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
로베르트 융크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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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재밌다! 책띠지에 적힌 버트런드 러셀의 말처럼 '소설보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새롭고 가치 있는 정보가 넘치는 책'이다. 책 두께도, 벽돌만큼이나 두껍고 말이지! 튼튼한 양장!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리처드 파인만의 에세이를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파인만이 겪은 로스앨러모스의 이야기(소위 맨해튼 프로젝트)도 정말 재밌게 읽었다. 진지하고 위험했던 당시 분위기를, 파인만 특유의 유머와 재치로 밝고 재밌게 풀어써놓았다. 가령, 당시 미친 듯이 돌아가던 상황들, 허술한 보안(작업자들이 쓰던 개구멍이 있었는데, 파인만은 관계자에게 바로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개구멍으로 나갔다가 정문으로 들어오기를 무한 반복하여 개구멍의 존재를 일러준다), 금고 털이(기밀문서를 모두 금고 안에 보관했는데 그 금고 비밀번호 맞춰서 사람들 놀라게 하는 것이 파인만의 소소한 취미였다) 등등 여러 재밌는 에피소드가 한가득 적혀 있었다. 물론 당시 상황이 재밌거나 마음 놓고 웃을 상황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간이 모인 곳에 웃음거리는 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 즈음부터 제2차 세계대전 후까지 핵 관련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묶어 놓은 책이다. 시작은 원자 과학 관련 당시 최고 수준이었던 '괴팅겐 대학교'에서부터 시작해서, '오펜하이머의 청문회'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중에 유명해진 핵물리학자들의 학생 때 일화라던가, 운명적인 사건들을 서술하는데 당시 상황이 양차 대전과 그 끼인 기간(먼 훗날에는 1, 2차 세계대전을 한 묶음으로 묶지 않을까)이라 그런지 상당히 극적이고, 기구한 사연들이 펼쳐진다. 보통은 유대인 박해를 피해서, 유럽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했다가 기회를 잡아 아주 열심히 공부해 연구 성과를 냈는데 나치의 세력이 확장되는 바람에 또 그곳에서의 생활도 힘들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지금 우리 시각에서 보면 모두 기구한 운명의 사람들. 부유하고 무난하게 살다 간 과학자의 이야기도, 그 사연은 그 사연대로 흥미진진하다. 


이 책이 다루는 시기(1, 2차 세계대전)나 대상자(나중에 핵물리학자로 명명될)들의 이야기는 사실 재미없으려야 재미없을 수가 없다. 하나하나 톰 아저씨의 미션 임파서블처럼 난제, 혹은 불가능해 보였던 문제를 푸는 이야기들이고, 역시나 정치적 사건이 엮인 사건과 사연이기 때문에 글 쓰는 사람이 질만 쓴다면 재미는 보장이다. 


이 책을 집필한 로베르트 융크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글을 쉽고 재미있게 잘 썼다. 어떻게 보면 무한정 딱딱하고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대중에 시각에 맞춰 말랑말랑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었다. 



원자를 발견하고, 원자를 이해하고, 그 원자에 힘을 가해 다른 물질로 변화 시키고. 이 모든 과정들을, 이렇게 적으면 너무나 간단하고 쉽게만 느껴지지만, 이 한 문장을 실현하기 위해서 인류 지성사에 손꼽힐 만한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천재들의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그 천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살아있던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와 자료에 의거해 집필된 책으로, 지금보다도 앞으로 더 사료적 가치가 있을 책이다. (재미는 지금도 있고요.)


근현대 과학자들에게 관심 있으신 분들께, 강추! 

팟캐스트 '과학과 사람들, 격동 500년!' 유의 방송을 즐겨 청취하시는 분들께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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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겨울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5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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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만 보면 겨울이 제 세상일 것 같은 무민이지만, 무민은 조상 대대로 매해 11월부터 4월까지 겨울잠을 잤었다. 무민들은 겨울이 다가오면 깊은 동면을 위해 전나무 잎을 잔뜩 먹었고, 침대 옆에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후 곧장 필요할지 모를 이런저런 물건들을 희망 섞인 마음으로 잔뜩 쌓아놓았다. (실제 필요할 일은 전혀 없겠지만, 혹시나 몰라 조바심 내며 갖다 놓게 되는 물건들 말이다. 삽, 돋보기, 풍속계 같은... 응?!) 


여러 준비 끝에 드디어 무민의 집에 겨울이 찾아왔고, 모두 깊고 깊은 겨울잠에 빠져들었다. 무민의 집은 고요하고 평화로웠으며 심지어 집에 있는 시계들마저 멈춰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 달빛이 무민의 거실을 헤매다 무민의 침대까지 닿았고 곧장 무민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리고 무민 역사상 처음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게 된다. 겨울 달빛이 무민의 잠을 깨워버렸고, 이제 무민이 아무리 애를 써도 겨울잠을 잘 수 없게 된 것이다. 


무민은 집안의 모든 모습이 익숙했지만, 또 다른 한 편 집안의 모든 풍경이 너무나 낯설고 두려웠다. 무엇보다 끔찍하게도 혼자 내팽개쳐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서워진 무민은 무민마마에게 달려가, 엄마를 흔들어 깨워봐도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다(절대-). 외로움이 밀려들었고 무서웠다. 그래서 무민은 절친인 스너프킨이 겨울 여행을 떠나며 남기고 간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안녕.

겨울잠 잘 자고 슬퍼하지 마. 따뜻한 봄이 오는 첫날, 내가 다시 와 있을 테니까. 

댐은 만들지 말고 내가 올 대까지 기다려 줘. 


- 스너프킨이.


그런데 어떻게 해. 지금은 스너프킨이 온다는 봄의 첫날이 아니다. 무민은 스너프킨의 편지를 읽고, 또 읽다가 나중에는 편지 내용을 외워서 읽기 시작한다. 속삭이다가, 조금씩, 조금씩 점점 더 큰 소리로. 하지만 무민은 모두 잠들어 있는 집에 있어 봐야 아무 소용도 없겠다 싶어서 남쪽으로 스너프킨을 마중 가기로 결심한다. 


눈 덮인 세상은 무민이 알던 세상과 사뭇 달라 낯설다. 생기 넘치던 세상이 어딘가 생기를 잃고 죽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길을 걷던 무민의 눈앞에 황량하고 높은 산들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보고, 만약 스너프킨이 자신이 지금 스너프킨을 만나러 가고 있음을 안다면 어떻게 해서든 가겠지만, 현재 스너프킨이 이 상황을 모르니 무민이 혼자 못 가겠다고 생각한다.  무민은 자신이 남겼던 발자국을 따라 천천히 되돌아갔다. 


그런데 아까 없던 발자국이 무민의 발자국 곁에 새로 나 있었다. 무민은 새로운 발자국에 눈을 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계속 따라가다가 눈 뭉치를 쌓아 만든 작고 멋진 집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무민은 그의 새로운 친구, 투티키를 만나게 된다.



『무민의 겨울』은 토베 얀손의 무민 연작소설 중 다섯 번째 작품이다. 무민이 난생처음 맞게 된 겨울과 지금껏 알지 못한 낯선 존재들과의 조우, 춥고 황량한 겨울 속에서 겪는 모험 그리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사실  연작소설 1권에 해당하는, 『혜성이 다가온다』에서부터 무민과 무민의 친구들은 거의 지구 멸망 수준의 강력하고도 위험천만한 모험을 겪기 때문에(다가오는 혜성 때문에 지구의 모든 바다가 증발하고 시뻘겋고 황량하게 변한 세상을 겪고, 때로는 인근 섬의 화산이 터져서 아주 뜨겁고 위험한 여름을 겪기도 한다), 사실 5편 『무민의 겨울』은 이전에 무민이 겪은 사건, 사고와 모험에 비하면 아주 귀엽고, 어딘가 안도감이 드는 모험이 펼쳐진다. 



겨울잠에서 갓 깨어난 무민은 외로움에 사무쳐, 그 순간 겨울잠을 자고 있지 않는 스너프킨을 만나러 남쪽으로 갈 결심을 하지만, 곧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는 집에 머물기로 한다. 그리고 겨울은 물자가 부족하기 쉬운 계절이니까, 집에 있는 소중한 물건들을 누가 마음대로 훔쳐 가지 않도록 집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이건 무민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기도 했으나, 당연히 무민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너무 춥고 배고프고 힘든 계절이니까요. 


건망증이 심한 다람쥐가 깨운 '미이'가 무민처럼 다시 겨울잠에 들지 못하고 이왕 잠 깬 거, 이 겨울을 즐기기로 한다. 미이는 성격대로 무민의 집에 몰라 들어가 은쟁반을 훔쳐 썰매로 타거나, 무민마마의 커피 주전자 덮개에 구멍을 뚫어 망토처럼 입고 다닌다('미이'는 밈블의 아주 작디작은 딸이기 때문에, 주전자 덮개를 옷으로 만들어 입고 다닐 수 있다!). 


어디 까칠하고 손버릇 나쁜 '미이'뿐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무민 골짜기에 마가목 열매와 잼이 쌓여 있다는 소문이 났고, 세상 외로운 겨울 손님들이 무민 골짜기로 꾸역꾸역 밀려든다. 이 소문은 어느 정도 헛소문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진짜 사실이기도 해서 무민 골짜기를 찾아온 외로운 손님들은 한가득 쌓여 있는 무민마마의 맛있는 잼을 실컷 먹는다. 게다가 무민 골짜기를 떠날 때는 잼을 싸가지고 감!


어쨌든 각기 보면 모두 외로운 존재들이라고 해도, 그 외로운 존재들이 함께 모이면 북적북적 시끄럽고, 종종 싸우기도 하며 함께 웃고 즐기며, 평생 잊지 못할 파티도 한다. 특히 스키 타기를 좋아하는 헤물렌이 무민 골짜기에 나타났을 땐 시끌벅적함의 절정을 치닫는다. 원래 헤물렌 종이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 하나만 파고드는 습성이 있다. 헤물렌은 특히 수집하는 걸 좋아하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인데, 재밌게도 이번 겨울 손님으로 온 헤물렌은 기존의 헤물렌과 사뭇 다르다. 오히려 친근하달지, 구김살 없달지, 세상 까다로운 게 없달지 매우 사교적이다(물론 다른 트롤들은 이 일방적인 '사교적임'을 상당히 싫어하지만 말이다).



이번 무민 연작소설의 5편 『무민의 겨울』의 흥미 포인트는, 무엇보다 핀란드 작가인 토베 얀손의 겨울에 대한 묘사다. 눈 덮인 겨울 전경과 고요하고 따뜻하며 어딘가 안전한 느낌이 드는 무민의 집에 대한 묘사는 정말이지 탁월하다. 겨울 나라인 핀란드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감수성과 느낌, 표현이 아닐까 싶다. 위도가 아주 높은 곳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아주아주 길고 긴 겨울밤, 감격적인 태양의 등장. 하지만 태양은 곧 지평선으로 사라지지만, 희망은 남는다. 다시 또 내일 해가 뜰 거라고, 해가 매일 조금씩 조금씩 높이 뜨다가 드디어 눈이 녹는 따뜻한 봄이 찾아오고 그날이 오면 깊은 겨울잠에 빠진 무민마마와 무민파파, 그리고 무민이 사랑하는 스노크메이든이 깨어나서 기쁘고 반갑게 만날 거란 희망. (위도가 핀란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낮은 나라에 사는 작가들은 이런 이야기를 구상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또 하나의 흥미 포인트는 무민이가 기존의 친구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다. 보통 무민의 모험엔 무민의 절친 스너프킨이나 스니프, 스노크 남매가 등장하지만 이번엔 사뭇 다르다. 뭔가 스너프킨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그 속을 알기 힘든 투티키를 알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향뒤쥐들을 만나며, 무엇보다 무민으로 진화하기 전 원시(?) 트롤을 만난다는 것도 재밌었다. 이 상황을 우리 인간으로 바꿔 말하면, 여름에 사용했던 옷장을 열어봤더니 그 안에 우리 인류 직계 조상이 숨어 있다가 튀어나와 우리 집 벽난로 속에 숨어든 꼴이라 할까. 


또 수르쿠라는 외로운 개의 이야기도 정말 좋았다. 수르쿠는 외로운 손님으로 무민 골짜기를 찾아왔는데 아주 작고, 비쩍 마른 약한 개이다. 수르쿠는 늘 늑대를 그리워했다. 봄이 되어 무민 골짜기를 떠난 수르쿠는 눈 덮인 외로운 산에서 늑대 무리를 기다리다, 드디어 그들을 만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남! 수르쿠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꼬리를 흔드는데 바로 이 순간 진짜 늑대들은 꼬리를 흔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애써 이 사실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수르쿠 자기 주위에 늑대들이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을 보자 두려워졌다. 수르쿠는 늑대를 그리워했지만, 늑대들은 수르쿠를 잡아먹을 생각뿐이었다. 후회의 감정이 밀려들었지만,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었다. 하지만, 스키를 타러 떠난 헤물렌이 작은 친구 살로메와 함께 나타났고, 헤물렌이 부는 놋쇠 음악 소리에 놀란 늑대 무리들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외로웠던 수르쿠와 살로메, 헤물렌은 그들의 여행을 떠난다.


내가 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언젠가는 나를 좋아해 줄 개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왔었어. 그런데 너는 왜 나랑 놀려고 하지 않아? (- 121쪽)

라고 말하던 헤물렌의 바람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무민의 이야기가 참 좋은 것은 공간과 계절에 대한 묘사가 탁월한 것도 있고, 또한 다채롭고 개성 강한 존재들이  서로 삐걱하며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가 각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참 좋다. 무작정 착하지 않다. 무작정 나쁘지 않다. 그냥 생긴 대로, 성격 아니 성질대로 살아가며 조금 양보하고, 조금 차지하며 함께 살아간다. 때로는 스니프의 욕심과 투덜거림에 뒷목이 당기기도 하고, 자유로운 영혼인 스너프킨이 언젠가 완전히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들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도 좋다. 까칠한 스니프가 무민을 위해 싸울 때 '와, 스니프! 너 정말 착하구나'하며 새로운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겪은 모험담을 무민에게만 들려줄 땐 나도 무민이처럼 나에게만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 우쭐거려지는 마음과 뭔가 둘만 연결되는 느낌이 생생히 느껴지기도 하니 말이다. 


사람은 오직 하나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잘게 쪼개진 시간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띤 존재이니 상대방의 여러 모습을 잘 조각하고, 조립해야 한다. 이건 사람의 역량에 따른 문제로, 토베 얀손은 이런 능력이 참 탁월한 것 같다. 작위적인 선함보다, 토베 얀손처럼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동화작가가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민 이야기에 감동하고, 토벤 얀손에 경도되는 독서 시간이었다.


어서 무민의 다음 이야기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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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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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튜더의 초크맨을 읽었다. 무섭다는 평이 있어서 미리 겁먹고 무서워서 달달 떨면서 책을 펼쳤는데, 내 기준에서 안 무서웠다. WHAT THE~ 무서운 내용이라기 보다, 신체 훼손 장면이 몇 군데 나온다. 그래서 이게 영국 사람이 쓴 책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스러운 느낌이 든다.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이 너무 강렬했다. 


책 띠지에 스티븐 킹이 C.J. 튜더의 『초크맨』을 강력 추천했다고 한다. 그리고 평을 확인해 본 바, 스티븐 킹의 느낌이 꽤 난다고 한다. 오- 하지만 내가 스티븐 킹의 소설은 읽은 적 없어서 이 평이 맞는지 안 맞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의 작법 관련 책인 『유혹하는 글쓰기』만 얼추 훑어본 정도다(나는 이 책 제목이 참 코믹하다고 본다. 책 표지는 '유혹'과 정말 거리가 먼 데. 제목 누가 지은 것이냐).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제대로 본 건,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쇼생크 탈출> 밖에 없다. WHAT THE~ >ㅁ< 그래서 C.J. 튜더의 『초크맨』이 얼마만큼 스티븐 킹의 느낌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알라딘 리뷰에 어느 분이 이에 관한 글을 참 재밌게 써놓아 읽다가 뿜었다. 이 소설이 스티븐 킹 스타일과 정말 비슷한데, 문제는 자기 소설과 정말 비슷한 소설을 강력 추천하는 스티븐 킹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적어 놓으셨다. ㅋㅋㅋ 


어쨌든 이 소설은 사람마다 '공포'를 느끼는 기준이 다를 텐데, 나도 영화로는 신체 훼손 내용이 있는 이야기는 정말 못 보지만, 텍스트로 읽기에는 크게 무섭다는 느낌은 별로 안 들고(그래도 적극 찾아서 읽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심장을 조금씩 죄어가다가 끝에 퐉! 터트리는 공포 소설이 정말 무섭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었던 날을... 지금도, 책꽂이에 꽂혀 있는데 겉표지 보는 것도 무서워서 다른 책 뒤로 숨겨 버렸다. 아무튼 C.J 튜더의 초크맨은 막 엄청 무섭다거나, 신체 훼손 장면이 너무 리얼하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나처럼 읽기 전부터 미리 겁부터 먹지 말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이 책에는 신체 훼손과 관련된 살인 사건뿐만 아니라, 의문의 사망 사고와 폭행 사고도 여러 차례 나온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은 근처에 남겨져 있는 초크맨 그림! 분필로 그린 그림일 뿐인데, 어떤 '표식'으로 의미를 획득하게 되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인간은 이전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공포를 느끼게 된다. 주인공이 그러했다. 30년 전에 일어난 여러 사건 사고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초크맨 표식!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주인공이 12살이었을 때 함께 놀던 친구들이 있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갔는데, 친구들과 잠시 떨어져 있을 때 놀이기구 사고를 정면에서 목격한다. 아주 예쁜 여학생의 얼굴이 기계에 갈리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여학생은 너무 심하게 다쳤으나 마침 그곳에 있던 남성과 주인공의 도움으로 여학생은 목숨은 건진다. 떠들썩한 사건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츰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고, 주인공도 일상으로 돌아온다. 얼마 후, 놀이공원에서 주인공과 함께 여학생을 도와준 남자가 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해 왔다. 선생님의 이름은 '핼로런 씨'로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되지만, 여러 차례 주인공과 주인공 아버지를 위기에서 구해줬다. 핼로런 씨는 여학생에게 자주 병문안을 갔고, 힘들어하던 여학생에게 많은 힘을 줬다. 


주인공은 주인공 대로의 삶을 살아갔다. 친구들과 놀고, 괴짜 같은 부모님과 한 집에 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친구들이랑은 친했지만, 언제나 갈등의 싹이 있었다. 친구들과의 갈등은 뭐랄까 누구나 잘 알겠지만 속상하고 기분은 상하지만, 그렇다고 확 터트려서 뒤집어엎기도 그렇고 막상 뒤집어엎어도 또 바로 친하게 지내는 게 이 나이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친하게 지내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그러면서 또 같이 놀고 싶고. 거의 모든 걸 이야기하고 비밀 없는 듯 다 털어놓고 지내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각자만의 비밀을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그런 모습이 펼쳐진다. 


그러다, 친구 생일날에 주인공 아버지가 함께 초대된 다른 친구의 아버지, 목사를 폭행한 사건이 터진다. 목사가 주인공 어머니를 비방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어머니는 의사였는데 돈을 벌기 위해, 낙태 일을 했다. 아주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목사는 이를 비방했고, 자신의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신자들과 병원 앞에서 농성을 하거나, 주인공 집에 돌멩이를 던지곤 했다. 협박은 기본이었고. 


또 다른 일로, 주인공은 함께 노는 친구의 형에게 아주 심한 일을 당할 뻔했다. 마침 지나가던 핼로런 씨가 주인공을 구해줬고, 당시 주인공은 몰랐지만 또 다른 목격자가 있었는데 이 목격자가 한 작은 앙갚음이 나중에 큰일로 되돌아왔다. 


아, 장르 특성상 줄거리를 말하는 것이 곧 스포일러를 누설함이라 더 쓸 수가 없다. 써도 되지만, 뭐랄까 이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들을 배려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스포일러 하고 싶은 마음에 키보드 두드리는 손가락 끝이 간질간질하네요!)


어쨌거나 이 책에 적힌 한 문장,


업보, 뿌린 대로 거둔다는 뜻이야. 나쁜 짓을 하면 결국에는 그게 되돌아와서 네 엉덩이를 물게 되어 있다는 거지. (- 224쪽)

이 문장이 이 책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온갖 미궁에 빠진 사건을 풀 실마리다. 



귀여운 그림이라도, 본래 귀여움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을 벗어나 무서운 곳에서 어떤 표식으로 작용하게 되면 얼마든지 심장을 오싹하게 하는 공포스러운 그림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과 주인공 친구들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모든 것은 돌고 돈다. 선의로 한 일이 오해를 받아 악의로 왜곡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정말 못된 짓만 골라 하는 질 나쁜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겐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형일 수 있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 혹은 의심받을까 봐 누군가 위험에 처했어도 외면하고 모른 척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모면하는 삶을 살아도, 또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어느 날 어떤 일이 닥쳤을 때라야 자신의 위선을, 오만을, 나약함을,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한 작지만 악의적인 일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인과 연, 과보. 
모든 것이 작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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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미술관 - 미술관 담장을 넘어 전하는 열다섯 개 그림 이야기
이소라 지음 / 혜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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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로 밤에 읽었다. 책 속에 실린 그림들이 꼭 밤에 봐야 하는 그림은 아니고 밤과 연관 있는 그림만 뽑은 것도 아니다. 다만, 저자의 문체가 차분해서 조용한 저녁과 밤에 어울렸다. 매일 밤 저자의 문체를 따라 그림과 글을 보다 보면, 조용한 미술관 한 바퀴 돈 느낌이 든다. 

이 책은 크게 15개의 작품을 다루고 그 작품의 작가와 그가 그린 다른 작품 및 연관되어 있는 다른 작가의 작품이 나온다. 그리고 각 챕터 끝엔 해당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박물관)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실려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엔 저자가 추천하고 싶은 우리나라 미술관 몇 군데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어디서 본 듯한 작품들이다. 그러니까 아주아주 유명한 작품은 아니고,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인지도의 작품들이다.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들었던 점은, 내가 모르던 작가의 작품을 알게 된 거! 한때 미술사 책만 골라 읽었던 적이 있는데 이때는 정말,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유명한 작품만 책에 실려 있다. 그리고 그림을 딱딱한 어조로 설명할 뿐, 비하인드스토리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보기 드물다(눈과 귀가 솔깃하는 건 작가의 사생활인데! ㅋ). 오랜만에(미술사 책도 읽은 지 꽤 됐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작품과 작가에 대한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참 쏠쏠했다. 


처음 다뤄지는 작품은 포드코빈스키의 「광분」이다. 




와, 처음부터 강렬한데! 당시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그림만 봐도 직관적으로 납득이 잘 되죠?!) 말의 표정이나 나체의 여성의 표정, 그리고 유독 강조된 여성의 가슴 등이 인상적이다. (보통 저렇게 안고 있으면 가슴이 짓눌려 있을 텐데) 어쨌든 당시 대중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지만,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겠다고 한 사람이 제시한 가격은 포드코빈스키가 생각한 가격에 훨씬 밑도는 가격. 이 그림이 전시된 지 며칠 후, 이 그림을 그린 포드코빈스키가 작품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갑자기 칼을 꺼나 이 그림을 난도질했다고 한다. 그것도 여성이 그려져 있는 부분만! 호사가들은 포드코빈스키가 왜 여성이 그려진 부분만 난도질했을까, 궁금해하고 이런저런 이유도 생각해냈는데 제일 설득력 있던 설명은, 이 그림의 모델이 포드코빈스키가 사랑하는 여인이었으며, 이 여인과 사이가 틀어지자 그림을 칼로 난도질했다는 설명이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것도 같다. 그렇게 공을 들여 그린 그림을 훼손하기가 쉽진 않으니까. 


두 번째로 다뤄진 그림은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소녀」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땐 '헉!' 했다. 너무 좋아서!! 저자도 책에 썼듯 무언가 몰두한 사람,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아우라가 느껴지고,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도 그 느낌이 들었다. 음, 다시 보니까 뭔가 좀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역시, 로코코 화가로군' 싶긴 한데 그래도 좋다. 겨자색 옷도 마음에 듦! (옷 색깔은 왜 언급해!? ㅋㅋ) 


세 번째로 다뤄진 작품은, 내가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들기도 한 비비안 마이어의 「자화상」이다. 




비비안 마이어, 이름만 들어봤고 이 분의 작품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사연도 정말 극적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그래서 영화로도 제작) 이 분의 작품이 이렇게 좋았는지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었다. (분명히 이 분의 사진 작품을 봤을 텐데 왜 그땐 유의 깊이 못 봤을까) 그냥 좋다, 다 좋다!!! 사진도 좋고, 저자의 설명도 좋았다. 

- 마이어가 작가로서 가장 관심을 두었던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48쪽)


- 자신을 겹겹이 포장한 사람이건 아니건, 렌즈 앞에서 표정을 꾸며내는 사람이건 아니건, 진실은 카메라를 든 이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포착 시점에 의해 세상 밖으로 끌려 나온다.피사체는 오로지 작가가 집중하고 싶었던 찰나의 순간에 작가의 시점에 의해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결국 사진에 담기는 건, 피사체가 아니라 피사체를 통해 작가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이다. (53쪽)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으로 무수히 많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남겼지만, 여전히 미스터리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냥 가정부로 전전하다가 비참한 말년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냉전 시대에 스파이로도 활약했다는 소문도 있다. 하긴,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 상당히 지적이고, 무심한 듯하지만 섬세하고, 최대한 덜어낸 느낌이 들면서도 많은 말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사진을 보고 '와, 좋다'는 느낌을 잘 받진 않지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보면, '와, 좋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으어, 넘 좋아. ;ㅅ;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영화도 찾아봐야지!


『한밤의 미술관』은 미술 작품만이 아니라, 사진 작품도 이렇게 실려 있는데, 좋았다. 이 책의 후반부에 실려 있는 안드레아 구르스키의 사진 작품도 괜찮았다. 사진은 이제 그림보다 더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 책에 실린 사진 작품들은 비범해 보였다. 일상의 낯섦. 일상의 예술화. 하, 예술이란 이런 건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데,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런 것. 이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예술에 대한 이런 느낌을 느꼈다. 



또 마음에 들었던 건, 아홉 번째 작품으로 실린 수잔 발라동의 「자화상」




수잔 발라동의 작품도 좋긴 좋았지만, 저자의 설명이 더 인상 깊었다. 


- 발라동은 시선을 소유한다는 것이 곧 대상을 판단하고 재단할 수 있는 권력이란 걸 깨달았다. (- 158쪽)


- 그녀의 그림은 억압에서 벗어난 이의 속 시원한 고발이자 일종의 반란이다. '여성의 벗은 몸을 주제로 폭넓게 작업한 최초의 여성 미술가'이자 '여성 화가로서 최초로 남녀 누드를 그린 인물' (- 162쪽)


- 발라동의 자화상은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분명 그 속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여러 층위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더불어 그 안에는 세상에 의해 강요받았던 '아름다워야 할 의무'를 기꺼이 던져버린 자의 눈부신 자유 또한 담겨 있다. (- 166쪽)

사회의 규율이라는 것은 누가 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끊임없이 작동한다. 이 규율, 규칙을 벗어나고 금기를 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그렇고, 100년 전에도 그렇다. 굳이 수잔 발라동이 여성이어서 대단하다기 보다, 이 책에 실린 고흐나 에곤 실레처럼 뭔가 세상이 정해 놓은 틀을 깨고, 인류가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그 경계를 확장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다. (물론, 시간이 지나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가 왔을 때라야 가능한 이야기지만) 




예술이, 예술이어서 높은 평가를 받는 건 아닌 것 같다. 예술이 예술인 것은, 끊임없이 한계를 깨부수려는 노력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실린 작품과 작가들의 이야기도 그러했다. 미술 작품은, 그 작품만을 즐겨도 좋지만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작품과 작가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알면 훨씬 재밌고 훨씬 유익하다. 이 책을 읽었던 연속된 밤들, 열대야라 덥고 불쾌했지만 이 책 덕분에 더위따위일랑 다 잊고 매일 밤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숙면 ♡






아, 이 책의 맨 마지막 작가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의 「포푸리」도 정말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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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달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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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시지 할아버지의 탄생


소파에 앉아 있는 젊은 소시지. 소시지가 '줄줄이 소시지'를 먹는다. 냠냠. 소시지를 먹어서 배가 빵빵해진 소시지는 꿀렁꿀렁 배가 요동을 치고, 다리 밑으로 작은 소시지 하나가 쑤욱 나온다. 아기 소시지와 아빠 소시지의 첫 만남. 아기 소시지에게 아빠 집은 하나의 우주이고, 아기 소시지에게 거실 소파는 안전하고 안락한 장소다. 아기 소시지는 어느 날 바깥세상에 호기심을 느껴 문을 열고 집 밖을 나가는데 돌아온 건 누가 던진 작은 돌멩이들. 상처받은 소시지는 다시 아빠 소시지 집으로 들어오고, 아빠 무릎을 베고 누워 안락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아기 소시지는 무럭무럭 자란다. 누웠을 때 아기 소시지의 다리 끝이 소파 반밖에 안 닿았는데, 이제는 소파 밖을 훌쩍 넘는다. 그 자세로 그렇게 낮과 밤이 지나고, 아빠 소시지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아기 소시지도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빠 소시지와 아들 소시지, 함께 늙어가는 소시지. 


아무도 없는 소파에 어둠이 들고, 차차 어둠이 사라진다. 낮은 밤이 되었고, 까만 넥타이를 맨 아들 할아버지 소시지가 혼자 집에 돌아온다. 눈물을 흘리는 아들 할아버지 소시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외로웠던 소시지 할아버지는, 한때 유행이었던 곰돌이 인형을 사 와서, 언제나 아빠 소시지가 앉아 있던 곳에 놓아두고, 곰돌이 인형에 무릎베개를 벤다. 그리고 곰돌이 팔을 끌어와 자신을 감싸 안도록 한다.   



#2. 소시지 할아버지와 강아지의 만남


소시지가 사는 별은 유행이 민감한 별, 한때 곰돌이 인형이 잘 팔렸는데, 그 인기를 지구별에서 데려온 강아지가 독차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유행이 바뀌었고 이제 화성에서 온 고양이들이 인기를 끈다. 지구별 강아지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남은 강아지는 50% 세일, 그중에서 또 남은 강아지들은 70% 세일. 그렇게 해도 안 팔린 강아지 한 마리. 주인은 '가져가세요.'라는 푯말과 사료 한 포대, 그리고 강아지를 묶어 놓고 떠나버린다. 


콜라병 아가씨, 테니스공 친구들이 강아지에게 관심을 가지지만, 비가 오자 뛰어가 버린다. 지나가던 소시지 할아버지. 초록 우산을 강아지에게 씌워주고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날이 화창하게 갰지만 강아지는 여전히 묶여 있다. 소시지 할아버지가 왔다. 우산 가지러 오셨다. 


이제 강아지를 쓰다듬는 사람도, 귀엽다고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강아지 옆에 있는 건 먹다 남은 사료와 강아지의 똥뿐이다. 어느 날 밤, 전동차에 불을 밝히고 나타난 할아버지. 전동차 바구니에 강아지를 태우고, 강아지 사료는 집으로 출발- 오는 길에 강아지 사료는 골목에 다 흘려 버렸지만. 소시지 할아버지 마당에 살게 된 강아지. 할아버지가 개집을 지어준다. 달의 모양이 보름달에서 반달로, 반달에서 하현달로 바뀌고. 할아버지는 소파 위에서, 강아지는 마당에서 외롭게 잔다. 


어느 날 개구쟁이 초콜릿들이 작은 소시지를 낚시 미끼로 삼아 강아지를 꼬여내고, 뭐가 재밌는지 초콜릿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소시지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초콜릿들을 때린다. 강아지를 집안으로 데려온 할아버지. '약손 의자'에 앉아 안마 받는 소시지 할아버지. 기계가 낯선 강아지, 왕왕 짖는다. 할아버지가 똥을 누니까, 강아지도 똥을 눈다. 할아버지가 자니까 강아지도 잔다. 


어느 날, 강아지가 소시지 할아버지의 뒤꿈치를 핥자, 먹힐까 봐 놀란 할아버지는 집 밖으로 도망간다. 강아지를 피해 들어간 가게, 그 가게에서 우주복을 팔고 있다. 우주복과 유리 헬멧을 쓰고 나온 소시지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와 강아지. 할아버지는 여전히 강아지를 멀리한다. 소파로 다가오면 다리를 살짝 들어 올려 강아지 입에 닿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강아지는 여전히 명랑하고, 할아버지가 약손 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던 것처럼 강아지도 안마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는다. 강아지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것, 할아버지가 즐겨 하던 것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서서히 마음을 푼다. 할아버지는 강아지가 잠든 틈에 강아지 배를 살살 만지는데, 깨어난 강아지. 다시 안아 달라고 강아지가 콩콩거리는데 놀란 할아버지는 그만 강아지를 마당에 내놓는다. 그런데 누군가 강아지에게 돌을 던진다. 화도 나고 눈물도 맺힌 할아버지. 다시 강아지를 집 안으로 들이고, 같이 소파 위에서 잔다. 할아버지의 몸부림에 헬멧이 벗겨지고, 다음날 아침 강아지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핥는다. 깜짝 놀란 할아버지, 다시 강아지를 마당에 내놓는데 또 초콜릿들이 나타나 강아지에게 소시지를 주는데, 강아지는 작은 소시지를 물었지만, 깨물지 않았다. 어떤 상처 하나 없이, 웃는 얼굴로 작은 소시지를 밖으로 내놓는다. 꼬리 흔드는 강아지. 


소시지를 먹지도 않고, 씹지도 않고 얌전히 입에 머물고 있다가 입 밖으로 낸 강아지. 그 모습을 본 소시지 할아버지는, 유리 헬멧, 장갑, 부츠, 그리고 우주복까지 모두 벗고, 두렵고 무서운 마음에 떨면서 무릎 꿇고 강아지에게 손을 주자 강아지는 폴짝 뛰어 소시지 할아버지의 품에 안긴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핥는 강아지. 



#3. 헤어짐, 새로운 만남


소시지 할아버지의 부재, 할아버지는 강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속에만 있고 할아버지는 없다. 강아지는 오랜시간동안 곰돌이 인형과 함께 지내다가, 어느날 집밖으로 모험을 떠난다. 누군가와 친구를 하려고 해도, 그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손을 꼬옥 잡고 있거나 꼭 붙어 다닌다. 강아지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고,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 혼자가 되어 마을을 돌아다니는 강아지. 그러다 비가오고, 강아지는 아주 큰 나무 밑으로 가 비를 피한다. 그러자 폭탄 아이가 다가온다. 둘은 친구가 되었다. 둘은 숲으로 놀러간다. 숲 한가운데 있는 수영장 안에, 불씨 하나가 살고 있다. 강아지와 폭탄 아이는 수영장에 들어가 불씨와 놀다가 폭탄 아이 머리 심지에 불이 붙어, 폭탄 아이 머리에 별이 하나 생긴다. 강아지와 폭탄 아이는 수영장 밖으로 나오고, 폭탄 아이가 불씨에게 손을 내민다. 외로웠던 불씨, 강아지와 폭탄 아이와 함께 떠난다. 하지만 불씨가 지난 숲에 불이 나고, 마을의 소방차와 소방 헬기가 불을 끈다. 강아지 집에 도착한 강아지, 폭탄 아이, 불씨. 불씨는 자기 때문에 숲에 불이 난 것 같아 초조하고 긴장된다. 강아지 집까지 태우면 안 되는데! 강아지와 폭탄 아이가 협력해서 불씨에게 문을 열어주고, 집에 들어와 보니 소시지 할아버지가 쓰시던 우주복이 그대로 있다. 불씨는 소시지 할아버지의 우주복을 입고, 그렇게, 그렇게 세 명은 소파 위에 누워 함께 잠이 든다. 


#4. 죽은 이가 사는 별


죽으면 가게 되는 별이 있다. 이 별에는 천문대 하나가 있는데, 망자가 천문대 문을 두드리면 거미가 문을 열어준다. 망자들은 거미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내가 살던 별을 보고 싶소.' 자기가 살던 별을 보고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닦아 준다. 그러던 어느날 이 천문대에 소시지 할아버지가 찾아온다. "내 개가 보고 싶소." 할아버지는 화면에 비친 강아지를 바라본다. 고요히 바라본다. 어느날 강아지는 집밖으로 모험을 떠나고, 폭탄 아이와 불씨랑 친구가 되어 옛 소시지 할아버지 집에서 함께 사는 모습을 본다. 곰돌이 인형이 앉은 소파에, 우주복을 입은 불씨, 폭탄 아이, 강아지가 함께 누워 잠을 자는데, 할아버지는 눈물 없이, 약간의 표정 변화로만 이 모든 모습을 지켜 보았다. 떠나려는데, 천문대를 관리하는 거미가 소시지 할아버지에게 맥주를 청한다. 천문대 밖에 나란히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소시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별이 떨어지면, 소원을 빌 수 있다고. 


이후 소시지 할아버지는, 거미와 함께 망자에게 그들이 살던 별을 보여주고, 망자가 눈물을 흘리면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살아간다. 




안녕달님의 새 그림책 『안녕』 

안녕달 님의 그림은 이전 작품들처럼 따뜻하고, 따뜻하다. 참 좋다. 처음에 이 책을 받고, 이질감 느껴지는 살색의 소시지에 깜짝 놀랐는데, 보고, 보고, 또 보는 결에 정이 들고 참 좋아져버렸다. 


이 책의 내용은 소시지 할아버지의 어렸을 때 이야기, 아빠 소시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된 소시지 할아버지. 친구가 된 강아지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소시지 할아버지는 강아지에게 잡아 먹힐까봐 겁이났다. 하지만 강아지는 소시지를 먹을 수 있는데도 먹지 않고, 깨물지도 않고, 그냥 입밖으로 뱉는데(미니 소시지를 소시지 할아버지의 분신쯤으로 느꼈을까). 믿음이 생긴 할아버지와 강아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소파 위에서 함께 잔다. 시간이 흘러 소시지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혼자된 강아지. 밖으로 모험을 떠나 또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망자들의 별에서 이 모습을 지켜 본 할아버지. 마음을 놓고 할아버지도 망자들의 별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이야기인데, 어딘가 안심이 되고, 안도가 되는 이야기다. 


이 그림책은 말이 극도로 자제되어 있다. 한 편의 무성 영화처럼 그림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다. 독자들은 상상력으로 그림을 읽어가야 한다. 나 개인적으로 무성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세상에 대한 이해는 꼭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표정과 작은 행동만으로도 많은 걸 이해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우리가 강아지와 말이 통해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사람 간의 많은 대화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전달되어야 할 중요한 것들이 말에 의해서 제거되고 축소되는 게 아닌가 싶은 우려.  


그림책 속엔 글이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 글이 적은 이유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위한 것이지만, 어른들의 상상력에도 좋다. 하루 종일 수없이 많은 말에 노출된 어른들, 그림으로만 이뤄진 그림책을 읽고 말의 소음에서 벗어나 그림 형태의 이야기도 즐기면 좋겠다. 그림만 봐도 사람은 그림 속 이야기를 읽고, 해석할 수 있으며 감동과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으니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림책이 하나의 장르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아쉽지만, 그 풍토가 조금씩 바뀌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났을 때도 안녕,

헤어질 때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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