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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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힘이 쭉 빠졌다. 진이 빠졌다고 해야 할지, 혼이 나갔다고 해야 할지. 몰입감이 높아 화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된다. 책이 두꺼워 속독으로 빨리 읽으려던 계획은 몇 줄 읽고 깨졌고, 눈에 남은 발자국 따라 걷듯 600쪽이 넘는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씹으며 읽었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을 때 내 기운이 다 소진됐던 것이리라.

『우리와 당신들』. 이 책은 『오베라는 남자』로 유명한 프레드릭 배크만이 썼고, 그의 전작 『베어타운』의 후속편 혹은 上권, 下권 중 下권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등장인물 그대로, 배경도 그대로, 사건 사고도 그대로. 모든 게 『베어타운』의 뒷이야기지만, 『베어타운』과 느낌이 많이 다르다.

내가 『베어타운』을 읽으면서 설렜던 장면이 있었나, 캐릭터 중 누군가를 응원했던 적이 있나? 눈물을 흘린 장면은 있었나? 어쩌면 눈물은 흘렸을 수 있다. 마야의 이야기나, 벤이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고 그랬기 때문에 울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 속 어느 캐릭터도 응원한 적 없고, 설렜던 부분은 더더욱 없었다. 『베어타운』을 읽을 때 그 당시는 잘 모르겠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불편한 마음, 불쾌한 마음이 훨씬 컸다.

물론 『베어타운』에서 저자가 제기한 문제들, 사람들의 행동, 말 등 많은 부분에서 저자의 관찰력이 돋보여 좋았고, 생소한 아이스하키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 그곳이나 이곳이나 사람들은 똑같다는 걸 알 수 있어 유익했다. 그래도 몇몇 부분에서 아쉬웠고, 몇몇 설정에서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와 당신은』,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며 셀렜고, 꼭 스포츠 응원하는 것처럼 몇 몇 캐릭터를 응원했다. 소설과 뚝 떨어진 채 지켜보기만 하는 독자가 아니라 소설 속 그 장소, 그곳에 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

『우리와 당신들』의 전편이라 할 수 있는 『베어타운』의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빽빽한 숲으로 둘러싸인 베어타운, 한때 번성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이 가망 없는 고향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대도시로 떠나간 곳이다. 활기 없고, 쇠락한 일만 남은 것 같은 베어타운... 그곳 사람들이 유일하게 희망을 걸고, 그들의 모든 것을 그러모아 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이 있다. 곧 무너질 것 같은, 산산히 조각나 버릴 것 같은 베어타운을 묶는 것, 그것은 '아이스하키'다. 전국에서 딱히 부각받지 못하는 작은 도시의 아이스하키 팀이지만, 라이벌인 이웃 마을, 헤드와는 철천지원수이며 두 아이스하키 팀의 승패에 따라 폭행, 패싸움, 방화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곳이다. 그들에겐 아이스하키가 최고이며, 전부다. 그들이 부여잡고 있는 마지막 희망이자, 사랑, 집착.

이 마을에 하키 천재가 자란다. 소년은 사람들의 기대대로 잘 자라주었고 베어타운의 희망이 된다. 그 아이가 전국 규모의 경기에서 대활약을 한다면, 그래서 승리한다면 베어타운에 아이스하키 관련 어마어마한 예산이 배정될 것이고, 그 돈으로 낡고 볼품없는 인프라가 새롭게 구축되고,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건물이 건설될 것이며, 아이스하키 교육의 메카 그래서 전국에서 몰려든 아이스하키 꿈나무들로 넘쳐 활기차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일자리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경기가 있기 전, 하키 천재는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단장의 딸, 마야를 성폭행했고 그 사실을 안 단장은 선수들이 버스를 타고 원정 경기를 떠나기 직전에 신고해 하키 천재를 경찰이 연행하도록 한다. 하키 천재가 빠진, 베어타운 청소년 팀, 나머지 팀원들이 모두 최선을 다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패하고 만다.

우승이 날아가 버리자 희망이 꺾여 분노한 마을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는다. 그것은 성폭행을 당한 '마야'다. 사람들은 하키 천재보다 마야를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욕하고, 공격하며 갖은 괴롭힘을 가한다.

이것이 『우리와 당신들』의 전작, 『베어타운』의 주된 줄거리다. 결말은, 성폭행 피해자 마야가 친구 아나에게 총기 사용법을 익히고 총 쏘는 것을 연습한다. 그리고 성폭행 가해자이지만 '베어타운'의 모든 사람들의 두둔과 암묵적 용인으로 별일 없이 지내는 천재 소년에게 마야는 복수를 한다. 마야는 하키 천재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죽이지 않는다. 천재 소년은 자기 앞에 겨눠진 총 앞에서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얼마 뒤 부모님과 '베어타운'을 떠난다.



이것으로 마야는 복수를 제대로 한 것일까. 속이 시원할까. 상처받은 자기 몸과 마음이 다 아물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을 사람들, 학생들의 괴롭힘은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야의 기억 속, 마음속에서 끝없이 성폭행을 당할 때의 그 순간이 반복되어 지옥 속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마야는 절친인 아나와 함께 하루를 견뎌낸다.

사실 『베어타운』은 내가 읽기에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한 뭔가가 있었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의 내레이션도 어딘지 낯설고 끝까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물론 흥미롭게 읽었고, 아이스하키란 스포츠가 매력적이고, 저자가 갖은 사람들을 묘사를 날카롭게 해 엄청나게 많은 띠지를 책에 빽빽하게 붙이고는 메모에 메모를 했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마야처럼 여성이고, 무섭고 두렵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뉴스에서 누군가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을 접하면 그 사람을 동정하고, 어떨 때는 직접 물질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주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게 만들고 그래서 그 당혹스러움에 짜증과 화가 날 때가 있다. 『베어타운』의 몇몇 설정들, 마야 주위 사람들의 반응, 사건 전개,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듯한 내레이션 등등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뭔가를 아주 가는 바늘 끝으로 살짝살짝 내 손가락을 건드리다가 어느 순간 세게 찌르고 빼는 듯한 느낌을 줬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눈물이 찔끔 나는 분노, 불편.

그리고 저자가 베어타운의 몇몇 존재들을 자세한 설명 없이 너무 신비스럽게만 묘사하여, 부아가 살짝 치민 부분도 있었다. (왜 자꾸 말할 듯 말 듯 , 끝까지 말 안 하냔 말이냐! - 검은 재킷을 입은 사람들)




하지만 『우리와 당신들』은 『베어타운』에서 느낀, 불편한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여전히 전작처럼 보여줄 듯 말 듯 한 부분이 있지만, 곧 정체가 드러나고 사건에 연계된 사람들의 됨됨이, 각자의 사연을 수긍이 되도록 자세히 들려준다.

세상에 전적으로 나쁘기만 한 사람은 없다.

세상에 전적으로 좋기만 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픔, 상처를 반복해 묘사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하며 자책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이 대폭 줄어들었다. 마야의 동생인 레오가 누나가 겪은 일에 대한 복수의 일환으로 도발이나 폭행 등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데 차라리 자책하며 가만히 앉은 것보다 위험하더라도 레오처럼 움직이고, 끝장을 볼려는 태도는 어떤 카타르시스, 혹은 감정이입이 되었다. 또 이 작은 열두 살짜리 소년이 무슨 생각 할까, 곧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사고를 칠까 궁금해 계속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베어타운 아이스하키단의 훌리건이라 할 수 있는 '그 일당', '검은 재킷을 입은 사람'들의 존재도 수면 위로 드러나 뭔가 깔끔히, 말끔히 정리되는 게 있다. 그들도 대화, 혹은 커뮤니케이션 방식만 제대로 알면 충분히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의리가 있었는데 이 '의리'에는 뭔가 사람을 동조케 하는 어떤 힘이 있다. 이 힘은 '이 사람들이라면 믿을 수 있겠어'라는 만고 저자가 상상으로 만든 허상의 캐릭터에게 내 감정을 이입하고 그들을 응원을 했다. 부당한 일, 부당한 폭행이 벌어지면 그들이 나타나 주길 바라며.

그리고 베어타운과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팀이 쫄딱 망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지속할 수 있는 데에 '리샤르드 테오'라는 지역 의원 캐릭터가 큰 역할을 하는데 이 캐릭터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자, 남을 이용하고 등 처먹는 그런 캐릭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개 중간중간, 고구마 먹다 막힌 구석을 사이다로 시원하게 뚫어주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준다.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아이스하키 팀에게 지원금을 턱하니 배정한다거나 어둠의 경로로 다양한 수를 쓰는 것도 나는 사실 좋았다. 분명 그가 벌인 지탄받을 요소, 아첨, 거짓말 등은 정당하지 못하고 얍삽한 행동들인데도 소설을 읽으면 그게 용인이 되고, 어떤 쾌감을 독자에게 제공하다. 전형적인 캐릭터지만 프레드릭 배크만이 개성있게 캐릭터를 잘 만들었다고 본다.

또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인 '엘리사베트 사켈'.... 베어타운 하키팀에 새로 부임한 코치로 능력있다. 하지만 상당히 독특하고 남들과 감정 교감 불가하며, 생각하는 것도 희한해 주위 사람을 난감하게 만들지만 그래서 상당히 재밌는 캐릭터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존재해야 한다며 즐겁게 읽었다. 풀리지 않거나 아주 복잡하게 느껴지는 문제는 종종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열쇠가 딱 들어맞을 수 있다.

살아가면서 진심으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몇 번이나 될까? 

거의 무의미한 무언가를 전혀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기회는 몇 번이나 주어질까?

프레드릭 배크만, 『우리와 당신들』, 다산책방, 2019 (492쪽)

어쩌면 이 소설은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베어타운, 헤드 마을 사람들의 아이스하키에 대한 애정, 부부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게 이어진 선수들 혹은 어떤 일당들의 형제애, 투박하지만 서로 보듬고 든든한 존재가 되어 주는 사이들... 어쩌면 『우리와 당신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와 당신들』은 불쾌한 것도, 불편한 것도 없다. 자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오해받는 사람들(가령 티무나 비다르),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괴롭히며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사람들(빌리암)이 이 책에는 없다. 그들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들도 누군가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신뢰를 나누는 사람임을 보여주며, 감정적으로 깨지기 쉬운 면도 있음을 드러낸다. 모든 캐릭터에게 정과 사랑을 느끼며 책을 읽을 수 있다. 그 캐릭터가 겁이 많든,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폭행을 저지르고 살인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든.

이 소설에서도 언급되지만 공포물을 볼 때 제일 무서운 부분은, 공포의 대상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바로 직전이다.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 두려워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도 한 면만 봤을 때, 베일에 가려져 있는 모습만 봤을 때 우리들의 편견이 발동하여 오해하고, 함부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그런 줄 몰랐어요, 단지 잘 몰라서 오해했을 뿐이에요'라고 순진한 듯, 당황한 듯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어쨌든 누구나 그 사람의 다른 면, 따뜻한 면, 어린 시절 어떻게 자랐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살았는지 그것만 알아도 오해나 함부로 판단하고 단정짓는 일은 많이 줄어 들 것이다.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의 시간은 나만의 흐름대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간과 흐름에 말려 그 사람에게 맞춰진다. 보통 잡생각이라고 말하는 ‘자의식’도 조용해진다. 시공간의 흐름이 평상시와 다른 느낌. .. 좋은 책이나 재밌는 책을 읽을 때도 나의 시간과 공간은 평상시와 다르다. 나의 시공간은 책의 흐름, 작가가 의도한 흐름에 맞춰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사라졌고 내 시간은 책의 흐름에 맞춰졌으며, 나의 공간은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움직였다.
뭐, 빙빙, 돌려서 말하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재밌었다’라고 4음절로 짧고 간단하게 표현 가능하다.

원래 속독으로 빨리 읽으려던 책인데, 너무나 재밌게 잘 읽었고 이야기 전개나 캐릭터 몰입도가 높아서 저자의 흐름에 끌려 들어가 한 자 한 자, 빼놓지 않고 정독해 읽느라 완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정말 잘 읽었고, 좋았다. 다 읽고 나서 기운이 쭉 빠졌지만 이건 결말이 시시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잘 읽어서 그렇다(말미에 뭔가 급작스럽게 모든 일이 잘 해결되는 그런 게 조금 오글거리긴 했지만 이것 외엔 그리 흠잡을 데가 없다).


사람이란, 공동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작가가 자기가 만든 캐릭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던 소설.
프레드릭 배크만의 다음 작품도 기대한다.

덧붙임 > 『우리와 당신들』에 나온 두 개의 사랑이야기가 참 좋았다. 얼마만에 설렘설렘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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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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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을 소중하게 간직해.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후지마루,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2019 (45쪽)
절망하며 깨달았다. 아아, 또 실수했구나.
사람은 언제나 잃고 나서야 후회한다.
언제나 잃고 나서야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알고 있었는데. 행복은 반드시 망가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또 실수하고 말았다. 
이날, 아사쓰키 시즈카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후지마루,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2019 (60쪽)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책 한 번 펼치니 화장실 가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아니, 화장실 가고 싶은 생각은 아예 들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요즘 읽은 책 모두 다 재밌어서, '이 책도 재밌게 읽었다' 라고 쓰니 뭔가 내가 어떤 책이든 다 재밌게 읽는 사람 같은데, 아니요, 아니요. 저 꽤 까다로워요. 줏대 없어보일런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은 정말 재밌답니다. 추천해요. 乃

후지마루 作,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원제 : 時給300円の死神)은 일본 현대 소설과 라이트 노벨 그 중간 어디에 있는 소설이다. 정통 소설이라 하기엔 뭐하고, 그렇다고 가볍기만 한 라이트 노벨이라 하기에도 뭣하다. 딱 그 중간쯤.

그리고 신기한 것이, 이 책을 펼쳐서 첫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다 읽고 덮을 때까지 소설책을 읽는다기 보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본 것 같았다. 배경, 주인공, 줄거리, 대사 하나하나가 애니매이션을 보듯, 눈 앞에 그려진다. 특히나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을 본 것 같았다. 만고 나의 상상이지만, 저자인 후지마루가 호소다 마모루의 영향을 많이 받았거나, 혹은 그의 애니를 보는 것처럼 책 속 장면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글로 풀어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감독은 꼭, 호소다 마모루이길 바란다. 호소다 마모루의 감성과 꼭- 닮은 책이다.

책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삶에 찌들 대로 찌든 고등학교 남학생(이름 : 사쿠라)이, 절망에 사로 잡혀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정체 불명의 묘한 사람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

   "도와드릴까요? 당신에게 딱 맞는 일이 있습니다."
   "일?"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닿을 리 없는 목소리가 신기하게도 내 안에서 들려왔다. 심장을 붙잡힌 것 같아서 섬뜩했다.
  나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몹시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가 나에게 손을 휘휘 흔들었다.
   "조만간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 순간, 어느새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비에 녹아든 듯이. 인파에 섞여든 듯이.
  마지막까지 웃음을 흘리던 그 사람은 비 너머로 홀연히 사라졌다.
  남겨진 나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느 틈엔가 잿빛 공포는 물러갔다. 
  비일상과의 접촉은 어쩐지 얼떨떨했다.
후지마루,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2019 (13쪽)

다음날 같은 반 여학생(이름 : 하나모리)이 사쿠라네 집으로 '고용계약서'를 들고 왔다. 일자리는 시급 300엔(대략 원화로 3,000원 │ 요즘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완전 노동 착취 수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이른 아침에도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고, 때로는 한밤중에도 일을 한다. 부려먹긴 부려 먹긴 엄청 부려먹는데 시간 외 수당은 전혀 없다. 교통비도 없다. 밥값도 주지 않는다. 일 할 때 소요되는 부대 비용은 본인이 미리 받은 시급에서 무조건 써야 한다. 노동 착취 수준이 아니라 거의 노예 부려먹는 수준이랄까. 그나마 노예보다 나은 건, 언제라도 일을 못해 먹겠으면 고용 해지 서류에 사인하거나 도장 찍으면 곧바로 고용 계약이 해지된다(자유 의지로 계약을 맺고 해지할 수 있는 건 좋다).

사쿠라는 어이가 없을 만큼 열악한 알바라며 저어했지만 '즉시 채용!' '시급 선 지급'이란 조건에 마음이 끌렸다. 살짝 갈등 했지만, 사쿠라는 하나모리의 제안에 응한다. 그리고 이 노동 착취 수준의 알바가, 절망에 빠져 삶의 낙이 없던 사쿠라의 인생을 구원해 주는 계기가 된다.




사쿠라가 하게 된 아르바이트는 바로 사신(死神) 아르바이트다. 세상에 남은 미련과 후회 때문에 하늘 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죽은 사람들(이 책에서는 한자 어휘인 사자死者로 표현한다)을, 사신 알바생들이 도와주어 하늘 나라로 올라가도록 해준다.

사쿠라는 6개월 한시적으로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총 다섯명의 사자를 하늘로 올라가는 데 도와준다. 한때 자신의 여자친구 였던 '아사쓰키', 누군가의 변변찮은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구로사키', 약한 몸으로 아기를 낳다 죽어 사자가 '히로오카', 엄마에게 학대 당하다 죽임을 당한 여자아이 '시노미야', 그리고 같이 6개월 동안 사신 알바를 했던 '하나모리'... 사쿠라는 이렇게 다섯 명의 사자를 도와준다.

사실 이 소설이 참 괜찮은 것이 무작정 선(善), 착함을 강요하지 않는다. 등장인물 모두 평범하면서도 속에 웅크리고 있는 '약한 마음'이 '악한 마음'으로 바뀌어 못된 짓을 저지른다. 예로, 첫번재 손님이었던 선량하고 착한 '아사쓰키' 역시 '사쿠라'가 마음 아프거나 말거나 자신의 바람을 채우고 하늘로 떠난다. 사자들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하늘로 올라갈 때도 갑자기 뭔가 깨달음을 얻거나, 갑자기 개과천선하여 착한 사자로 변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못해 본 것을 해보고,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었던 자신의 추악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 순간 떠난다. 또 착하고 밝은 사자인줄로만 알았는데 마음에 늘 분노가 깃들어 있어 자길 도와주려는 사신에게 저주를 퍼붓고 마음에 상처를 준 채 떠난 사자도 있다. 사랑하는 아들을 괜히 낳았다는 생각에 괴로워 하는 사자도 있으며, 친어머니에게 직접 죽임을 당해 도대체 엄마의 진짜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 하는 사자도 있다.

보통 소설들은 그냥 '좋게 좋게', '그래야만 하니까', '일반 도덕률에 따라' 소설의 끝에 사자들의 응어리를 풀고 눈물 흘리며 '어머니를 사랑한다' 혹은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저승으로 떠나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고 직접 말하거나, 작은 깨달음을 얻고 훌쩍 떠난다.

이런 전개가 이해가 되고, 사자들이 그렇게 몇 날 며칠, 혹은 몇 년을 이승을 헤매다 갑자기 저승으로 떠나는 모습이 나는 이해가 된다. 저자 후지마루가 어떤 생각으로 전개를 이런 식으로 했는지 그 의도도 어렴풋 알 것 같다. 게다가 난 어설프게 좋게, 선량하게 끝맺는 것보다 이런 결말이 나는 더 좋다. (다만, 이 소설의 맨 끝은 해피엔딩으로 좀, 솔직 담백한 전개에 비해 밋밋하고 일반적 결말이다)

가족이기에 강요되는 '사랑의 덕목'들. 가족간의 '사랑', '책임감'은 실로 복잡한 것이라서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고, 사회가 강요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중산층의 행복한 가정을 이상향으로 제시해 왔고, 많은 가정이 이상적 모습의 중산층 가정을 따라하기 위해 많이 애써왔다. 겉보기에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사랑으로 넘치는 가족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뜯어보면 뭔가 미묘하게 어그러지고 부서져 서로가 서로를 학대(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리고 이 학대 속에는 무관심과 방임도 포함된다)하고, 외로워하고 괴로워하며 그러면서도 어떤 마음의 끈을 놓지 못한다.

가족의 복잡다단하고 심리적, 감정적 문제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구나.

이 소설은 겉으로는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사신을 저승으로 보낸다는 임무를 부여받은 주인공 이야기지만 이 소설의 핵심은 결국 '가족 간의 사랑'이다. '가족의 사랑과 책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로, 책을 덮고 난 후의 울림이 크다. 물론 사람마다 살아온 바 다르고, 가족, 가정에 대해 겪은 바 생각하는 바가 각기 달라 저자가 말하고자 한 내용이 가슴에 와닿는 정도는 모두 다를 것이다. 어쨌든 나는 신선한 느낌으로 잘 읽었다.

특히 다른 캐릭터보다 주인공인 사쿠라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사쿠라의 아버지는 본디 유명인이었는데 사고를 쳐서 하루 아침에 교도소에 들어가고, 출소 후 재기를 위해 시작한 사업은 실패하여 빚쟁이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은 이혼한다. 사쿠라의 어머니는 사쿠라를 언제나 사랑으로 대했지만, 이혼할 때 어머니는 선선히 사쿠라의 양육권을 포기한다. 이때 사쿠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배신감이리라. 언제나 자신을 사랑으로 다해 준 어머니가, 너무나 쉽게 자길 포기하고 떠나겠다니! 어머니가 자신에게 줬던 사랑까지도 의심스럽다. 집에 돈이 없어 굶어야 하는 것보다, 큰 고민도, 큰 안타까움도, 큰 괴로움도 없이 자길 떠난 엄마 때문에 삶이 힘들었다.

어쨌거나 사쿠라는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정리한다. 요건 체념이 아니고 어머니에 대한 '이해'라 할지 '수긍'이라할지, 그런 것.

이 책은, 이런 마음의 갈등, 상처, 응어리를 '소박한 행복'에서 찾는다. 일상에서 나눌 수 있는 재밌지만 실없는 농담들,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가볍게 상상하고 꿈 꿔보는 미래와 장래 희망, 딱히 이렇다할 내용은 없어도 삐뚤빼뚤 정성껏 쓴 자식의 편지, 하교 후 집에 들어섰을 때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엄마의 미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손을 잡고 이곳 저곳을 놀러다니고, 작은 일이지만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자기 과거와 자기 생각을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 그 기쁨, 그 행복이 참 의미있다고 표현한다. 저자는 이것은 '작은 기적'이라고.

결국 이 아이가 여행을 떠나면 다시 잊어버릴 허망한 기억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음 세상으로 이어나가면 분명 언젠가, 잊어버렸을 무렵에 작은 행복으로 만날 수 있다. 잔혹한 세상에 한 줌의 호의가 더해지면 분명 세상은 멋있어진다. 

후지마루, 『너는 기억 못할테지만』, 아르테, 2019 (363쪽)

우리와 우리 삶을 지탱하는 건, 너무나 평범해서 내일이면 잊을 소박한 일상과 웃음, 농담들이 아닐까 싶다. 기억에서 너무나 쉽게 잊히는 소박한 기쁨들, 행복들. 하지만 이런 것들로 우리 삶은 이뤄지고,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막연하게 '희망'을 안고 오늘 또 한 발 내딛는 것. 이런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릴 이루는 삶, 인생일 것이다.

작은 호의, 작은 배려, 작은 농담, 작은 인정, 작은 기쁨, 작은 안도, 작은 행복.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는 어떤 강박에도 결박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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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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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살, 촉망받는 뇌과학자.


여느 아침처럼 출근하려고 일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눈 뒤쪽으로 찌르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느낀다. 예전부터 편두통을 앓아왔기 때문에 운동하면 나아질까 싶어 운동 기구에 오른다. 하지만 운동 기구 위에서 달리는 자신의 몸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바라보던 자신의 몸이 아니다. 자기 눈높이가 아니라, 전지적 시점, 저 우주에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는 것 같다.


운동하는 것보다 샤워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욕실로 간다. 그런데 욕실의 불빛이 너무 밝아 눈이 아프고, 자신의 몸을 때리는 샤워기 물의 느낌이 기묘하고 낯설다. 자신의 몸이 자기 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과 자신의 구분, 사물과 자신의 구분이 잘되지 않는다. 기묘하고 낯선 느낌, 자신에게 이상이 생겼음을 알아채고 욕실 밖으로 나온다. 이때 자신의 오른쪽 근육들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오른쪽 팔이 꼭 자신의 몸이 아닌 양 축 처져 자신의 몸뚱이를 때린다. 이때 깨닫는다. 뇌, 졸, 중.


그녀는 두려웠을까, 무서웠을까, 어땠을까.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와 이거 멋진데!’ 일시적으로 황홀한 마비 상태에 빠졌다. 내가 이렇게 복잡한 뇌의 작용을 예기치 않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실은 다 생리적 이유를 알고 있어서였다는 생각이 들자 묘하게 우쭐한 기분이 되었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자신의 뇌 기능을 연구하고 그것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 과학자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인간의 뇌가 현실을 인지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놀라운 통찰을 안겨주는 뇌졸중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9, 윌북 (30쪽)






이 책은 37살, 촉망받는 하버드대 뇌과학자가 겪은 뇌졸중 경험과 극복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경험과 더불어, '우리의 뇌는 무엇이고, 행복을 위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를 이 책에 담았다. 단순히 뇌졸중 경험을 담은 책이 아니다. 환자, 환자 가족에 대한 현실적 조언을 담은 책도 아니다.


뇌 과학자답게 최대한 사실적이고 논리적인 과학적 서술로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뇌과학자로서 가지고 있는 지식을 뇌졸중 경험과 접목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올바른 지식'을 전하고, 그들에게 '힘'을 보태주기 위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 머릿속의 좌뇌와 우뇌가 우리 몸의 명백히 다른 분야를 처리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뇌졸중 경험으로 좌뇌와 우뇌는 확실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저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좌뇌와 우뇌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이 이해를 바탕으로 누구나 '행복을 선택'할 수 있음을 알리고자 이 책을 쓴 것이다.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천적으로 뇌혈관 기형이었다. 오랜 세월 편두통에 시달렸는데, 추측하기로 오랜 세월 미량의 뇌출혈이 계속 있었고 이것이 편두통의 원인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뇌졸중을 일으킨 날, 소위 피떡이 터져 좌뇌의 세포가 피로 뒤덮였고, 이로 좌뇌가 관장하는 많은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 좌뇌가 이런 쇼크 상태에 빠지자, 그동안 잘 인지하지 못했던 우뇌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졌고 저자는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왜 이러지? 예전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나? 이런 기분이 든 적이 있었나? 마치 편두통 같아. 뇌 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집중하려고 애쓸수록 생각들이 휙휙 지나가 버렸다. 내게 필요한 대답과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서서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내 삶과 나를 단단히 묶어놓았던 끊임없는 뇌의 재잘거림이 잦아들자 그 자리에 평온한 행복감이 밀려와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두려움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가 이런 낯선 상황에 놀라 나를 공포 상태로 몰아가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좌뇌의 언어 중추가 침묵하고 삶의 기억들이 저편으로 멀어지면서 편안한 감정이 찾아왔다. 고차원적인 인지능력과 일상과 관련된 세세한 부분들이 기억에서 사라지자 내 의식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의 수준으로 도약한 것 같았다. 마치 우주와 ‘하나가 된’ 듯했다. 


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9, 윌북 (26-27쪽)


그녀의 정신은 열반의 경지에 들어갔지만, 신체 능력과 인지 기능은 갓난아기 수준으로 돌아갔다. 멍하고, 말뚱말뚱 쳐다보는 얼굴, 침을 흘리고 제대로 일어나 걷지도 앉지도 못한다. 몸은 37세, 여성이나 모든 기능이 갓난아기로 돌아간 것이다.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에 어머니가 도착한다. 어머니는 모든 걸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저자를 갓 태어난 아기처럼 보살피고 교육한다. 침대 위에서 몸을 흔들흔들거리며 몸 뒤집기 하는 갓난아기를 보고 응원하듯, 몸을 흔들흔들거리며 앉는데 애쓰는 갓난아기를 보고 응원하듯,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는 갓난아기를 보고 응원하듯 저자의 어머니는 놀라움과 기쁨으로 아기를 돌보는 산모처럼 저자를 돌본다. 불안해하지 않고, 불행해 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으며.


어머니의 지극하고 현명한 케어로 저자는 우뇌의 행복에만 머물지 않기로 한다. 어머니가 있는 세계, 충분히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길 바라며 고통스러움이 뒤따르는 좌뇌의 세상으로 조금씩 돌아오려고 애를 쓴다. 이 모든 것은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고, 응원하고,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어머니 덕분이었다.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어머니의 절대적인 믿음이 저 행복의 세계에서, 논리적이고 소통의 세계로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를 이끈 것이다.


놀라운 책이다. 뇌과학자가 겪은 뇌졸중도 놀랍지만 이를 극복한 그녀의 의지와 노력도 놀랍고, 단지 뇌졸중 극복에 머물지 않고 본인이 겪은 것을 과학자답게 최대한 논리적이면서도 사람들이 이해 가능토록 설명하려 애쓰는 것도 대단하다.


사실 이 책은 뇌졸중에 걸린 사람이 쓴 책치고 너무나 논리 정연하고, 생생하다. 이에 대해 그녀는 좌뇌에 출혈이 있었지만 우뇌는 멀쩡했었다고 설명한다. 우뇌가 당시 모든 걸 다 인지했고, 후에 뇌졸중에 차도가 있자 관련 전문가 자신이 겪은 것을 재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할 때 조금씩 과거가 달라지듯, 그녀의 설명도 완전한 것이 아닐 수 있겠지만 완전히 허구는 아니라 생각되며 거의 대부분 진실하다 여겨진다.


이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뇌졸중에 걸린 분, 뇌졸중을 앓고 있는 가족을 둔 분, 뇌에 관심이 있는 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데 관심 있는 분, 행복에 관심 있는 분 등등 각기 이 책을 다른 느낌으로, 다른 생각으로 읽을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딸의 재활을 돕는 어머니, 저자 스스로의 노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두고두고 기억해 나의 지침으로 삼고 싶다.


이하 인상 깊었던 구절들.


- 우리는 회복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히 구분했다. (90쪽)


- 나는 집중력을 발휘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완성한 후의 짜릿한 성취감 때문에 더 하고 싶었다. (93쪽)


- 읽는 법을 다시 배우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훨씬 힘들었다. (...) 읽는다는 개념 자체가 어려웠다. (95쪽)


- 읽기를 배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옆에서 지속적으로 동기를 부여해야 했다. 먼저 꼬불꼬불한 그림마다 각기 이름과 연관된 소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했다. 이어 꼬불꼬불한 그림들이 모여 특별한 소리의 조합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소리의 조합이 길게 연결되면 의미를 가진 하나의 소리, 즉 단어가 만들어졌다! 맙소사, 한번 생각해보라! 여러분이 이 책을 읽는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뇌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사소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96쪽)


- 주의의 부정적인 기운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가 어려웠다. (...) 바쁜 세상을 마주하는 것은 두렵고 겁이 나는 일이었다. (99쪽)


- '평화는 생각하기 나름이야. 평화를 이루려면 지배적인 왼쪽 뇌의 목소리를 잠재우기만 하면 돼.' (107쪽)


- 나의 뇌는 새로운 자극에 흥분했고 적절한 수면으로 균형을 맞춰주면 기적이라 할 만한 치유력을 보여주었다. (107쪽)


- 가령 시각의 경우, 한쪽 눈에 안대를 씌워 시각 피질 세포로 들어오는 자극을 막으면 이 세포들이 인접 세포들과 접촉하여 다른 할 일이 없는지 알아본다. 나는 주위 사람들이 뇌의 가소성을 믿고, 그것의 성장과 학습 및 회복의 능력을 믿어주기를 바랐다. 세포의 물리적 치유 과정에서 충분한 수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08쪽)


- 나의 경우 회복 과정에서 수면의 치유력이 정말로 중요했다. (109쪽)


- 주위 사람들의 격려가 필요했다. 내가 아직 가치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내겐 차근차근 실현시켜나가야 할 꿈이 있었다. (110쪽)


- 에너지가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을 아주 신중하게 선택해서 배분해야 했다. 나는 가장 절실히 되찾고 싶은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고 다른 일에는 기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111쪽)


- 도움을 받으며 매주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갔다. (114쪽)


- 성공적인 회복을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는 매일 내가 거둔 성취를 축하하며 내가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가에 대화의 초점을 맞췄다. (...) 내가 회복에 성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비결 중 하나는 회복 과정 중에 현 상황을 넘어서려고 의식적으로 계속 노력했다는 점이다. (115쪽)


- 내가 회복에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모든 과제를 더 작고 단순한 과정들로 나눌 줄 아는 능력 덕분이었다. (116쪽) 


- 그리고 회복하려는 내 시도에 응답해준 뇌에게 하루에도 수천 번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 나름이다. 나는 가급적이면 내 인생에 고마워하는 쪽을 택했다. (126쪽) 


- 지금은 닌텐도 '두뇌 훈련 게임'과 '말랑말랑 두뇌 교실'로 연습하고 있다. 뇌졸중 환자뿐만 아니라 마흔이 넘은 사람들도 이런 두뇌 훈련 도구를 활용하면 좋다. (127쪽)


- 몸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기분이 어떨지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127쪽) 


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9, 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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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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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벽돌 3권 격파! 매일 밤 눈알 빠지게 읽었다. 책 한 권, 한 권이 다 두툼하고 무거워 어디 들고 다닐 수 있어야지!! 게다가 『유라시아 견문』 3권은 1, 2권보다 3권은 더 두껍다. 매일 밤 씻고 전기매트 빵빵하게 틀어놓은 아늑한 이불 세상 속에서 책장을 넘겼다. 매일 밤 읽었다. 마치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천일야화'를 읽는 기분으로 유라시아의 여러 나라에 깃들어있는 과거와 지금 현재를 읽었다. 내 몸은 이불 속 아늑한 곳에 있으니, 책 속에 펼쳐지는 유라시아 격동의 서사시가 흥미롭고 재밌게 느껴졌다. 분명 이 재미는, 웃기는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20세기 유라시아 대륙 이곳저곳, 구석구석 피바람 불지 않은 곳이 없다. 구석이라서 더 잔인하고 잔혹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이 책이 역사 한 장면마다의 잔혹성에 집중하지 않고, 길고 넓은 역사의 흐름 그 줄기를 따라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니 어떤 유익함이랄까. 이런 데서 느껴지는 재미가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읊는 역사는, 우리에게 대부분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미지의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 다닐 때 세계사를 배웠고, 성인이 된 후에도 틈틈이 취미 삼아 세계사 관련 책을 꾸준히 읽어 왔는데 대부분 낯설고 신기하고 기이했다. 저자가 견문한 나라들, 분명히 내가 뻔히 보고 있는 세계 지도에 그려져 있는 나라들이지만, 미처 그 나라들에 대해선 잘 모른다. 우리가 포르투갈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우리가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었던 사라예보에 대해선 잘 알고 있는가(잘 모른다. 항상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이야기할 땐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보스니아 사라예보에 갔다가 세르비아 계 청년의 총에 죽어 전쟁이 발발했다'고만 할 뿐 그 이전과 그 이후의 '보스니아', '세르비아'에 대한 이야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헝가리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는, 유라시아 극동부지역은?!!




내가 아는 것은 세계사의 극히 일부 이야기고, 그것도 영미와 서유럽 사람들에 의해 작성된 세계사다. 딱 곰브리치가 새파랗게 젊었던 26살에 할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내며 썼던 재밌지만 어리숙한 『곰브리치 세계사』 수준일 것이다. 곰브리치가 쓴 세계사 책을 읽으며 많이 의아했는데, 책 제목은 '세계사'이지만 세계사라기보다는 '축의 이동 이야기'였다. 고대 그리스부터 이야기하기엔 인류가 탄생 직후부터 우주 문명 못지않게 발전했던 것 같으니 에둘러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이야기 짧게 하고 그다음 장구한 서유럽의 역사를 시작한다. 그리스와 로마의 위치가 모두 '서유럽'과 떨어진 곳에 위치함에도 귀결은 서유럽이다. 이외의 지역은 검은색으로 칠해진다. 지중해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웠던 그리스와 페니키아 이야기도 페니키아는 검은색이다. 엄연히 카르타고 등 북아프리카, 지중해 여러 섬에서 '오래전부터 살던' 사람들임에도, '세계사'에서 침입자, 이방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서술하며, 배제되어야 할 외부자로 묘사한다. 그 사람들에 대한 역사는 서술하지 않는다. 서유럽과 이어진 혹은 (당시 서유럽 지성인이 연결되고 싶은) 축만 있을 뿐 결코 온 세계를 다 담지 못하는데도, '세계사'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게 딱 서유럽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사이고, 우리도 이 정도의 세계사만 알고 있다. 아무리 이집트, 중동의 여러 대국, 제국들은 싸운 대상으로만 언급되어 있다. 세계사의 중심은 서유럽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자국 중심주의 시각을 지금의 서유럽인들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와 중국에 대한 이야기도 허울만 있을 뿐이고, 동유럽에 대한 이야기도 극히 적다.


그냥 내가 아무리 세계사 책을 읽어도, 세계사 상식이 협소하구나 싶었는데 이번에 『유라시아 견문』을 읽고 그 이유를 알았다. 그동안 내가 봤던 책들이 철저하게 동유럽,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등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랬기 때문에 세계사 책을 아무리 읽어도 내 지식은 넓어지거나 깊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유라시아 견문』을 읽고 조금 눈을 뜨게 되었다. 우리가 노는 물(?)이 얼마나 좁은지를. 『유라시아 견문』에 나오는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내가 몰랐던 이야기다. 아니, 관심이 없어 몰랐던 게 대부분. 나의 눈은 대체로 미국, 아니면 서유럽이다. 요즘은 휘게, 라곰, 팬츠드렁크 등 소확행 바람을 타고 북유럽에도 조금 시선을 돌린다(근데 이 북유럽 바람도 북유럽에서 직접 불어왔다기 보다, 일본을 거쳐 와서 관심을 갖게 됨).


『유라시아 견문』을 읽고 진짜 '세계사'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단연, 동남아시아와 인도에 대한 이야기가 탁월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 이야기는 1권과 2권이 수록되어 있는데 읽고 말 그대로 개안(開眼)한 느낌이었다. 왜 요즘 지성인들이 동남아와 인도를 주목하라고 하는지, 이 책을 읽고 깨우쳤다. 동남아와 인도는 부상할 수밖에 없겠구나. 단지, 불어나는 인구 때문만은 아니다. 흐름이, 이쪽으로 흘러간다. 그동안 인도나 동남아를 유럽의 식민국가로 여겨왔고, 이후 독재와 공산체제 때문에 우리가 무지하거나 무시했던 바 큰 것 같다.


이번 3권에서는 동유럽과 러시아를 완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특히 동유럽. 옛날 소련에 속해 있던 나라여서 그런지, 우린 동유럽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 그리고 우리도 곡절 많은 20세기를 지내오면서 나라는 두 동강나고, 그래서 하나의 프레임으로밖에 세상을 읽지 못하는데 이게 우리의 발목을 크게 잡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저자와 폴란드 사상가 '리샤르트 레구트코'와의 대화다. 대화보다 인터뷰에 가깝다. 1949년 공산체제 하의 폴란드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반체제 운동(반공)을 한다. 그러다 소련은 무너지고, 폴란드는 자유민주화의 길을 걷게 되고 EU에 가입한다. 현재 리샤르트 레구트코는 EU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공산체제에서 살다가 자유민주주의에서 사는 리샤르트 레구트코의 성찰이 깊이 있다. 단순히 공산주의나 자유민주주의를 비난하기보다 이분처럼 두 체제의 비슷한 점, 장점과 단점을 찾아 숙고하고 고쳐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이 분 주장처럼 분단국가에 사는 나도 느끼는 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쌍둥이처럼 너무 닮았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극동 지역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북극 항로 개척도 문제도 있고 우리에게도 지정학적으로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유라시아 견문』는 세계사 인식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다만, 저자의 '빠'가 좀 거슬린다. 1권에서는 중국빠, 2권에서는 이슬람빠, 3권에서는 러시아... 그것도 푸틴빠다. 대놓고 푸틴을 좋아한다고 한다. 특히 1권 읽을 때 충격이 컸다. 우리나라에서 듣도 보도 못한 친중(정확히 말해 친중보다 친중화)적 태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2권을 읽고, 3권이 되면 그나마 익숙해져서 괜찮다. 저자가 푸틴을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여유 있는 마음으로 '아, 좋아하시구나' 하며 가볍게 넘긴다.


내가 이 책을 소화하기로는, 저자가 서유럽이 장악하고 있는 지금이 비정상적 상태로 보며 옛날 이슬람, 인도, 중국이 강성했던 때를 '정상시대'로 보고 있다. 큰 충돌 없이 동과 서가 교류했고, 벵골만과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이 중국과 아프리카까지 이으며 교역했다고 보는 것이다. 충돌보다는 공존의 시기였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과연 그랬던가. 모두 공존하고 화합했던 행복한 시대였던가. 인류가 아프리카 초원에 발을 딛고 이동하기 시작한 이후로, 킬링필드가 만연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비정상의 시대, 정상의 시대 구분을 못하겠다. 희구하는 시대가 없다. 언제 어디서나 핍박받는 사람은 존재해 왔다. 태평성대였다던 고대 그리스 때도, 로마제국 때도 그랬으며, 중국이 잘 나가던 때도 그랬고, 이슬람이 잘 나가던 때도 그랬고 결코 정상이었던 시대가 있었나. 아라비아 상인들이 바닷길을 이용해 동과 서를 무력 없이 이었다는데, 국가 무력 없이 동과 서를 이은 건 맞지만, <처용가>만 보아도 아라비아 상인이 남의 여염집에 들어가 여성을 겁탈한 이야기가 있듯 그 시대를 아름답게만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게 과연 스케일의 문제일까. 나는 나라 이름, 정치/경제 체제, 지리에 따른 문화/풍습은 다를 수 있어도 인간 본성은 똑같다고 본다. 인간이 똑같은데, 그 인간들이 사는 시대를 정상의 시대와 비정상의 시대로 나눌 수 있을까.


다만, 저자가 말했던 '수신과 수양'엔 동의한다. 필히 지금 세상이 수신과 수양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보며. 그게 종교가 됐든, 철학이 됐든 간에 말이다(저자는 종교색이 짙은 나라를 견문하므로 철학보다 종교 이야기가 많이 언급한다). 저자는 1894년, '동학'을 말한다. 지금 우리와 너무나 멀어져 버린 단어, 그 정신. 저자의 주장에 솔깃하다.


역시, 사람을 설득하고 움직이는 건 역사의 재해석이다. 과연 누가 동학을 우리의 길로 만들어 줄까. 티비에 나오는 정치인들 얼굴을 떠올리면, 암울해진다.



덧> 3권, 바티칸 챕터에서,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 이야기를 하며 교황이 나고 자라고, 오랜 시간 활동했던 아르헨티나에 대해 소개한다. 유라시아 견문이지만, 우리에게 낯설고 먼 남아메리카 이야기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 그러고 보니 저자는 '교황빠'이기도 하다. 저자는 참 많은 사람과 많은 나라를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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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네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그림은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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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뭐라고 해야 할까. 감수성 짙은 운문집이라고 해야 할까. 한때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중2의 감성' 혹은 옛 시절 싸이월드 갬성이라고 해야 할까. 폄하나 놀림의 의미로 쓰는 게 아니라, 읽다 보면 그 시절 우리들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진지하게.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은' 님의 에세이집이다. 에세이집이라고 해도 산문이 아닌 운문 형식이라 시집 같다. 이 책에 실린 글과 그림은 7년 동안 작업한 글과 그림 중 인기 있었던 작품과 새로운 작품을 실었다고 한다. 이 책에 정확한 설명은 없지만 네이버 그라폴리오에 올리셨던 작품을 이 책에 실은 듯하다. 음, 그러고 보니 그라폴리오 감성도 느껴진다.


이 책에 실린 글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기보다 ''특정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이다. 가령 처음 사랑에 빠진 사람, 처음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고 가슴앓이 하는 사람, 꿈과 현실의 간극을 느끼고 있는 사람, 본인의 글과 그림이 남들에게 전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읽혀 힘든 사람 등. 나는 아쉽게도 이 시기를 다 지나 버린 사람이라 새롭게 공감되는 건 크게 없었다. 다만, 옛날 내가 떠올랐고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 내 상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별에 관해-

이 책에서 저자는 이별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데, 나는 언젠가부터 이별에 힘들지 않게 되었다. 아마 옛날 같았으면 몇 날 며칠, 몇 달 혹은 길게 몇 년을 마음 아파하며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눈물 자국과 함께 일기장에 남겼을 테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사실 한 달 전에 3년 정도 만난 사람과 헤어졌다. 이별 당일에 잠깐 눈물이 났었고 이후로 울지 않는다. 일기장에도 '헤어졌다'로 끝. 나이 탓일까. 마음속에 꽉 차 있던 감수성이 나이가 들어 다 증발해 버렸는 것인지도. 혹은 내가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걸까. 그건 아니다. 지금도,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그 사람이 제일 예쁜(남자지만 예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미소를 지었다. 지금도 그 미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그리고 그 사람 나름대로 나에게 잘 해주어 섭섭한 것도 화나는 것도 없다. 그냥 나랑은 좀 아니라서 헤어졌다. 안 좋아서 헤어진 게 아니라, 뭔가 미래를 계속 함께 하기엔 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헤어진 것. 어쩌면 나이를 먹을수록,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기 때문에 헤어짐에 크게 미련도 아쉬움도 슬픔도 없는 것 같다. 혹은 아직 내가 덜 외로운 사람이거나. 그리고 나는 본인만의 뜻을 세운 사람이 안락하고 사랑이 가득한 집을 떠나 혼자만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을 상당히 멋있게 생각하는데, 그 생각 때문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감성이 메말라 간다고 해야 할까,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고 해야 할까. 우선은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변하는 나 자신을 순순히 인정한다.


꿈에 관해-

사실 나는 꿈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행복했던, 기분 좋았던 순간이 언제였냐면 하루하기로 한 분량만큼 다 해냈을 때 온 세상을 다 얻은 만큼 기쁘고 자신만만했고, 행복하고 기분 좋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식대로 말하자면 완전한 '소확행'을 맛보았다. 지금도 자존감 떨어졌을 때, 하루에 해야 할 일보다 조금 더 보태 약간 무리다 싶은 분량만큼의 일을 잡고 해본다. 처음엔 싫고, 짜증 나고, 겁나고 때로는 그냥 마냥 하기 싫어서 미루기도 하는데 어느 순간 차분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行하다 보면 그날 잡았던 무리한 계획을 다 해낸다. 아마도 집중력 덕분에 시간을 아낀 것일 테다. 이런 날이면 정말로 득의양양하고 뭐든 다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친다. 이때가 나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고, 갈등 중인 사람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되고 그 사람도 나를 좋게 생각할 것 같은 막연하지만 단단한 자신감. 이런 순간을 몇 번 맛보고 나니까 꿈이라는 게 없어지고 단지 목표와 계획만 남았다. 그래서 꿈을 이뤄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냥 오늘 하루만 남아 있게 되었다. 사람들의 나에 대한 판단도 내가 이겨낼 수 있는 가벼운 것이 되어버린다.


​사랑이나 꿈, 기타 많은 것들로 스트레스받고 마음 아파하는 것들을 가볍게 생각하는 건 전혀 아니다. 그냥 각자의 인생마다 흐름이 있고 그 사람이 놓인 환경이나 시간, 나이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책을 읽고 느꼈다.


'예전에 나도 이랬지, 지금의 나는 이렇지.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앞으로의 예전과 지금의 나와 달리,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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