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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히나타 식당
우오노메 산타 지음, 한나리 옮김 / 애니북스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가쿠다 미쓰요의 에세이를 읽었을 때 봤을 거다. 우오노메 산타 씨 이름을.
'산타, 산타... 진짜 이름이 산타야?! 일본 이름에는 산타가 있구나. 왠지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네.'라고 생각했던 기억. 아마도 가쿠다 미쓰요의 『이제 고양이와 살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에서 본 것 같은데, 거기서 본 이름이 정말로 '우오노메 산타'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희미한 기억으로든 날조된 기억으로든 산타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 고양이와 살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에서 가쿠다 미쓰요 씨가 산타 씨의 만화를 상당히 좋아한다고 적어 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은, 나도 좋아하고 싶은 법. 기회가 생겨 산타 씨의 『행복의 히나타 식당』을 읽어 보았다.

총 25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단행본 만화책이다. 무슨 사연을 가졌는지, 젊은 엄마가 두 아이만 데리고 도쿄로 급작스럽게 상경해 음식점을 차리고 자리를 잡는다는 스토리가 이 만화책의 큰 줄기이고, 각 에피소드마다 하나의 일본식 정식이 소개되며 그 음식을 먹는 손님의 사연이 나오는 형식이다.
주인공 엄마 이름은 데루코, 첫째 아들 이름은 간타, 둘째 갓난아기의 이름은 히나코이다. 아이 엄마와 첫째 아들의 사연은, 에피소드가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단편적으로 보여주다가,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그녀의 사연이 나온다.
읽다 보면, '엄마는 강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에피소드 중 제일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카레라이스 편이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젊은 할아버지)의 사연. 젊었을 때 아내가 아파서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마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병원 외출을 하게 되고, 가족은 집에서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먹는다. 음식 같은 건 하나도 할 줄 몰랐던 남편은, 아내가 알려주는 카레라이스 레시피를 받아 적으려고 하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서 도무지 쓸 수가 없었다. 아이가 우는 아빠를 보고 놀라자, 엄마는 "양파 매운 게 이제 올라왔나 봐."라고 말해서 딸은 꺄르르 웃는다. 그리고 얼마 후 아내는 죽었다. 장례식을 치른 후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남편에게'라고 적인 노트를 발견한다. 공책에는 냉장고엔 뭐가 들었고, 조미료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많은 음식들의 레시피가 적혀 있었다. 딸아이 도시락 싸는 법까지. 여러 레시피 중, 가족이 다 함께 만들었던 카레라이스 레시피가 제일 자세히 적혀 있었는데 남편은 카레라이스만큼은 자꾸 그날 일이 생각나 만들 수 없었다. 남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딸아이를 키웠고, 사랑을 다했다.
이제 딸이 커서 결혼할 남자가 생겼다. 딸과 신랑이 히나타 식당에 들러 데루코 씨가 만든 카레라이스를 먹고 와, 맛있다며 기분 좋은 미소를 활짝 짓는다. 예비 신랑이 이렇게 말한다.
"사키는 표정이 참 좋단 말이야! 뭐랄까, 사랑이 듬뿍 담긴 요리를 먹어왔다고 할까. 솔직하게 맛있다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거, 그거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럴지도 몰라. 왜, 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잖아. 그 뒤로는 아빠가 엄마를 대신해 주셨는데 매일 저녁 다른 곳에 들르시는 일도 없이 곧장 집으로 오셔서 저녁을 만들어주셨어. 근데 처음에는 참 못하셨거든. 계란말이는 다 태우고. 손가락은 칼에 베여 상처투성이였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면 아빠가 만들어준 도시락이 창피해서 반 애들이랑 멀리 떨어져서 혼자 먹었는데 심술궂은 남자애한테 들켜서 난 엉엉 울어버렸어. 그래서 그날 아빠한테 '이제 도시락 싸지 말아 주세요.' 편지를 섰어. 다음날 꾀병으로 학교를 빠졌고 점심때가 되니 배가 고파서 뭐라도 먹으려고 부엌에 갔는데 냉장고에 아빠가 만든 볼품없는 감자 샐러드가 있었어. 감자는 덜 익은 데다 마요네즈도 잘 섞여 있지 않았지만.... 이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과가 들어 있어서 정말 맛있었어.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한참을 울면서 정신없이 먹었어. 다음날부터는 학교에 제대로 갔고 심술부렸던 남자애들한테 큰소리로 인사해줬어."
- 104~109쪽, 우오노메 산타, 『행복의 히나타 식당』
이 대사들이 나올 때, 아버지가 서툰 솜씨로 사과를 깎는 장면이 있는데, 사과 껍질을 한 번에 깎지 못하고, 계속 끊겨서 각진 사과 모습이 나올 때, 그리고 사과 깎는 데에 집중한 아버지의 뒷모습이 정말 울컥한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해당 장면을 다시 보는데 눈물이 난다...
정성이 듬뿍 들어간 따뜻한 음식이 맛있고, 사랑이 깃든 사소한 말과 행동이 내 마음을 따듯하게 하고, 뭔가 세상을 긍정적이고 가뿐하게 살도록 도와준다. 우리를 지탱케 해주는 건 이런 사소함이 아닐까 싶다. 사소하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진정성과 따듯함.
이 책에 실린 많은 에피소드들이 이런 따듯함으로 채워져 있다. 살면서 때론 상처를 입고, 그래서 살던 장소와 만나던 사람에게서 벗어나야 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삶을 살아가게 하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건 사랑과 진정성, 따듯함이 아닐까 싶다.
단행본 한 권, 짧은 분량의 만화책이지만, 울컥해서 많이 울었다. 가쿠다 미쓰요가 우오노메 산타 씨 작품을 왜 좋아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책에 적은 작가 이름이 진짜 산타 씨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