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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달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평점 :
#1. 소시지 할아버지의 탄생
소파에 앉아 있는 젊은 소시지. 소시지가 '줄줄이 소시지'를 먹는다. 냠냠. 소시지를 먹어서 배가 빵빵해진 소시지는 꿀렁꿀렁 배가 요동을 치고, 다리 밑으로 작은 소시지 하나가 쑤욱 나온다. 아기 소시지와 아빠 소시지의 첫 만남. 아기 소시지에게 아빠 집은 하나의 우주이고, 아기 소시지에게 거실 소파는 안전하고 안락한 장소다. 아기 소시지는 어느 날 바깥세상에 호기심을 느껴 문을 열고 집 밖을 나가는데 돌아온 건 누가 던진 작은 돌멩이들. 상처받은 소시지는 다시 아빠 소시지 집으로 들어오고, 아빠 무릎을 베고 누워 안락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아기 소시지는 무럭무럭 자란다. 누웠을 때 아기 소시지의 다리 끝이 소파 반밖에 안 닿았는데, 이제는 소파 밖을 훌쩍 넘는다. 그 자세로 그렇게 낮과 밤이 지나고, 아빠 소시지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아기 소시지도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빠 소시지와 아들 소시지, 함께 늙어가는 소시지.
아무도 없는 소파에 어둠이 들고, 차차 어둠이 사라진다. 낮은 밤이 되었고, 까만 넥타이를 맨 아들 할아버지 소시지가 혼자 집에 돌아온다. 눈물을 흘리는 아들 할아버지 소시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외로웠던 소시지 할아버지는, 한때 유행이었던 곰돌이 인형을 사 와서, 언제나 아빠 소시지가 앉아 있던 곳에 놓아두고, 곰돌이 인형에 무릎베개를 벤다. 그리고 곰돌이 팔을 끌어와 자신을 감싸 안도록 한다.
#2. 소시지 할아버지와 강아지의 만남
소시지가 사는 별은 유행이 민감한 별, 한때 곰돌이 인형이 잘 팔렸는데, 그 인기를 지구별에서 데려온 강아지가 독차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유행이 바뀌었고 이제 화성에서 온 고양이들이 인기를 끈다. 지구별 강아지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남은 강아지는 50% 세일, 그중에서 또 남은 강아지들은 70% 세일. 그렇게 해도 안 팔린 강아지 한 마리. 주인은 '가져가세요.'라는 푯말과 사료 한 포대, 그리고 강아지를 묶어 놓고 떠나버린다.
콜라병 아가씨, 테니스공 친구들이 강아지에게 관심을 가지지만, 비가 오자 뛰어가 버린다. 지나가던 소시지 할아버지. 초록 우산을 강아지에게 씌워주고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날이 화창하게 갰지만 강아지는 여전히 묶여 있다. 소시지 할아버지가 왔다. 우산 가지러 오셨다.
이제 강아지를 쓰다듬는 사람도, 귀엽다고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강아지 옆에 있는 건 먹다 남은 사료와 강아지의 똥뿐이다. 어느 날 밤, 전동차에 불을 밝히고 나타난 할아버지. 전동차 바구니에 강아지를 태우고, 강아지 사료는 집으로 출발- 오는 길에 강아지 사료는 골목에 다 흘려 버렸지만. 소시지 할아버지 마당에 살게 된 강아지. 할아버지가 개집을 지어준다. 달의 모양이 보름달에서 반달로, 반달에서 하현달로 바뀌고. 할아버지는 소파 위에서, 강아지는 마당에서 외롭게 잔다.
어느 날 개구쟁이 초콜릿들이 작은 소시지를 낚시 미끼로 삼아 강아지를 꼬여내고, 뭐가 재밌는지 초콜릿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소시지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초콜릿들을 때린다. 강아지를 집안으로 데려온 할아버지. '약손 의자'에 앉아 안마 받는 소시지 할아버지. 기계가 낯선 강아지, 왕왕 짖는다. 할아버지가 똥을 누니까, 강아지도 똥을 눈다. 할아버지가 자니까 강아지도 잔다.
어느 날, 강아지가 소시지 할아버지의 뒤꿈치를 핥자, 먹힐까 봐 놀란 할아버지는 집 밖으로 도망간다. 강아지를 피해 들어간 가게, 그 가게에서 우주복을 팔고 있다. 우주복과 유리 헬멧을 쓰고 나온 소시지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와 강아지. 할아버지는 여전히 강아지를 멀리한다. 소파로 다가오면 다리를 살짝 들어 올려 강아지 입에 닿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강아지는 여전히 명랑하고, 할아버지가 약손 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던 것처럼 강아지도 안마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는다. 강아지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것, 할아버지가 즐겨 하던 것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서서히 마음을 푼다. 할아버지는 강아지가 잠든 틈에 강아지 배를 살살 만지는데, 깨어난 강아지. 다시 안아 달라고 강아지가 콩콩거리는데 놀란 할아버지는 그만 강아지를 마당에 내놓는다. 그런데 누군가 강아지에게 돌을 던진다. 화도 나고 눈물도 맺힌 할아버지. 다시 강아지를 집 안으로 들이고, 같이 소파 위에서 잔다. 할아버지의 몸부림에 헬멧이 벗겨지고, 다음날 아침 강아지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핥는다. 깜짝 놀란 할아버지, 다시 강아지를 마당에 내놓는데 또 초콜릿들이 나타나 강아지에게 소시지를 주는데, 강아지는 작은 소시지를 물었지만, 깨물지 않았다. 어떤 상처 하나 없이, 웃는 얼굴로 작은 소시지를 밖으로 내놓는다. 꼬리 흔드는 강아지.
소시지를 먹지도 않고, 씹지도 않고 얌전히 입에 머물고 있다가 입 밖으로 낸 강아지. 그 모습을 본 소시지 할아버지는, 유리 헬멧, 장갑, 부츠, 그리고 우주복까지 모두 벗고, 두렵고 무서운 마음에 떨면서 무릎 꿇고 강아지에게 손을 주자 강아지는 폴짝 뛰어 소시지 할아버지의 품에 안긴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핥는 강아지.
#3. 헤어짐, 새로운 만남
소시지 할아버지의 부재, 할아버지는 강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속에만 있고 할아버지는 없다. 강아지는 오랜시간동안 곰돌이 인형과 함께 지내다가, 어느날 집밖으로 모험을 떠난다. 누군가와 친구를 하려고 해도, 그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손을 꼬옥 잡고 있거나 꼭 붙어 다닌다. 강아지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고,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 혼자가 되어 마을을 돌아다니는 강아지. 그러다 비가오고, 강아지는 아주 큰 나무 밑으로 가 비를 피한다. 그러자 폭탄 아이가 다가온다. 둘은 친구가 되었다. 둘은 숲으로 놀러간다. 숲 한가운데 있는 수영장 안에, 불씨 하나가 살고 있다. 강아지와 폭탄 아이는 수영장에 들어가 불씨와 놀다가 폭탄 아이 머리 심지에 불이 붙어, 폭탄 아이 머리에 별이 하나 생긴다. 강아지와 폭탄 아이는 수영장 밖으로 나오고, 폭탄 아이가 불씨에게 손을 내민다. 외로웠던 불씨, 강아지와 폭탄 아이와 함께 떠난다. 하지만 불씨가 지난 숲에 불이 나고, 마을의 소방차와 소방 헬기가 불을 끈다. 강아지 집에 도착한 강아지, 폭탄 아이, 불씨. 불씨는 자기 때문에 숲에 불이 난 것 같아 초조하고 긴장된다. 강아지 집까지 태우면 안 되는데! 강아지와 폭탄 아이가 협력해서 불씨에게 문을 열어주고, 집에 들어와 보니 소시지 할아버지가 쓰시던 우주복이 그대로 있다. 불씨는 소시지 할아버지의 우주복을 입고, 그렇게, 그렇게 세 명은 소파 위에 누워 함께 잠이 든다.
#4. 죽은 이가 사는 별
죽으면 가게 되는 별이 있다. 이 별에는 천문대 하나가 있는데, 망자가 천문대 문을 두드리면 거미가 문을 열어준다. 망자들은 거미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내가 살던 별을 보고 싶소.' 자기가 살던 별을 보고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닦아 준다. 그러던 어느날 이 천문대에 소시지 할아버지가 찾아온다. "내 개가 보고 싶소." 할아버지는 화면에 비친 강아지를 바라본다. 고요히 바라본다. 어느날 강아지는 집밖으로 모험을 떠나고, 폭탄 아이와 불씨랑 친구가 되어 옛 소시지 할아버지 집에서 함께 사는 모습을 본다. 곰돌이 인형이 앉은 소파에, 우주복을 입은 불씨, 폭탄 아이, 강아지가 함께 누워 잠을 자는데, 할아버지는 눈물 없이, 약간의 표정 변화로만 이 모든 모습을 지켜 보았다. 떠나려는데, 천문대를 관리하는 거미가 소시지 할아버지에게 맥주를 청한다. 천문대 밖에 나란히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소시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별이 떨어지면, 소원을 빌 수 있다고.
이후 소시지 할아버지는, 거미와 함께 망자에게 그들이 살던 별을 보여주고, 망자가 눈물을 흘리면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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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달님의 새 그림책 『안녕』
안녕달 님의 그림은 이전 작품들처럼 따뜻하고, 따뜻하다. 참 좋다. 처음에 이 책을 받고, 이질감 느껴지는 살색의 소시지에 깜짝 놀랐는데, 보고, 보고, 또 보는 결에 정이 들고 참 좋아져버렸다.
이 책의 내용은 소시지 할아버지의 어렸을 때 이야기, 아빠 소시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된 소시지 할아버지. 친구가 된 강아지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소시지 할아버지는 강아지에게 잡아 먹힐까봐 겁이났다. 하지만 강아지는 소시지를 먹을 수 있는데도 먹지 않고, 깨물지도 않고, 그냥 입밖으로 뱉는데(미니 소시지를 소시지 할아버지의 분신쯤으로 느꼈을까). 믿음이 생긴 할아버지와 강아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소파 위에서 함께 잔다. 시간이 흘러 소시지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혼자된 강아지. 밖으로 모험을 떠나 또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망자들의 별에서 이 모습을 지켜 본 할아버지. 마음을 놓고 할아버지도 망자들의 별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이야기인데, 어딘가 안심이 되고, 안도가 되는 이야기다.
이 그림책은 말이 극도로 자제되어 있다. 한 편의 무성 영화처럼 그림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다. 독자들은 상상력으로 그림을 읽어가야 한다. 나 개인적으로 무성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세상에 대한 이해는 꼭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표정과 작은 행동만으로도 많은 걸 이해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우리가 강아지와 말이 통해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사람 간의 많은 대화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전달되어야 할 중요한 것들이 말에 의해서 제거되고 축소되는 게 아닌가 싶은 우려.
그림책 속엔 글이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 글이 적은 이유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위한 것이지만, 어른들의 상상력에도 좋다. 하루 종일 수없이 많은 말에 노출된 어른들, 그림으로만 이뤄진 그림책을 읽고 말의 소음에서 벗어나 그림 형태의 이야기도 즐기면 좋겠다. 그림만 봐도 사람은 그림 속 이야기를 읽고, 해석할 수 있으며 감동과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으니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림책이 하나의 장르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아쉽지만, 그 풍토가 조금씩 바뀌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났을 때도 안녕,
헤어질 때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