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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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면서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다. 은희경 선생님의 글이 그런 것 같다. 예전에는 크게 와닿지 않은 말이나 글들이 어느 순가 다가오는 그런 느낌말이다. "너도 나이 들어 봐라." 어머니가 내게 자주 했었던 말인것 같은데, 그때는 그냥 흘러 들었던 저 말들을, 요즘 내가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가끔 할 때 같은, 그런 뜨악하는 느낌이랄까. 은희경 선생님의 소설은, 예전에는 멋지다, 재밌다, 이렇게만 표현이 가능했던 글들이었다. 공감을 떠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나 주변인들이 하나같이 정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더랬다. 현실을 담은 소설일텐데, 내가 이상한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공감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소설속의 이야기가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등장인물의 감정에 오롯이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분명히 은희경 선생님의 새 소설집인데, 첫 소설인 <우리는 왜 얼마동안 어디에>를 읽으며, 어 이거 읽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창비의 클러버 활동을 하며 읽은 계간지에 발표되었던 소설이었다. 다시 읽으며 그때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 전 리뷰를 찾아 보지는 않았다. 뉴욕에 있는 친구에게 놀러가서 며칠간 머무는 동안의 이야기이다. 같은 시간의 이야기를 두 친구 각자의 시각에서 그려내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마지막에는 그 시점도 합쳐지는데, 그 이후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두번째 이야기가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장미의 이름은 장미>이다. 수진이 뉴욕의 어학원에서 만난 마마두와의 이야기이다. 나이가 들어, 낯선 곳에서 그것도 같은 나라의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 사실 국적을 떠나서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와 새롭게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세번재 이야기는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제목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 하며 읽기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극작과에 입학한 주인공의 현실적인 도피처가 된 뉴욕. 그곳에는 외국인 친구가 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뉴욕이 한국보다 낯설지 않음은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이국땅의 낯섦과 따듯한 친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뉴욕도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과 비슷해진다. 오히려 한국보다 더 낯설어진다. "이곳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하지만 문이 하도 많아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도시언제까지나 타인을 여행객으로 대하고 이방인으로 만드는 도시였다처음에는 환대하는 듯하다가 이쪽에서 손을 내밀기 시작하면 정색을 하고 물러나는 낯선 얼굴의 연인 같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저 표현은 주인공이 느끼는 현재의 뉴욕이다.


  마지막 소설은 <아가씨 유정도 하지>다. 주인공은 소설가다. 뉴욕에서 진행되는 문학 행사에 초청되어 방문한다. 방문하면서 동행하기를 원하는 어머니와 함께 하는데, 이 소설은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여행에 가져온 오래 전 미국에서 어머니에게로 발송된 편지를 보면서, 주인공이 어머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공감이 가는 구절 중에 "어떤 헌신은 당연하게 여겨져 셈에서 제외된다시기와 처지에 따라 개인의 욕망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 바뀌는 것도 이상했다."가 있었다.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가족에게 어떤 헌신을 강요하고 있었을까.


  이 책은 <서영동 이야기>와 함께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둘 다 연작 소설이라는 점,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두 소설을 같이 구매했던 것 같다. 다만, <서영동 이야기>는 연속해서 읽어나간 반면, 이 책은 이야기별로 끊어 읽었다. 이 책의 네 소설이 인물이나 장소 등에서 서로 이어지는 부분들이 있긴 한데,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어서 그랬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야기들이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어서 전반적으로는 재미나게 읽었다.  

이곳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하지만 문이 하도 많아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도시, 언제까지나 타인을 여행객으로 대하고 이방인으로 만드는 도시였다. 처음에는 환대하는 듯하다가 이쪽에서 손을 내밀기 시작하면 정색을 하고 물러나는 낯선 얼굴의 연인 같았다. - P180

어떤 헌신은 당연하게 여겨져 셈에서 제외된다. 시기와 처지에 따라 개인의 욕망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 바뀌는 것도 이상했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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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사회 - 말해지지 않은 무궁무진한 여자들의 관계에 대하여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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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페미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답 뒤에 그딴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페미니즘을 알지 못하기에 페미니스트가 아닐 뿐이다. 하지만 저런 질문 뒤에 깔려 있는 '혐오'적인 시각을 싫어한다. 여성을 혐오하기에는 내 가족의 어머니, 누나들을, 아내를, 딸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럼 페미니스트도 아니면서 왜 이런 책을 읽냐는 질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온전한 시각으로 보고 싶기 때문이다. 혹시나 내가 한 쪽으로 생각이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무서움 때문이다. 한쪽으로 생각이 치우쳐 있다면, 앞서 말했던 내 가족의 여성들에게 너무나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되는 무서움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페미니스트가 되려는 것은 아니지만, 페미니즘은 알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알아야 좋든 싫든 감정을 가질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 비슷한 이유로 저자의 전작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를 재미있게 읽었다. 페미니스트를 "올바름의 이름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질문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는 대목이 너무 묵직하게 멋있었다. 최근에 재미나게 읽은, <최소한의 선의>나 <슬기로운 좌파생활> 책들은 모두 그런 비슷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에 비해 묵직함은 덜 한 느낌이다. 이 책은 13편으로 나뉘어져 여자들을 둘러싼 소설, 드라마, 웹툰, 예능 등을 해석(?)하는 포맷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종의 평론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어렵고 낯설었다. 어려운 것은 낯설고, 낯선 것은 이해와 공감을 부족하게 한다. 이해와 공감이 부족한 것을 가까이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먼저 13편에 등장하는 소설을 제외한 웹툰, 드라마, 영화, 예능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렇게 어려웠을 것이다. 아는 것을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책에서 설명하는 부분과 내가 이해하는 부분이 맞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전작에서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 책은 문장들이 장황하게 다가왔다. 예를 들면, 환타지 로맨스 컨텐츠에 등장하는 글이다. '대중 서사란 대중의 기대 지평이 서사 매체를 통해 산업적 요구와 만나 호흡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일련의 서사 유형으로 이야기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특유의 양식화된 약호, 관습 및 스타일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대중 서사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장황하고 어렵다. 한 문장인데 여러번 읽어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나의 문해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다가가기 힘들다.


  반대로 이 책 전체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이다. '"사주에 내가 물이 많아. 이거나 저거나 다 물장사지 뭐."라며 한마디로 정리했다. 이 단순한 정리에 여성학과 석사 과정에 다니던 당시의 나는 내심 큰 충격을 받았다. 공부한 말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는데, 기훈 언니의 한마디가 그 어떤 글보다도 진실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배울수록 글이 어려워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해도에 대한 문제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똑같이 배운 것을 다르게 설명하는 차이는 설명하는 사람의 이해의 차이에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고의 정도가 이해의 깊이와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해의 깊이에서 오는 쉬운 설명은 진실을 통하게 할 것이다. 앞서 말한 <슬기로운 좌파생활>에서 우석훈 교수님은 좌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쉽고, 유머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쉬움과 유머가 필요해 보여 다소 아쉬웠다.

옳고 그름보다 중요한 건 어쩌면 예의와 정성 아닐까. 나 왜 이렇게 성의가 없었지.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내가 조금 무너지고 나서야 앞에 있는 사람의 표정이 눈에 들어 왔다. 이렇게 비대한 자의식이 줄어야 타인이 들어올 자리가 생기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해 봐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기도 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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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미국 주식, 월급보다 더 번다
삵(이석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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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이 가는 분야이지만 선뜻 기대가 크지 않은 책들이 있다.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면서 읽었던 재테크 관련 서적들 대부분이 그랬다. 혹하는 제목에 비해 내용이 부실하거나 나에게 맞는 책들을 아니었다. 그동안 많은 책들은 아니지만, 주식 투자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 주식 투자를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어서, 앞으로도 계속 관련 서적들을 읽어 나갈 것이다. 읽어 보기 위해 구입해 둔 책들도 아직 몇 권 더 남아 있다. 이 책은 별점을 보면 알겠지만,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책이다. 읽다보면 나에게 맞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미국 주식은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주식에 아무런 지식없이 들어 갔다가 수익률이 많이 안 좋은 상태다. 초심자의 운은 짧았고, 시장은 무서웠다. 국내 시장에서 벌어지는 주식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하물며 해외 시장이라니... 겁없는 것을 넘어서 이건 무모해 보였다. 그런데 합리성을 따져 보았을 때, 시장이 작은 곳 보다는 큰 곳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투자가 더 잘 먹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미국 주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책 몇 권을 사두었다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먼저 책은 좋다. 좋다는 의미는 내게 잘 맞는다는 뜻이다. 우선 계좌 개설에서부터 종목 선정에까지 초보자들에게 맞춤식으로 설명이 되어 있어 좋았다. 특히나 겁없이 기업을 선택하기 보다는 주린이들에게 어울리는 ETF에 관한 설명이 많아서 좋았다. 포트폴리오 관련된 부분들도 많은 도움이 된 파트인데, 국내 주식에서 거의 몰빵 투자를 하고 있는 나의 상황을 비추어 볼 때 너무 유용한 팁이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며 포트폴리오만 이야기하는 책이 아닌, 구체적인 비중과 함께 해당 자산의 ETF 종목들이 설명되어 있어서, 미국 주식 주린이인 내게는 참 친절한 책이었다.


  자, 이제 좋은 안내서는 마련되었으니 내일 바로 미국 주식장에 뛰어들 것인가. 그건 아니다. 복리의 마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부의 파이프 라인을 설치하는 것이 나은 것이 아닐까. 준비는 언제까지면 좋은 것일까. 뛰기 시작할 정도로 준비해야 하는 정도는 어느 수준일까. 아직 잘 모르겠다. 아직은 워밍업이 덜 된 느낌이다.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급하게 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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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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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겨울이라는 유터버가 운영하는 겨울서점이라는 북클럽이 있다. 가끔 음악을 검색할 때가 아니면 유튜브를 잘 하지 않아서 우연히 알게 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몰랐을 것 같다. 덕분에 유튜브에 가끔 들어가 보면 최신 업데이트된 겨울서점의 영상들을 볼 수 있다. 차분하게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좋았고, 책을 다양하게 읽고, 지루하지 않고, 조리있게 말해 귀에 잘 들어와서 좋았다. 그 채널에서 최근에 꼭 읽어 보라며 추천을 해준 책이다. 제목이 내 시선을 끌기에 좋은 것도 아니었고, 처음 들어 보는 저자(외국 작가들은 거의 아는 분들이 없다)에, 출판사도 낯설었다. 그럼에도 아무 사전 조사 없이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읽어 보라고 한다. "그냥 읽어 보세요. 그리고 이 책에 관한 리뷰 영상만 따로 한 달 정도 있다가 올릴게요"라고 하며 추천한다. 뭐야, 뭐지? 이 책을 안 읽고 그 영상을 보면 도태될 것 같은 느낌에, 순전히 그 이유만으로 당장 책을 구입했다.


  외국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최근 겨울서점 채널에 초대되어 나온 김문정님과 비슷한 이유다. 등장인물들이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다. 아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글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머리 속에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이름과 매칭이 되지 않는다. 이름이 등장하면 뒷 페이지로 돌아가 그려놓았던 이미지들과 이름 연결짓기를 여러번 하는 과정을 거쳐야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지극히 한국적인 탓일까. 여튼 이 책도 처음에 이름이 등장한다. 에휴 나랑은 안 맞는 책인 것인가. 추천하는 책들이 모두 나와 맞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아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중요한 책이 아니다. 초반에 약간 추천에 속은 거 아닌가 하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지만, 초반에 아주 살짝이다. 읽어보시라. 추천대로 될 것이다. 그냥 끝까지 읽게 된다.


  이 책의 찬사에 등장하는 온갖 현란한 수식어들.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게 훌륭한 책인가 싶을 수도 있다. '훌륭한'이란 범주는 모두가 다를테니 말이다. 이 책은 그 범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 여러가지 범주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작은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찬사에 미치고 못 미치고, 그런거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재밌다. 리뷰를 써 오면서 누누히 이야기한 여러가지 의미에서의 각종 재미다. 글이 재밌고, 내용이 생각해볼 것들 투성이다.


  다 읽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생각중이다. 나는 과연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별들을 포기하고 우주를 얻을 수 있을까. 이 세계의 규칙들을 부수고 더 거침없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지배자(Ruler)들이 채운 족쇄라는 자(ruler)만큼의 범주로 한정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두려웠고 겁이 났다. 내 안의 긍정이 그 동안의 그런 규칙들을 최선이라고 여기게 한 것일까. 사다리를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다리의 끝에 오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으며, 어느 순간 내 위치에서 군림하듯 살아오고 있던 것은 아닌지. 무섭도록 질책하는 책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혼돈의 일부일 뿐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정하고 기억해라. 혼돈 속의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해라. 잊지 마라.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그렇다. 우리 모두 중요한 것이다. 나도 중요하고, 당신도 중요한 것이다.


혼돈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다. - P12

마치 내가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할 순간만을 열렬히 기다려왔다는 듯 아버지는 내게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통보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 P54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정교한 뭔가를 쌓아 올렸다가… 그 모든 게 다 무너지는 걸 목격한 그 사람… 그 사람은 계속 나아갈 의지를 어디서 다시 찾았을까 하는 그 질문.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낙관주의에 비하면 훨씬 더 심오하고 자의식은 훨씬 덜하지. 우리는 그 파괴되지 않는 것을 온갖 종류의 다른 상징과 희망과 야심 등으로 가리고 있어. 이런 상징과 희망과 야심은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인정하고 강요하지 않으니까. - P130

음… 만약 그 모든 잉여를 제거한다면(혹은 제거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파괴되지 않는 그것을 찾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일단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카프카는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 그는 우리가 파괴되지 않는 것을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해주지 않아),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찢어발기고 파괴할 수도 있어.
그래도 어쩔수 없는 거지…. - P130

―내가 어려서부터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에써왔던 바로 그 세계관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개미들과 별들과 함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느낌.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내부에서 바라본, 차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시고 가차 없고 뚜렷한 진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진실을 흘낏 엿본 바로 그 느낌일 것이다. - P207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P227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질척거리는 변명도, 죄도 아니다. 그것은 다윈의 신념이었다! 반대로,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만 하고 그 주장만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거짓이다. 그건 너무 음울하고 너무 경직되어 있고 너무 근시안적이다. 가장 심한 비난의 말로 표현하자면, 비과학적이다. - P228

여전히 내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우리 모두는 헤드라이트와 희망을 켠 차를 타고 어디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 여전히 똑같은 텅 빈 지평선. 나는 우리의 지배가가 여전히 야멸차고 냉담하다고 생각했다. 저기 저 돌아서는 모퉁이에서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無라고 확신했다. 약속은 없다. 피난처도 없다. 희미한 빛도 없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든 상관없이. - P228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 P252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닐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 P263

과학자들은 "긍정적 환상을 갖는 것이 목표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나는 서서히,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게 됐다. - P266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해골 열쇠를 하나 얻었다. 이 세계의 규칙들이라는 격자를 부수고 더 거침없는 곳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물고기 모양의 해골 열쇠. 이 세계 안에 있는 또 다른 세계.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고 하늘에서 다이아몬드 비가 내리며 모든 민들레가 가능성으로 진동하고 있는, 저 창밖, 격자가 없는 곳. - P267

도덕적⋅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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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구의 미국주식 투자 전략
전인구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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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적 독립이 꼭 퇴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나 하고 있는 일이 재미 없는 것도 아니다. 나의 일은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공부해 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직장과 하는 일이 좋다. 그럼에도 나는 경제적 독립을 꿈꾼다. 퇴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가끔은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책만 보고사는 삶을 꿈꾸기는 한다). 다들 어떤 이유로 경제적 독립을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주식 투자, 그리고 미국 주식에의 투자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 두드리는 가장 쉬운 문이 아닐까 한다(두드리고 열고 들어가기만 쉽다는 것이지, 그 문 밖으로 나올 때 모두가 경제적 독립을 얻어서 나오는 것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조금은 알고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두려울 뿐이다. 미국주식 투자에 앞서 관련 책들을 읽어보는 중에 가장 최근에 출판된 이 책을 만났다. 미국 주식 투자와 관련해 미리 구입해둔 책들이 있지만, 투자를 급하게 진행할 것은 아니라서, 급한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처음으로 미국 주식 관련 책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정말 빠르게 읽힌다. 관련 분야의 책들 중에서 비교적 얇은 편이고, 자간도 넓다. 중간 중간 반복되는 내용들도 있어서 2~3시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제목에 '투자 전략'이라고 되어 있지만, 전략보다는 종목에 대한 소개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즉, 미국주식을 처음 시작하는 독자층에게는 맞지 않고, 미국 주식에 이미 경험이 있거나 투자가 진행중인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맞을 것 같다. 그래도 산업이나 업종의 흐름을 파악하는 저자의 방법과 그 흐름(어느 책에서 보니까 채찍 효과라고 나오는 것 같던데)에 따른 투자처 찾는 것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내게는 종목에 대한 것 보다는 미국 주식 투자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해 한참 이리 저리 술마시러 다니며 놀 나이에, 저자는 이미 경제적 독립을 이루었다. 부럽고도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는 뭔가를 이룬 분야에 이제 시작하는 초보들이 완성된 자들을 평가한다는 것도 무리는 있다. 배우자. 뭐든 하나씩 배워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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