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다. 자신감은 내가 옳다는 확신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자신감은 내가 옳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에서 생기는 거다. 의혹이란, 그 의혹이 타당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거야. 내게도 타당한 의혹들이 있었다. 하지만 계획이 곧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거라. 네 목표는 뭐지?"
그대들은 나를 의심했습니다. 더 이상 의심하지 말기를. 그대들은 나를 파괴하러 왔습니다. 나는 파괴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들은 나를 불태우러 왔습니다. 나야말로 여러분을 태우는 화염입니다. 불타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여러분은 느끼게 될 것입니다.
놀랄 일은 아니지. 비전은 불안하고 질서를 깨뜨리는데, 힘 있는 사람들은 질서가 어지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 자기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혼란은 찾아온다는 걸 이해하지 못해. 내 비전은 나중에 올 혼돈을 방지하기 위해 지금 질서를 흩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되지.
불공정과 차별을 없애는 일은 언어를 평등하게 쓰고 감시를 강화하는 정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고통을 없애는 일에 함께 하고 삶의 실질적 조건을 바꿀때 이루어진다.
우리가 이루어낸 위대함에 집중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수록 실제 세상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연스럽게 다수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지지자 절반을 혐오주의자로 규정한 힐러리와 달리 버니 샌더스는 아메리칸 드림을 미국의 이상으로 여기는 수많은 미국 시민들,특히 백인 하층 남성들을 같은 편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청년들이 남녀 대결 프레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반발하는 것은, 최종 보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평범한 개인들에게 연대책임을 요구하는 불공정한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마르스는 진심으로 당황했지만 동료 학자들은 모든 새로운 발견을 자기 전공 분야에 오로지 그 분야에만 관련시켜 해석하게 되어 있고 그렇게 작심한다던 대학 시절 학과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손에 망치를 쥐고있으면, 모든게 못으로 보이는 법이야." 학과장은 말했다.
과소평가당하는 게 이래서 좋은 거지, 카르데니아는 생각했다.상대가 자신을 두뇌 회전이 느릴 것이다, 순진할 것이다, 혹은 적당히 조종하거나 돌아갈 수 있는 장애물 이상의 어떤 존재가 되기에는 사람이 너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덕분에 오히려 허를 찌를수 있었던 것은 최근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