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 박완서 작가님의 짧은 소설(콩트)를 모은 『나의 아름다운 이웃』 


작가님이 70년 대에 쓰신 작품들인데, 어휘에서 시대에서 그 시절 그 느낌이 나지만, 지금 읽어도 재밌고 가슴에 와닿는 바 큽니다. 본디 이 책에 실린 콩트는 작가님이 등단하고 10년이 채 안 됐을 때 쓰신 글들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글들을 모아 1981년 『이민 가는 맷돌』이라는 제목을 달고 한데 묶여 책의 형태로 태어났습니다. 이후 절판되었다가 1991년 출판사 작가정신에서 현재의 제목과 같은 『나의 아름다운 이웃』으로 출판되었고, 세월이 흘러 이번에 개정판으로 세상에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러는 동안, 박완서 작가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뉴스로 박완서 작가님의 부고를 들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8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군요. 육신은 유한하나, 글은 무한할 테지요. 시간이 흐르고, 글을 쓴 작가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럼에도 남기신 글을 지금도 언제고 다시 읽을 수 있어 반갑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70년 대를 배경으로 한, 70년 대 소설. 세월이 읽히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손색 없이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이 읽힙니다.  글쎄, 지금의 어린이와 십 대, 이십 대는 어떨지 잘 모르겠네요. 저의 경우, 어린 시절에 1919년, 그 삼일운동이 있었던 해에 태어나신 친할머니와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살았고, 1970년을 다 털어내지 못하고 1970년 대의 중산층을 흠모하고 흉내 내던 1980년 대 2층 양옥집 동네에서 자랐던 지라 이 책 속에 실린 모든 글들이 잘 이해되고 좋았습니다. 젊은 남녀의 연애관, 결혼관, 어머니의 삶, 할머니의 삶, 그 시대 시대상. 이 책을 관통하는 모든 걸 저도 보고 느끼고 그 속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실린 콩트는 가벼운 글도 있고, 가벼운 겉피를 둘러쓰고 있지만 그 속에는 묵직한 감정선이 흐르는 글도 있습니다.  변해가는 세상을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소중한 뭔가를 영영 잃어버린 듯 애처로운 글도 있습니다. 눈물이 나는 글도 있었고요. 


눈물이 났던 글로는 <어머니>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올해 팔십이 된 노모를 사는 딸이, 점점 작아지고 기가 눌린 채 살아가는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간 이야기입니다. 딸은 절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절에서의 천태만상을 보고 기가 막혀 합니다. 가정 형편에 따라 제각각인 기간으로 자식 대학 합격을 비는 인등불을 비롯해, 칠성당에 이름을 새기면 화를 면하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 사람들이 앞다투어 많은 돈을 시주하는 모습, 아기 명줄이 짧을까 봐 명다리라고 하는 무명필을 사람 키보다도 높이 단 모습, 장수와 재수, 관운 등 5복을 비는 칠성당은 절에서 제일 인기가 많아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그곳에서 절하는 보살님의 얼굴은 시장 바닥에서도, 노름판에서도 본 적 없는 세속적이고 물욕으로 가득한 얼굴을 띠고 있습니다. 딸은 불쾌했습니다. 그러나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아름다운 한 분이 계십니다.


나의 이런 혼란과는 상관없이 어머니는 여러 신도들 사이에 끼어서 어떤 신도와도 닮지 않은 담담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예배도 하고 염불도 외우시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딴 신도들과 너무도 달라 보였다. 


나는 진흙탕 속에서 홀연히 피어난 연꽃을 지켜보듯이 이런 어머니를 맑은 기쁨과 감동으로 지켜봤다. (...) 나는 속이 뒤집히는 것처럼 부글댔으나 어머니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겸손하게 그러나 기품과 긍지를 조금도 잃지 않은 당당한 모습으로 꼭 주먹만 한 음식 뭉치를 받아 가지시는 것이었다. 


박완서, 『나의 아름다운 이웃』, 작가정신, 2019 (188쪽)


나는 S사가 절은 무슨 절이냐, 무당집이지 하면서 S사 경내에서 내가 본 칠성당이니 신중당이니 명다리니 하는 미신적인 걸 예로 들어가며 S사를 비방했다. 어머니는 다 들으시곤 고즈넉이 웃으시더니, "넌 잠깐 동안에 별의별 걸 다 봤구나. 나는 십 년을 넘어 다녔어도 부처님 한 분 우러르기도 벅찼는데"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씀에 홀연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 눈엔 미신만 보인 건 내 속에 미신하는 마음이, 잡스러운 상념만이 차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하고 같은 장소에 같은 동안 있었으면서도 어머니는 그동안을 부처님 마음을 생각하고 부처님 마음을 가지는 지복의 동안으로 만드셨는데 나는 그동안 추한 것만 골라 보고 그걸 미워하고 헐뜯는 시간으로 삼았던 것이다.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박완서, 『나의 아름다운 이웃』, 작가정신, 2019 (189쪽)


왜인지 이 부분을 읽을 때 울컥했습니다. 나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을 했고, 그때 그분의 얼굴이... 정말 온화하고 세상 것 아닌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콩트 속 화자의 어머니처럼 작은 체구에 어딘가 세상에 할 말 못 하고 사는 그런 분처럼 봐온 분이었는데, 어떤 순간 보통 사람과 다른 분이라는 걸 깨친 순간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눈물이 났는데, 이 글을 읽을 때도 역시나 눈물이 났습니다. 내 마음속 뭔가를 쿡쿡 쑤시는 느낌이 들어, 말로 표현은 잘 못하겠지만 어떤 특별한 울컥함이 있습니다.


책은 이런 내용만 실려 있지 않습니다. 가벼운 내용에서부터, 시대나 부조리한 세상에 일침을 놓는 글도 많습니다. 대체로 앞부분에 실린 콩트가 가볍고 재밌으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남녀의 연애, 결혼관을 실어놓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무거워집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예지랄까, 예측이 잘 맞아떨어진 부분도 있고요. 70년 대에 쓰인 소설이니 50년 앞을 내다보았다 할 수 있겠네요. 무릇 작가라면 시대를 꿰뚫어보고,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까지 내다봐야겠죠.


박완서 작가님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읽는 동안 정말 좋았습니다. 작품의 수준도 높고, 문장도 정말 좋습니다. 요즘 작가들의 글에서 보기 드문, 그 시절 혹은 박완서 작가님 특유의 리듬이 살아있습니다. 작가님의 리듬에 따라 제가 춤을 추며 글을 읽은 것 같은데요, 읽는 내내 정말 기뻤어요(물론 글에 따라 눈물도 났지만). 작가님의 문장이 정말 좋아서 이 책을 필사할까 합니다. 콩트라 길이도 짧으니, 필사하기 딱 좋을 것 같아요. 벌써 기대되고 두근두근 합니다.


박완서 작가님은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그럼에도 작가님의 글을 계속 읽을 수 있는 데에 감사하며 기쁩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장편도 좋고, 콩트는 콩트대로 정말 좋으니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