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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돌보다 -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린 틸먼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10월
평점 :
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논픽션인지도 몰랐다. 픽션에 약간 슬픈 이야기를 기대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논픽션임에도 이야기가 있고,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표지의 재질이 손에 땀이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재질이긴 하지만, 디자인은 마음에 들었다. 마주 잡은 두 손에서 힘이 느껴지는 그림은 제목과 잘 맞아 떨어지기도 했고, 무언가 뭉클하게 했다.
케어를 해 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이다. 그 돌봄은 이 책의 소제목처럼, 의무 혹은 사랑 같은 감정에서 비롯될지도 모른다. 어떤 단어에서 시작될지라도 육체 및 정신적으로 돌봄이 힘든 일임에는 변함이 없다.
암으로 형을 떠나 보냈다. 형은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며 잘 지내는 듯 보였다. 그러다 전이가 나타났고, 어느 한 순간 크게 나빠졌다. 띄엄띄엄 다니던 병원에 상주하게 되었고, 길게만 느껴지던 그 병원 생활의 많은 부분을 형과 함께 했다. 입원한 초기에는 그렇게 길어질지 몰랐던 병원 생활이었다. 어떻게 환자들을 돌봐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병원에서 함께 지내며 의료 서비스 외에 형이 필요로 하는 일들에 도움을 주었었다.
돌봄은 힘들다. 이 책에서 말하듯 그 끝을 알 수 없고, 끝이 죽음이라는 걸 알면, 그 끝을 바랄 수도 없게 된다. 이 책은 아픈 어머니를 케어하는 11년간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우리나라의 제도와는 다른 부분들이 있겠지만, 돌봄에 대한 현실적인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를 잘 위로하지 못하는 나다. 어설픈 위로가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음을 안다. 이 책은 그런 어설픈 위로가 없다. 지극히도 현실적이라 오히려 위안이 되었던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에 어머니에게 뇌경색이 나타났다. 주말에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는 무섭다. 어머니는 스스로 본인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119를 불렀다. 일요일이었고, 대학병원들은 대부분 파업중이다. 119는 다행히 병원을 찾았고, 어머니는 빠르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병원에 빠르게 왔고 증상이 오래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입원을 해서 검사를 이어 갔고, 얼굴 근육이 마비되어 말이 흐려진걸 빼면 괜찮다고 했다. 증상은 가벼운 축에 속했고, 얼굴 근육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나아질 거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내 몸도 작년과 다름을 느낀다. 인간에게 노화는 당연하고, 병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들고 아픈 일에 죽음이 바로 연상이 된다면, 알고 있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어도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아마도 사랑때문일 것이다.
어머니가 거동이 어려워지면서 장애인의 세계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을 넘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세계는 생동감 넘치고 확연히 구별되고 늘 존재한다. 낙인찍힌 그 세계는 어디에나 있고, 나는 ‘그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거리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저상버스로 자신을 욱여넣는 사람들, 전동휠체어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 다리를 저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문제, 난처함, 일상의 어려움을 알아봤다. 어머니의 병은 체험 장치 같은 기능을 했다. 너무나 많은 결과가 예측 불가능하고 우연적이다. - P227
나는 어머니가 아프긴 해도 정신이 맑았을 때 물었다. 인생은 고달프고 살다 보면 끔찍한 일도 일어나잖아요. 그런데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어머니는 말했다. 삶에는 아름다운 것들도 있으니까. 어머니는 그 아름다운 것들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 사랑, 우정, 도시 산책, 오페라, 아이들, 책, 하늘의 아름다움, 그중 어느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답은 내가 이전에 들은 어머니의 말들과는 전혀 달랐다. 나 또한 어머니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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