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지음, 송아람 그림, 이홍이 옮김 / 놀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가볍게 읽으려고 펼쳤는데 생각보다 많이 공감하며 재밌게 읽었다. 

이런 유의 책을 뭐라고 해야 하나? 일단 분류는 에세이인데, 일상이나 경험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없고 그냥 저자의 생각이 많이 나열되어 있다. 음, 그러면 '수필'로 해석되는 에세이보다, '수상록(隨想錄)'으로 해석되는 에세이라고 하는 게 적절하겠다. 




저자, F(에프)는 일단 일본 사람이고, 남자고, 한 30대쯤 되어 보이는데 어리게 본다면 20대 후반 정도로 추측된다. 그렇다, 그냥 추측할 따름이다. 이 정도 정보 말고는 다른 정보는 크게 없다. 사실 나는 이 사람이 남자인지도 좀 의심스러운데, 글의 곳곳에서 여자의 느낌이 많이 난다. 성별도 불확실! 그래도 본인이 남자라고 하니, 남자이겠지만 이름도, 뭣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얼마든지 여자라고도 상상 가능하다. 문체나 글 내용이,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 여성스럽다. (근데 또 여성이라고 하기엔 남성스러운 면도 있긴 함) 글쎄, F라고 알파벳 하나만 올렸지만, 공동 저자일 수도 있을까. 셰익스피어의 미스터리처럼. 


어쨌든 공감가는 내용이 많고(특히 여성이라면! 그리고 여성을 독자로 쓰인 책이다), 재밌게 읽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느낌도 나고. 저자가 고리타분하지 않고 자유 분방하며, 자유 분방하지만 방종하지 않다. 자기만의 기준이 있고, 어느 선은 넘지 않는 것 같다. 자기 인생에. 


이 책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학창 시절 때 학교가기가 너무 싫어서 학교에 안 갔다는 이야기다. 중 3때, 저자는 선생님께 진심으로 학교에 오기 싫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F를 데리고 둘만 대화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선생님도 학생 때 그랬다고, 학교는 가기 싫고 방에서 무전기로 외국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훨씬 더 좋았다고. 그런데 무전기로 외국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은데, 영어를 못하니 대화를 못했다. 그래서 외국어 공부를 해야 했고 공부를 하다보니 학교 선생님이 되어 있더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F에게 어떻게 해서든 선생님이 졸업까지는 책임져 주겠으니 학교 오기 싫으면 오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F는 학교에 정말로 안 갔다. 대신 도서관으로 가서 책들을 섭렵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매일 도서관에 갔는데 재밌게도 그곳 사서도 F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학생이 학교 땡땡이치고 도서관에 온 걸 사서는 정말로 몰랐을까. F는 그렇지 않을거라고 적었다. 묵인이랄까, 이해랄까. 암묵적인 비호를 받으며 도서관에 다녔던 것일 거라고. F는 선생님과 사서가 없었다면, 무사히 졸업하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F가 현재 정확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비호를 받고 자란 사람은 자기 인생에 책임감이 있고, 세상에 대한 어느 정도 믿음이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러니 『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같은 책을 써냈겠지. 세상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적을 수 없다. 


F는 무언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언젠가 그것과 관련된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적었다. 그는 그게 글쓰기 였다. F가 언제 글쓰기를 멈출지 모르겠으나 일단 그는 한동안 더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할 것 같다. 나도 그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다. 


먹으면 먹을수록 머리가 나빠질 것 같은 
귀여운 딸기 아이스크림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작은 스푼을 들면, 
일개 인간의 기분은 나빠지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애당초 우리에겐 
기분 좋게 사는 것 말고 
별 대단한 의무 같은 것도 없다. 

(-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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