담담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예배도 하고 염불도 외우시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딴 신도들과 너무도 달라 보였다. 


나는 진흙탕 속에서 홀연히 피어난 연꽃을 지켜보듯이 이런 어머니를 맑은 기쁨과 감동으로 지켜봤다. (...) 나는 속이 뒤집히는 것처럼 부글댔으나 어머니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겸손하게 그러나 기품과 긍지를 조금도 잃지 않은 당당한 모습으로 꼭 주먹만 한 음식 뭉치를 받아 가지시는 것이었다. 


박완서, 『나의 아름다운 이웃』, 작가정신, 2019 (188쪽)


나는 S사가 절은 무슨 절이냐, 무당집이지 하면서 S사 경내에서 내가 본 칠성당이니 신중당이니 명다리니 하는 미신적인 걸 예로 들어가며 S사를 비방했다. 어머니는 다 들으시곤 고즈넉이 웃으시더니, "넌 잠깐 동안에 별의별 걸 다 봤구나. 나는 십 년을 넘어 다녔어도 부처님 한 분 우러르기도 벅찼는데"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씀에 홀연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 눈엔 미신만 보인 건 내 속에 미신하는 마음이, 잡스러운 상념만이 차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하고 같은 장소에 같은 동안 있었으면서도 어머니는 그동안을 부처님 마음을 생각하고 부처님 마음을 가지는 지복의 동안으로 만드셨는데 나는 그동안 추한 것만 골라 보고 그걸 미워하고 헐뜯는 시간으로 삼았던 것이다.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박완서, 『나의 아름다운 이웃』, 작가정신, 2019 (189쪽)


왜인지 이 부분을 읽을 때 울컥했습니다. 나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을 했고, 그때 그분의 얼굴이... 정말 온화하고 세상 것 아닌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콩트 속 화자의 어머니처럼 작은 체구에 어딘가 세상에 할 말 못 하고 사는 그런 분처럼 봐온 분이었는데, 어떤 순간 보통 사람과 다른 분이라는 걸 깨친 순간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눈물이 났는데, 이 글을 읽을 때도 역시나 눈물이 났습니다. 내 마음속 뭔가를 쿡쿡 쑤시는 느낌이 들어, 말로 표현은 잘 못하겠지만 어떤 특별한 울컥함이 있습니다.


책은 이런 내용만 실려 있지 않습니다. 가벼운 내용에서부터, 시대나 부조리한 세상에 일침을 놓는 글도 많습니다. 대체로 앞부분에 실린 콩트가 가볍고 재밌으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남녀의 연애, 결혼관을 실어놓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무거워집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예지랄까, 예측이 잘 맞아떨어진 부분도 있고요. 70년 대에 쓰인 소설이니 50년 앞을 내다보았다 할 수 있겠네요. 무릇 작가라면 시대를 꿰뚫어보고,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까지 내다봐야겠죠.


박완서 작가님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읽는 동안 정말 좋았습니다. 작품의 수준도 높고, 문장도 정말 좋습니다. 요즘 작가들의 글에서 보기 드문, 그 시절 혹은 박완서 작가님 특유의 리듬이 살아있습니다. 작가님의 리듬에 따라 제가 춤을 추며 글을 읽은 것 같은데요, 읽는 내내 정말 기뻤어요(물론 글에 따라 눈물도 났지만). 작가님의 문장이 정말 좋아서 이 책을 필사할까 합니다. 콩트라 길이도 짧으니, 필사하기 딱 좋을 것 같아요. 벌써 기대되고 두근두근 합니다.


박완서 작가님은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그럼에도 작가님의 글을 계속 읽을 수 있는 데에 감사하며 기쁩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장편도 좋고, 콩트는 콩트대로 정말 좋으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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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하는 세계사 - 12개 나라 여권이 포착한 결정적 순간들
이청훈 지음 / 웨일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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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2개 나라의 여권을 뽑아, 그 여권에 담긴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교양서적이다. 국제노선 항공기에 탑승한 사람은 누가 됐든 간에 필히 여권을 소지하므로 제목을 『비행하는 세계사』로 뽑은 것 같다. 하지만 내 느낌에 책 제목과 책 내용의 핀트가 조금 안 맞는 것 같다. '여권으로 보는/읽는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더 적절한 것 같은데.... 그렇지만 이런 제목은 너무 임팩트 없고, 시시한 제목이겠죠. >ㅁ< 어쨌든.

여권은 주권을 가진 각 나라들이 해외로 나가는 자국 국민에게 발급하는 '국제 신분증'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듯, '가장 사적인 증명서'이며,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언가가 담겨 있다.

여권 발급은 자국 정부가 하지만, 여권을 사용하는 곳은 자국이 아닌 타국이다. 민감한 개인 정보가 담겼고, 분실 시 외국에서 본인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으므로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여권을 주거나 보여줄 수 없다. 여권은 출입국사무소 직원이나 필요시 외국 공무원들만 볼 따름이지만, 여권은 각 나라의 얼굴이므로 각 정부는 고심에 고심을 해서 여권을 만든다.

그 나라만의 무언가를 담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연스레 그 나라만의 '역사와 문화', 그중에서 손꼽을 만한 것들만 선별해 담는다. 그래서 여권만 봐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일반인인 우리가 외국 사람의 여권을 보긴 힘듦. >ㅁ<)




이 책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총 12개 국가의 여권을 다루고 있다.

캐나다 / 미국 / 뉴질랜드 / 일본 / 한국 / 중국 / 영국 / 프랑스 / 독일 / 그리스 / 태국 / 인도

각 나라는 대부분 자국의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것을 뽑아 여권 삽입 이미지로 사용한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가 오래된 나라와 신생국들이 사용하는 이미지가 다르다는 것. 우리는 우리 문화의 정수이자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인 '훈민정음', 실학의 대표적 유물이라 할 수 있는 '수원 화성'의 이미지 등등이 여권에 실려 있다.

반면에 이민자의 나라이자, 신생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캐나다는 모두 각국 여권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대륙횡단철도' 완공 사진을 여권에 삽입했다. 미국이나 캐나다나 '대륙횡단철도' 완공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나 보다. 지금은 조금 심드렁한 감이 있지만, 19세기만 해도 철도를 연결할 때만 해도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많았고, 위험한 전투도 많이 있었다고 안다.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완공했으므로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테지. 또한 당시 철도 기술은, 발달하던 철강 기술과 관련 제반 기술의 정점이었으니 개척과 도전정신, 발달한 기술 등 여러모로 상징하는 바가 상당히 클 듯하다. '연결', '이어짐', '국토확장' 이미지도 빼놓을 수 없다.

신이여, 철길이 두 대양을 연결하듯이 우리나라의 결속이 영원하게 하소서.

이청훈, 『비행하는 세계사』, 웨일북, 2019 (48쪽 - 인용문 재인용)

특기할 만한 것은, 우주항공분야에서 최고의 선진 기술을 가진 나라답게 미국 여권에 '달, 지구, 보이저호'의 이미지가 여권에 삽입되어 있는 게 흥미롭다. 우주는 인류의 미래 지향성과 발달한 과학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미국이 뽐뽐- 여권에 한껏 뽐을 내는 것 같기도 하다.

뉴질랜드의 경우 원주민인 마오리족에게 중요했던 '고사리'를 여권의 표지 디자인으로 사용한 게 흥미로웠다.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고사리는, 잎 뒷면이 은빛을 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먼 길 떠나거나, 밤에 돌아와야 하는 마오리족 사람들이 길을 걸으며 고사리를 뒷면으로 꺾어 오는 길에 고사리 은빛을 표식으로 삼아 마을로 돌아오곤 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고사리는 상징성 있는 식물이라고 한다. 캐나다가 유니언 잭이 그려진 국기를 1965년에 자국 상징인 단풍잎이 그려진 국기로 변경했듯, 뉴질랜드도 고사리가 그려진 국기로 변경하고자 했으나, 국민투표에서 아쉽게 과반을 얻지 못해 바꾸지 못했다고 한다.


이청훈, 『비행하는 세계사』, 웨일북, 2019 (60쪽) 
국기 우측에 그려진 별 4개는, 남반구에서만 보이는 '남십자성'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 책이 많이 들어있다.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이 시작된 나라답게 과학기술, 변혁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여권에 많이 삽입(육분의, 증기기관, 지하철 노선 등등) 되었고, 프랑스의 경우 시민혁명의 상징인 '마리안',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의 문장인 '독수리'를 문장으로 채택하고(신성로마제국 국호가 언급될 때마다 늘 인용되는 '볼테르'의 말이 이 책에도 나와 웃겼다,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 198쪽). 힌두교인이 압도적인 나라, 인도에서 왜 불교를 대표하는 왕인 아소카왕의 상징을 국가 문장으로 채택하고 여권 표지에 사용하고 있는지(인도 초대 총리인 '네루'의 영향) 등등 흥미롭고 재미난 사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여권이라는 소재로, 12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어 유익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각 나라마다 여권 표지와 삽입 이미지들이 글의 흐름에 맞게 배치되었더라면 하는 점이다. 소개하고 있는 이미지가 없거나, 너무 단편적으로 이미지로 실려 좀 아쉬웠다. (저작권 문제 때문이려나)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1년에 수 차례 가고 즐기지만,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권을 만들어 본 일이 없다. 여권이 없으니 해외는 아예 가본 적 없다. 여행에 흥미 없고(국내 여행도 거의 안 다닌다...), 돈도 없어서 그런 것인데 어쨌든 그런 내가 여권으로 읽는 여러 나라의 여권 이야기가 재밌었다. 나는 책과 함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여행하는 게 좋다. 여권 없이 다닐 수 있잖아. 어쨌든 『비행하는 세계사』는 여권 있는 사람이나 나처럼 여권 없는 사람이나 누구나 읽어도 재밌을 책이다. 이 책처럼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각도로 다른 나라의 역사, 문화 톺아보기는 유익하다. 앞으로도 이런 책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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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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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철학 교양서를 꾸준히 읽기 때문에 선택한 책. 책을 받고 나니 표지를 보니 '비즈니스', '컨설턴트' 등등 어쩌고저쩌고라는 말이 있어서, 그냥 일반인이 쓴 취미 철학으로 공부하다가 쓴 책인가 의심에 의심을 했다. 철학 전공자가 아닌 그냥 취미나 필요에 의해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집필한 철학 교양서를 많이 읽었기 때문에 좀 색안경을 끼고 본 게 있었다. 그런데 처음에만 그랬다. 막상 보니,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내공이 심상치 않다. 정신이 번쩍 들고, 자세가 단정해진다. 저자의 약력을 살피니 역시나, 학사 전공이 철학이고 석사 전공이 미학이다. 최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저자의 약력은 책을 읽고 난 후에 보는데 이번엔 도리어 역(逆)으로 책 표지와 간략한 설명만 보고 편견으로 독서를 시작한 것이었다. 반성. 저자의 전공과 현재 직업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편이 아니라서 이런 실수를 범했네요. 저자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죄송합니다- >ㅁ<

​/

저자는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철학을 다루는 책이라, 저자의 업무나 직업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진 않지만 암튼 책에 적힌 몇몇 조각들과 그의 직업을 조합해 생각해보면 저자는 의뢰가 들어오면 회사 운영이랄지, 인사 관련 컨설팅이나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일을 주로 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는 게 의아했는데, 생각해 보니 최근 100년 정도만 빼면 우리 인류 역사상 군주(한 나라의 최고경영자│CEO)에게 조언을 하던 사람들 대부분 철학자, 학자가 아니었나 싶다. 동양 철학의 최고라 꼽을 수 있는 공자, 맹자만 해도 천하를 주유하며 자신을 써줄 군주를 찾아 헤맸다. 중국의 운영 골격을 만든 법가 사상도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준 주희도 역시 철학자다.

중국의 옛 사상가들을 생각해 보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가 왜 철학을 전공하고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철학은 삶의 무기가 되고, 지침이 되고, 길이 되며, 기쁨과 영광이 될 수 있겠구나 싶다. 내가 철학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에게 무기와 기쁨, 길이 돼 줄 수 있다는 건 안다.

그래, 제대로 읽어 보자.

 



책에는 정말 많은 철학자들이 다뤄진다. 짧게 짧게 소개되지만 글의 내용이 가볍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좋았던 건, 저자 본인이 공부한 것을 다른 책을 읽고 그냥 그대로 따라 쓰는 데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은 철학 교양서가 누군가 쓴 글을 조사나 어미만 달리하여 복사한 글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가 철학책이나 철학자들을 스스로 소화하고 쓴 게 느껴진다. 어떤 정성이랄지, 아니 이런 것보다 '읽을만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책들 중에는 읽을 만한 가치나 의미도 없는 책들이 많으니까. 글 쓰는 사람이, 본인이 쓰는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쓴 글은 대부분 그러하다. 어쨌든 이 책은 괜찮다. 좋다. 모든 챕터들이 독자들 모두에게 가닿지 않을 순 있겠지만, 그중에 여러 글, 혹은 최소 몇 개라도 울림이 있을 것이다.


재밌게 읽은 내용 몇 개 뽑으면 이렇다.

- 불확실한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 -

'행동 강화'에 관한 실험으로, 행위는 그 행위로 인한 대가가 반드시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보다도 대가가 불확실하게 주어질 때 더욱 효과적으로 강화되는 것을 밝히고 있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초당, 2019  (81쪽)

- 쥐에게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도구로 실험을 했는데 쥐는 버튼을 누르면 반드시 먹이가 나오는 도구보다,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는 도구에 더 집착을 하며 더 자주 버튼을 누른다고 한다. 확실한 것보다 불확실한 것에 끌리는 쥐. 쥐의 이런 행동을 토대로 도박 중독자들이 노동으로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보다, 잃을 수도 있고 벌 수도 있는 도박에 빠지는지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단다. 햐, 놀랍지 않은가.

- 포로가 된 미군에게 '공산주의에도 좋은 점은 있다'라는 간단한 메모를 적게 하고 그 포상으로 담배나 과자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을 주었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미군 포로는 착착 공산주의로 돌아섰다. (...) 실제로 받은 것은 담배와 과자 정도의 소소한 포상일 뿐이다. 이래서는 사상과 신조에 반하는 메모를 적었다는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지부조화 발생) 그리하여 이 신조를 공산주의는 적이긴 하지만 몇 가지 좋은 점도 있다고 수정함으로써 자신의 행위와 신조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조화의 강도를 낮추는 것이다. 

- 이 경우 대가가 고액이면 부조화는 작아진다. 싫은 일이라도 대가를 위해서 했을 뿐이라는 명분이 생겨서다. 하지만 대가가 작으면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어려워지므로 지루한 작업이었다는 인지를 바꾸려는 동기가 강해진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초당, 2019 (111-112쪽 / 113쪽)

-한국전쟁 때 포로가 된 미군을 중국 공산당이 세뇌시킨 이야기. 중국 공산당은 미군을 고문하거나, 괴롭히거나, 힘든 노동을 시키지 않고 단지 '공산주의에도 좋은 점은 있다'라는 짧은 글만 적으면 담배나 과자 같은 소소한 것을 주었다. 소소한 행동과 소소한 보상이지만 너무나 소소해서 '공산주의는 나쁘다'라는 기존의 생각과 인지부조화가 생겨 공산주의에 세뇌되고 누구보다 과격한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단다. 흠.... 흥미롭다.

-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한다.

- 브리지스(윌리엄 브리지스)의 말에 의하면 경력이나 인생의 전환기는 무언가가 시작되는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일이 끝나는 시기다. 거꾸로 말하면 무언가가 끝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의 '새로운 시작'에만 주목해 대체 무엇이 끝났는지, 무엇을 끝내야 하는지 '끝'에 관한 물음에 진지하게 맞서지 못한다. 수많은 조직의 혁신이 어중간한 상태에서 흐지부지 좌절되고 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초당, 2019 (149쪽 / 152쪽)

- 사회 변화도 마찬가지다. 헤이세이(1989-현재) 시대에 관한 평가는 앞으로 세상에 쏟아져 나오겠지만, 나는 '쇼와(1926-1989) 시대를 끝내지 못한 시대'라고 말할 것이다. 

- 이 현상을 등산에 비유해 보면 고도 경제 성장기 이래 계속 올라간 산 정상에 이르는 과정이 쇼와 시대, 이후 30년에 걸쳐 같은 산을 계속 내려오고 있는 과정이 헤이세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시대가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뀌었지만 같은 산에서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만 하는 상황을 문제 삼고 있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올라가고 내려가고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같은 산'으로 만족해도 좋은가 하는 점이다. (...) 이 시기(쇼와 시대)를 정말로 '끝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초당, 2019 (152쪽 / 153쪽)

시작보다, 시작 이전의 '끝'에 주목해야 한다는 글이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다. 마침 새해의 첫 달, 1월에 이 책을 읽어서 그랬던지 와닿는 게 좀 달랐다. 나 개인적으로 2018년까지의 나의 삶 몇몇 부분을 정리하고 끝내고 2019년에 새로 시작하려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읽고, '과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여러 번 나의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을 끝내고 새로 시작하려고 노력했던 적이 많았는데, 잘 됐던 것도 있고 잘 안된 것고 있었다. 잘 안된 것들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이전의 나의 삶, 나의 태도를 제대로 끝내지 않고 섣부르기 '자, 새 출발 하자'라고만 결심하고 어설프게 짐직 새로운 걸 시작하지 않았던가 싶다. 그리하여, 새로 시작했던 것도 흐지부지 시도한 듯, 시도하지 않은 듯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시작에 앞서 먼저 끝을 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또 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본다. 현재 우리가 일본과 같다. 과거, 밝은 미래만 생각하면 됐던 시기가 있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됐던 시기가 있었다. 몇 번 어려운 고비를 맞이했지만 우리 사회는 용케도 극복했다. 한강의 기적! IMF 극복의 눈물 신화! 등등....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완전히 다른 시대가 도래했다. 그때는 힘든 일이 닥쳐도 일본이든 유럽이든 미국이든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를 따라 하면 됐다. 그 당시 카피 제품이 얼마나 넘쳐났는지. 하지만 지금은 카피할 게 거의 없다. 우린 우리나라가 경제 규모나 경제 체질이 달라 여전히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하는 '중진국'으로 느껴지지만 기술력, 사회 제반 산업을 이제 어느 나라를 보고 따라 할 수준은 지났다. 완전히 달라진 존재가 되어 가치를 스스로 창출해 내고, 새로운 물건, 새로운 서비스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야 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경제 발전을 이룩한 대로 여전히 정부가 나서서 이끌어 가려고 하고, 기업이 국민들도 정부의 규제엔 투덜거려도 항상 나라에 의존하며, 발전 지침을 제시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언제까지?!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뭔가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우리는 옛 시대를 끝내지 못하고 부여잡은 채 시간의 흐름에 떠밀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4차 산업혁명', '새로운 세상, 새로운 원동력' 등등 말은 많아도 지금까지의 발전 시대를 제대로 회고, 정리하지 않으면 많은 선진국들이 그러했듯 우리도 고꾸라지거나 곤두박질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지금도 여전히 선진국이긴 하지만, 옛 영광에 비해 지금은 초라한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프랑스를 보고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고 본다. 왜 현재 이 나라들에 극우정당, 극우주의자들이 판을 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할 일. 화려했던 과거를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막연하게 그때의 그 시절이 지금도 계속되길 바라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 과정 속에 역시 미국이 있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도 이런 흐름으로 나온 것이다. 우리도 예외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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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발췌한 내용, 나의 생각들만 봐도 좀 이 책 잘 읽은 것 같다. 아니, 참 잘 읽었다.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는 사람이 쓴, 짧고 간결하며 쉬운 철학 교양서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사람에 따라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각기 다르게 와닿겠지만, 지금 내가 하는 생각과 고민들에 여러모로 유익한 화두를 던져 주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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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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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힘이 쭉 빠졌다. 진이 빠졌다고 해야 할지, 혼이 나갔다고 해야 할지. 몰입감이 높아 화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된다. 책이 두꺼워 속독으로 빨리 읽으려던 계획은 몇 줄 읽고 깨졌고, 눈에 남은 발자국 따라 걷듯 600쪽이 넘는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씹으며 읽었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을 때 내 기운이 다 소진됐던 것이리라.

『우리와 당신들』. 이 책은 『오베라는 남자』로 유명한 프레드릭 배크만이 썼고, 그의 전작 『베어타운』의 후속편 혹은 上권, 下권 중 下권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등장인물 그대로, 배경도 그대로, 사건 사고도 그대로. 모든 게 『베어타운』의 뒷이야기지만, 『베어타운』과 느낌이 많이 다르다.

내가 『베어타운』을 읽으면서 설렜던 장면이 있었나, 캐릭터 중 누군가를 응원했던 적이 있나? 눈물을 흘린 장면은 있었나? 어쩌면 눈물은 흘렸을 수 있다. 마야의 이야기나, 벤이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고 그랬기 때문에 울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 속 어느 캐릭터도 응원한 적 없고, 설렜던 부분은 더더욱 없었다. 『베어타운』을 읽을 때 그 당시는 잘 모르겠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불편한 마음, 불쾌한 마음이 훨씬 컸다.

물론 『베어타운』에서 저자가 제기한 문제들, 사람들의 행동, 말 등 많은 부분에서 저자의 관찰력이 돋보여 좋았고, 생소한 아이스하키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 그곳이나 이곳이나 사람들은 똑같다는 걸 알 수 있어 유익했다. 그래도 몇몇 부분에서 아쉬웠고, 몇몇 설정에서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와 당신은』,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며 셀렜고, 꼭 스포츠 응원하는 것처럼 몇 몇 캐릭터를 응원했다. 소설과 뚝 떨어진 채 지켜보기만 하는 독자가 아니라 소설 속 그 장소, 그곳에 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

『우리와 당신들』의 전편이라 할 수 있는 『베어타운』의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빽빽한 숲으로 둘러싸인 베어타운, 한때 번성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이 가망 없는 고향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대도시로 떠나간 곳이다. 활기 없고, 쇠락한 일만 남은 것 같은 베어타운... 그곳 사람들이 유일하게 희망을 걸고, 그들의 모든 것을 그러모아 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이 있다. 곧 무너질 것 같은, 산산히 조각나 버릴 것 같은 베어타운을 묶는 것, 그것은 '아이스하키'다. 전국에서 딱히 부각받지 못하는 작은 도시의 아이스하키 팀이지만, 라이벌인 이웃 마을, 헤드와는 철천지원수이며 두 아이스하키 팀의 승패에 따라 폭행, 패싸움, 방화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곳이다. 그들에겐 아이스하키가 최고이며, 전부다. 그들이 부여잡고 있는 마지막 희망이자, 사랑, 집착.

이 마을에 하키 천재가 자란다. 소년은 사람들의 기대대로 잘 자라주었고 베어타운의 희망이 된다. 그 아이가 전국 규모의 경기에서 대활약을 한다면, 그래서 승리한다면 베어타운에 아이스하키 관련 어마어마한 예산이 배정될 것이고, 그 돈으로 낡고 볼품없는 인프라가 새롭게 구축되고,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건물이 건설될 것이며, 아이스하키 교육의 메카 그래서 전국에서 몰려든 아이스하키 꿈나무들로 넘쳐 활기차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일자리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경기가 있기 전, 하키 천재는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단장의 딸, 마야를 성폭행했고 그 사실을 안 단장은 선수들이 버스를 타고 원정 경기를 떠나기 직전에 신고해 하키 천재를 경찰이 연행하도록 한다. 하키 천재가 빠진, 베어타운 청소년 팀, 나머지 팀원들이 모두 최선을 다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패하고 만다.

우승이 날아가 버리자 희망이 꺾여 분노한 마을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는다. 그것은 성폭행을 당한 '마야'다. 사람들은 하키 천재보다 마야를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욕하고, 공격하며 갖은 괴롭힘을 가한다.

이것이 『우리와 당신들』의 전작, 『베어타운』의 주된 줄거리다. 결말은, 성폭행 피해자 마야가 친구 아나에게 총기 사용법을 익히고 총 쏘는 것을 연습한다. 그리고 성폭행 가해자이지만 '베어타운'의 모든 사람들의 두둔과 암묵적 용인으로 별일 없이 지내는 천재 소년에게 마야는 복수를 한다. 마야는 하키 천재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죽이지 않는다. 천재 소년은 자기 앞에 겨눠진 총 앞에서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얼마 뒤 부모님과 '베어타운'을 떠난다.



이것으로 마야는 복수를 제대로 한 것일까. 속이 시원할까. 상처받은 자기 몸과 마음이 다 아물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을 사람들, 학생들의 괴롭힘은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야의 기억 속, 마음속에서 끝없이 성폭행을 당할 때의 그 순간이 반복되어 지옥 속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마야는 절친인 아나와 함께 하루를 견뎌낸다.

사실 『베어타운』은 내가 읽기에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한 뭔가가 있었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의 내레이션도 어딘지 낯설고 끝까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물론 흥미롭게 읽었고, 아이스하키란 스포츠가 매력적이고, 저자가 갖은 사람들을 묘사를 날카롭게 해 엄청나게 많은 띠지를 책에 빽빽하게 붙이고는 메모에 메모를 했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마야처럼 여성이고, 무섭고 두렵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뉴스에서 누군가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을 접하면 그 사람을 동정하고, 어떨 때는 직접 물질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주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게 만들고 그래서 그 당혹스러움에 짜증과 화가 날 때가 있다. 『베어타운』의 몇몇 설정들, 마야 주위 사람들의 반응, 사건 전개,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듯한 내레이션 등등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뭔가를 아주 가는 바늘 끝으로 살짝살짝 내 손가락을 건드리다가 어느 순간 세게 찌르고 빼는 듯한 느낌을 줬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눈물이 찔끔 나는 분노, 불편.

그리고 저자가 베어타운의 몇몇 존재들을 자세한 설명 없이 너무 신비스럽게만 묘사하여, 부아가 살짝 치민 부분도 있었다. (왜 자꾸 말할 듯 말 듯 , 끝까지 말 안 하냔 말이냐! - 검은 재킷을 입은 사람들)




하지만 『우리와 당신들』은 『베어타운』에서 느낀, 불편한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여전히 전작처럼 보여줄 듯 말 듯 한 부분이 있지만, 곧 정체가 드러나고 사건에 연계된 사람들의 됨됨이, 각자의 사연을 수긍이 되도록 자세히 들려준다.

세상에 전적으로 나쁘기만 한 사람은 없다.

세상에 전적으로 좋기만 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픔, 상처를 반복해 묘사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하며 자책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이 대폭 줄어들었다. 마야의 동생인 레오가 누나가 겪은 일에 대한 복수의 일환으로 도발이나 폭행 등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데 차라리 자책하며 가만히 앉은 것보다 위험하더라도 레오처럼 움직이고, 끝장을 볼려는 태도는 어떤 카타르시스, 혹은 감정이입이 되었다. 또 이 작은 열두 살짜리 소년이 무슨 생각 할까, 곧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사고를 칠까 궁금해 계속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베어타운 아이스하키단의 훌리건이라 할 수 있는 '그 일당', '검은 재킷을 입은 사람'들의 존재도 수면 위로 드러나 뭔가 깔끔히, 말끔히 정리되는 게 있다. 그들도 대화, 혹은 커뮤니케이션 방식만 제대로 알면 충분히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의리가 있었는데 이 '의리'에는 뭔가 사람을 동조케 하는 어떤 힘이 있다. 이 힘은 '이 사람들이라면 믿을 수 있겠어'라는 만고 저자가 상상으로 만든 허상의 캐릭터에게 내 감정을 이입하고 그들을 응원을 했다. 부당한 일, 부당한 폭행이 벌어지면 그들이 나타나 주길 바라며.

그리고 베어타운과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팀이 쫄딱 망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지속할 수 있는 데에 '리샤르드 테오'라는 지역 의원 캐릭터가 큰 역할을 하는데 이 캐릭터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자, 남을 이용하고 등 처먹는 그런 캐릭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개 중간중간, 고구마 먹다 막힌 구석을 사이다로 시원하게 뚫어주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준다.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아이스하키 팀에게 지원금을 턱하니 배정한다거나 어둠의 경로로 다양한 수를 쓰는 것도 나는 사실 좋았다. 분명 그가 벌인 지탄받을 요소, 아첨, 거짓말 등은 정당하지 못하고 얍삽한 행동들인데도 소설을 읽으면 그게 용인이 되고, 어떤 쾌감을 독자에게 제공하다. 전형적인 캐릭터지만 프레드릭 배크만이 개성있게 캐릭터를 잘 만들었다고 본다.

또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인 '엘리사베트 사켈'.... 베어타운 하키팀에 새로 부임한 코치로 능력있다. 하지만 상당히 독특하고 남들과 감정 교감 불가하며, 생각하는 것도 희한해 주위 사람을 난감하게 만들지만 그래서 상당히 재밌는 캐릭터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존재해야 한다며 즐겁게 읽었다. 풀리지 않거나 아주 복잡하게 느껴지는 문제는 종종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열쇠가 딱 들어맞을 수 있다.

살아가면서 진심으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몇 번이나 될까? 

거의 무의미한 무언가를 전혀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기회는 몇 번이나 주어질까?

프레드릭 배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책방, 2019 (492쪽)

어쩌면 이 소설은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베어타운, 헤드 마을 사람들의 아이스하키에 대한 애정, 부부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게 이어진 선수들 혹은 어떤 일당들의 형제애, 투박하지만 서로 보듬고 든든한 존재가 되어 주는 사이들... 어쩌면 『우리와 당신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와 당신들』은 불쾌한 것도, 불편한 것도 없다. 자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오해받는 사람들(가령 티무나 비다르),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괴롭히며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사람들(빌리암)이 이 책에는 없다. 그들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들도 누군가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신뢰를 나누는 사람임을 보여주며, 감정적으로 깨지기 쉬운 면도 있음을 드러낸다. 모든 캐릭터에게 정과 사랑을 느끼며 책을 읽을 수 있다. 그 캐릭터가 겁이 많든,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폭행을 저지르고 살인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든.

이 소설에서도 언급되지만 공포물을 볼 때 제일 무서운 부분은, 공포의 대상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바로 직전이다.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 두려워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도 한 면만 봤을 때, 베일에 가려져 있는 모습만 봤을 때 우리들의 편견이 발동하여 오해하고, 함부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그런 줄 몰랐어요, 단지 잘 몰라서 오해했을 뿐이에요'라고 순진한 듯, 당황한 듯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어쨌든 누구나 그 사람의 다른 면, 따뜻한 면, 어린 시절 어떻게 자랐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살았는지 그것만 알아도 오해나 함부로 판단하고 단정짓는 일은 많이 줄어 들 것이다.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의 시간은 나만의 흐름대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간과 흐름에 말려 그 사람에게 맞춰진다. 보통 잡생각이라고 말하는 ‘자의식’도 조용해진다. 시공간의 흐름이 평상시와 다른 느낌. .. 좋은 책이나 재밌는 책을 읽을 때도 나의 시간과 공간은 평상시와 다르다. 나의 시공간은 책의 흐름, 작가가 의도한 흐름에 맞춰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사라졌고 내 시간은 책의 흐름에 맞춰졌으며, 나의 공간은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움직였다.
뭐, 빙빙,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재밌었다’라고 4음절로 짧고 간단하게 표현 가능하다.

원래 속독으로 빨리 읽으려던 책인데, 너무나 재밌게 잘 읽었고 이야기 전개나 캐릭터 몰입도가 높아서 저자의 흐름에 끌려 들어가 한 자 한 자, 빼놓지 않고 정독해 읽느라 완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정말 잘 읽었고, 좋았다. 다 읽고 나서 기운이 쭉 빠졌지만 이건 결말이 시시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잘 읽어서 그렇다(말미에 뭔가 급작스럽게 모든 일이 잘 해결되는 그런 게 조금 오글거리긴 했지만 이것 외엔 그리 흠잡을 데가 없다).


사람이란, 공동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작가가 자기가 만든 캐릭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던 소설.
프레드릭 배크만의 다음 작품도 기대한다.

덧붙임 > 『우리와 당신들』에 나온 두 개의 사랑이야기가 참 좋았다. 얼마만에 설렘설렘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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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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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을 소중하게 간직해.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후지마루,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2019 (45쪽)
절망하며 깨달았다. 아아, 또 실수했구나.
사람은 언제나 잃고 나서야 후회한다.
언제나 잃고 나서야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알고 있었는데. 행복은 반드시 망가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또 실수하고 말았다. 
이날, 아사쓰키 시즈카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후지마루,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2019 (60쪽)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책 한 번 펼치니 화장실 가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아니, 화장실 가고 싶은 생각은 아예 들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요즘 읽은 책 모두 다 재밌어서, '이 책도 재밌게 읽었다' 라고 쓰니 뭔가 내가 어떤 책이든 다 재밌게 읽는 사람 같은데, 아니요, 아니요. 저 꽤 까다로워요. 줏대 없어보일런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은 정말 재밌답니다. 추천해요. 乃

후지마루 作,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원제 : 時給300円の死神)은 일본 현대 소설과 라이트 노벨 그 중간 어디에 있는 소설이다. 정통 소설이라 하기엔 뭐하고, 그렇다고 가볍기만 한 라이트 노벨이라 하기에도 뭣하다. 딱 그 중간쯤.

그리고 신기한 것이, 이 책을 펼쳐서 첫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다 읽고 덮을 때까지 소설책을 읽는다기 보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본 것 같았다. 배경, 주인공, 줄거리, 대사 하나하나가 애니매이션을 보듯, 눈 앞에 그려진다. 특히나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을 본 것 같았다. 만고 나의 상상이지만, 저자인 후지마루가 호소다 마모루의 영향을 많이 받았거나, 혹은 그의 애니를 보는 것처럼 책 속 장면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글로 풀어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감독은 꼭, 호소다 마모루이길 바란다. 호소다 마모루의 감성과 꼭- 닮은 책이다.

책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삶에 찌들 대로 찌든 고등학교 남학생(이름 : 사쿠라)이, 절망에 사로 잡혀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정체 불명의 묘한 사람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

   "도와드릴까요? 당신에게 딱 맞는 일이 있습니다."
   "일?"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닿을 리 없는 목소리가 신기하게도 내 안에서 들려왔다. 심장을 붙잡힌 것 같아서 섬뜩했다.
  나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몹시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가 나에게 손을 휘휘 흔들었다.
   "조만간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 순간, 어느새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비에 녹아든 듯이. 인파에 섞여든 듯이.
  마지막까지 웃음을 흘리던 그 사람은 비 너머로 홀연히 사라졌다.
  남겨진 나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느 틈엔가 잿빛 공포는 물러갔다. 
  비일상과의 접촉은 어쩐지 얼떨떨했다.
후지마루,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2019 (13쪽)

다음날 같은 반 여학생(이름 : 하나모리)이 사쿠라네 집으로 '고용계약서'를 들고 왔다. 일자리는 시급 300엔(대략 원화로 3,000원 │ 요즘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완전 노동 착취 수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이른 아침에도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고, 때로는 한밤중에도 일을 한다. 부려먹긴 부려 먹긴 엄청 부려먹는데 시간 외 수당은 전혀 없다. 교통비도 없다. 밥값도 주지 않는다. 일 할 때 소요되는 부대 비용은 본인이 미리 받은 시급에서 무조건 써야 한다. 노동 착취 수준이 아니라 거의 노예 부려먹는 수준이랄까. 그나마 노예보다 나은 건, 언제라도 일을 못해 먹겠으면 고용 해지 서류에 사인하거나 도장 찍으면 곧바로 고용 계약이 해지된다(자유 의지로 계약을 맺고 해지할 수 있는 건 좋다).

사쿠라는 어이가 없을 만큼 열악한 알바라며 저어했지만 '즉시 채용!' '시급 선 지급'이란 조건에 마음이 끌렸다. 살짝 갈등 했지만, 사쿠라는 하나모리의 제안에 응한다. 그리고 이 노동 착취 수준의 알바가, 절망에 빠져 삶의 낙이 없던 사쿠라의 인생을 구원해 주는 계기가 된다.




사쿠라가 하게 된 아르바이트는 바로 사신(死神) 아르바이트다. 세상에 남은 미련과 후회 때문에 하늘 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죽은 사람들(이 책에서는 한자 어휘인 사자死者로 표현한다)을, 사신 알바생들이 도와주어 하늘 나라로 올라가도록 해준다.

사쿠라는 6개월 한시적으로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총 다섯명의 사자를 하늘로 올라가는 데 도와준다. 한때 자신의 여자친구 였던 '아사쓰키', 누군가의 변변찮은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구로사키', 약한 몸으로 아기를 낳다 죽어 사자가 '히로오카', 엄마에게 학대 당하다 죽임을 당한 여자아이 '시노미야', 그리고 같이 6개월 동안 사신 알바를 했던 '하나모리'... 사쿠라는 이렇게 다섯 명의 사자를 도와준다.

사실 이 소설이 참 괜찮은 것이 무작정 선(善), 착함을 강요하지 않는다. 등장인물 모두 평범하면서도 속에 웅크리고 있는 '약한 마음'이 '악한 마음'으로 바뀌어 못된 짓을 저지른다. 예로, 첫번재 손님이었던 선량하고 착한 '아사쓰키' 역시 '사쿠라'가 마음 아프거나 말거나 자신의 바람을 채우고 하늘로 떠난다. 사자들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하늘로 올라갈 때도 갑자기 뭔가 깨달음을 얻거나, 갑자기 개과천선하여 착한 사자로 변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못해 본 것을 해보고,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었던 자신의 추악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 순간 떠난다. 또 착하고 밝은 사자인줄로만 알았는데 마음에 늘 분노가 깃들어 있어 자길 도와주려는 사신에게 저주를 퍼붓고 마음에 상처를 준 채 떠난 사자도 있다. 사랑하는 아들을 괜히 낳았다는 생각에 괴로워 하는 사자도 있으며, 친어머니에게 직접 죽임을 당해 도대체 엄마의 진짜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 하는 사자도 있다.

보통 소설들은 그냥 '좋게 좋게', '그래야만 하니까', '일반 도덕률에 따라' 소설의 끝에 사자들의 응어리를 풀고 눈물 흘리며 '어머니를 사랑한다' 혹은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저승으로 떠나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고 직접 말하거나, 작은 깨달음을 얻고 훌쩍 떠난다.

이런 전개가 이해가 되고, 사자들이 그렇게 몇 날 며칠, 혹은 몇 년을 이승을 헤매다 갑자기 저승으로 떠나는 모습이 나는 이해가 된다. 저자 후지마루가 어떤 생각으로 전개를 이런 식으로 했는지 그 의도도 어렴풋 알 것 같다. 게다가 난 어설프게 좋게, 선량하게 끝맺는 것보다 이런 결말이 나는 더 좋다. (다만, 이 소설의 맨 끝은 해피엔딩으로 좀, 솔직 담백한 전개에 비해 밋밋하고 일반적 결말이다)

가족이기에 강요되는 '사랑의 덕목'들. 가족간의 '사랑', '책임감'은 실로 복잡한 것이라서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고, 사회가 강요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중산층의 행복한 가정을 이상향으로 제시해 왔고, 많은 가정이 이상적 모습의 중산층 가정을 따라하기 위해 많이 애써왔다. 겉보기에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사랑으로 넘치는 가족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뜯어보면 뭔가 미묘하게 어그러지고 부서져 서로가 서로를 학대(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리고 이 학대 속에는 무관심과 방임도 포함된다)하고,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며 그러면서도 어떤 마음의 끈을 놓지 못한다.

가족의 복잡다단하고 심리적, 감정적 문제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구나.

이 소설은 겉으로는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사신을 저승으로 보낸다는 임무를 부여받은 주인공 이야기지만 이 소설의 핵심은 결국 '가족 간의 사랑'이다. '가족의 사랑과 책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로, 책을 덮고 난 후의 울림이 크다. 물론 사람마다 살아온 바 다르고, 가족, 가정에 대해 겪은 바 생각하는 바가 각기 달라 저자가 말하고자 한 내용이 가슴에 와닿는 정도는 모두 다를 것이다. 어쨌든 나는 신선한 느낌으로 잘 읽었다.

특히 다른 캐릭터보다 주인공인 사쿠라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사쿠라의 아버지는 본디 유명인이었는데 사고를 쳐서 하루 아침에 교도소에 들어가고, 출소 후 재기를 위해 시작한 사업은 실패하여 빚쟁이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은 이혼한다. 사쿠라의 어머니는 사쿠라를 언제나 사랑으로 대했지만, 이혼할 때 어머니는 선선히 사쿠라의 양육권을 포기한다. 이때 사쿠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배신감이리라. 언제나 자신을 사랑으로 다해 준 어머니가, 너무나 쉽게 자길 포기하고 떠나겠다니! 어머니가 자신에게 줬던 사랑까지도 의심스럽다. 집에 돈이 없어 굶어야 하는 것보다, 큰 고민도, 큰 안타까움도, 큰 괴로움도 없이 자길 떠난 엄마 때문에 삶이 힘들었다.

어쨌거나 사쿠라는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정리한다. 요건 체념이 아니고 어머니에 대한 '이해'라 할지 '수긍'이라할지, 그런 것.

이 책은, 이런 마음의 갈등, 상처, 응어리를 '소박한 행복'에서 찾는다. 일상에서 나눌 수 있는 재밌지만 실없는 농담들,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가볍게 상상하고 꿈 꿔보는 미래와 장래 희망, 딱히 이렇다할 내용은 없어도 삐뚤빼뚤 정성껏 쓴 자식의 편지, 하교 후 집에 들어섰을 때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엄마의 미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손을 잡고 이곳 저곳을 놀러다니고, 작은 일이지만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자기 과거와 자기 생각을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 그 기쁨, 그 행복이 참 의미있다고 표현한다. 저자는 이것은 '작은 기적'이라고.

결국 이 아이가 여행을 떠나면 다시 잊어버릴 허망한 기억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음 세상으로 이어나가면 분명 언젠가, 잊어버렸을 무렵에 작은 행복으로 만날 수 있다. 잔혹한 세상에 한 줌의 호의가 더해지면 분명 세상은 멋있어진다. 

후지마루, 『너는 기억 못할테지만』, 아르테, 2019 (363쪽)

우리와 우리 삶을 지탱하는 건, 너무나 평범해서 내일이면 잊을 소박한 일상과 웃음, 농담들이 아닐까 싶다. 기억에서 너무나 쉽게 잊히는 소박한 기쁨들, 행복들. 하지만 이런 것들로 우리 삶은 이뤄지고,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막연하게 '희망'을 안고 오늘 또 한 발 내딛는 것. 이런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릴 이루는 삶, 인생일 것이다.

작은 호의, 작은 배려, 작은 농담, 작은 인정, 작은 기쁨, 작은 안도, 작은 행복.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는 어떤 강박에도 결박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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