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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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교양서를 꾸준히 읽기 때문에 선택한 책. 책을 받고 나니 표지를 보니 '비즈니스', '컨설턴트' 등등 어쩌고저쩌고라는 말이 있어서, 그냥 일반인이 쓴 취미 철학으로 공부하다가 쓴 책인가 의심에 의심을 했다. 철학 전공자가 아닌 그냥 취미나 필요에 의해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집필한 철학 교양서를 많이 읽었기 때문에 좀 색안경을 끼고 본 게 있었다. 그런데 처음에만 그랬다. 막상 보니,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내공이 심상치 않다. 정신이 번쩍 들고, 자세가 단정해진다. 저자의 약력을 살피니 역시나, 학사 전공이 철학이고 석사 전공이 미학이다. 최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저자의 약력은 책을 읽고 난 후에 보는데 이번엔 도리어 역(逆)으로 책 표지와 간략한 설명만 보고 편견으로 독서를 시작한 것이었다. 반성. 저자의 전공과 현재 직업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편이 아니라서 이런 실수를 범했네요. 저자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죄송합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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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철학을 다루는 책이라, 저자의 업무나 직업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진 않지만 암튼 책에 적힌 몇몇 조각들과 그의 직업을 조합해 생각해보면 저자는 의뢰가 들어오면 회사 운영이랄지, 인사 관련 컨설팅이나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일을 주로 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는 게 의아했는데, 생각해 보니 최근 100년 정도만 빼면 우리 인류 역사상 군주(한 나라의 최고경영자│CEO)에게 조언을 하던 사람들 대부분 철학자, 학자가 아니었나 싶다. 동양 철학의 최고라 꼽을 수 있는 공자, 맹자만 해도 천하를 주유하며 자신을 써줄 군주를 찾아 헤맸다. 중국의 운영 골격을 만든 법가 사상도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준 주희도 역시 철학자다.

중국의 옛 사상가들을 생각해 보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가 왜 철학을 전공하고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철학은 삶의 무기가 되고, 지침이 되고, 길이 되며, 기쁨과 영광이 될 수 있겠구나 싶다. 내가 철학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에게 무기와 기쁨, 길이 돼 줄 수 있다는 건 안다.

그래, 제대로 읽어 보자.

 



책에는 정말 많은 철학자들이 다뤄진다. 짧게 짧게 소개되지만 글의 내용이 가볍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좋았던 건, 저자 본인이 공부한 것을 다른 책을 읽고 그냥 그대로 따라 쓰는 데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은 철학 교양서가 누군가 쓴 글을 조사나 어미만 달리하여 복사한 글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가 철학책이나 철학자들을 스스로 소화하고 쓴 게 느껴진다. 어떤 정성이랄지, 아니 이런 것보다 '읽을만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책들 중에는 읽을 만한 가치나 의미도 없는 책들이 많으니까. 글 쓰는 사람이, 본인이 쓰는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쓴 글은 대부분 그러하다. 어쨌든 이 책은 괜찮다. 좋다. 모든 챕터들이 독자들 모두에게 가닿지 않을 순 있겠지만, 그중에 여러 글, 혹은 최소 몇 개라도 울림이 있을 것이다.


재밌게 읽은 내용 몇 개 뽑으면 이렇다.

- 불확실한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 -

'행동 강화'에 관한 실험으로, 행위는 그 행위로 인한 대가가 반드시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보다도 대가가 불확실하게 주어질 때 더욱 효과적으로 강화되는 것을 밝히고 있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초당, 2019  (81쪽)

- 쥐에게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도구로 실험을 했는데 쥐는 버튼을 누르면 반드시 먹이가 나오는 도구보다,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는 도구에 더 집착을 하며 더 자주 버튼을 누른다고 한다. 확실한 것보다 불확실한 것에 끌리는 쥐. 쥐의 이런 행동을 토대로 도박 중독자들이 노동으로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보다, 잃을 수도 있고 벌 수도 있는 도박에 빠지는지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단다. 햐, 놀랍지 않은가.

- 포로가 된 미군에게 '공산주의에도 좋은 점은 있다'라는 간단한 메모를 적게 하고 그 포상으로 담배나 과자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을 주었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미군 포로는 착착 공산주의로 돌아섰다. (...) 실제로 받은 것은 담배와 과자 정도의 소소한 포상일 뿐이다. 이래서는 사상과 신조에 반하는 메모를 적었다는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지부조화 발생) 그리하여 이 신조를 공산주의는 적이긴 하지만 몇 가지 좋은 점도 있다고 수정함으로써 자신의 행위와 신조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조화의 강도를 낮추는 것이다. 

- 이 경우 대가가 고액이면 부조화는 작아진다. 싫은 일이라도 대가를 위해서 했을 뿐이라는 명분이 생겨서다. 하지만 대가가 작으면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어려워지므로 지루한 작업이었다는 인지를 바꾸려는 동기가 강해진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초당, 2019 (111-112쪽 / 113쪽)

-한국전쟁 때 포로가 된 미군을 중국 공산당이 세뇌시킨 이야기. 중국 공산당은 미군을 고문하거나, 괴롭히거나, 힘든 노동을 시키지 않고 단지 '공산주의에도 좋은 점은 있다'라는 짧은 글만 적으면 담배나 과자 같은 소소한 것을 주었다. 소소한 행동과 소소한 보상이지만 너무나 소소해서 '공산주의는 나쁘다'라는 기존의 생각과 인지부조화가 생겨 공산주의에 세뇌되고 누구보다 과격한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단다. 흠.... 흥미롭다.

-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한다.

- 브리지스(윌리엄 브리지스)의 말에 의하면 경력이나 인생의 전환기는 무언가가 시작되는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일이 끝나는 시기다. 거꾸로 말하면 무언가가 끝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의 '새로운 시작'에만 주목해 대체 무엇이 끝났는지, 무엇을 끝내야 하는지 '끝'에 관한 물음에 진지하게 맞서지 못한다. 수많은 조직의 혁신이 어중간한 상태에서 흐지부지 좌절되고 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초당, 2019 (149쪽 / 152쪽)

- 사회 변화도 마찬가지다. 헤이세이(1989-현재) 시대에 관한 평가는 앞으로 세상에 쏟아져 나오겠지만, 나는 '쇼와(1926-1989) 시대를 끝내지 못한 시대'라고 말할 것이다. 

- 이 현상을 등산에 비유해 보면 고도 경제 성장기 이래 계속 올라간 산 정상에 이르는 과정이 쇼와 시대, 이후 30년에 걸쳐 같은 산을 계속 내려오고 있는 과정이 헤이세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시대가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뀌었지만 같은 산에서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만 하는 상황을 문제 삼고 있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올라가고 내려가고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같은 산'으로 만족해도 좋은가 하는 점이다. (...) 이 시기(쇼와 시대)를 정말로 '끝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초당, 2019 (152쪽 / 153쪽)

시작보다, 시작 이전의 '끝'에 주목해야 한다는 글이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다. 마침 새해의 첫 달, 1월에 이 책을 읽어서 그랬던지 와닿는 게 좀 달랐다. 나 개인적으로 2018년까지의 나의 삶 몇몇 부분을 정리하고 끝내고 2019년에 새로 시작하려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읽고, '과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여러 번 나의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을 끝내고 새로 시작하려고 노력했던 적이 많았는데, 잘 됐던 것도 있고 잘 안된 것고 있었다. 잘 안된 것들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이전의 나의 삶, 나의 태도를 제대로 끝내지 않고 섣부르기 '자, 새 출발 하자'라고만 결심하고 어설프게 짐직 새로운 걸 시작하지 않았던가 싶다. 그리하여, 새로 시작했던 것도 흐지부지 시도한 듯, 시도하지 않은 듯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시작에 앞서 먼저 끝을 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또 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본다. 현재 우리가 일본과 같다. 과거, 밝은 미래만 생각하면 됐던 시기가 있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됐던 시기가 있었다. 몇 번 어려운 고비를 맞이했지만 우리 사회는 용케도 극복했다. 한강의 기적! IMF 극복의 눈물 신화! 등등....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완전히 다른 시대가 도래했다. 그때는 힘든 일이 닥쳐도 일본이든 유럽이든 미국이든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를 따라 하면 됐다. 그 당시 카피 제품이 얼마나 넘쳐났는지. 하지만 지금은 카피할 게 거의 없다. 우린 우리나라가 경제 규모나 경제 체질이 달라 여전히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하는 '중진국'으로 느껴지지만 기술력, 사회 제반 산업을 이제 어느 나라를 보고 따라 할 수준은 지났다. 완전히 달라진 존재가 되어 가치를 스스로 창출해 내고, 새로운 물건, 새로운 서비스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야 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경제 발전을 이룩한 대로 여전히 정부가 나서서 이끌어 가려고 하고, 기업이 국민들도 정부의 규제엔 투덜거려도 항상 나라에 의존하며, 발전 지침을 제시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언제까지?!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뭔가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우리는 옛 시대를 끝내지 못하고 부여잡은 채 시간의 흐름에 떠밀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4차 산업혁명', '새로운 세상, 새로운 원동력' 등등 말은 많아도 지금까지의 발전 시대를 제대로 회고, 정리하지 않으면 많은 선진국들이 그러했듯 우리도 고꾸라지거나 곤두박질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지금도 여전히 선진국이긴 하지만, 옛 영광에 비해 지금은 초라한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프랑스를 보고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고 본다. 왜 현재 이 나라들에 극우정당, 극우주의자들이 판을 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할 일. 화려했던 과거를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막연하게 그때의 그 시절이 지금도 계속되길 바라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 과정 속에 역시 미국이 있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도 이런 흐름으로 나온 것이다. 우리도 예외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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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발췌한 내용, 나의 생각들만 봐도 좀 이 책 잘 읽은 것 같다. 아니, 참 잘 읽었다.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는 사람이 쓴, 짧고 간결하며 쉬운 철학 교양서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사람에 따라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각기 다르게 와닿겠지만, 지금 내가 하는 생각과 고민들에 여러모로 유익한 화두를 던져 주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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