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샷 -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사피 바칼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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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샷이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도 매달리는 아이디어를 뜻한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떠올리면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연합국은 절대로 해독할 수 없는 암호인 '에니그마'로 군사 명령을 내렸다. 당시 영국 정부는 자기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언어학자'들을 불러 이 암호를 풀려고 했지만 매번 좌절이었다. 그러다 수학자인 앨런 튜링이 에니그마 암호 해독팀에 합류한다. 앨런 튜링은 사교성은 없고, 잘난 척 대장에, 입만 열면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밉살스러운 사람이었다. 튜링 팀원들을 더욱 짜증 나게 했던 것은, 다른 팀원들처럼 암호를 풀려는 노력은커녕 이상한 기계만 상상하고 만들려는 데 있었다. 도대체 그 기계 따위가 뭐라고! 그 고철이 어떻게 영국 천재들도 나가떨어지는 독일군의 완벽한 암호인 '에니그마'를 풀 수 있겠냐고. 사람들은 앨런 튜링을 미친 사람 취급했고, 언제나 기회만 엿보이면 암호 해독팀에서 내쫓으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튜링이 만든 기계가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에니그마를 해독해 낸다. 이후 암호 해독팀은 독일이 무엇을 할지, 손바닥 손금 보듯이 훤히 알게 된다. 오히려 영국 수뇌부는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독일에 숨기기 위해 일부러 엉뚱한 곳에 군함을 배치하거나, 뻔히 아는 공격에도 대응하지 않아야 할 정도가 되었다. 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바로 앨런 튜링이 만든 기계다. 모두가 미쳤다고 생각한 아이디어, 크기만 크고 무겁고, 시끄럽고 하루 종일 헛돌기만 했던 그 기계가 세계대전의 승기를 바꾼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룬샷이라고 한다.



세상은 어떤 흐름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어느 순간 물줄기가 바뀌는 때가 있다. 그때는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기존의 상식, 기존의 이기는 방법은 별 쓸모가 없다. 오히려 이전이라면 '미친 생각'이라고 취급받는 것이 달라진 세상에 적합하게 되는 것이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을 성공하기 전까진 고철 덩어리가 하늘을 날게 되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형 컴퓨터로 잘나가던 IBM은 왜 개인에게 작은 컴퓨터가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하고 퍼스널 컴퓨터라는 아이디어 자체를 묵살했던 적도 있다. 또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개개인이 전화기를 갖고 다니고, 그것도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통화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초기에는 모두 미친 생각, 허황된 아이디어라고 취급받았는데 이런 생각과 이런 아이디어들이 세상을 바꾸고, 일반 인의 상식까지도 바꾼 것이다.


언제 사람들은 미친 아이디어를 훌륭한 아이디어로 받아들이고, 곧이어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바로 '상전이'의 순간이 찾아와 세상이 이전과 달라졌을 때이다.


'상전이'란 경쟁하는 두 힘이 만들어낸 결과다. 물과 얼음 상태를 떠올리면 된다. 물은 0도가 되면 액체 상태와 고체 상태가 공존한다. 이때 온도가 높아지면 물 분자는 액체 상태가 되고, 0도에서 온도가 더 낮아지만 물 분자들은 고체 상태가 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물이 무조건 0도에서 얼거나 액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금을 뿌려 어는점을 낮출 수 있고, 물 분자에 가하는 압력을 조절하여 액체 상태로 만들거나 고체, 기체 상태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이나 조직, 심지어 국가까지 모두 흥하고 망한다. 개인은 잘 나갈 때가 있는가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한때 잘나가던 기업이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적자를 면하지 못하다 망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국가도 그러하다. 영원히 영광만 있을 것 같았던 로마 제국도 망했고,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도 이제는 화려했던 옛날을 그리워한다.


반면에 영국 식민지로 출발해 이민 국가로 급성장한 미국, 미국은 20세기가 되어 강대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세계의 경찰국가라고 할 수 없었다. 또 종전 후에도 러시아와 냉전에서 미국이 열세를 보이던 때가 많았다(수소폭탄, 우주과학 등). 그러다 걸출한 인물 덕분에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세계 1 국가 자리에 올라섰고 러시아와의 경쟁에서도 이겼다. 아니, 신생 국가 미국이 어떻게 그 짧은 시기 동안에?!!!!


그것은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때 걸출했던 인물 '버니바 부시'라는 사람 덕분이다. 버니바 부시는 미친 생각이라고 사장되는 아이디어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가졌고, 어떤 기술이 나중에 어떻게 발전해서 인간에게 이로울 수 있을지 통찰하는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당시만 해도 전쟁에서 '수학과 과학'은 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부시의 제안으로, '과학연구개발국'이 조직되었고 이 조직에서 미국의 과학자, 엔지니어, 발명가들이 괴상한 것들을 탐구하고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레이더, 전자레인지라던가, 인터넷 등등 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에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미군에서도 버니바 부시가 이끌었던 '과학연구개발국'에서. 그리고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핵무기 개발에도 이 조직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 어쩌면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최대 수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버니바 부시가 이끌었던 '과학연구개발국'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룬샷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알게 된다. 천하무적이었던 독일의 U-보트와 전투기가 나중에 어떻게 침몰하고 추락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물리학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 사피 바칼은 13살 때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해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를 최우등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는 등 이론물리학자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다 1998년, 과학계를 떠나 경영인이 된다. 물론 과학과 상관있는 바이오테크 기업이다. 어쨌든 과학자가 아닌 경영인으로서 저자는 살다가 오바마 행정부 때 '차세대 버니바 부시 보고서' 만들기 위원회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만 해도 사피 바칼은 '버니바 부시'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 연구하고 부시가 이끌었던 조직에 대해 연구하자 어떤 조직이 망하고 어떤 조직이 흥하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 『룬샷』은, 바로 사피 바칼의 연구 결과다. 그는 이론물리학자 출신 경영인으로서, 사후 약방문식 조직 문화 분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조직에 중요한 것은 '조직 문화'가 아니라, '조직 구조'라고 주장한다. 문화가 조직을 성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조직을 성공하게 한다고.


과학 연구가 그러하듯이, 과학자 출신인 저자는 '모델'을 세우고 이 모델이 세상을 제대로 설명해내는지 연구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기업의 이상적인 상태는, 즉 미친 아이디어와 기업을 확장하고 유지하려는 프랜차이즈가 경쟁하고 균형을 이루는 상전이 상태라고 한다. 이것은 조직의 문화가 아니라 바로 '조직의 구조'다. 조직을 이렇게 잘 구성하면 기업은 발전하고 성공하면서도, 또 침체 혼돈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단다.


『룬샷』은 적지 않은 분량의 책으로(두툼!!!) 사피 바칼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복귀하여 애플을 또다시 최고 기업으로 만든 스티브 잡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도 승무원이 나올 만큼 한때 잘나가던 '팬암 항공사'가 어떻게 맥없이 고꾸라졌는지, 또 세상을 바꾼 신약이 어떻게 여러 번의 실패를 딛고 성공할 수 있었는지 등등. 다양하면서도 다채로운 사업 성공, 실패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어 설득력도 높고, 사례는 각 사례대로 다 흥미롭고 재미있다.


책은 두툼하고, 사례도 많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요지는 이러하다. 바로 룬샷, 즉 일견 미친 것 같은 아이디어들이 조직에서 무시되거나 사장되지 않도록 하고, 기업의 프랜차이즈(확장, 유지- 등등 관료주의)도 함께 신경 써야 한다고. 상전이, 즉 룬샷과 프랜차이즈가 '균형' 맞춰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기업은 성공하고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다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과학자들이 쓴 교양서를 좋아한다. 간단 명료하고, 어렵긴 하지만 깊이 헤아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 <증거와 설명>이 순차적으로 나열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설득력 있다.


이 책은 과학자 출신인 경영자가 쓴, 경영 서적이지만 저자의 과학적 시각으로 어떤 조직이 성공하고, 또 어떤 조직이 실패하는지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정말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되는데, 모든 모직의 흥망성쇠는 비슷하기 때문 아닐까.


조직경영, 자기경영, 성공 등에 관심 있는 분들께 강추, 초강추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이야기꾼' 같은 스킬로 각 사례들을 아주 맛깔나게 서술한다. 개별 사례 이야기들도 다 재미있기 때문에 조직경영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일반 누구나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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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사냥꾼 - 집착과 욕망 그리고 지구 최고의 전리품을 얻기 위한 모험
페이지 윌리엄스 지음, 전행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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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초 학문은 대부분 고대 그리스 시대 때 정립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우리들처럼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공부했다기 보다, 개인적 취미와 여흥으로 '시민적 삶'을 즐기기 위해 공부했다. 여기에 여러 학파 간에 '경쟁'이 더해지면서 고대 그리스 학문은 더욱 발전했는데 우리에게 학문, 즉 공부는 수단이며 도구이지만, 고대 그리스 시민에게 공부는 '목적' 그 자체였다. 대부분 우리에게 '공부'는 강제적이고 타성적이지만, 고대 그리스인에게 공부는 '게임'처럼 흥미진진한 그 무엇으로 자발적 참여가 많았다.


모든 학문은 이렇게 '애호가'들의 '취미(혹은 강렬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수학, 과학, 철학이 그렇게 시작했으며, 역사 역시 그러하다. 특히 시대가 흘러, 현대에는 거의 모든 학문이 '전문화'되어서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도 여전히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자발적 호기심과 취미로 공부를 하고, 전공자 못지않게 아니 전공자보다 더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 덕분에 그 학문은 발전하고, 상아탑 내에서는 결코 보지 못했던 것을, 아마추어 애호가들이 발견할 때도 많다.




책 제목만 보면, 공룡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쥐라기 공원' 느낌의 흥미진진한 소설일 거란 느낌이 들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탐사 보도를 하며 취재한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저자는 2009년 여름, '공룡을 훔친 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한 남성의 기사를 접한다. 저자는 처음엔 의아했다. 누가, 어떻게 '공룡을 훔칠 수 있는지', 그리고 대체 어떤 사람이 '공룡을 사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흥미를 갖고 이 '공룡 사냥꾼'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발견했다.


우선 기본적으로 공룡과 관련해 세 그룹이 있다. ① 고생물학자, ② 공룡 화석 수집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③ 상업적인 화석을 발굴하는 공룡 사냥꾼이 있다. 고생물학자들은 직업이 있고, 소속된 기관(대학이든 연구소든)이 있기 때문에 소속 기관의 절차와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 현장이 좋다고, 무한정 현장에서 발굴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서류를 작성하고, 연구 및 발굴 예산을 따야 하며, 소속된 조직의 목표와 시스템 절차에 순응해야 한다. 그리고 법과 규제, (암묵적) 규율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공룡 사냥꾼(= 화석 사냥꾼)들이다. 이들은 전공자들 못지않게 고생물학, 지질학, 지리학, 기타 관련 과학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육지나 수중의 발굴 실력이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다. 어렸을 때부터 화석 발굴 관련 취미가 있거나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 이들과 전공자의 차이점은, 공룡 사냥꾼은 행정 시스템을 싫어하고 어떤 규율에 속박되는 걸 극히 꺼린다는 점이다. 그들은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발굴을 즐기고 싶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발굴을 하기 위해, 화석들을 내다 팔기도 한다. 때로는 화석 하나에 몇 달 치 생활비 혹은 자식을 낳아 기르고 대학 공부까지 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을 한 번에 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화석은 그들의 관심사이자, 취미이며, 때로는 '노다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고생물학자들은 공룡 사냥꾼들을 비난하고, 화석을 사고파는 행위를 반대한다. 화석은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에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에 대학이나 연구 기관이 전문적으로 발굴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생물학자들은 시스템에 속해 있는 직장인이다. 그들의 발굴엔 시간상, 예산상 한계가 있고, 행정 절차상 많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문적으로 유의미한 화석들이 공룡 사냥꾼들에 의해 많이 발견되었다.


저자가 읽은 유죄 판결 기사 속 화석도, '공룡 사냥꾼'이 몽골 고비사막에서 발굴하고 미국으로 가져온 것이다.


공룡 사냥꾼은, 고생물학에서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화석을 사고팔고 이윤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혀서 수억 년간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인 화석을 발굴하고, 학문적으로도 의미 있는 연구 재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화석을 수집가에게 파는 공룡 사냥꾼도 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연구 기관에 기증하거나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전문가에게 알려주는 공룡 사냥꾼도 있다).


///


이 책은 공룡 사냥꾼(수익)과 고생물학자(학문 연구)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균형을 잡고, 공룡 화석 시장에 대해 알려준다. 어떤 사람들이 공룡 사냥꾼이 되고, 또 누가 고생물학자가 되는지, 그들은 어떤 삶의 경로를 밟아가고 무엇을 선택하고 주장하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서평의 맨 처음에 썼듯이 대부분의 학문은 애초에 '아마추어 애호가'로부터 출발한다. 고생물학 분야도 다른 학문들처럼 아마추어들에 의해 많은 발견이 이루어졌다. 고생물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와 이해를 위해서는, 화석들이 시장에서 유통되기 보다 대학과 연구소로 보내져야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놀라운 발굴이 이뤄지는 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항상 윤리 문제와 직면한다. 도굴과 위조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연구소에 적을 두지 않고, 화석 발굴을 업으로 해 이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전문가들에게 전혀 관심 없는 땅에서 아마추어들이 놀라운 발굴을 하면?!


저자는 옳고 그름보다, 우리가 이 문제에 관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환기시켜준다. 딜레마를 느낄 것인지, 균형점을 찾을 것인지는 독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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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경제 전쟁 - 세계 석학들이 내다본
리처드 볼드윈.베아트리스 베더 디 마우로 엮음, 매경출판 편역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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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적으로 보면,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일을 겪는 매우 희귀한 사건 중 하나지만 이는 결코 '세계대전'이 아니다. 모두 협력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각국 국민들이 '인류가 다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임을 깨닫고, 세계화를 포함한 협력을 촉진시키는 기제가 될 것으로 본다. 

7쪽, 리처드 볼드윈 인터뷰 중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한 세상. 바이러스 때문에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 미국, 이제는 남미까지 올 스톱 되었다. 역사상 초유의 상황. 전염병도 전염병이지만, 이 바이러스로 인류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으니 바로 경제 문제다. 이제 세계 경제는 우리 몸속 조직과 비슷하게 모든 것이 아주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버렸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멈춰서 버리면, 마치 우리 몸속에 어느 한 부분이 막힌 것처럼 위기 상황이 발생한다. 가까운 예로 10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들 수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경제에 큰 영향을 주었고 도미노처럼 아시아를 비롯하여 다른 대륙으로 위기가 연쇄적으로 퍼져나갔다. 특히나 남유럽이 큰 위기를 겪었는데, 지금 코로나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이 받은 타격이 컸다. 이 나라의 재정 위기는 EU의 위기로까지 번졌고, 국가 간, 그리고 지역 간 분열과 갈등을 낳았다.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 와중에 또 코로나 사태가 터진 것이다.


앞으로 우리 세상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경제 문제를 비롯하여, 사회, 세계 이슈가 나의 주요 관심사. 그래서 이 책을 읽어 보았다. 『세계 석학들이 내다본 코로나 경제전쟁』




 
 
이 책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온 책이라, 코로나19 관련 경제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한 책은 아니다. 석학들의 칼럼이나 짧은 분석문을 번역해 묶은 책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코로나19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체계적이고 깊이 다룬 책을 읽고 싶은 분들께는 살짝 비추한다. 그보다, 깊은 분석은 일단 차치하고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최소한의 데미지만 받고 빨리 극복할 수 있을지 관심 있는 분께 추천한다.


지금까지 세계 경제는 거의 주기적으로 경제적 위기를 겪었고, 많은 위기들이 나중에 '늦은 정부의 개입으로 경제적 타격이 더 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년 전 서브 프라임 때도 그랬고, 우리에게 뼈아픈 고통을 준 아시아 외환 위기와 석유 파동,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멀게는 100년 전 경제 대공황 때도 그랬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 세계 정부가 발 빠르게 극복 대책을 내놓았는데 대부분 정부의 돈풀기다. 우리도 며칠 후에 받을 재난지원금, 재난기본소득이 세계 각국의 돈풀기와 같은 맥락이다.


이 책에 나오는 석학들의 생각도 대체로 이러하다. '묻지도 따지지 말고 일단 돈을 풀어야 한다'가 주요 골자다. 경제는 '돈의 순환'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순환이 막히면 연쇄적 파산은 불가피하며, 실업자 증가와 사회 불안이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바이러스로 죽는 사람보다 경제 문제나 다른 사회적 불안 문제로 사람들이 위협받을 확률이 더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의 우려처럼 '부채'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하지만, 미래의 부채를 걱정하다가 지금 사람들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 없다는 게 이 책의 요점이다.


이 책의 저자들의 주장이 맞을지, 틀릴지, 그건 나중 문제다. 일단 과거 경제 위기를 보면, 정부가 뭉그적거려서 좋은 결과를 얻었던 적은 거의 없다. 한때 '작은 정부'가 유행했지만, 결단코 20세기 이후 작은 정부란 있은 적이 없다. 아무튼 인류 자체도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서, 이 새로운 위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한다. 어느 정도는 무모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위기와 그에 따른 대응에 대한 결과와 평가는 미래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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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교육용 기초 한자 900자 - 어휘력을 높이는
미래주니어 편집부 지음 / 미래주니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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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한자를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인데, 살다 보니 내가 한자를 사랑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중학생 때는 한자 특활부에 들어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도 한자 사랑이 식지 않아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나름 열심히 익혔다. 이때는 노트 필기도 한자로 쓰곤 했는데(교수님 따라 겉멋 부림) 이제는 그런 시절이 정말 있었냐는 듯 대부분 까먹었고 초등생 수준 한자 몇 개와 내 이름만 겨우 쓸 수 있을 뿐이다.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코로나 집콕 기회를 빌려 다시 한자 공부를 시작했다.

이 책의 구성은, 한자 공부 좀 해본 사람에게 익숙할 것이다.



우선 한자 쓰기 기본 원칙!!! (어때요, 기억나지요? ㅎㅎ)

한자는 어떤 순서로 적는지가 무척 중요한 문자다. 필순에 따라 글자 모양이 달라지고, 무엇보다 글자의 총 획수가 달라진다. 한자 획수는 한자 사전을 찾을 때 무척 중요! - 물론 요즘엔 전자사전의 필기 인식기가 발달해서 스크린에 똑같이 따라 쓰면 바로 찾을 수 있지만 그래도 아날로그 한자 사전으로 한자를 찾을 땐 획수를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오른손잡이이므로 한자도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지만 가로획 중 헷갈리는 순서가 있으니 꼭 기억해 둬야 한다. (예로, 한자 허리를 끊는 가로 획과 글자 전체를 꿰뚫는 세로 획은 나중에 쓴다)


독특하게도

등질 발(?)
임금 왕(王)
푸를 청(靑)

의 경우, 2가지 '순서'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왜 지금 알게 됐을까.... 배웠는데 완전 까먹은 건가 ;ㅅ; 왜 이렇게 생소하지?!)



이후에 나오는 구성은 대부분 한자 자습서와 비슷하다.






뜻과 음을 음미하며, 필순과 부수를 외우고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써보기. 한자 공부에 왕도는 없다. 반복 학습과 직접 손으로 많이 써보는 것 말고는.





어느 정도 학습을 하면 중간중간에 평가와 사자성어를 익힐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있다.





오랜만에 나도 한자 따라 쓰기. ㅎㅎㅎㅎ

한자 모양이 영 안 예쁘다. 삐뚤빼뚤, 비례도 크기도 엉망이다. 아름답지가 않아. ㅠㅠ 한자는 아름답고 정갈하게 써야 하는데.



어떤 글자든, 필체는 그 사람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쓰는 것이 중요하나 특히 한자는 상형자에 토대를 두고 획이 많은 문자이기 때문에 특히 정신 집중을 요한다. 또 정신만 집중해서 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깊이 들어가면 한자 학습보다는 '서예'와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정성스럽게, 정신을 집중해 한자를 쓰면 왠지 내가 향상되는 느낌을 받는다.

영어나 다른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과 또 다른 맛을 볼 수 있는 게 한자 공부가 아닐까 한다. 한자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 어휘력을 높이고자 하는 학생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또 나처럼 성인이지만 취미로 한자 공부를 하려는 분에게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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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트 와이프
에이미 로이드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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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완독하고 덮으면서 생각했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이노센트 허즈번드가 아니라 이노센트 와이프일까'하고. 


주인공 서맨사는 영국에 사는 평범한 교사로, 어느 날 우연히 남친으로부터 미국인 사형수 '데니스'의 사연을 접한다. 처음엔 시큰둥했지만 데니스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데시느에게 빠져든다. 데니스는 범죄자라고 하기엔 어딘가 성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는 사형 판결을 받을 때도 끝끝내 무죄를 주장했지만 그의 표정이나 몸짓은 시종일관 평온하고 차분했다. 오히려 사슬에 묶인 그의 손과 발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연상시켰다. 그렇게 서맨사는 데니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데니스의 무죄를 믿었다. 서맨사는 데니스에 대해 찾을 수 있는 자료는 모조리 찾았고, 나아가 데니스의 무죄를 지지하는 인터넷 클럽에도 가입한다. 그러다가 서맨사는 마음의 결심을 하고 데니스에게 손편지를 쓴다. 위문편지라고 해야 할지, 고백 편지라고 해야 할지.


그리고 데니스로부터 답장이 왔다. 기뻤다!!


서맨사는 데니스의 답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도 답장을 쓰긴 했지만 서맨사에게 보낸 편지는 남들에게 보낸 답장과 달랐다. 서맨사는 궁금했다. 데니스도 자신과 같은 감정일지. 기쁘게도 데니스도 같은 감정임을 고백했다. 데니스에게 서맨사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이렇게 영국에 사는 서맨사는, 모든 걸 뒤로한 채 미국으로, 교도소에 수감중인 데니스를 만나기 위해 떠난다.


처음엔 서맨사도 물론 겁이 나고, 자신의 행동이 과연 옳은지 걱정스러웠지만 눈부시게 아름답고 잘생긴 데니스를 만나니 이런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데니스의 무죄를 주장한 다큐멘터리를 찍은 '캐리'라는 감독이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게 도와준다. 그래서 그 둘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교도소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한다.



 


서맨사는 데니스에 대해 알아갈수록 의심쩍은 부분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데니스를 끝까지 믿는다. 아니, 믿는다기보다 '두둔'한다. 그게 데니스가 의도한 방식이니까. 서맨사도 처음부터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데니스를 자신의 남자로 두기 위해 서맨사는 감내한다. 그와 처음 가졌던 관계처럼, 데니스와의 사이는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전신을 훑는 어떤 짜릿함과 쾌감이 있다. 결코 그만둘 수 없는, 끊임없이 갈망하게 되는. 모두가 그렇게 공범이 되었다. 데니스의 비밀을 지켜주면, 오직 자신만이 데니스에게 특별한 존재될 거라 믿으며.


작품의 시점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취하지만, 대체로 주인공 샘(서맨사)을 중심으로 쓰여있어서, 독자는 서맨사의 마음을 따라 의심스러운 그녀의 남편(데니스)을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의심을 계속 품은 채 읽게 된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서맨사에게 독자가 감정이입하기에 그녀의 자존감은 너무 낮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생각들은, 독자들에게 벽을 친다.


이렇게 감정이입의 요소는 떨어지지만, 서맨사가 어째서 데니스에게 푹 빠졌는지에 대한 캐릭터 설득은 강하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 자기불신이 강한 사람들은 어떤 아름다운 사람이 자신에게 잘해주면 곧잘 이성을 잃고 상대방에게 빠져든다. 그런고로 왜 데니스가 서맨사에게는 다르게 대했는지, 또 어째서 하워드와 린지는 늘 데니스 곁에 머물렀는지 알 수 있다.



에이미 로이드의 『이노센트 와이프』는 작가의 첫 장편 스릴러 소설로, 줄거리나 문체, 캐릭터의 매력이 출중하다. 첫 페이지부터 가독성 높고, 읽으면 읽을수록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손에서 책을 놓기가 힘들었다. 앉은 자리에서 이 책을 내리 다 읽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어딘가 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비어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 아마 이것도 독자의 상상에 맡기려는 작가의 의도였겠지만, 그럼에도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그 소녀들을 누가 살해했는가! (책을 끝까지 읽으면 알 수 있지만, 동시에 끝까지 읽어도 알 수 없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사람들처럼 '느낌'에 따라 데니스의 유무죄를 판단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며 나를 많이 돌아보았다. 내가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내가 했던 행동과 말들, 그리고 과거에 번번이 느꼈던 감정 결핍들이 떠올랐다. 이제 나는 서맨사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서맨사와 같은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결핍 있는 인간을 만나 끊임없이 채워지지 않는 뭔가를 갈구하는 인생을 살기 쉽다.


우리 인생의 숙제는 바로 이게 아닐까. 어린 시절의 결핍을, 어른이 되어서 그 결핍을 채워줄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데니스와 서맨사는 서로 채워주질 못한다. 다만, 알리바이를 대줄 수 있는 상대일 뿐이다.


그런 고로, 서맨사는 과연 이노센트 와이프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데니스도, 하워드도, 린지도, 캐리도 모두 유죄다.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른 척, 그렇게 진실 위에 전혀 새로운 '진실'을 만들고 덧입힌다.


아마도 이건 독자들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다. 다른 독자의 의견이 궁금하다.




스릴러 소설 좋아하는 분께 추천,


가독성 높은 소설 좋아하시는 분께 추천,


다음 내용이 궁금하도록 짜인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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