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샷 -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사피 바칼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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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샷이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도 매달리는 아이디어를 뜻한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떠올리면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연합국은 절대로 해독할 수 없는 암호인 '에니그마'로 군사 명령을 내렸다. 당시 영국 정부는 자기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언어학자'들을 불러 이 암호를 풀려고 했지만 매번 좌절이었다. 그러다 수학자인 앨런 튜링이 에니그마 암호 해독팀에 합류한다. 앨런 튜링은 사교성은 없고, 잘난 척 대장에, 입만 열면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밉살스러운 사람이었다. 튜링 팀원들을 더욱 짜증 나게 했던 것은, 다른 팀원들처럼 암호를 풀려는 노력은커녕 이상한 기계만 상상하고 만들려는 데 있었다. 도대체 그 기계 따위가 뭐라고! 그 고철이 어떻게 영국 천재들도 나가떨어지는 독일군의 완벽한 암호인 '에니그마'를 풀 수 있겠냐고. 사람들은 앨런 튜링을 미친 사람 취급했고, 언제나 기회만 엿보이면 암호 해독팀에서 내쫓으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튜링이 만든 기계가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에니그마를 해독해 낸다. 이후 암호 해독팀은 독일이 무엇을 할지, 손바닥 손금 보듯이 훤히 알게 된다. 오히려 영국 수뇌부는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독일에 숨기기 위해 일부러 엉뚱한 곳에 군함을 배치하거나, 뻔히 아는 공격에도 대응하지 않아야 할 정도가 되었다. 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바로 앨런 튜링이 만든 기계다. 모두가 미쳤다고 생각한 아이디어, 크기만 크고 무겁고, 시끄럽고 하루 종일 헛돌기만 했던 그 기계가 세계대전의 승기를 바꾼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룬샷이라고 한다.



세상은 어떤 흐름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어느 순간 물줄기가 바뀌는 때가 있다. 그때는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기존의 상식, 기존의 이기는 방법은 별 쓸모가 없다. 오히려 이전이라면 '미친 생각'이라고 취급받는 것이 달라진 세상에 적합하게 되는 것이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을 성공하기 전까진 고철 덩어리가 하늘을 날게 되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형 컴퓨터로 잘나가던 IBM은 왜 개인에게 작은 컴퓨터가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하고 퍼스널 컴퓨터라는 아이디어 자체를 묵살했던 적도 있다. 또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개개인이 전화기를 갖고 다니고, 그것도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통화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초기에는 모두 미친 생각, 허황된 아이디어라고 취급받았는데 이런 생각과 이런 아이디어들이 세상을 바꾸고, 일반 인의 상식까지도 바꾼 것이다.


언제 사람들은 미친 아이디어를 훌륭한 아이디어로 받아들이고, 곧이어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바로 '상전이'의 순간이 찾아와 세상이 이전과 달라졌을 때이다.


'상전이'란 경쟁하는 두 힘이 만들어낸 결과다. 물과 얼음 상태를 떠올리면 된다. 물은 0도가 되면 액체 상태와 고체 상태가 공존한다. 이때 온도가 높아지면 물 분자는 액체 상태가 되고, 0도에서 온도가 더 낮아지만 물 분자들은 고체 상태가 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물이 무조건 0도에서 얼거나 액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금을 뿌려 어는점을 낮출 수 있고, 물 분자에 가하는 압력을 조절하여 액체 상태로 만들거나 고체, 기체 상태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이나 조직, 심지어 국가까지 모두 흥하고 망한다. 개인은 잘 나갈 때가 있는가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한때 잘나가던 기업이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적자를 면하지 못하다 망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국가도 그러하다. 영원히 영광만 있을 것 같았던 로마 제국도 망했고,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도 이제는 화려했던 옛날을 그리워한다.


반면에 영국 식민지로 출발해 이민 국가로 급성장한 미국, 미국은 20세기가 되어 강대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세계의 경찰국가라고 할 수 없었다. 또 종전 후에도 러시아와 냉전에서 미국이 열세를 보이던 때가 많았다(수소폭탄, 우주과학 등). 그러다 걸출한 인물 덕분에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세계 1 국가 자리에 올라섰고 러시아와의 경쟁에서도 이겼다. 아니, 신생 국가 미국이 어떻게 그 짧은 시기 동안에?!!!!


그것은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때 걸출했던 인물 '버니바 부시'라는 사람 덕분이다. 버니바 부시는 미친 생각이라고 사장되는 아이디어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가졌고, 어떤 기술이 나중에 어떻게 발전해서 인간에게 이로울 수 있을지 통찰하는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당시만 해도 전쟁에서 '수학과 과학'은 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부시의 제안으로, '과학연구개발국'이 조직되었고 이 조직에서 미국의 과학자, 엔지니어, 발명가들이 괴상한 것들을 탐구하고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레이더, 전자레인지라던가, 인터넷 등등 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에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미군에서도 버니바 부시가 이끌었던 '과학연구개발국'에서. 그리고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핵무기 개발에도 이 조직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 어쩌면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최대 수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버니바 부시가 이끌었던 '과학연구개발국'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룬샷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알게 된다. 천하무적이었던 독일의 U-보트와 전투기가 나중에 어떻게 침몰하고 추락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물리학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 사피 바칼은 13살 때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해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를 최우등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는 등 이론물리학자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다 1998년, 과학계를 떠나 경영인이 된다. 물론 과학과 상관있는 바이오테크 기업이다. 어쨌든 과학자가 아닌 경영인으로서 저자는 살다가 오바마 행정부 때 '차세대 버니바 부시 보고서' 만들기 위원회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만 해도 사피 바칼은 '버니바 부시'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 연구하고 부시가 이끌었던 조직에 대해 연구하자 어떤 조직이 망하고 어떤 조직이 흥하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 『룬샷』은, 바로 사피 바칼의 연구 결과다. 그는 이론물리학자 출신 경영인으로서, 사후 약방문식 조직 문화 분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조직에 중요한 것은 '조직 문화'가 아니라, '조직 구조'라고 주장한다. 문화가 조직을 성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조직을 성공하게 한다고.


과학 연구가 그러하듯이, 과학자 출신인 저자는 '모델'을 세우고 이 모델이 세상을 제대로 설명해내는지 연구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기업의 이상적인 상태는, 즉 미친 아이디어와 기업을 확장하고 유지하려는 프랜차이즈가 경쟁하고 균형을 이루는 상전이 상태라고 한다. 이것은 조직의 문화가 아니라 바로 '조직의 구조'다. 조직을 이렇게 잘 구성하면 기업은 발전하고 성공하면서도, 또 침체 혼돈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단다.


『룬샷』은 적지 않은 분량의 책으로(두툼!!!) 사피 바칼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복귀하여 애플을 또다시 최고 기업으로 만든 스티브 잡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도 승무원이 나올 만큼 한때 잘나가던 '팬암 항공사'가 어떻게 맥없이 고꾸라졌는지, 또 세상을 바꾼 신약이 어떻게 여러 번의 실패를 딛고 성공할 수 있었는지 등등. 다양하면서도 다채로운 사업 성공, 실패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어 설득력도 높고, 사례는 각 사례대로 다 흥미롭고 재미있다.


책은 두툼하고, 사례도 많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요지는 이러하다. 바로 룬샷, 즉 일견 미친 것 같은 아이디어들이 조직에서 무시되거나 사장되지 않도록 하고, 기업의 프랜차이즈(확장, 유지- 등등 관료주의)도 함께 신경 써야 한다고. 상전이, 즉 룬샷과 프랜차이즈가 '균형' 맞춰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기업은 성공하고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다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과학자들이 쓴 교양서를 좋아한다. 간단 명료하고, 어렵긴 하지만 깊이 헤아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 <증거와 설명>이 순차적으로 나열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설득력 있다.


이 책은 과학자 출신인 경영자가 쓴, 경영 서적이지만 저자의 과학적 시각으로 어떤 조직이 성공하고, 또 어떤 조직이 실패하는지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정말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되는데, 모든 모직의 흥망성쇠는 비슷하기 때문 아닐까.


조직경영, 자기경영, 성공 등에 관심 있는 분들께 강추, 초강추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이야기꾼' 같은 스킬로 각 사례들을 아주 맛깔나게 서술한다. 개별 사례 이야기들도 다 재미있기 때문에 조직경영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일반 누구나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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