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시집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외 47명 지음, 김정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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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게 찢고 들어오는 구체 너머 즉물의 언어"

 

 

옮긴이의 말

-<독일시집>. 내가 정한 제목이지만 마음에 든다. '독일 시선집'이 아닌 것이, 이만한 분량인 것이. 이런 분량의 독일 시선집은 해외에 얼마든지 있지만 이러한 구성의 '독일시집'은 내가 알기로 없다.

-그리고, 그러나, 내가 듣기에, 이 '독일시집'이 지금, 미래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넘쳐나는 것은 짝퉁이고, 짝퉁 넘쳐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아니고 짝퉁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추신: 색인에서 찾아 읽는 것도 그냥 브라우징도 좋겠으나 고전을 현대적으로 음미하도록(사실은 그럴 수 있는 것만이 고전이다) 후대를 먼저 세웠으니 좋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경험의 다양성의 최대-완료화를 만끽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모든 외국어는 뒤늦게 배울수록 어렴풋한 어떤 느낌을 나잇값으로, 그러니까 제대로 늙어가는 백년대계로 제대로 배울수록 생생하게 찢고 들어오는 구체 너머 즉물의 언어다. 그 점을 살리려 노력했으니 읽는 이들도 그것을 누린다면 번역자로서 그만한 보람이 또 없겠다.

드디어 '자음과모음'에서 아름다운 독일 시 모음<독일시집>이 나왔다.

괴테, 릴테, 트라클, 휠덜린, 게오르게, 호프만슈탈, 모르겐슈테른, 니체 등...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시인이나 그동안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인들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48명의 시인과 320편의 생생한 시편이라니.

어느 페이지를 펴도 오랫동안 살아남은 독일 시인들의 시가 울림을 준다.

<독일시집>은 시인이자 소설가, 번역가로 활동 중인 김정환 시인이 직접 엮고 옮겨서 더 아름답다.

책의 맨 뒤에 '옮긴이의 말' 있는데 나는 김정환 시인 분이 어떤 느낌과 어떤 사유로 이 책을 엮었는지 궁금해서 시를 읽다가 다시 뒤로 와봤다.

'독일 시선집'이 아니라 이만한 분량의 '독일시집'은 어디에도 없다고 힘 있게 말해주었고 시의 시기별로 후대를 먼저 세워 지금까지 살아남은 고전을 음미할 수 있게 구성해준 것이 고마웠다.

나는 독일어를 잘 모르지만 아마 실린 시들을 읽어보면 독일 원어 느낌도 많이 살릴 수 있게 번역해준 것도 같다.

'즉물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는 독일시집을 차례로 만나봤다.

 

 

 

 

 

프로메테우스

괴테

덮으라 너의 하늘을, 제우스여,

구름 안개로

그리고 행사하라, 아이가,

엉겅퀴 모가지 치듯,

떡갈나무에 네 힘을 산꼭대기들에도;

마땅히 내 땅은

그렇지만 그냥 둬야지

내 오두막도, 왜냐면 그건네가 짓지 않았다.

나의 화덕도,

그 작열을

네가 나한테 시기하지만.

나 모른다 초라한 것들,

태양 아래 너희, 신들보다 더 초라한 것을!

너희가 먹여 살리지 비참하게

제물 세금과

기도 숨결로

너희의 위엄을

그리고 굶주릴 터, 만약에

아이와 거지들이

희망에 찬 바보들이 아니라면.

내가 어려서,

몰랐다, 어디서인지도 어디로인지도,

돌렸지 내 갈피 못 잡는 눈을

태양에다, 마치 그 위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귀 하나가, 내 한탄 들어주려고,

하나의 심장이 내 것처럼 있어,

그 곤경을 불쌍히 여겨줄 것처럼.

누가 도왔나 나를

거인족이 오만에 맞서?

누가 구했나 죽음에서 나를,

노예 상태에서?

그대가 모든 것을 직접 완성치 않았는가,

신성한 작열하는 심장이?

그런데 작열하는가 젋고 착하게,

기만당하여, 구원받은 감사를

잠자는 자, 저 위의 그자에게?

나더러 네게 경의를 표하라고? 왜?

네가 고통을 완화해주었나

짐 진 자들마다?

네가 눈물을 멈추게 해주었나

겁에 질린 자들마다?

나를 사람으로 버리지 않았나

전능한 시간과

영원한 운명,

나의 주인이자 너의 주인이?

네 상상은 그러니까,

내가 생을 증오할 것이라는 거냐,

황무지로 달아날 것이라는 거냐,

않았기에, 모드

꽃 꿈이 무르익지를?

여기 앉아 있다 내가, 만들라 인간을

내 모습대로,

하나의 종, 나와 같은,

고통받고, 울고,

즐기고 기뻐하고,

너를 거들떠 안 보기,

나와 같은 그들을!

 

 

 

 

 

 

 

여행 노래

호프만슈탈

물이 무너진다, 우리 삼키려고,

구른다 바위들, 우리를 때려 부수려,

온다 벌써 강력한 날개 타고

새들이 이리, 우리 실어가려고.

그러나 그 아래 놓여 있다 육지가,

열매, 끝없이 비치는 곳

나이 없는 호수인 그것들이

대리석 정면과 분수 가장자리가

오른다 꽃향기 토지에서,

그리고 부드러운 바람 분다.

 

 

 

 

 

한 인간의 고통, 한 인간의 상처가

플라테

한 인간의 고통, 한 인간의 상처가 무슨 대순가,

신경 쓸 리 없더, 무엇이 병자를 괴롭히는지를, 건강한 사람이 영영;

그리고 생이 짧지 않았다면, 그것을 언제나 인간이 인간한테 물려받는데,

그보다 더 한탄스러운 일 이 넓은 지구에 없었을 것이다 결코!

균일하게 회복된다 자연이, 그러나 천의 형태다 그것의 죽음이,

조회하지 않는다 세계가 나의 목적을, 너의 마지막 시간을 전혀;

그리고 기꺼이 자신을 그, 위협하는, 청동의 운명에 내맡기지 않는 자,

화내며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스스로 가망 없이 그리고 느끼지 못한다 그 나락에서 아무것도;

이것을 안다 모두, 하지만 잊는다 그것을 각각 모두 기꺼이 날마다,

그러니, 이 얘기는, 앞으로 내 입에서 그만!

잊으라, 너희를 세상이 속인다는 것과 너희 소망이 오직 소망을 낳는다는 것을,

하라 너희 사랑을 아무것도 회피하지 않게, 빠져나가지 않게 너희 지식을 아무것도!

희망한다 각각 모두, 시간이 자신한테 주기를, 아무한테도 주지 않은 것을 말이지,

왜냐면 각각 모두 추구한다 하나의 모든 것이 되기를, 그리고 각각 모두 그 근본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알고 있던, 그리고 몰랐던 시들을 <독일시집>에서 만났다.

그런데 느낌이 다르다.

김정환 시인만의 시선으로 우리에게 새롭게 들려주는 기분이었다.

평소 시를 잘 몰라서 시를 읽어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가만가만 앉아서 직접 선별해준 것들을 읽어보니 더 좋다.

누구보다 치열한 시대를 살았을 독일 시인들의 사유와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들이 참 좋았다.

시를 읽고 있는데 한 편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고 노래를 듣는 것 같았고 또 다른 책으로 넘어가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지만 인간으로서 그 속에서는 끝없이 투쟁하는 기분도 들었다.

삶과 죽음을 떠올리고 결코 허무하지 않은 가치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들.

나는 시를 잘 모르지만 독일 시집은 곁에 두고 싶다.

*이 글은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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