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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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 여자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 나더러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지. 나는 돈을 번다고 대답했다. 너는 그건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얘기했어. 나는 말했다. "아니지,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목숨을 연명할 뿐이야. 그들은 자기가 가진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건 없어. 물건에는 기대치에 따라 매겨지는 가격이 있을 뿐이고 나는 그걸 가지고 사업을 한다. 지구상에서 가치가 있는 건 시간뿐이야. 1초는 언제든 1초고 거기엔 타협의 여지가 없어."


프레드릭 배크만, 『일생일대의 거래』 중 35쪽


목숨에 경중이 있을까. 가령 신문에서 종종 다룰 만큼 유명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과 종합병원 대기실 한구석에서 소파를 빨간색 크레용으로 완전히 빨갛게 색칠하는 암에 걸린 어린 소녀의 목숨을 따져본다면?! 사람들은 말로는 '둘 다 소중해요'라고 말하겠지만, 실제 사회가 굴러가기는 명망 높고 돈 있는 사람의 가치를 더 높게 치며, 병실 한편에서 언제나 죽음을 맞닥뜨려야 하는 소녀는 크게 가치를 두지 않는다. 소녀의 부모와 그 가족에게만 소중한 존재일 뿐.


이 책은 모든 걸 다 거머쥔 한 남자의 목숨과 세상에 태어난 지 몇 년밖에 안 됐지만 벌써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목숨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자는 돈만 보고 살았다. 또한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따라잡아야 하고,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밟아야 한다고 믿으며 살았다. 그는 일이 제1 순위여서 아내를 떠나가게 만들었고, 아들은 밀어내었다. 가족도 없이 혼자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래도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행복했을까. 글쎄. 돈과 지위가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글쎄. 돈과 지위는 그냥 자신의 노력, 성취에 대한 결과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본인은 강한 남자로, 성공한 남자로 살아야 했으므로 그렇게 살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살았을까. 태어날 때 쌍둥이 형제는 죽고 자기 혼자만 살아남았을 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절친한 친구와 암벽 등반을 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혼자만 살고 친구는 죽었을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돌아가셨을 때부터?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아도 그는 혼자였고, 아내와 아들이 떠나도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돌아오려고 하면 선을 긋고 오지 말라고 했다. 이기적이어서 그랬을까.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암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했다.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그 소녀는 내일 죽어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 시한부 환자였다. 소녀는 낯선 아저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자기 앞에서 우는 엄마를 달래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며 오히려 엄마를 위로한다. 이 소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죽을 사람 명부를 가지고 돌아다니는 회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뿐이다(이 여자는 사신이다. 죽을 사람을 저승으로 이동시키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일만 알고, 가족을 버리다시피했던 남자는 이 소녀를 보고 마음이 변한다. 자신의 죽음과 이 소녀의 죽음을 바꿔달라고 사신에게 말한다. 하지만 사신은 죽음과 죽음은 맞바꿀 수 없고 오로지 목숨과 목숨만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만약 소녀를 살리기 위해 본인이 죽겠다고 하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인생이 없던 것이 되어버린다고.


남자는 소녀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한다. 그렇게 목숨을 바꾸기 직전 사신과 남자는 남자의 아들에게로 간다. 그다지 아들에게 정이 없다고 생각했던 남자였는데, 떠나기 직전에 만난 아들을 보고 만감이 교차한다. 애틋함이라고 해야 할지, 미쳐 몰랐던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위에 발췌한 '시간의 가치'가 다른 의미로 진실이었다. 서로 함께 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함께 페리를 탔던), 그리고 마지막의 만남도 얼마나 소중한지.


지구상에서 가치가 있는 건 시간뿐이야.



이 시간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때 소중한 것이다. 조각조각 나 있는 파편화된 기억이라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시간은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다.


그는 소녀에게 그 시간을 양보하고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는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사라진다. 아들을 더없이 사랑했던 아버지가 되어서. 그에게 목숨을 이어받은 소녀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함께 나누며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 주인공의 아들처럼 말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그의 두꺼운 소설만 읽었었는데 이렇게 짧은 소설도 잘 쓰는구나 싶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의 캐럴』과 에릭 엠마누엘 슈미트의 『오스카와 장미 할머니』가 떠오른 소설이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겨울과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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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읽기의 기술 - 숫자를 돈으로 바꾸는
차현나 지음 / 청림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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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데이터 담당자를 독자층으로 잡고 쓴 책. 하지만 나 같은 일반인들이 봐도 상관없이 유용한 정보가 있다. 일단 저자는 빅데이터를 다루는 기업들에게 데이터의 목적 3가지를 말한다. 첫째, 데이터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둘째, 데이터의 목적은 소비자가 언제 돈을 쓰는지 아는 것이다. 셋째, 데이터의 목적은 소비자를 이해하는 것이다. 고로 데이터의 목적은 소비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하여,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킨 후 도는 버는 거라고 말하며, 이를 위해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활용할 것인지 설명한다.

저자는 표지의 띠지에도 적혀 있듯 스타벅스코리아 1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책 중간중간에 스타벅스의 사례를 실어놓는다. 이 책에서 제일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영수증 한 장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알 수 있다'라는 내용인데, 사실 이 책은 이 영수증 부분만 잘 숙지해도 제대로 읽은 거라 봐도 무방할 듯. (이 책에서 영수증 외에 다른 부분 설명은, 조성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쓴 『세상을 읽는 새로운 언어, 빅데이터』를 읽으면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빅데이터를 설명하는 책인데, 왜 영수증 '한 장'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일까. 그것은 영수증 한 장에 기업에게 필요한 소비자의 정보가 거의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개인 정보에 대해 민감한데, 기업 입장에서는 개인 정보를 다 알 필요가 없다. 기존의 상식으로는 기업이 소비자의 나이, 성별, 사는 곳, 직업 등등 이런 정보가 유용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저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런 개인 정보는 딱히 유용하지 않다.

50쪽. 멤버십에 가입한 개인 정보가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다. (...) 그가 한 명의 동일한 개인임을 확인하는 것이 멤버십의 핵심적인 역할이다. 이 한 명의 고객에게 프로모션 쿠폰 등 이벤트 타기팅이 가능하다. 이는 멤버십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은 아직도 나이, 성별 등으로 그룹을 나누고 이 그룹들의 선호나 취향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케팅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마케팅을 회의적으로 본다. 같은 나이, 같은 성별,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인 친구 지간에도 상품의 선호, 서비스의 선호는 천차만별이라고.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가족이지만 다들 성격이나 취향이 얼마나 다른지. 따라서 기업은 이런 편견에서 자유로워야 할 필요가 있으며, 중요한 것은 위에 발췌한 대로 '동일한 개인'이냐, 그리고 이 개인과 선호가 비슷한 사람들을 묶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선호가 비슷한 것에 나이, 성별, 사는 지역 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50쪽. 인구통계학적 특성이 아니라 고객 행동에 기반 -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은 없으므로
52쪽. 개인에게 맞는 정보 제공과 제품 추천 점점 성별과 나이의 구분이 무색해지고 있다.
52쪽. 과거엔 모두에게 광고를 뿌리고(spray) 그것이 원하는 고객에게 전달되기만을 바라는 (pray) 방식이었다. 대중에게 모두 동일한 광고를 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개인이 볼 수 있는 웹이나 앱 플랫폼에서 그들에게 적합한 정보를 제공한다. (...) 1만 명에게 보여주기 위해 들었던 비용 대신 정말 이 제품을 구입할 만한 100명에게만 비용을 들이면 된다.

이런 정보들은 '영수증 한 장'에 들어 있고, 따라서 영수증만 잘 분석하면 기업이 누구를 대상으로 마케팅해야 하는지, 그들로부터 얼마나 이익을 창출했는지 등을 분석하면 된다. 고로 영수증에 기업이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잘 분류해 넣는 것이 중요하단다. 영수증에는 '개인 정보'보다는 '동일한 개인'임을 표시하고(이것은 멤버십 제도로 가능/who), 어느 매장에서(where), 무엇을(what), 언제(어느 빈도로/when), 어떻게(어떤 지불 수단으로/how), 왜(why) 샀는지에 대한 정보를 담을 수 있도록 영수증 고유 번호를 잘 설정해야 한다고.
사실 개인 한 명 한 명에게 설문 조사한 것을 '패시브 데이터'라 하고, 위의 영수증처럼 절로 데이터화되는 것을 '액티브 데이터'라고 한단다. '패시브 데이터'는 설문에 응하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사실과 다른 답변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분석, 통계하는 데에 한계가 크지만, '액티브 데이터'는 사람의 주관이나 거짓말이 없기 때문에 '패시브 데이터'보다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초기에 잘 설정만 해놓으면 필요한 데이터가 저절로 쌓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는 '패시브 데이터' 수집 비용보다 더 저렴하기도 하다.




아직 빅데이터를 사람들이 어떻게 활용하고 이용해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빅데이터화 시대가 된 지 정말 얼마 안 됐고, IT 쪽을 잘 모르는 의사 결정권자인 회사 오너나 임원진들이 데이터에 익숙하지 않거나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으면 긴요한 데이터들을 쌓아놓고도 그냥 방치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세상은 자꾸 바뀌고 있으므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혹은 사업하는 개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숙지하고 변하는 세상에 발맞춰 나가야 한다. 아니, 오히려 통찰력을 가지고 앞으로의 변화까지 바라보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영수증 한 장도 허투를 생각하지 않고, 소비자에 대해 필요한 정보를 온전히 다 담을 수 있도록 노력, 또 노력이 필요하다.

직장에서 마케팅이나 데이터를 다루는 분들, 소비자를 상대로 사업을 하시는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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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르네 놀트 그림,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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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마거릿 애트우드로 예상했었다. 특히 미투 파동으로 한 해 건너뛰었던 작년 수상자로 마거릿 애트우드가 딱 적임자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 (팔자는 타고난다던데 올가 토카르추크를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상복 하나는 기가 막히게 타고났다. 데뷔작부터 상, 상, 상이다. 작년도 따지고 보면 맨부커와 노벨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거였다)


어쨌든 올해 나의 예상은 틀렸지만, 마거릿 애트우드가 올가 토카르추크만큼 상복만 좀 더 타고났다면, 언제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전혀 손색없을 작가다. 다만 한림원 사람들이 대륙별, 국가별로 골고루 나누어 주는 성향 때문에(이것도 박애주의?!) 아마도 2013년에 먼저 같은 캐나다 작가인 앨리스 먼로에게 상을 줬기 때문에 아직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보다(앨리스 먼로의 작품도 좋다. 추천 추천!!).




이 작품은 1985년 작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그래픽 노블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원작이 두툼한 소설인데, 그럼에도 원작 이야기가 그래픽 노블에 빠짐없이 거의 다 들어있는 느낌이다. 길고 긴 장편 소설을 '그림'과 '간단한 문장', '대화'로 옮기려면 필히 많은 부분을 가지치기 했어야 했을 텐데 가지치기 한 부분을 잘 모르겠다. 그만큼 그림의 구성이나 표현이 좋고, 문장들도 꼭 필요한 것들만 발췌했다. 그래픽 노블 작가인 르네 놀트가 원작 작가만큼이나 원작을 잘 이해하고, 치밀하게 구상, 구성, 표현했기 때문이리라. 물론 독자마다 느끼는 바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이야기 줄거리는 이러하다. 여성 인권 운동이 활발하고, 여성들도 모두 직장에서 일하며 자기가 필요한 돈은 스스로 벌고, 가정생활에서도 아내와 남편이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나고, 나라에 계엄령이 선포된다. 국가 비상사태. 언론이 통제되고,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한된다. 하지만 대의를 위한 자유의 제한이므로 모두들 받아들인다. 그러나 자유의 폭은 점점 줄어들었고, 상점은 더 이상 여자가 운영할 수 없고, 직장에서의 여성들도 모두가 쫓겨난다. 여성 이름으로 된 계좌는 지불 불능 상태가 되어 무조건 남편, 혹은 가까운 남자로부터 돈을 타 써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자유의 제약은 점점 더 좁혀진다. 그래서 주인공은 남편과 딸아이와 국경을 넘으려 하면 곧 붙잡히고 남편은 생사를 알 수 없고, 딸아이는 어느 기관에 보내죠 엄마와 아빠를 잊고 오로지 여자가 해야 할 일만 세뇌 당하며 투미한 사람이 되고 만다.


주인공은 어느 체육관 곳에 수많은 여성들과 감금당한 채 교육을 받고, 어떻게 하면 임신이 잘 되고, 아기를 잘 낳을 수 있는지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한 '사령관'의 집에 배당이 된다. 그녀는 사령관의 집에서 유령처럼 살며 아기 낳는 기계로 전락한다. 만약 아기를 낳지 못한다면, 두 개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뭐가 됐든 간에 끔찍한 건 매한가지다. 아니, 이곳에 있어도 마찬가지로 끔찍하다. 그래서 주인공이 오기 바로 직전에, 그녀의 방을 쓰던 시녀가 그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정도로.


불빛이 반사되여 그림의 느낌이 반감됐다. ㅠㅠ 


주인공은 이전에 그녀의 방에 살던 사람의 운명과 같은 길을 갈까, 다른 길을 갈까...


결말은 열린 결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밝게 마무리되진 않는다. 그녀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국경을 넘었다 해도 결국 남자의 도움에 의해 이뤄진 일이며 그녀 스스로 선택해서 이뤄낸 건 없다. 철저하게 여성은 배제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이기 때문이다. 뭔가 암울한 결말이지만 그래도 열려 있는 설정이 참 탁월하다 생각하고, 작가의 혜안이 마음에 든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상상한 이 디스토피아는 완전히 허구의 디스토피아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불과 몇 백 년 전에는 이런 시대였고, 지금도 중동이나 이슬람 국가에서는 (양상은 조금 다르지만) 이 작품 속 여성들처럼 여성들의 지위가 이러하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진보와 개방이 당연하다고 느끼지만, 생각보다 보수와 억압으로의 역행은 쉽게 일어난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런 변화를 목도했기 때문에 『시녀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시녀 이야기』는 지금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그래픽 노블 버전의 『시녀 이야기』는 원작은 잘 살리면서, 원작이 보여주지 못한 시각적 효과를 충분히 잘 그려내고 있다. (디스토피아의 세계는 여러 매체 중에서 그래픽 노블이 제일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소설이나 영화 보다 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으신 분이나, 혹은 『시녀 이야기』를 읽고는 싶은데 아직 소설이 엄두가 안 난다 하시는 분은 그래픽 노블로 표현한 『시녀 이야기』를 추천한다. 그림의 구성이나 표현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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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근육이 붙나 봐요
AM327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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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좋은 일러+에세이집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고, 내용도 정말 마음에 든다. 정말 좋다. 그림이 부드럽고 따뜻한데 그 그림처럼 내용도 부드럽고 따뜻하다. 특히 저자의 '엄마'와의 이야기가 참 좋았다. 나랑 사뭇 다른 저자와 엄마의 관계. 좋아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 (아, 나도 엄마랑 사이가 좋지만, 친구 같은 사이라거나 서로 조언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다)


그리고 간간이 나오는 지인들과의 이야기도 좋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하려 할 때 저자는 많은 갈등을 한다. 역시나 <돈> 문제 때문. 저자는 이 걱정을 친구들에게 '나 일거리 없으면 한 달 치 방값 내 줄 수 있어?'라고 물었다. 한 친구 '그랭', 또 다른 두 친구 '물론', 또 다른 친구 '콜'... 몇 달 치 월세 보장에 저자는 용기 지수가 급상승해서 생일날 기분 좋게 퇴사한다. 현자 저자는 프리랜서 3년 차. 지금은 월세 걱정 없이, 맥주값, 민구 사룟값(저자와 함께 사는 강아지 이름이 '민구')도 부담 없이 지불할 수 있는 정도다. 저자는 이 이야기의 마무리를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용기 메이트들>이라고 쓰고 끝맺는데 좀 뭉클하기도 했다. 나도 어느 정도 비슷해서. 내가 하는 일이나, 올해 집에서 독립할 때나 친구의 '말'이 없었다면('친구의 말'이라 쓰고, '친구의 나에 대한 믿음'으로 읽고 싶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시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AM327(본명 김민지)님이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마음 둘 곳이 없어 한동안 방황하다가 요가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SNS에 주기적으로 그림을 올리기 시작하셨단다. 그 연재가 이 책으로까지 이어졌다. 일상, 느낌, 생각, 요가 이야기가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요가라는 운동(혹은 심신수양)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신체 활동이 정신과 밀접하다고 생각해서 읽어 보았다. 역시나 좋았다. 저자와 내가 관심 갖고 있는 운동은 다르지만, 요가 후(운동 후) 느낌이랄지, 몸의 변화랄지, 또 몸의 변화로 달라지는 정신의 변화에 대한 생각은 동감하는 바 많았다.



바빠도 밥은 꼭 그릇에 덜어 먹고, 물도 팔팔 끓여 우린 후 예쁜 유리 주전자에 담았다가 유리컵에 부어 마신다. 누굴 위해?! 나를 위해! 옷도 가급적 한 벌을 사더라도 좋은 것으로, 내가 자주 사용할 물건들도 많이 사기보다는 꼭 필요한 것으로 튼튼하고, 디자인은 심플해서 오래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으로. 누굴 위해?! 나를 위해!



<주파수가 맞지 않아 소음으로 가득한 친구 사이> 이 표현 너무 좋았다.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주파수가 맞지 않아서 어긋나는 사이가 있다. 예전에는 억지로 인연을 이어갔지만 이제는 미련 없이 끊는다. 예전엔 이런 게 냉정하고 '못된 행동'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서로를 위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아무 대화 없이 그림만으로 풀어낸 이야기. 개인적으로 무성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림 역시 대화를 없애고 이렇게 보여주는 것도 좋아한다. 설명이 없는데도 모든 게 설명되고, 이해가 된다.



<오줌 싸고 박수받는 인생> ㅎㅎ


이 부분은 나도 모르게 웃어서 올려본다. 종종 이렇게 재미난 일러도 있다.


///


한 박자 쉬어가는 느낌으로 '읽은' 혹은 '본' 책이다. 책에는 요가 자세를 그린 일러도 많은데 요가에 관심 있는 분들이 봐도 좋을 듯. 중간이던가, 뒷부분에 엄마와 관련 일화를 그린 내용이 갑자기 기억난다. 딸과 엄마가 '행복'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이야기였다.


딸 : 그런 일이 있었구먼? 그래서 안 행복해?

엄마 : 음... 그래도 행복해.

딸 : 그렇다니 다행이야.


이 부분을 읽고 눈물이 났다. 크게 별다른 내용이 아닌데도, '그래도 행복해'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일러의 따뜻한 색감과 미세한 표정 변화가 내 마음의 뭔가를 건드렸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요가를 한 듯 몸의 긴장이 풀리고, 막혔던 혈이 뚫리며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 느낌.



이 책에 특별한 내용, 세상에 없는 내용이 실린 건 아니지만

읽고 나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음... 그래도 행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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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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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운동에 관심은 많은데 실제로 하는 운동은 별로 없는 나, 그래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운동하시나 궁금해서 읽은 책이다. 이 책은 한 여성의 운동 분투기(?) 혹은 운동 에세이로 분류할 수 있다. 나나, 저자나 똑같이 운동에 관심 많지만, 관심 있는 운동이 완전 다르고, 신체 컨디션이나 운동하는 이유가 달라서 막 완전히 공감하며 읽은 건 아니다. 그냥 운동하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군데군데 재미나고, 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여성)으로서 공감되는 바는 있었다.




내가 처음 접한 운동은 일본의 가라테다. 어릴 때 우리 동네에 순전히 태권도 도장이 없어서 가게 된 곳. 확실히 태권도장이랑 달랐다. 일단 애들이 없다. 초등학생은 나랑 오빠뿐이었다. 가면, 대부분 고등학생 오빠(그렇다. 중학생도 없었다)나 20~30대 아저씨들이었다(당시만 해도 고등학교 졸업하면 내 눈엔 다 아저씨였다). 아이들에게 특화된 곳이 아니라, 어른 남성들을 위한 곳. 아드레날린에다 남성호르몬으로 쩔어서 문만 열어도 그 특유의 '남자 냄새'가 지독하게 나던 곳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곳에서 어리기도 제일 어렸고, 여자 초등학생이었으므로 기초 체력만 열심히 키웠다. 도장 뺑뺑이 돌기, 윗몸일으키기, 정강이로 상대방 허벅지 때리기(반대로 허벅지 맞기) 등등. 내가 워낙 운동 신경이 없고, 대련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이렇다 할 기술도 기억나는 게 없지만 어쨌든 그때 이후로 체력장 하면 모든 게 5등급이어도 윗몸일으키기만큼은 자신 있었고, 내 허벅지는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단 한 번도 물러본 적이 없다. 언제나 단단. 지금도 운동선수 출신마냥 딴딴하다.


이때 경험 때문인지, 저자가 처음 복싱 학원을 찾았을 때 느꼈던 것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저자와 내가 달랐던 건 나는 그때 너무 어려서 배척이나 나만 다른 공간에 존재한다는 느낌보다는 아예 무존재이거나, 그냥 귀여운 대상 혹은 배려해야 할 소수자이자 약자였다. 당시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었는데(그렇다, 나는 초등학생 때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도장에서만큼은 나를 대우해주고 배려해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그곳의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한 명의 아이일 뿐 신체나 정신적으로나 여성이 되지 않았을 때여서 그랬을 테고, 또 밀폐되지 않은, 많은 사람이 함께 잇는 곳이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어떤 장소를 만나는 것, 이것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일 수 있겠다 싶다.


그리고 이 책에는 저자가 헬스클럽이나 필라테스 등 어딘가 '등록'해서 배우는 운동이 많이 등장한다. 나는 어디 등록하는 걸 싫어해서(돈이 없어서) 내가 하는 운동은 대부분 집에서 혼자 사부작거리며 하거나, 등산을 가거나 어디로 하염없이 걷는 운동을 좋아한다. 저자가 시도한 운동은 대부분 실내 운동으로 '머리로는 알겠지만 내가 실제로 겪지는 못한' 일들이 대부분이어서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듣는 것처럼 흥미롭게 읽었다(내 경험과 공명한 내용은 없었다는 의미).


///


저자는 상당히 많은 운동을 시도하는데, 좀 놀라울 정도. 책 표지에는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라고 적혀 있지만 글을 읽어보면 그렇게 하찮은 체력 같지 않고, 또 보통도 아닌 것 같았다. 유연해서 요가를 잘한다거나, 학년 대표로까지 나갔던 배드민턴 이야기 때는 전혀 하찮거나 보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이런저런 상황이나 환경, 신체 컨디션, 운동에 대한 기대감과 달라서 '운동을 중도 하차'한 일이 많았을 뿐.



'운동해야 하는데',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라는 말이 친숙하고, 자신이 한 말 같거나 꼭 본인이 하고 싶은 말 같다면, 이 책 추천한다. 공감하는 바가 많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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