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사냥꾼 - 집착과 욕망 그리고 지구 최고의 전리품을 얻기 위한 모험
페이지 윌리엄스 지음, 전행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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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초 학문은 대부분 고대 그리스 시대 때 정립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우리들처럼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공부했다기 보다, 개인적 취미와 여흥으로 '시민적 삶'을 즐기기 위해 공부했다. 여기에 여러 학파 간에 '경쟁'이 더해지면서 고대 그리스 학문은 더욱 발전했는데 우리에게 학문, 즉 공부는 수단이며 도구이지만, 고대 그리스 시민에게 공부는 '목적' 그 자체였다. 대부분 우리에게 '공부'는 강제적이고 타성적이지만, 고대 그리스인에게 공부는 '게임'처럼 흥미진진한 그 무엇으로 자발적 참여가 많았다.


모든 학문은 이렇게 '애호가'들의 '취미(혹은 강렬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수학, 과학, 철학이 그렇게 시작했으며, 역사 역시 그러하다. 특히 시대가 흘러, 현대에는 거의 모든 학문이 '전문화'되어서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도 여전히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자발적 호기심과 취미로 공부를 하고, 전공자 못지않게 아니 전공자보다 더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 덕분에 그 학문은 발전하고, 상아탑 내에서는 결코 보지 못했던 것을, 아마추어 애호가들이 발견할 때도 많다.




책 제목만 보면, 공룡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쥐라기 공원' 느낌의 흥미진진한 소설일 거란 느낌이 들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탐사 보도를 하며 취재한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저자는 2009년 여름, '공룡을 훔친 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한 남성의 기사를 접한다. 저자는 처음엔 의아했다. 누가, 어떻게 '공룡을 훔칠 수 있는지', 그리고 대체 어떤 사람이 '공룡을 사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흥미를 갖고 이 '공룡 사냥꾼'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발견했다.


우선 기본적으로 공룡과 관련해 세 그룹이 있다. ① 고생물학자, ② 공룡 화석 수집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③ 상업적인 화석을 발굴하는 공룡 사냥꾼이 있다. 고생물학자들은 직업이 있고, 소속된 기관(대학이든 연구소든)이 있기 때문에 소속 기관의 절차와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 현장이 좋다고, 무한정 현장에서 발굴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서류를 작성하고, 연구 및 발굴 예산을 따야 하며, 소속된 조직의 목표와 시스템 절차에 순응해야 한다. 그리고 법과 규제, (암묵적) 규율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공룡 사냥꾼(= 화석 사냥꾼)들이다. 이들은 전공자들 못지않게 고생물학, 지질학, 지리학, 기타 관련 과학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육지나 수중의 발굴 실력이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다. 어렸을 때부터 화석 발굴 관련 취미가 있거나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 이들과 전공자의 차이점은, 공룡 사냥꾼은 행정 시스템을 싫어하고 어떤 규율에 속박되는 걸 극히 꺼린다는 점이다. 그들은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발굴을 즐기고 싶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발굴을 하기 위해, 화석들을 내다 팔기도 한다. 때로는 화석 하나에 몇 달 치 생활비 혹은 자식을 낳아 기르고 대학 공부까지 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을 한 번에 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화석은 그들의 관심사이자, 취미이며, 때로는 '노다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고생물학자들은 공룡 사냥꾼들을 비난하고, 화석을 사고파는 행위를 반대한다. 화석은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에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에 대학이나 연구 기관이 전문적으로 발굴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생물학자들은 시스템에 속해 있는 직장인이다. 그들의 발굴엔 시간상, 예산상 한계가 있고, 행정 절차상 많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문적으로 유의미한 화석들이 공룡 사냥꾼들에 의해 많이 발견되었다.


저자가 읽은 유죄 판결 기사 속 화석도, '공룡 사냥꾼'이 몽골 고비사막에서 발굴하고 미국으로 가져온 것이다.


공룡 사냥꾼은, 고생물학에서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화석을 사고팔고 이윤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혀서 수억 년간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인 화석을 발굴하고, 학문적으로도 의미 있는 연구 재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화석을 수집가에게 파는 공룡 사냥꾼도 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연구 기관에 기증하거나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전문가에게 알려주는 공룡 사냥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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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공룡 사냥꾼(수익)과 고생물학자(학문 연구)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균형을 잡고, 공룡 화석 시장에 대해 알려준다. 어떤 사람들이 공룡 사냥꾼이 되고, 또 누가 고생물학자가 되는지, 그들은 어떤 삶의 경로를 밟아가고 무엇을 선택하고 주장하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서평의 맨 처음에 썼듯이 대부분의 학문은 애초에 '아마추어 애호가'로부터 출발한다. 고생물학 분야도 다른 학문들처럼 아마추어들에 의해 많은 발견이 이루어졌다. 고생물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와 이해를 위해서는, 화석들이 시장에서 유통되기 보다 대학과 연구소로 보내져야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놀라운 발굴이 이뤄지는 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항상 윤리 문제와 직면한다. 도굴과 위조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연구소에 적을 두지 않고, 화석 발굴을 업으로 해 이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전문가들에게 전혀 관심 없는 땅에서 아마추어들이 놀라운 발굴을 하면?!


저자는 옳고 그름보다, 우리가 이 문제에 관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환기시켜준다. 딜레마를 느낄 것인지, 균형점을 찾을 것인지는 독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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