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가 그 여자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 나더러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지. 나는 돈을 번다고 대답했다. 너는 그건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얘기했어. 나는 말했다. "아니지,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목숨을 연명할 뿐이야. 그들은 자기가 가진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건 없어. 물건에는 기대치에 따라 매겨지는 가격이 있을 뿐이고 나는 그걸 가지고 사업을 한다. 지구상에서 가치가 있는 건 시간뿐이야. 1초는 언제든 1초고 거기엔 타협의 여지가 없어."


프레드릭 배크만, 『일생일대의 거래』 중 35쪽


목숨에 경중이 있을까. 가령 신문에서 종종 다룰 만큼 유명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과 종합병원 대기실 한구석에서 소파를 빨간색 크레용으로 완전히 빨갛게 색칠하는 암에 걸린 어린 소녀의 목숨을 따져본다면?! 사람들은 말로는 '둘 다 소중해요'라고 말하겠지만, 실제 사회가 굴러가기는 명망 높고 돈 있는 사람의 가치를 더 높게 치며, 병실 한편에서 언제나 죽음을 맞닥뜨려야 하는 소녀는 크게 가치를 두지 않는다. 소녀의 부모와 그 가족에게만 소중한 존재일 뿐.


이 책은 모든 걸 다 거머쥔 한 남자의 목숨과 세상에 태어난 지 몇 년밖에 안 됐지만 벌써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목숨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자는 돈만 보고 살았다. 또한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따라잡아야 하고,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밟아야 한다고 믿으며 살았다. 그는 일이 제1 순위여서 아내를 떠나가게 만들었고, 아들은 밀어내었다. 가족도 없이 혼자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래도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행복했을까. 글쎄. 돈과 지위가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글쎄. 돈과 지위는 그냥 자신의 노력, 성취에 대한 결과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본인은 강한 남자로, 성공한 남자로 살아야 했으므로 그렇게 살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살았을까. 태어날 때 쌍둥이 형제는 죽고 자기 혼자만 살아남았을 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절친한 친구와 암벽 등반을 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혼자만 살고 친구는 죽었을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돌아가셨을 때부터?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아도 그는 혼자였고, 아내와 아들이 떠나도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돌아오려고 하면 선을 긋고 오지 말라고 했다. 이기적이어서 그랬을까.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암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했다.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그 소녀는 내일 죽어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 시한부 환자였다. 소녀는 낯선 아저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자기 앞에서 우는 엄마를 달래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며 오히려 엄마를 위로한다. 이 소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죽을 사람 명부를 가지고 돌아다니는 회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뿐이다(이 여자는 사신이다. 죽을 사람을 저승으로 이동시키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일만 알고, 가족을 버리다시피했던 남자는 이 소녀를 보고 마음이 변한다. 자신의 죽음과 이 소녀의 죽음을 바꿔달라고 사신에게 말한다. 하지만 사신은 죽음과 죽음은 맞바꿀 수 없고 오로지 목숨과 목숨만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만약 소녀를 살리기 위해 본인이 죽겠다고 하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인생이 없던 것이 되어버린다고.


남자는 소녀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한다. 그렇게 목숨을 바꾸기 직전 사신과 남자는 남자의 아들에게로 간다. 그다지 아들에게 정이 없다고 생각했던 남자였는데, 떠나기 직전에 만난 아들을 보고 만감이 교차한다. 애틋함이라고 해야 할지, 미쳐 몰랐던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위에 발췌한 '시간의 가치'가 다른 의미로 진실이었다. 서로 함께 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함께 페리를 탔던), 그리고 마지막의 만남도 얼마나 소중한지.


지구상에서 가치가 있는 건 시간뿐이야.



이 시간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때 소중한 것이다. 조각조각 나 있는 파편화된 기억이라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시간은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다.


그는 소녀에게 그 시간을 양보하고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는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사라진다. 아들을 더없이 사랑했던 아버지가 되어서. 그에게 목숨을 이어받은 소녀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함께 나누며 의미 있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 주인공의 아들처럼 말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그의 두꺼운 소설만 읽었었는데 이렇게 짧은 소설도 잘 쓰는구나 싶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의 캐럴』과 에릭 엠마누엘 슈미트의 『오스카와 장미 할머니』가 떠오른 소설이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겨울과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