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계회도 살인사건 ㅣ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5
윤혜숙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평점 :
서해문집, 청소년 문학 다섯 번째 책 『계회도 살인사건』
한자리에 앉아서 그대로 다 읽었다. 296쪽으로 결코 얇은 책은 아니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인 작품으로 글자가 조금 크고, 글자 간격도 시원시원해서 빨리 읽혔다. 또 뒷이야기가 궁금해 계속 읽게 되는 추리소설인 것도 한몫. 가독성 굿, 몰입감 굿굿. 재밌게 잘 읽었다.
│계회도(契會圖)란?
계회도란 말이 낯선데, 계는 맺을 계(契), 회는 모일 회(會), 도는 그림 도(圖) 자로, 여기서 회(會)를 우리말로 바꾸면 '모임'이어서 계회(契會)는 <계모임>이란 뜻이고 계회도(契會圖)는 '계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요즘 계모임이라 하면 여행이나 친목을 위해 함께 돈 모으는 모임이란 의미가 강하지만, 옛날만 해도 문인(文人)들의 모임이었다. 고려 시대 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조선시대까지 이어오다가, 조선 후기 접어들어 사대부 문인뿐만 아니라 중인들까지 계모임을 결성해 글을 짓고 풍류를 즐겼다. 이 모임을 기념하고, 후에도 이 모음을 했었다고 기억하기 위해 단체사진을 찍는 것처럼 단체 그림을 그린 것이 바로 계회도(契會圖)이다.
조선 후기 사대부뿐만 아니라, 중인과 평민들 사이에서도 계회가 유행하다 보니 글 모임뿐만 아니라 다른 모임까지 다양하게 활성화된 듯하다. 시전 상인들의 봄나들이나 동네 장정들의 복날 모임, 나장이나 아전들의 동기 모임, 거기에다가 서당의 책거리 날까지(51쪽, 『계회도 살인 사건』), 그림 그리는 사람을 불러 계모임 모습을 남겼다(이것만 봐도 이전과 달라진 조선 후기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신분질서의 요동침).
여기서 재밌는 것은, 모임에 참석한 사람이 여러 명이다 보니 그림을 한 장만 그리는 게 아니라, 참석한 사람 수대로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래서 계회도를 그리는 사람은 빠르게 그림을 그려야 함은 물론이고, 여러 장의 그림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균일한 실력으로 그리는 것이 특히 중요했다.
│『계회도 살인 사건』 줄거리
계회도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진수의 아버지가 3년 전 광통교 다리 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계모임을, 진수 아버지가 몰래 계회도로 그린 지 일주일 만이었다. 의심스러운 점이 많은 살인사건이었으나, 단순히 검계(劍契 : 칼을 차고 다니는 모임)의 짓으로 흐지부지 일단락 되었다. 3년 후, 그동안 진수를 가족처럼 돌봐온 '인국'이 갑자기 진수 아버지의 살해범으로 밀고되어 포도청으로 끌려간다.
『계회도 살인 사건』은 진수 아버지의 살해범으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혀 있는 인국을 구하기 위해, 진수가 고군분투하며 인국의 무죄를 밝히고 아버지 죽음의 전말을 알아낸다는 이야기다. 용의자는 크게 세 명인데, 한 명은 포도청에 끌려간 인국이고, 또 한 명은 장 화원이라고 해서 아비 잃은 진수를 거둬 그림을 그리게 한 사람이나 그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고, 나머지 한 명은 당시 세도 가문이었던 김조순의 친척인 김대감이었다. 용의자 세 명 모두 뭔가 숨기는 것이 많아 모두 의심스럽다.
장르는 역사 추리소설로, 반전의 반전이 있어 끝까지 읽어야만 범인을 알 수 있다. 이야기가 곁다리로 흐르지 않고 진범을 찾기 위해 한줄기로 흐르기 때문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이것은 추리소설의 강점). 그뿐만 아니라 역사 소설이기 때문에,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며 완전히 단절돼 버려 뭔가 아주 오래전 옛날이야기 같은 조선 후기 생활상을 조금 엿볼 수 있어 좋다(이것은 역사소설의 강점). 그리고 청소년을 독자로 쓴 책이라, 살인 사건을 다루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다소 청소년에게 낯선 우리 고유의 어휘가 사용되지만 맥락상 뜻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어 독서를 방해하지 않고, 어휘력 향상에도 좋을 것 같다.
│나의 감상
역사 소설은 이주호 작가의 『역랑』 이후 한 달인가, 두 달 만에 읽는데 잼잼이요- 진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밥 먹기 위해 잠시 자리 비운 건 빼공) 청소년을 위해 쓴 책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내용이나 어휘는 거의 없지만, 읽다 보면 작가가 자료 수집을 많이 했구나 싶다. 이 소설보다 조금 앞 시대 사람인 김홍도와 신윤복에 대한 소설은 많지만, 이렇게 이름 없는 화가(진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시대를 엿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조선은 왕과 신하들로만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었고, 독보적인 실력을 갖춘 천재들만 살았던 나라도 아니었다. 무수한 무명 씨들로 이루어진 나라였고 그 무명 씨들도 꿈을 꾸고 꿈을 실현하며 조선의 톱니바퀴를 움직였다. 이렇게 재미있고 진입장벽인 낮은 역사소설이 많이 쓰여서, 지금과 단절돼 버린 조선과 한결 가깝고 이해도가 높아졌으면 한다.
한참이나 그림을 들여다보던 나는
손끝으로 풀숲에 박혀 있는 글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버지, 이건 뭐예요?"
"그건 기억할 '억'이라는 글자지."
"기억? 그게 뭔데요?"
"시간이 사람 가슴에 새겨 놓은 그림 같은 거지."
아버지가 팔딱거리는 내 가슴을 가리키며 웃었다.
아버지의 사람 좋은 웃음이 떠올라 가슴 한끝이 얼얼했다.
(- 2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