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선생님 글을 언제부터 좋아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설을 좋아해서 한참 읽기 시작했던 20대 중반부터 였을까. 선생님이 돌아가신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랬다.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형이 누워있던 병원의 침상에서 형과 함께 접했었다. 형도 나도 좋아하던 선생님이었고, 선생님의 글들이었다. 선생님의 부고 소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형도 하늘나라에 갔다. 그렇게 한동안 선생님의 책들은 선생님의 부재와 형의 부재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선생님 글을 멀리한 것은 아니었다. 내 생활에 변화가 있어 책을 더 적게 읽게 되었고, 소설보다는 다른 장르의 글들을 더 자주 읽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두었던 선생님의 소설들을 중간 중간 보기도 했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형의 부재로 연결되는 고리도 끊어져 있었다. 그저 션생님의 글만 오로지 다시 다가오기 시작하는 순간들이었다.


  이 책은 예전에 사두고 읽지 않던 에세이였다. 최근에 여우눈 에디션으로 새롭게 재출판되었다. 출판사에서는 서평단을 모집했고, 나는 운이 좋았다. 선생님의 부재가 10년을 넘어가도 선생님은 유명 작가셨고, 인기 작가셨다. 서평단 신청자들도 매우 많았고, 이미 소장하고 있는 책이 있던지라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덕분에 소장만 해 둔 책을 읽게 되는 운도 따랐다.


  읽는 내내, 맞다, 내가 이래서 선생님 글들을 좋아했었구나 싶었다. 뭔가 푸근하지만 내용은 선생님의 소신으로 가득한 날카롭고 정겨운 표현들. 그랬다, 선생님은 글 속에서 여전하게 그대로 계셨다. 선생님의 부재가 얼마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날짜를 찾아 봤다. 그렇게 다시 선생님의 부재는 형의 죽음으로 연결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예전처럼 슬픔이 아프게 다가오진 않았다. '시간은 신이었을까'에서 말씀하셨듯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몫이 가장 클 것이다. 또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 것처럼, 그 당시에는 죽음으로 밖에 해결되지 않을 법한 일들도, 어차피 나도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읽는 책들마다 기록을 남기기 위한 개인적인 다짐에서 느낌들을 적어 나가고는 있지만, 서평단 참여는 가끔 고역일 때가 있다. 운이 좋은 것도 잠시, 읽은 후가 좋든 싫든 서평을 남겨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선생님의 글은 읽은 후에 뭔가 남기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뭔가 개인적인 내용들을 너무 드러내게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누가 이 곳까지 찾아와 읽을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민망하고 창피한 것은 감추기 어렵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선생님도 저리 열심히 쓰시는 것을, 나는 어떠했는지. 그저 허튼소리가 없었길, 내 감정에 솔직했기를 바라고 원할 뿐이다. 선생님이, 선생님 글이 그립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보다는 착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고, 그런 날은 살맛이 난다. - P20

사람을 믿었다가 속았을 때처럼 억울한 적은 없고, 억울한 것처럼 고약한 느낌은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어떡하든지 그 억울한 느낌만은 되풀이해서 당하지 않으려든다. 다시 속기 싫어서 다시 속지 않는 방법의 하나로 만나는 모든 것을 일단 불신부터 하고 보는 방법은 매우 약은 삶의 방법 같지만 실은 가장 미련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믿었다가 속은 것도 배신당한 것에 해당하겠지만 못 믿었던 것이 실상은 믿을 만한 거였다는 것 역시 배신당한 것일 수밖에 없겠고 배신의 확률은 후자의 경우가 훨씬 높을 것이다. - P24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 P2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와술
쑬딴 지음 / 쑬딴스북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술을 좋아한다. 정말 심하게 대취한 적도 많았고, 하얗게 기억이 사라진 적도, 술병으로 고생한 적도 많았다. 그렇게 심하게 고생을 하고 나서는 후회를 하면서도 이내 다시 술을 마시곤 했다. 집에 술을 좋아하거나 잘 드시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나만 술을 마시고, 취하곤 했었다. 가끔 부모님의 걱정도 있었지만, 이제는 걱정도 덜 하시는 듯 하다. 결혼 후에 술자리가 줄어서도 그렇겠지만, 요즘은 술을 예전만큼 많이 마시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쉬이 취하고, 금방 잠이 든다. 늦게 까지 술자리를 지키며 이야기하면서 술을 마시는 일은 너무나도 힘든 체력이 되었다.


  제목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술의 양을 떠나서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애주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숙취에도 술 생각이 나듯 자연스럽게 끌리는 제목이 아닐까. 부제에도 써 있듯이 저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셨던 술에 대한 이야기가 써 있다. 글은 이야기를 듣듯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다. 막히는 부분이나 흐름에 방해되는 문맥들은 없었다.


  그럼에도 책은 별다른 재미가 없었다. 너무나 지극히 개인적인 술 마신 이야기로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기에 에세이로 보면 별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에세이도 무언가 생각거리를 던져주거나 생각거리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그저 술마시고 취한 이야기여서 에세이로서 받을 수 있는 재미는 없었다. 그렇다면 술에 관한, 즉, 음식으로 분류해서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도 술에 관한 정보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였다. 알고 마시는 술은 더 맛있거나, 적어도 모르고 마실때와는 다른 맛일테니까. 그러나 음식쪽으로 분류해서 읽어도 이 책은 그쪽 분류는 아닌것 같다. 술에 관한 정보도 빈약했다. 부제처럼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마셔본 술과 인생 이야기'였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인생 이야기일 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방과 창조 - 서울대 김세직 교수의 새로운 한국 경제학 강의
김세직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대학에서의 전공이었고, 아직까지도 공부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다. 석사 때는 논문을 쓰기 위해 계량적으로 분석을 잘 하는 것이 제일 멋진 일이고, 경제학을 잘 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를 이해하고 '무언가를 제안'할 수 있는 것이 더 멋져 보였다. 그게 더 경제를 공부한 전문가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다(그런 면에서 나는 전문가와는 한~~참 동 떨어져 있다). 나는 주로 데이터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돌려 수치를 뽑아낸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무언가를 주장할 때 아무것도 없이 짐작을 사실처럼 말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예전에 이게 제일 멋있어 보인다는 착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그 착각이 대단히 잘못된 것인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 책은 경제성장에 관한 책이다. 단기 성장보다는 장기 성장과 관련된 경제학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으면서 경제학 관련 보다는 다른 책들을 더 많이 읽는 나이지만, 최근에 읽은 경제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인것 같다(이 전에 읽은 경제학 관련 책이 무엇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예전(아주 오랜전인것 같다)에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라는 책이 생각났다. 경제사의 흐름에서, 유명하면서도 경제학에 큰 이론들을 세운 경제학자와 그들의 이론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크홀츠의 책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아담스미스, 맬서스, 리카르도 등의 경제학자와 경제 이론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조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경제학원론을 공부하다 보면, '성장과 분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분배'보다는 '성장'에 관심을 더 갖고 있다. 파이가 커질수록 나눌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가진게 많아서는 아니고, 갖고 싶은 것이 더 많아서 인것 같다. 이 책도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성장에 관한 솔로우, 루카스 모형 등이 등장하고, 특히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인적자본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경제학, 이론.... 뭐 이런 단어들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쉽게 잘 설명이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신문에 사설로 실렸던 김세직 교수님의 글을 보고 이 책을 보게 된 것이다.


  교수님은 5년마다 1%p씩 하락하는 장기 성장률 하락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장기 성장률이 0%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고,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모방 경제로 인해 고도의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 단계가 어느 정도에 다다르면 모방 경제로 인한 성장에는 한계가 있고, 그것이 5년 1%p 하락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창조적 인재들을 키워 인적자본의 효율성을 증가시켜 이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처음에 말한 '제안'이란 이런 것이다. 경제학에서 실증분석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모형을 세우고, 데이터를 이용해 모형을 검증한다. 모형 분석은 결국 모수의 추정인데, 이 부분은 대부분 간단하게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수 있다(물론 데이터 작업 과정이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은 모수의 추정보다 모수가 경제에서 무엇을 설명하는가, 이다. 내용 중에서도 '무엇'과 '어떻게'가 등장하는데, '창조'는 '무엇'에 가까울 것 같다. 교수님도 유학생활에서 이야기 하셨듯이, 논문 자격 심사까지 한국 학생들이 앞설 수 있는 까닭이 '무엇'보다는 '어떻게'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데이터를 정리하고 프로그램으로 모형을 추정하는 것이 강점일 수 있지만, 무엇을 모형화 할 것인지가 어려운 일일 것이다(왜 이렇게 공감이 갔을까ㅜㅜ).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라서 교수님 강의를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교수님 강의를 직접 들은 동료와 최근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교수님은 꽤 오래전부터 책의 내용을 강의에서 해 오셨다고 한다(물론 책에서도 알 수 있다). 난 항상 이렇게 늦다. 파이가 커지길 원하는 사람으로서, 이미 성장률이 꽤 낮은 수준으로 내려온 최근에서야 이 책을 만나서 조금은 아쉽다. 그동안 모방에 그쳐있었던 것도 반성을 한다. 무엇을 어떻게 막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 막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제는 '어떻게' 보다는 '무엇'에 더 초점을 맞추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씩 바꾸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 알고 보면 가깝고, 가까울수록 즐거운 그림 속 철학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은 왠지 어려워 보인다. 미술도 많이 친근해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대중적인 영역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접근성의 문제인것 같다. 술자리에서 그렇게나 철학적인 사람들일지라도 철학에 잘 접근하긴 쉽지 않다. 술이 깨고나면 아마도 접근은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금 철학에 빠져 지낼 시간조차 없는, 철학이 배제된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철학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이 접근에의 시도조차 원천봉쇄 해 버리는 탓일게다. 내 경우가 그렇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음악의 경우 노래를 잘 하고 못 하고와는 상관없이 노래방에 가서 쉽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음악을 틀어 놓고 일을 할 수도 있다. 미술은 다르다. 아무래도 접근성 측면에서 음악보다 쉽지 않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특별한 재능이다. 잘 못 하는 노래는 가끔 할 수 있지만, 잘 못 그리는 그림을 구태여 가끔 그리지는 않는다.


  이 책은 그런 철학과 미술이 만났다. 스티븐 잡스의 'connecting the dots'가 생각났다. '좋아하며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은 올 해(2021년) 읽은 책들 중에서 손에 꼽히도록 재밌게 읽은 책이다. 아이디어가 좋았고, 책의 구성도 좋았다. 무엇보다 내용이 재밌다. 어려운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저자가 쉽게 풀어준다. 글에서 간간히 뿜어져 나오는 유머스러움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정치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13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대부분 전공자이면 전공영역이 있을 법한데, 서양과 동양 철학 등 다양한 철학적 담론들을 들려준다. 4장 5장의 이야기는 특히 지금 읽고 있는 <좁은 회랑>에도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홉스, 로크, 루소의 철학을 비교해 주는 부분이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좋았다. 설명되는 예들을 보면서, '아, 이렇게도 설명이 가능한 것이었다면, 고등학교 윤리 시간이 졸리지만은 않았을 것' 같았다. 또 이야기의 시작인 1장엔 '천지창조' 그림이 등장한다. 손가락이 닿을듯 말듯한 부분을 캡쳐한 부분에서 나온 퀴즈는 나 역시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직접 읽어 보며 풀어 보시길). 오래되었지만, 바티칸 성당에서 직접 보기도 했었던 그림이었는데...  어떤 편견같은 것이 사고에 서려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들은 이렇게 어떤 그림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 이야기들로 진행된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가 이름은 들어 보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철학자들의 사상들이다. 니체, 공자, 베버, 로크, 루소 등의 철학자들은 물론, '다원주의'나 '정의'와 같은 이론이나 관념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들려준다. 4장과 5장, 8장과 9장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하나의 흐름은 읽혀지지 않는다. 그 점이 다소 정리가 덜된 개개의 이야기들을 모아둔 느낌을 줄 때가 있었다. 기고되던 글들을 모아둔 느낌이랄까. 생각해보면, 그동안 읽어 본 미술 관련 서적들이 대부분은 시대의 흐름을 기반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리즈인 양정무 교수님의 책도 그렇고 말이다. 그렇다고 흐름의 무일관성이 독서에 크게 마이너스도 아니었다. 어떤 큰 주제에 하나의 흐름이 느껴지는 책을 좋아하는 나의 습관의 문제일 뿐이다.


  마지막 11, 12, 13장은 앞 선 챕터들과 느낌이 좀 달랐다. 진행 방식이나 전체적인 흐름에서 좀 벗어난 느낌을 준다. 그게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내게는 좋았던 부분이다. 11장은 챕터들 중 가장 긴 부분으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태어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문제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았다. 12장은 미술과 철학보다는 미술작품을 보면서 사회 현상에 대한 문제들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들려주었다. 전적으로 공감하며 읽었다. 마지막 13장은 아이들에 대한 느낌이 많이 전해져 오는 챕터였다.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많이 부끄러웠고, 아이들에 대해서, 보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는 챕터 였다. 미술과 철학을 떠나서 개인적인 부분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갖게 했다는 점에서 앞선 챕터들과 다르게 다가왔었다.


  책이 늘어나면서 한정된 책장의 공간은 부족해진다. 가끔 너무 어지러운 책장을 보면서 책들을 정리할 때가 있다. 독서 후에는 책장을 정리할 때, '여전히 내 책장에 남아 있을 책인가'로 책장에 꽂을 책을 결정한다. 이 책은 다분히 책장에 꽂아둘 것이다. 후에 아이들이 자라서 이 책을 꼭 펼쳐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물농장>은 지금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책 뒷 표지에 있는 문구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을 딱 정리한 문장같다. 1945년에 출간된 소설이라고 한다. 지독한 냉전의 시대도 아닌 지금에서도 이 이야기가 이렇게 전율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무섭다. 기술의 발전과 함게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어 온 듯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념 대립과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아마도 이 소설이 무섭게 다가온 이유일 것이다.


  세상이 더 각박해지고 무섭게 변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사회의 제도와 구조 등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변화하기 힘들다. 예전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무어라도 되는 듯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곤 했다. 이놈이든 저놈이든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보였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고 중립적인 모습과 견해를 가졌다는 표현을 다르게 이야기 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지한 것이었던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변화를 바라고, 그러한 움직임에 동참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무관심이 나폴레옹을 만들고, 애써 이룬 변화를 제자리로 돌리게 하는 것이다.


  <동물농장>을 모르고 있진 않았다. 그만큼 유명한 책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읽었던 기억도 없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읽는 중이었고, <동물농장>은 다섯 번째 책이었다. 앞서 읽었던 4권의 책들은 현재 책장에 남아 있지 않다. 세계문학이라고, 고전이라고 다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들이 모두 재밌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동물농장>은 얇지만 무게감이 있었고, 금방 읽었지만 오래 기억될, 내가 좋아하는 세계문학이자 고전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