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
로베르트 융크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와, 재밌다! 책띠지에 적힌 버트런드 러셀의 말처럼 '소설보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새롭고 가치 있는 정보가 넘치는 책'이다. 책 두께도, 벽돌만큼이나 두껍고 말이지! 튼튼한 양장!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리처드 파인만의 에세이를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파인만이 겪은 로스앨러모스의 이야기(소위 맨해튼 프로젝트)도 정말 재밌게 읽었다. 진지하고 위험했던 당시 분위기를, 파인만 특유의 유머와 재치로 밝고 재밌게 풀어써놓았다. 가령, 당시 미친 듯이 돌아가던 상황들, 허술한 보안(작업자들이 쓰던 개구멍이 있었는데, 파인만은 관계자에게 바로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개구멍으로 나갔다가 정문으로 들어오기를 무한 반복하여 개구멍의 존재를 일러준다), 금고 털이(기밀문서를 모두 금고 안에 보관했는데 그 금고 비밀번호 맞춰서 사람들 놀라게 하는 것이 파인만의 소소한 취미였다) 등등 여러 재밌는 에피소드가 한가득 적혀 있었다. 물론 당시 상황이 재밌거나 마음 놓고 웃을 상황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간이 모인 곳에 웃음거리는 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 즈음부터 제2차 세계대전 후까지 핵 관련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묶어 놓은 책이다. 시작은 원자 과학 관련 당시 최고 수준이었던 '괴팅겐 대학교'에서부터 시작해서, '오펜하이머의 청문회'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중에 유명해진 핵물리학자들의 학생 때 일화라던가, 운명적인 사건들을 서술하는데 당시 상황이 양차 대전과 그 끼인 기간(먼 훗날에는 1, 2차 세계대전을 한 묶음으로 묶지 않을까)이라 그런지 상당히 극적이고, 기구한 사연들이 펼쳐진다. 보통은 유대인 박해를 피해서, 유럽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했다가 기회를 잡아 아주 열심히 공부해 연구 성과를 냈는데 나치의 세력이 확장되는 바람에 또 그곳에서의 생활도 힘들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지금 우리 시각에서 보면 모두 기구한 운명의 사람들. 부유하고 무난하게 살다 간 과학자의 이야기도, 그 사연은 그 사연대로 흥미진진하다.
이 책이 다루는 시기(1, 2차 세계대전)나 대상자(나중에 핵물리학자로 명명될)들의 이야기는 사실 재미없으려야 재미없을 수가 없다. 하나하나 톰 아저씨의 미션 임파서블처럼 난제, 혹은 불가능해 보였던 문제를 푸는 이야기들이고, 역시나 정치적 사건이 엮인 사건과 사연이기 때문에 글 쓰는 사람이 질만 쓴다면 재미는 보장이다.
이 책을 집필한 로베르트 융크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글을 쉽고 재미있게 잘 썼다. 어떻게 보면 무한정 딱딱하고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대중에 시각에 맞춰 말랑말랑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었다.
원자를 발견하고, 원자를 이해하고, 그 원자에 힘을 가해 다른 물질로 변화 시키고. 이 모든 과정들을, 이렇게 적으면 너무나 간단하고 쉽게만 느껴지지만, 이 한 문장을 실현하기 위해서 인류 지성사에 손꼽힐 만한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천재들의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그 천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살아있던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와 자료에 의거해 집필된 책으로, 지금보다도 앞으로 더 사료적 가치가 있을 책이다. (재미는 지금도 있고요.)
근현대 과학자들에게 관심 있으신 분들께, 강추!
팟캐스트 '과학과 사람들, 격동 500년!' 유의 방송을 즐겨 청취하시는 분들께도,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