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하는 세계사 - 12개 나라 여권이 포착한 결정적 순간들
이청훈 지음 / 웨일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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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 나라의 여권을 뽑아, 그 여권에 담긴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교양서적이다. 국제노선 항공기에 탑승한 사람은 누가 됐든 간에 필히 여권을 소지하므로 제목을 『비행하는 세계사』로 뽑은 것 같다. 하지만 내 느낌에 책 제목과 책 내용의 핀트가 조금 안 맞는 것 같다. '여권으로 보는/읽는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더 적절한 것 같은데.... 그렇지만 이런 제목은 너무 임팩트 없고, 시시한 제목이겠죠. >ㅁ< 어쨌든.

여권은 주권을 가진 각 나라들이 해외로 나가는 자국 국민에게 발급하는 '국제 신분증'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듯, '가장 사적인 증명서'이며,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언가가 담겨 있다.

여권 발급은 자국 정부가 하지만, 여권을 사용하는 곳은 자국이 아닌 타국이다. 민감한 개인 정보가 담겼고, 분실 시 외국에서 본인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으므로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여권을 주거나 보여줄 수 없다. 여권은 출입국사무소 직원이나 필요시 외국 공무원들만 볼 따름이지만, 여권은 각 나라의 얼굴이므로 각 정부는 고심에 고심을 해서 여권을 만든다.

그 나라만의 무언가를 담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연스레 그 나라만의 '역사와 문화', 그중에서 손꼽을 만한 것들만 선별해 담는다. 그래서 여권만 봐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일반인인 우리가 외국 사람의 여권을 보긴 힘듦. >ㅁ<)




이 책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총 12개 국가의 여권을 다루고 있다.

캐나다 / 미국 / 뉴질랜드 / 일본 / 한국 / 중국 / 영국 / 프랑스 / 독일 / 그리스 / 태국 / 인도

각 나라는 대부분 자국의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것을 뽑아 여권 삽입 이미지로 사용한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가 오래된 나라와 신생국들이 사용하는 이미지가 다르다는 것. 우리는 우리 문화의 정수이자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인 '훈민정음', 실학의 대표적 유물이라 할 수 있는 '수원 화성'의 이미지 등등이 여권에 실려 있다.

반면에 이민자의 나라이자, 신생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캐나다는 모두 각국 여권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대륙횡단철도' 완공 사진을 여권에 삽입했다. 미국이나 캐나다나 '대륙횡단철도' 완공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나 보다. 지금은 조금 심드렁한 감이 있지만, 19세기만 해도 철도를 연결할 때만 해도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많았고, 위험한 전투도 많이 있었다고 안다.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완공했으므로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테지. 또한 당시 철도 기술은, 발달하던 철강 기술과 관련 제반 기술의 정점이었으니 개척과 도전정신, 발달한 기술 등 여러모로 상징하는 바가 상당히 클 듯하다. '연결', '이어짐', '국토확장' 이미지도 빼놓을 수 없다.

신이여, 철길이 두 대양을 연결하듯이 우리나라의 결속이 영원하게 하소서.

이청훈, 『비행하는 세계사』, 웨일북, 2019 (48쪽 - 인용문 재인용)

특기할 만한 것은, 우주항공분야에서 최고의 선진 기술을 가진 나라답게 미국 여권에 '달, 지구, 보이저호'의 이미지가 여권에 삽입되어 있는 게 흥미롭다. 우주는 인류의 미래 지향성과 발달한 과학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미국이 뽐뽐- 여권에 한껏 뽐을 내는 것 같기도 하다.

뉴질랜드의 경우 원주민인 마오리족에게 중요했던 '고사리'를 여권의 표지 디자인으로 사용한 게 흥미로웠다.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고사리는, 잎 뒷면이 은빛을 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먼 길 떠나거나, 밤에 돌아와야 하는 마오리족 사람들이 길을 걸으며 고사리를 뒷면으로 꺾어 오는 길에 고사리 은빛을 표식으로 삼아 마을로 돌아오곤 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고사리는 상징성 있는 식물이라고 한다. 캐나다가 유니언 잭이 그려진 국기를 1965년에 자국 상징인 단풍잎이 그려진 국기로 변경했듯, 뉴질랜드도 고사리가 그려진 국기로 변경하고자 했으나, 국민투표에서 아쉽게 과반을 얻지 못해 바꾸지 못했다고 한다.


이청훈, 『비행하는 세계사』, 웨일북, 2019 (60쪽) 
국기 우측에 그려진 별 4개는, 남반구에서만 보이는 '남십자성'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 책이 많이 들어있다.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이 시작된 나라답게 과학기술, 변혁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여권에 많이 삽입(육분의, 증기기관, 지하철 노선 등등) 되었고, 프랑스의 경우 시민혁명의 상징인 '마리안',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의 문장인 '독수리'를 문장으로 채택하고(신성로마제국 국호가 언급될 때마다 늘 인용되는 '볼테르'의 말이 이 책에도 나와 웃겼다,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 198쪽). 힌두교인이 압도적인 나라, 인도에서 왜 불교를 대표하는 왕인 아소카왕의 상징을 국가 문장으로 채택하고 여권 표지에 사용하고 있는지(인도 초대 총리인 '네루'의 영향) 등등 흥미롭고 재미난 사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여권이라는 소재로, 12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어 유익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각 나라마다 여권 표지와 삽입 이미지들이 글의 흐름에 맞게 배치되었더라면 하는 점이다. 소개하고 있는 이미지가 없거나, 너무 단편적으로 이미지로 실려 좀 아쉬웠다. (저작권 문제 때문이려나)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1년에 수 차례 가고 즐기지만,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권을 만들어 본 일이 없다. 여권이 없으니 해외는 아예 가본 적 없다. 여행에 흥미 없고(국내 여행도 거의 안 다닌다...), 돈도 없어서 그런 것인데 어쨌든 그런 내가 여권으로 읽는 여러 나라의 여권 이야기가 재밌었다. 나는 책과 함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여행하는 게 좋다. 여권 없이 다닐 수 있잖아. 어쨌든 『비행하는 세계사』는 여권 있는 사람이나 나처럼 여권 없는 사람이나 누구나 읽어도 재밌을 책이다. 이 책처럼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각도로 다른 나라의 역사, 문화 톺아보기는 유익하다. 앞으로도 이런 책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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