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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잘 익은 홍시 색감의 표지.
책 내용도 맛있을 것 같아서 읽었다.

저자 이름 '모리 마리', 그녀 아버지 이름은 '모리 오가이'
'모리 오가이'라는 이름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일본 근대문학에 대단한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그를 흠모하고 존경했다고 한다. 모리 오가이의 라이벌로는 나쓰메 소세키가 꼽힌다. 모리 오가이는 처음부터 문학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집안이 대대로 다이묘의 시의로 지내면서, 최상류층은 아니었지만 고등 지식을 접할 수 있었고 모리 오가이는 그 덕에 어린 나이에 동양 고전을 공부하고, 서양 외국어도 익힌다. 머리도 좋았던지, 19살에 현재 도쿄대 의학부를 졸업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최연소 졸업이라고 한다. 모리 오가이는 군의관이 되어, 독일에서 8년 동안 유럽 의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다. 이때 모리 오가이가, 치명적인 위생병에 걸리게 된다. 아, 눙물....
모리 마리가 쓴 『홍차와 장미의 나날』의 독후감을 쓰는데, 그녀의 아버지 '모리 오가이'에 대해 장황하게 쓰는 이유는, 이 에세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그녀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는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아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는데 생각보다, 아니 어느 페이지이고 그녀의 아버지 흔적이 없는 데가 없다.
정말 부잣집에서 공주님으로 자란 모리 마리이기 때문에, 사실 그녀라는 독립된 인격체가 이 책을 썼다기 보다 '모리 오가이의 그림자', '모리 오가이의 사랑과 애정'으로 만들어진 그 무엇이 글을 쓴 느낌이다.
모리 오가이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모리 마리를 귀여워했고, 서양 문화를 너무나 동경했다(모리 마리의 이름, 마리도 프랑스 이름이다. Marie....). 모리 오가이는 음식에도 좀 까탈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오랜 유학생활로 유럽 음식에 길들여져 있었던 터라, 독일 요리책을 직접 번역해 자기 어머니와 아내에게 레시피대로 요리해 달라고 했다. 이런 식문화를 가진 집에서 자란 모리 마리도, 유럽 식문화를 동경하고 뭔가 예의라던가 유럽 그대로의 레시피를 따르지 않으면 벌컥벌컥 화를 냈다고 한다. 모리 오가이가 그랬다는데, 그 아버지의 그 딸이라 모리 마리 역시 본인도 '병적일 만큼' 그러하다고 이 책에 적어 놓았다.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일본 작가의 소소한 음식 에세이라기보다, 군인으로서, 문인으로서, 예술 애호인으로서 성공한 사람에게 무한정 사랑을 받고 자란 공주님의 에세이라는 게 참 재밌었다. 보통, 귀하게 자라 버르장 머리 없는 아이의 이야기는 많이 접할 수 있지만 본인이 직접 그러했다고 쓴 책은 그리 많이 없으니까. (아, 사르트르도 무한정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아서 작은 왕으로 군림하던 이야기, 외할아버지 서재에서 '관념론'을 키웠단 이야기가 있긴 하구나.)
어쨌든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유럽 문화 광풍이 휘몰아치고 유럽 것이라면 좋고, 흠모하던 문화가 아직 일본에 있긴 한데(프랑스 음식을 추앙하고, 독일의 질서 있고 정갈한 생활을 동경하는 문화), 어느 정도 좀 우습기도 하고 흥미롭다. 이런 문화의 대표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하여 많은 애니메이션 작품에, 유럽의 아기자기한 마을을 배경으로 금발, 갈색 머리, 빨간 머리가 등장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 모리 '마리'는, 자기 취향 확실하고 까탈스러운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뭔가 흥미롭게 궁금하던 것을 의외의 책에서 답을 찾은 느낌이랄까.
한 일본 작가의 소소한 에세이집이지만, 메이지 시대와 다이쇼 시대의 유학파 출신, 최고 엘리트 집안의 소소한 풍경을 볼 수 있어 좋다(어딘가 코미디 같은 요소도 있다). 해외 한 번 나가지 못하고, 일본 안에서 살았던 일본 문인의 에세이와 다르고, 태평양 전쟁 때 만주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작가들과도 다른 느낌이다. 시대 일본 상류층 엘리트 집안에 관심 있는 사람들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