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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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곧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고 했다. 이 말은 '나라는 개인'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집단/사회/문화에서 사용하는 언어 모두에 해당한다. '그 집단, 그 사회, 그 문화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한계는 곧 그 세계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한계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단어가 바로 영어의 man이 아닐까 한다. man의 상대적 존재인 woman은 오랫동안 남성들과 사회를 함께 구성하는 '인간,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종속된 '딸', '아내', '어머니'일뿐이었다. 영미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조선시대 기록물에는 여성의 이름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있다고 해도 '이름'이 아닌 친가 쪽에서 물려받은 물려받은 '성(姓)'이나 '출신 지역'으로 기록될 뿐이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란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생각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가능하게 된 건 극히 근래의 일로, 누군가 한계 속에서도 꿈꾸고, 치열하게 투쟁하여 얻어낸 결과다. 한 개인에서 시작해, 소수로, 그리고 소수가 다수로 확대되어 많은 이들이 함께 누리게 된 성취라 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우리의 한계라 했지만, 언어는 한계이면서 '에네르게이아', 즉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 내가 쓰는 말, 내가 쓰는 글이 나를 이루고, 나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의미와 나의 가치, 나의 미래까지도 말이다.




장영은 박사의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읽었다. 글쓰기로 자신의 한계(상황적 한계)를 극복한 25명의 여성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런 감정 얼마 만일까. 예전에 힘차게 휘갈겨 쓴 듯한 전혜린의 글을 읽었을 때였나, 쓸쓸함과 애잔함, 한이 스며 있으면서도 단정하고 고고하셨던 박경리 작가의 글을 읽었을 때였나, 그때 그 글들을 읽을 때처럼 가슴 설레고, 어떤 힘 같은 것이 느껴졌다. 투쟁하고 무엇인가를 성취를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는, '힘'이 있다.



1부 ─── 쓰다


1. 마르그리트 뒤라스

─ P18 뒤라스는 질병과 죽음 가난과 고독에 몸서리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그 공포는 잠시 사라졌다. 자신이 누구인지 온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경험하며 뒤라스는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 P21 현실 참여에도 적극적이었고 여러 차례의 결혼과 이혼 등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지만, 뒤라스는 그 무엇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오직 글쓰기뿐이었다. 생존과 글쓰기는 뒤라스에게 같은 말이었다.


2. 도리스 레싱

─ P25 다행히 "책장에 항상 책이, 고전이 꽂혀" 있었다. 학교를 그만둔 대신 농장 일을 해야 했지만, 시간을 아껴가며 책을 읽었다. "소설에서 어떤 책이 언급되면 그 책을 주문"했다. 그런 식으로 도리스 레싱은 "책을 계속" 주문했다.

─ P30 작가로서 삶의 다양한 측면들을 이야기한다는 원칙만을 고수한다고 밝혔다.


3. 버지니아 울프

─ P35 어린 시절부터 버지니아 울프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읽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닮은 둘째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책을 좋아하는 딸에게 읽고 싶은 만큼 다 읽되, 마음에 드는 책은 반드시 두 번 읽어보라는 독서 지침까지 자상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 P41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는 작가가 된 이래 매일 열 시간 이상 읽고 쓰는 규칙적인 삶을 실천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쓰기에 모든 것을 건 작가였다. "천국, 그곳은 피곤해지지 않고 영원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아닐까?"라고 상상했던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자신이 지상에서 맡았던 글쓰기라는 과제를 성실하게 마친 후 세상을 떠났다.


4.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 P46 돈이 없어도 옷이 후줄근해도 기죽지 않고 온갖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파리의 도서관에 콜레트는 흠뻑 빠져들었다.

─ P47 "책을 읽고 또 읽고, 정말 책만 읽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책이 나를 이곳에서 끌어내 줄, 나 자신으로부터 꺼내 줄 유일한 것이었다."

─ P50 콜레트는 일찌감치 깨달았다. "펜을 든 사람이 세상을 바꿉니다." 누군가는 펜을 들고 시작해야만 했다. 콜레트는 자신의 생애를 소설로 발표하며, 여성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멋진 이야기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5. 프리다 칼로

─ P58 프리다는 카추차스에 들어가 고전을 삼키듯 읽었다. "카추차스 회원들과 친구들은 누가 더 좋은 책을 찾아내는지, 그 책을 누가 먼저 읽는지 경쟁을 벌였으며, 때로는 자신들이 읽은 것을 각색하고 연기했다."

─ P65 어떤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프리다는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했다. 프리다의 소망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되고 싶은 여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6. 앤 카슨

─  P71 "왼쪽에 그리스어, 오른쪽에 영어가 실려 있었는데 너무 매혹적으로 보여서 이걸 배워야겠다고" 다짐한다.

─ P76-77 가족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자신의 몸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앤 카슨은 양피지로 만들어진 먼지 쌓인 책을 읽으며 고민했다. 오빠가 세상을 떠나고 앤 카슨은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글을 쓴다. 삶은 소중했다.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7. 실비아 플라스

─ P81 "글을 쓰고 또 쓰고"

─ P83 "미친 듯이 공부하고, 읽고, 쓰고, 일하는" 삶에서

─ P84 "최악의 상황은, 이 모든 것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은, 글을 쓰지 않고 사는 삶"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8. 제이디 스미스

─ P88 (제이디 스미스)는 10대 초반부터 "책장에 꽂힌 책을 다 읽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영국에서 출간된 펭귄북스의 '양서'는 모조리 읽었다.

─ P89 독서 목록은 더욱 빠른 속도로 팽창했다. 제이디 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문학을 섭렵했고 E.M.포스터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도 놓치지 않았다. "매일 책을 읽지 않으면 정말 불행"하다고 느꼈다. (...) 고전 영화와 재즈 음악에도 관심이 생겼다.

─ P94 "구원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지금 쓰고 있는 것에 존재한다."


9. 에밀리 디킨슨

─ P97 에밀리 디킨슨은 알지도 못하는 '죄'를 시인하고 '회개'하라고 요구하는 여성 신학교에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 자신만의 독서 목록을 만들어갔다.

─ P98 매일 밤 3시부터 아침까지 에밀리 디킨슨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2부 ─── 싸우다


10.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 P111 긴스버그에게도 "유대인, 여성, 엄마라서 삼진 아웃"을 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 패배했다면, 내일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법이다." 내일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인재들 가운데 적어도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여성을 지지해야 한다. 내일을 위해 긴스버그는 오늘도 연방 대법원 계단을 올라간다. 글 쓰는 여자는 크게 도약한다.


11. 크리스타 볼프

─ P122 볼프는 신화의 가치를 긍정했다. "신화는 특별한 방식으로 인간적인 것,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문학에서 문제 삼고 있는 그 인간적인 것에 대해 질문하도록 강요합니다. 우리는 왜 인간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가. 왜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계속해서 희생양을 필요하는가?"

─ P123 작가는 새로운 질문을 계속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12. 머거릿 애트우드

─ P127 "역사상 인간이 어딘가에서 이미 한 일만을 이야기 속에 넣는다."는 원칙을 항상 지켰다. 그녀에게 창작의 원천은 '역사'와 '현실'이었다.

─ P130 글 쓰는 사람, 말하는 사람이 바뀌면 역사도 달라진다.


13. 글로리아 스타이넘

─ P137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성공한 여자에게는 무수한 비난이 가해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에서 성공하는 여자들이 많아지지 않는 한 여자들은 그들이 그 위치에 오른 데는 필경 남자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편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14. 수전 손택

─ P145 "난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지적인 환경에서 살고 싶다.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는 문화의 중심에서 살고 싶다.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을 원한다." (...) "괜찮은 글을 만들어 내려면 쓰고 다시 쓰고 또다시 쓰면서 수천 시간 동안 방 안에 혼자 있어야" 했다.

─ P146 수전 손택은 질병을 주제로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암이라는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 때문에 겁에 질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생각을 제공"하고 싶었다.

─ P147 투병 기간 내내 자신의 삶이 "여러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타인의 고통은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았다.


15. 에밀리 브론테

─ P153 "난 그 책들의 내용을 머릿속에 새기고 마음속에 담았으니, 그건 절대 빼앗아 가지 못할 겁니다."


16. 토니 모리슨

─ P163-164 "독자들은 왜 그 문제에 대해서 써야 하느냐, 우리는 훨씬 더 긍정적인 이미지를 바란다고 말했지요. 저는 그런 질문이 가장 모욕적이고 지나친 요구라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그 질문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문제였으니까요. 누구를 위한 긍정적인 이미지일까요? 독자들이 그런 질문을 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은 타자, 주류, 백인 세상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토니 모리슨은 "바깥세상에 내보일 만한 자신들의 이미지를 찾던"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거부한다. 토니 모리슨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시간으로 돌아갔다.


17. 나딘 고디머

─ P169 혼자서 집 안에 있는 책들을 다 읽어 치우고 도서관을 부지런히 다녔다.

─ P170 쓰고 싶은 글이 넘쳐났다. 나딘 고디머는 극단적인 인종차별 제도가 지배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고 있는 이상 문학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을 먼저 내린 채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들의 삶의 형체를 이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정치와 정치적인 책략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것이 만들어 낸 산물입니다. 그러니까 광범위한 의미에서 저도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좋든 싫든 가르치고 있는 셈일 것입니다. 작가가 무엇을 쓰든지 그것은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되고 결국 작가는 사회적인 상황의 형상화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가르치게 되는 것입니다."


18. 가네코 후미코

─ P179 "희망이 그 고통을 극복하고도 남았다."

─ P180 가네코 후미코는 줄기차게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상을 만났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과 잡지를 샅샅이 찾아읽었다. 조선 유학생이 펴내는 잡지에도 관심을 가졌다.

─ P183 (다쿠보쿠의 시) "핑계 대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라.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몸이니까."



3부 ─── 살아남다


19. 박경리

─ P190 "나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경멸,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런 극단적인 감정 속에서 고독을 만들었고 책과 더불어 공상의 세계를 쌓았다."

─ P191 그 와중에도 박경리는 냉철함을 잃지 않았다. "하나의 어린 생명이 부당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도수장의 망아지처럼 없어졌다는 일은 도처에서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사소한 사건입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슬픔을 겪으면서도 박경리는 자신의 고통을 과장하지 않았고, 더 큰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품위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 P192 동시에 부조리한 억압과 차별에 끝까지 맞서는 용기도 잃지 않았다. 박경리는 "결코 남성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리라는 굳은 신념"을 글쓰기로 실천했다.


20. 헤르타 뮐러

─ P199 모멸감에 글을 쓰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독재 정권 아래에서 "단 하루도 살고 싶지 않았고 단 한 줄도 쓰고 싶지" 않았다. 헤르타 뮐러는 죽음을 떠올렸다. 비밀경찰들의 손에 죽는 것보다 자살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잠시 오판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살고 싶었다. 헤르타 뮐러는 "내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본능"을 되찾았다. 살해 위협에 겁을 먹고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독재 정권이 가장 원하는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죽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답을 찾은 곳은 문학이었습니다."


21. 이사벨 아옌데

─ P211 그녀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나 자신의 삶이라도 되듯, 내가 그 이야기들의 주인공이라도 되듯 애절"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에게조차 숨겨 왔다. "객관적이지도 못하고 사사건건 끼어 들려고" 했던 "최악의 기자"는 사실 소설가로서 최고의 덕목을 일찌감치 갖추고 있었다. 파블로 네루다의 예언은 적중했다. 이사벨 아옌데는 소설을 써야 하는 사람이었다.


22. 이자크 디네센

─ P220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는 싫었다. 경제적 자립이 가장 시급했다 (...) '이야기를 포기할 자신이 없었다.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었다.


23. 제인 구달

─ P227 1957년 9월, 루이스 리키는 제인 구달에게 침팬지 연구를 권유했다. 제인 구달은 학위도 현장 경험도 없는 자신이 과연 동물 연구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잠시 머뭇거렸다. 루이스 리키의 관점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이론으로 머리가 가득 차지 않은" 사람, "진정으로 침팬지들 속에서 살면서 이들의 행동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독보적인 연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제인 구달의 두려움을 불식시켰다.


24. 이윤 리

─ P241 운명론을 받아들인 작가는 "낙관주의나 희망에 절대 속지 않기 때문에 항상 약간의 의심을 안고 세상이나 사람을 탐구한다. 또한 "그 무엇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인간의 감정과 동기에 깊숙이 파고들어" 간다. 그는 역사와 자기 운명에 체념하는 사람들을 "속속들이 알아보고 싶어"하는 작가이다. 이윤 리는 사람들의 삶을 뒤바꾸어 놓은 역사라는 거대한 그림자 속에 존재하는 작은 그림자들을 찾아 나선다. 글 쓰는 여자는 역사를 탐험한다.


25. 제인 제이콥스

─ P243 가정의였던 아버지는 자녀들과 그날 그날의 신문 기사 내용을 토론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을 가져도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 P248 1974년에 캐나다 시민권을 획득한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국적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그는 2006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만의 '정체성'을 변함없이 지키며 살았다. 그는 언제나 "뭐든 기회가 있으면" 배우는 사람이었다.






이들이 멈추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쓴 이유는 '언어'가 여성, 아니 좀 더 범위를 확장하여 '우리 인간'을 제한하고 억압하는 도구이지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 언어에 희망이 있다.


* 에네르게이아 energeia


글을 쓰는 사람만이, 글을 생산하는 사람만이,

자기 삶을 온전하게 살아낼 수 있다.


언어는

우리를 규정하고

우리의 한계를 드러내 보이지만


언어가

그 규정을 깨부수고

한계도 허물어

우릴 도약할 수 있게 한다.


읽자, 오늘도 읽고 내일도 읽자.

그리고

쓰자,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쓰자.


치열하게 읽고

뜨겁게 쓰는 삶.

生을 生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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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지음, 김태훈 옮김, 장경덕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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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염병의 습격, 이 전염병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오늘 경제 뉴스 헤드라인에도 떴지만, COVID-19이 창궐한 지금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가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변곡점에 있는 것이다. 이 변곡점에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과거는 무엇일까. 바로 20세기와 21세기 초에 세계 질서를 구축한 미국을 알아야 한다. 또 그중에서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받아들인 미국식 자본주의를 알아야 한다.




책 제목이 내뿜는 아우라와 저자 이름에 앨런 그린스펀이 있어서 내용이 무척 어려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공저자인 에이드리언 울드리지가 저널리스트라서 그런지,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가독성 높게 잘 썼다.

이 책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도약해서 세계 경제의 패권을 거머쥐게 된 미국의 승리(!!)를 이야기하고, 그 승리의 원인을 역사로부터 추출해 분석하고 있다. (저자가 제일 강조하는 것은 '창조적 파괴'다) 하지만 책은 뒤로 갈수록 조금씩 우울해진다. 미국을 성공하게 한, 미국 사회의 역동성이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의 역동성이 미국을 경제대국으로 키웠으나, 이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어서 미래가 좀 암울하다는 전망이다. 미국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복지의 과도한 지출이다. 저자의 주장은,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은 경제가 원활히 구르도록 하는 '저축'은 하지 않고, 그때그때 소비에만 치중한다고 한다. 복지는 한 번 제도로 만들어지면, 축소나 폐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방대한 양의 예산이 지출된다고 한다. 또한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양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어가고' 있다. 연금 수급 신청자가 예전보다 많이 늘어났고, 앞으로는 더욱 많을 것이기에 미국 자본주의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역동성이 줄어든다고 저자는 주장하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앨런 그린스펀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1987-2006)으로서 한때 2001년 닷컴버블과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원인의 주요 인물로 지탄을 받았었다. 나는 경제에 대해 잘 모르고, 경제 석학들의 주장을 잘 분석할 수 없어서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앨런 그린스펀은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경제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던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그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역임 연수만 보더라도, 그는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가 재임할 시기 중간중간 경제가 출렁일 때마다 경제의 버블을 더 키운 인물이 앨런 그린스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다.

경제 여력을 튼튼하게 하기보다는, 그러니까 실물경제보다 금융시장에 치중하면서 사회 불안정성을 키운 것은 아닐까 싶은. 돈은 돈을 낳는다. 살아있는 생물도 아닌데, 자가 증식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경제 용어로 말하면 '신용 창조(credit creation). 지금까지 우리가 누린 부는 바로 신용 창조 위에 올린 거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분명 앨런 그린스펀의 주장대로 복지 정책이 미국 사회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사실 아주 큰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우리도 이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다) 그래도, 앨런 그린스펀이 복지 정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의 통화정책에 대해 깊이 고찰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지금의 경제 불안정성은, 바로 통화정책 확장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COVID-19로 타격받는 경제 문제에 대해, 별다른 아이디어 없이 기존의 관성대로 돈만 풀어 해결하려고 한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중 돈 푸는 것만 알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잘 넘긴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우리 세계를 덮칠 것이다)


책의 말미 부분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는 크게 동의하지 않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기 쉽게 잘 정리한 책이다. 미국의 자본주의, 미국 경제 역사 등등에 관심 있는 분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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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니스 - 잠재력을 깨우는 단 하나의 열쇠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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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 본 애니메이션이지만, 여전히 마음속에서 잊히지 않는 작품이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치고 상당히 철학적이기도 한 작품, 바로 <머털도사> 시리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에피소드 대부분 내용을 잊어버렸지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머털도사가 천 길 낭떠러지 외길을 걸어 스승인 누덕도사에게까지 가야 하는 미션 장면. 머털도사는 벼랑이 아래를 바라보고 너무 아찔하고 높아서 건너가지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누덕도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찌 눈으로만 사물을 보느냐?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야지.

겁내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아라.


머털도사가 눈을 뜨고 다시 보니 낭떠러지가 아니라 잔디 위에 길이 나있다. 벼랑이 아닌 잔딧길이자 신이 난 머털도사는 힘차게 걸어간다. 그러나, 다시 눈을 뜨고 본 길은 아까처럼 천 길 낭떠러지 위. 놀란 머털도사는 마음의 평정심이 깨지고 외길에서 떨어진다. 다행히 누덕도사의 도움으로 추락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로 건너온다.


이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가.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하면 어떤 위험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양에서 중시한 '마음'과 '정신'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하지만 마음의 고요를 동양 사상가들만 주장한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위대한 사상가, 철학가들은 마음의 고요, 평정심을 제일로 생각했다. 마음의 고요, 차분함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는 무엇일까.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스틸니스(stillness)이다.


* stillness [명사] 고요, 정적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혼란스러워도 나는 흔들리지 않는 것, 흥분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으며 차분히 행동하는 것. 마음 안팎으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동양의 한자로 표현하면 도(道)이고, 고대 그리스 철학과 신학에서는 로고스(logos)라 한다. 이외 불교, 스토아 철학, 에피쿠로스 철학, 기독교, 힌두교를 통틀어 이것을 숭상하지 않은 철학이나 신학은 없었다. 동서양 어디서든 내면의 고요는 최고의 선(善)이자, 만족스러운 삶의 비결이었다. (P17-18 참고).




이 책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는 행복한 삶(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살기 위해는 '마음이 고요한 상태(stillness)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음이 고요하다면, 삶을 살면서 맞부딪히는 거의 모든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럼 마음의 고요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선택받은 소수? 땡!

재능 있는 사람만 가능? 땡!!


저자는 누구나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의 목적은 

이미 당신이 지니고 있는 고요를 

어떻게 끄집어내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P26


저자는 우리 안의 고요를 찾아내려면 세 가지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정신, 영혼 그리고 몸이다.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정신


우리의 몸은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우리의 정신은 '과거와 미래'에 있다. 몸과 정신이 한 곳에 있지 못하고 분리되어 있다. 과거에 있었던 부끄러운 일, 화났던 일들을 끊임없이 곱씹어 생각하고 분개한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그래서 항상 머릿속이 시끄럽다. 지나간 과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지금 현재에 비해 하등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지금 현재에 집중할 때만 우리 마음은 고요할 수 있다. 지나치게 분석하지 말고 그저 할 일을 하자. 압박감 없이 그저 현재에 충실하기.


저자는 현재에 충실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기 쓰기'를 추천한다.


미셀 푸코는 고대의 글쓰기 양식이자 자신에게 쓰는 글이라는 의미의 후폼네마타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일기를 쓴다는 건 마음속의 동요와 어리석음을 몰아내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이고 철학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하면서 일기 쓰기를 '영적 전투의 무기'라고 일컬었다. (...) 최고의 일기는 바로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일기 속의 글은 읽는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을 위한 글이다. 긴장을 풀고 마음을 느긋하게 하기 위해 쓰는 글이자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P82


일기는 마음속의 짐을 덜기 위해서, 마음속에 떠도는 생각을 가라앉히고 정리하기 위해서, 통찰력 있는 생각과 해로운 생각을 구분 짓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일기를 쓰는 데에는 옳은 방법도 그른 방법도 없다. 오직 중요한 건 그저 쓰는 것이다. P84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을 추천하는데 그것은 바로 '스승의 도움' 받기다. 스토아학파 창시자 '제논', 불교를 만든 '싯다르타'도 모두 스승이 있었다. 이들은 나중에 스승과 결별하고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걸었지만, 그들에게 위대한 스승이 없었다면 그들 역시 위대한 업적, 해탈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제논과 석가모니 같은 이들도 정진하기 위해 스승이 필요했다면 우리도 그렇지 않겠는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스승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P96





일기를 써서 잡념을 시각화해 별것 아닌 것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좋은 스승을 만나 많이 보고 배우자. 그래서 정신에 고요함을 깃들이도록 하자.



 │마음을 움직이고 생명을 부여하는, 영혼


'충분하다'라는 생각은 불안을 잠재우는 키워드라고 한다.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면 그 우선순위에 따라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답이 나온다고. 또 우리는 어렸을 때 알게 모르게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이것이 잠재의식 속에 녹아 있어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일종의 트라우마는 우리의 가치관, 행동양식을 결정짓다. 트라우마에 얽매이면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 수 없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불만족스러워하기보다는 '충분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격정적이었던 고요히 잠재울 필요가 있다.



│정신과 영혼의 실행자인, 몸


*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몸이 피곤하면 정신과 영혼이 맑을 수 없다. 그래서 정신과 영혼을 고요하기 위해 '몸의 관리'도 잘 해야 하는데 몸 관리를 하기 위해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확실하고 절제된 일상의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 야외에서 활동적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 고독과 자기만의 관점을 길러야 한다.

- 사람들이 나를 찾을 때 나서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일 중독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

- 나 자신보다 더 큰 대의에 헌신해야 한다.


걷기도 좋고, 엄청난 일정과 스트레스에 허덕일 땐 윈스턴 처칠처럼 '그림 그리기' 취미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을 어쩌다 한 번하는 것보다는, 루틴을 가지고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습관은 적이 아니라, 협력자일 수 있다고.


-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안 정리하기

- 짜임새 있게 하루 일과 계획하기

- 방해 요소 제한하고 선택해야 할 일의 개수 줄이기



│그리고 메멘토 모리


키케로는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석가모니 역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생명은 사라진다. 완전한 해방을 향해 부지런히 정진하라."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없지만 공자 역시 이렇게 말했다. '조문도 석사가의(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는 거꾸로 생각하면 도는 인간이 근원적으로 두려워하는 죽음도 뛰어넘을 수 있게 하고, 또 잘 죽기 위해 도를 깨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부단히 정진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면이 고요해야 하며, 내면이 고요하기 위해서는 정신, 마음, 몸을 정진해야 한다.


우리 인류는 자본주의 시대로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삶의 목적과 인생 철학을 잃어버린 듯하다. 삶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 공허함과 분노, 우울함이 우리 정신을 끊임없이 갉아먹고 있다.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정신, 마음, 몸에 집중하기. 그래서 내면에 고요를 유지하기.


내면의 고요는 동서고금 위대한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추구했던 바다. 내면의 고요는 선택받은 소수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역시 내면의 고요를 이룰 수 있다. 규칙적인 생활, 충분한 수면, 매사 스트레스 받지 않고 '충분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면 가능하다.


라이언 홀리데이의 『스틸리스』는 이를 주장하는 책이다.


마음의 고요를 얻고 싶은 분들은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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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키드 - 2020년 뉴베리 대상 수상작 Wow 그래픽노블
제리 크래프트 지음, 조고은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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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 키드(new kid) : 새내기, 신참

* 뉴베리상 : 매년 미국 아동문학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작가에게 주는 아동문학상




세계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 중 하나인, 뉴베리 상!


뉴베리 상이 제정된 지 100년 만에 최초로 그래픽 노블이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아동문학사 초유의 일인데요, 이 놀라운 작품은 바로, 제리 크래프트 작품의 '뉴 키드'입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조던 뱅크스. 조던은 짬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도 예술학교로 진학하고 싶어 하죠. 하지만 조던의 부모님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조던의 부모님도 다 유색인이었는데, 유색인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죠. 그래서 아들에게 좀 더 나은 기회를 주고자(좀 더 나은 대학, 좀 더 나은 직업을 위해) 조던을 명문 사립학교로 진학시킵니다.


물론 부모님은 조던이 좋아하는 그림도 존중합니다. 사립학교에 일단 9학년까지만 다녀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조던의 진로를 바꾸어 예술학교에 진학시키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렇게 조던 뱅크스는 명문 사립학교, [리버데일]에 진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던은 입학 첫날부터 가치의 충돌과 차별의 벽을 느낍니다. 명문 사립학교이니 만큼 유색인보다 백인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많으며, 선생님 또한 백인 선생님들이 대부분입니다. 학교는 그래서 백인 중심의 가치관으로 움직입니다. 이건 백인인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문제지요. 조던과 다른 유색인 친구들만이, 입학 첫날부터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문제입니다.


가령 이런 문제들입니다.


노년의 백인 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해 책을 추천해 줍니다. 문제는 백인 학생과 유색인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책이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백인 학생들에게는 '마법의 모험' 같은, 그 또래에 어울리는 책을 추천하지요. 하지만 유색인 학생들에겐 이런 책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따로 <선별한 책들>을 추천해 주는데 그 책들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노예제로부터의 탈출',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입니다. 이 책 표지엔 모두 유색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선생님은 유색인 학생에게 이런 책들을 추천해 주면서 한 마디 덧붙입니다. "주인공이 너와 공통점이 많단다"라고요. 하지만 이런 책을 추천받은 유색인 학생 아버지는, 미국 500위 안에 드는 기업의 회장입니다. 유능하고 돈도 많은 아버지를 두고 있는 학생이지만, 백인 노선생님의 눈에는 그저 부모님 없이 가난을 겪고 있는 불쌍한 흑인 소년으로 보일 뿐인 것이지요.


또 백인 선생님은, 백인 학생들의 이름은 헷갈리지 않고 잘 부릅니다. 하지만 유색인 학생의 이름은 늘 헷갈려 합니다. 다만 유색인 학생을 혼낼 때는 정확하게 이름을 부릅니다. 유색인 학생들은 이것도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그저 사소한 실수라 생각하지만, 늘 이름을 잘못 불리는 학생들은 매번 그럴 때마다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제리 크래프트의 뉴 키드가 이런 차별적인 모습만 작품에 담았다면 뉴베리상은 받지 못했을 겁니다. 이 책이 뉴베리상을 받게 된 이유는, 명문 사립학교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다름을 넘어 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타인에 대한 '이해'입니다.


명문 사립학교로 진학한 후 처음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겉돌던 조던은 마음에 맞는 친구를 한 명씩 사귀기 시작하고(처음엔 같은 유색인 학생), 나중엔 백인 친구들과도 오해를 풀고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백인이 유색인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듯이, 유색인 학생들 역시 백인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편견 또한 깨부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인공 조던은 리버데일이라는 명문 사립학교를 다니면서 차별에 직접 부딪히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도 조금씩 깨부숩니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타인'을 이해하게 됩니다.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풀어야 할 생의 숙제는 바로 이게 아닌가 싶습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 말이죠.



주인공 조던은, 운 좋게 남들보다 빨리 낯선 상황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주변인으로 지내기도 했지만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배웠습니다. 뉴베리상 최초 그래픽 노블이 대상을 받은 이유는 바로 이 '이해'에 대한 탁월한 전개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뉴베리상 심사위원들도 이 작품을 읽고 '타인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넓힌 것 같습니다. 바로 이렇게 아동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이 작품에 대상을 준 것이 바로 그 증거지요.


앞으로도 제리 크래프트의 『뉴 키드』처럼 경계를 허물고 편견을 깨부숴, '이해'의 범위를 넓혀주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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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중동과 이슬람 상식도감 지도로 읽는다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안혜은 옮김 / 이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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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이 쓴 세계사를 읽으면 늘 어딘가 비어있는 느낌이 든다. 어디가 비어있는고 하니, 바로 중동이다. 유럽인이 쓴 세계사는 대체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출발한다. 그러곤은 역사의 축은 동에서 서로 흐른다면서 이야기의 중심이 에게해와 그리스로, 그다음엔 로마(이탈리아)로 잠깐 중세 시대에서 장소의 초점이 흐려지다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와 북유럽 조금 다루고, 본격적으로 대항해 시대로 접어든다. 세계사의 중심은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확장되다가 마무리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시대를 거쳐 미국이 패권을 잡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 설명으로 세계사는 마무리된다.



아, 그리고 책의 초반에 인류 4대 문명이라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외에 중국 황허강 문명과 인도 인더스강 문명도 언급되지만 길어봤자 고작 몇 페이지다. 뒤에 인도 이야기가 나와봤자, 유럽발 헬레니즘 문화에 영향을 받은 간다라 미술 이야기가 나오고 중국 이야기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 이야기 조금 나오고 마는 식이다.



그래서 유럽인이 쓴 세계사는 세계사보다는 거의, 언제나, 항상, '유럽사'다. 오히려 그들이 쓴 책 중, '세계사'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은 다른 나라 역사 책이 오히려 제대로 된 세계사답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인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도, 세계사 하면 대부분 유럽 위주로 쓰인 유럽사다. 유럽이 중심이되, 그 외 지역의 이야기는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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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갈증이 생겼다. 늘 세계사 책을 읽으면, 중동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이 정말 큰데 제대로 다룬 책이 없어서 중동 관련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러다 좋은 기회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본격 역사책은 아니고 역사를 포함한 중동과 이슬람에 대한 다양한 상식들이 담겨 있다. 일단 그곳의 역사에서부터 출발한다. 인류 4대 문명 중 제일 빨리 등장한 문명이 바로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니까. 그다음부터 유럽인이 쓴 세계사 책에서 소외된 나머지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란인, 아랍인, 투르크인 등등. 그리고 중동 하면 종교를 빼놓을 수 없다. 종교 이야기도 나오고, 종교에서 파생된 중동만의 독특한 '문화'에 대해서도 자세하면서도 쉽게 소개한다.



저자는 서문에서도 밝혔듯 '가독성을 위한 책'을 냈다고 한다. 어려운 이야기는 가급적 배제하고, 대체로 책의 흐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쉽다. 나처럼 중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흥미롭게 읽을 만한 수준이다. 중동에 관심 있는데 어디서부터 알아가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나온 종교 이야기가 제일 유익했다. 사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슬람교는 7세기에 창시된 비교적 신흥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그전에는 중동에는 어떤 종교가 있었을까. 우선 다신교로 출발했는데 나중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이 지역에서 발흥했다. 또한 중동은 지형이 개방적이어서 민족, 종교가 복잡다단했다. 지금은 중동 전역으로 이슬람교가 보급되어 [중동=이슬람]이란 상식이 있으나, 현재까지도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가 모두 공존하고 있다 한다.




19세기에 유럽의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이 들어오기 전까지 중동은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가 공존했다. 그런데 중동 전역으로 이슬람교가 보급되면서 아랍인의 범주가 한층 넓어졌다. 중동은 모두 이슬람 국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팔레스타인은 기독교의 발상지이며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은 예전에 비잔틴 제국령이었다. 지금도 중동 국가 어디나 기독교인이 살고 있다. 예를 들어 레바논은 국민의 1/3이 마론파 중심의 기독교인이고, 이집트와 시리아는 국민의 약 10퍼센트가 기독교인이다. 이스라엘은 알려진 대로 국민의 대다수가 유대교인이다.


(P 46)




유럽에서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세계사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은 중동의 정세 변화 때문이었다. 교역의 중요 루트가 이슬람인에게 차단되자 유럽인들은 대서양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보통의 세계사 책은 중동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잘 설명하지 않고, 단지 교역이 차단당했다고만 설명하며 대항해시대만을 중요하게 다룬다. 역시 세계사의 중요한 축이 설명되지 않고 빈칸으로 남겨진 채 넘어가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이런 빈칸을 채우는 게 아닌가 싶다. 역사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고, 단지 취미 삼아 교양서적을 읽는데 머무르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빈칸을 채우고 싶다. 중동 지역 이야기는 이 책 덕분에 많이 알게 되었다. 또 한 번 만에 소화하기에는 책 내용이 방대해서, 짬 날 때마다 재독하며 공부하려고 한다.



중동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께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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