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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엄마는 나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했을까? - 불량한 유대인 엄마의 유쾌한 엄마 노릇
질 스모클러 지음, 김현수 옮김 / 걷는나무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엄마들이 으레 딸에게 하는 말. "너도 결혼해서 너랑 꼭 닮은 딸 낳아봐라."
결혼 전엔 말 안듣는 딸에게 하소연하는 말로만 들려 기분 나쁘게만 새겨들었다.
근데 막상 아이를 낳아보니, 왜 그러셨는지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을 그 무엇과 바꿀 수 있겠으며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어머니들은 딸에게 가장 주고 싶은 선물이었을게다.
내가 지금 딸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선물처럼...
다 낳아서 기르는 아이 나도 당연히 잘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작가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하지만 육아는 절대 녹녹치 않은 길임을 첫애를 낳자마자 실감한다.
이 책은 그동안 좋은 엄마 강박관념에 짓눌러왔던 내 속 깊은 곳을 간지럽혀 수면 위에 떠오르게 하고 공감과 위로로 치유를 해 준다.
실제 아이를 낳기 위해 산부인과에서 닥치는 문제부터 육아에 있어 예고없이 찾아오는 사건사고에 대한 황당함에 대처하는 자세까지, 너무나 실감나게 세 아이를 낳고 기르며 닥친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토로하는 질 스모클러의 자전적 이야기에 빠져든다.
어쩜어쩜, 맞아맞아...그때 그랬지 하면서 폭풍 공감에 키득키득 새어나오는 웃음은 결국 빵 터져버린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 못했던 육아의 어려움, 내 아이지만 정말 미웠던 순간들, 큰애기 같이 구는 찌질한 남편에 대한 솔직함까지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이를 하나만 낳아 잘 기르고픈 부모 욕심에 외동인 딸내미를 보면서,
요즈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드는게 사실이다.
질 스모클러처럼 왜 아이를 여러명 낳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이가 있었더라면 생각이 바뀌었을텐데 말이다.
그때는 육아에 지쳐서 그냥 단순히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하나는 외로워요. 둘은 되어야죠." 말 한마디에 공감이 전혀 되지 않았더라는 말이지.
하나도 이리 이쁜데, 둘, 셋은 얼마나 이쁠까 이제야 공감이 간다.
저자는 둘 이상 낳아 좋은 점 중의 하나로, "자식 하나가 부모를 우라지게 열 받게 할 때 다른 아이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저자다운 솔직함이 유쾌하다.
다른 자식에게서 위로받는구나. 아이 둘 이상인 엄마들은 공감할 내용일 듯.
맞아, 자식이 하나면 어디서 위로받는담. 혼자 열받아 죽는 거지. 아님, 도를 닦던가 말이다.ㅋㅋ
아이 낳고 제일 절실한 동지찾기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모든 엄마들은 공감할 것이다.
아이 문화센터 가서 제일 먼저 탐색하는 건 어떤 엄마의 성향이 나랑 비슷한가이다. 물론 아이 성향이 우선이라는 문제로 동지찾기는 쉽지만은 않다.
성인이 되어, 더구나 엄머가 되어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지 수도 없이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그러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너무 외로워서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 전, 엄마 되기 전의 친구들 옆으로 이사를 했을 것이다.
그만큼 육아와 더불어 사는 엄마로서의 삶은 남편 외에 의지할 동지가 꼭 필요하다.
4년 전 온라인 커뮤니티 '불량한 엄마'를 개설하고 전 세계 엄마들과 소통을 하며 서로 마음을 위로받았다고 한다.
그들의 너무나 솔직한 고백들을 각 챕터 끝에 수록하고 있는데 함 보시라.
얼마나 솔직한지 말이다.
작가가 제일 싫었다는 타인의 지나친 관심들. 나를 포함한 엄마들도 같은 마음이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시달리는 주위의 불필요한 관심과 요구조건들에 시달린다.
태교엔 무슨 음식이 좋다더라.
아이 낳고는 모유수유 꼭 해야 해.
이유식은 언제 할꺼야?
언제부터 걸었어요?
말은 빨랐나요?
둘째 낳아야지요... 헉.. 왜 우리 가족 계획을 신경들을 쓰시는지.
지금 초등1학년인 딸아이를 데리고 나가도 아직까지도 관심을 가지신다. 어여 둘째 낳으라구. 허거덕. 이 나이에, 이 나이터울에...
무슨 생각들로 그런 말을 하는건지 처음엔 황당했고 관심 좀 꺼 달라고 말하고팠지만 못했다.
지금은 그나마 나이 탓을 하며 변론을 하는 정도이지, 그들에게 제발 관심을 꺼 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이렇게 나조차도 불필요한 관심 때문에 싫은 마음을 억눌렀으면서,
난 이 책을 통해 나 또한 그러한 일을 저질렀음을 깨닫고 반성했다.
내 아이가 크면서 경험한 좋은 책, 교구들을 주위 엄마들에게 자꾸 문자로 알려주었다.
그들은 관심도 없어하는 정보라는 것을 아는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고 이후로는 하지 않고 있다.
불필요한 정보를 강요해서 이 자리를 통해 미안함을 전한다.
어쩌면 우리는 좋은 것을 공유하고픈 마음에 선의로 타인의 프라이버시까지 침범하나보다. 그게 단순히 나에게 좋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통해 나와 주위 관계를 돌아보면서, 나에게, 내 아이에게 더 집중하고 즐기면 자연스레 주위에도 전해지겠구나 느낀다.
다들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각자의 정보력을 총동원해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각자의 육아관, 교육관을 조용히 응원하는 것이 정답이다 싶다.
아이를 키우면서 절대 비교하지 말리라 다짐한다.
그러면서 정작 엄마들은 서로를 의식하고 이미 출발선을 지나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에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도 완벽하지 않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엄마가 되면서부터 완벽한 엄마 노릇을 해 주고 싶어 안달을 한다.
하지만 갑자기 어떻게 완벽해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육아라는 큰 일을 해 내면서.
저자가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하면서 힘에 부쳐할 때, 80대 할머니가 해 준 애정어린 충고가 참으로 와 닿는다.
우리 엄마들이 듣고 싶은 위로와 관심은 이런 것을 것이다.
"괴로워하지 말고 지금을 즐겨요.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지나가 버릴 거고, 당신은 남은 평생 그 시간을 그리워하며 살게 될 테니까."
이 말을 듣고 있자니 울컥한다.
그렇다. 아이를 보면 하루, 한 시간이 다르게 쑥쑥 커 가고 있으니 정말 멀지 않았다.
그들이 다 자라 곧 엄마 품을 떠나게 될 날이.
홀가분할 것도 같지만 서운함이 먼저 드는 건 왜인지.
자그마한 아이를 안고 쓰다듬고 뽀뽀할 수 없다니, 갑자기 슬퍼진다.
저자가 정의 내린 "엄마 노릇은, 힘들지만 생색 안 나고, 경이롭지만 더럽고, 설레지만 두려우며 한없이 기쁘지만 수없이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그렇다. 엄마라는 이름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니까.
왜 엄마는 아이를 낳으라고 했을까? 에 대해서도 저자는 명확하게 답을 얻었다.
"아마도 내가 평생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외롭지 않게 살아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만큼 그 누구도 더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며,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만큼 누군가를 배려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엄마가 된다는 건 인생을 더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엄마가 되지 않고는 절대 모를 일이다."
이 책을 통해 나도 7여년의 육아를 돌아보며 같은 답을 내어본다.
유쾌한 이 책 한권으로 그동안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심신을 위로받기를 권한다.
이제 훌훌 털고 좋은 엄마가 아닌, 내 아이의 성장을 함께 하는 엄마로 편안히 즐기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동안 내 안의 내숭이 들켜버려 민망하면서도 후련했다. 이제 나도 그냥 아이랑 함께 자라는 엄마로서 솔직하게 내 마음을 드러낼 용기가 생긴다.
엄마 노릇하기 힘들다고 어디 가서 징징대지도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그동안 지나칠 정도로 다른 엄마를 의식하고 나를 옭아매었던 좋은 엄마에서 이제는 벗어나려 한다.
육아가 힘들고 버거워도 그대신 엄마라서 행복한 건 엄마만의 특권이다 싶다.
결혼하고 엄마가 되는 것, 그것보다 값진 인생을 배우는 길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해서 좋고 엄마라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