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부당합니다 - Z세대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
임홍택 지음 / 와이즈베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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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갔다가

​

입구부터 시작된 통로 매대에서 발견한

​

와이즈베리 인문교양책 <그건 부당합니다>.

​

마침 요즘 읽고 있는 책이어서 들고 다니다가 이렇게 한 프레임에 담아본다.^^

​

<90년생이 온다> 로 한 때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임홍택 저자의 신간이다.

​

이번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세대담론의 차이와

​

Z세대가 바라본 공정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 다뤘다.

​

나 또한 기성세대에 속하고 젊은 세대의 인식 구조가 다름을 요즘 들어 체감하던터라

​

저자가 바라보고 문제 제기한 이슈들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책을 펼쳤다.

​

우선 서문이 너무 길지 않아서 맘에 든다...ㅋㅋ

​

사실 저자가 설파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라서

​

정독을 하는 곳이긴 하지만 너무 길면 때로는 지치기도 한다.

​

핵심만 짚어주니까 뭘 말하고자 하는지 대략 감 잡고 시작할 수 있었다.

​

​




2020년 전후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 공정담론의 예열 과정을

​

저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한 가지 논란에서 발견하고 가져온다.

​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추진됐을 당시 기성 정치권은

​

전혀 예상하지 못한 20대 젊은 세대들의 극렬한 반발이 있었다.

​

여기서 포인트는 '예상하지 못한' 기성 세대이다.

​

MZ세대가 희한하고 까칠하고 이기적인 게 아니라

​

젊은 세대는 진보적일 것이니까 통일이라는 역사적이고 평화로운 이벤트를

​

반대할 리가 없다는 기성 세대 중심적인 어이없는 예측이 문제인 것이다.

​

공정담론이 젊은 세대에서 이슈가 되어 다양한 논쟁거리가 양산되는 데는

​

무엇보다도 동시대를 살면서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권을 가진

​

기성 세대와의 불화가 결정적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

젊은 세대가 왜 '공정' 에 이렇게 집착하듯 매달리는지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

​

그런 노력은 커녕 예측이 어긋난 이후 당혹스러워함에서 끝나지 않고

​

미성숙하며 젊은 세대가 보수화됐다고,

​

심지어는 개인주의가 득세한다며 이기적이라고까지 몰아부친다.

​

​

​

​

​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4년을 기다려온 젊은 선수들은

​

자신들의 노력이 외적인 권력에 의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

기성 정치권에게 정확히 표현하고 전달했을 뿐이다.

​

젊은 세대는 단일팀 추진으로 인해 자신의 위치를 박탈당할 위기에서

​

통일이라는 민족적인 대의를 위해 가만히 앉아서 자신을 희생할 이들이 아닌 것이다.

​

이것을 자칫 기성세대와 MZ세대의 갈라치기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에 있어서 길을 잃을 수 있다.

​

서로 다른 우리가 공정담론에 대해 어떻게 마주해야할지 그것을 함께 고민할 때이다.

​


젊은 세대가 바라보는 공정의 기준에 대한 반감은 잠시 내려놓고

​

그 기준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

'공정'이란 단어 그 자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

책 제목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

공정을 외치고 있긴 하지만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

불공정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자신들이 마주하는 현상과 상황들이

​

'이치에 맞지 않고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

결국 저자는 이 사회에 '부당에 대한 담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

다소 까칠하다 해도 MZ세대의 당당한 목소리가 어쩌면

​

고정관념, 편견, 관행, 새치기, 침묵적 카르텔이 지배했던

​

불공정한 시대로부터 이제는 변할 때가 되었다고 외치는 듯 하다.

​

시어머니가 호된 시집살이로 고생했으면서

​

고스란히 자신의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처럼

​

기성세대가 그렇게 살았다고 해서 젊은 세대에게

​

절차와 기준의 부당함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라고 일방적으로 강요할 이유는 없다.

​

가만히 앉아서 그 부당함을 떠안을 Z세대도 더이상 아니다.



당신들의 공정이 진짜 공정인가요?

​

애초에 불가능한 완벽한 공정이라는 개념

​

그들의 언어는 단지 '부당하다'는 것이다

​

현세대가 공무원과 중소기업을 원하지 않는 공통의 이유

​

조직 안에서의 새로운 외침 '그것은 부당합니다'

​

국가의 정책 차원까지 파고든 부당함의 외침

​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부당하니까!

​

그동안 누구도 묻지 않았던, 자격에 대해 묻는다

​

태생적인 불평등에 대한 반대급부

​

부모보다 가난해지지 않는 세대가 되는 방법

​

그들이 받아들이는 또 다른 방식의 줄 서기

​

조직 사회에서 부당함 논란을 줄이는 방법

​

​

​

이걸 칭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게 소제목을 너무 잘 뽑았다. ㅎㅎㅎ

​

완독한 1인으로서 소제목만 봐도 저자가 같이 생각해보자는

​

이슈의 핵심을 고스란히 모아 놨으니 말이다.

​

절대적으로 위 소제목들 만으로 이 책을 다 봤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

Z세대의 인식의 기저에는 무엇이 깔려 있는지 그걸 들여다보고

​

이 불공정한 세상에서 그들이 부당함을 느끼는 지점과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과정이 있어야

​

비로소 인문교양책 <그건 부당합니다> 의 독서가 마무리될 것이다.

​

​

​

​

같은 성인인데도 나이가 어리거나 사회적 지위의 서열로 인해

​

처음 보는 자리에서 반말하는 상대에게 역지사지의 정신을 보여주는

​

Z세대의 대응에 당돌하다는 반응부터 보이기 일쑤다.

​

동방예의지국에서 손윗사람의 위엄을 반말로 과시하는

​

관습적인 한국만의 특수성을 배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그들의 행동이 이해될 것이다.

​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그들에게는 당연한데

​

그 이전 세대에게는 그렇지 않음에서 오는 불화가 이렇게

​

인간관계속에서 사부작사부작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보편적 진리를 거꾸로 젊은 세대가 꼰대에게

​

알려줘야 하는 이 상황이 그들 입장에서 참 피곤할 법도 하지 싶다.

​

그간의 관행이나 권력화 때문에 잘못된 걸 잘못됐다 말하지 못해서 힘겨웠던 기성세대의 시간은

​

이제 MZ세대로부터 변화의 기점으로 향하는 반환점을 맞이했다.

​

괘씸하고 당돌하다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

그들의 논리, 인식의 구조를 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

세대가 거듭되면서 이 사회는 분명 변하고 있으니까.

​

그 변화의 방향이 퇴행인지, 진보인지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하기에 달려있다.

​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점진적으로 개선된 것은

​

사회 구성원들의 투명성 인식이 그보다 약간 앞선 수준에서

​

점진적으로 나아졌다는 분석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




이 책의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 를 논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공정' 이라는 키워드의 본색을 들여다보면서 서서히 마무리하고자 한다.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캐릭터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어서

​

드라마를 본 사람도, 보지 않은 사람도 Z세대의 부당하다는 외침을

​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는 예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나아가 공평, 공정, 평등... 다 비슷한 의미인 것 같은 이 키워드들을

​

그림으로 쉽게 접근해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

워낙 많이 알려진 그림인데 중요한 것은 각각의 단어 정의를 아는 것도 아니고

​

어떤 그림이 어떤 키워드를 정확히 반영했는지 구분짓는 매칭은 더더욱 아니다.

​

개개인이 소유한 재산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참고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따라 다르고

​

자신의 신념이나 정치적 이념에 따라서도 다른 관점으로 그림이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

기회의 평등을 중시하는 관점과 결과의 평등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에 따라

​

공정함은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와 <공정하다는 착각> 를 거론하면서

​

수능과 학종, 무엇이 공정한지에 대한 이 사회의 쟁점에 대해

​

MZ세대를 한 걸음 더 이해할 수 있었다.

​

그들은 시험에 기반한 능력주의 시스템의 '예측가능성'을 선호하는 것이다.

​

저자는 '통제가능성' 이라는 표현을 더 중점적으로 사용하는데 큰 차이는 모르겠다.

​

예측이 될 때 통제로 연결되는 것이니까.

​

원칙이 있고 통제가 가능할 때 자신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 때문에

​

그것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반대로 교란이 발생한다 싶을 때

​

예민하고 까칠해 보이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라기 보다는 개인이 가진 권리를 지키고 싶은

​

'개인보호주의' 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

물론 자신의 의무와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주장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

기성세대의 반감도 없지 않다.

​

개개인이 하나의 전체이자 덩어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각각 다른 태도를 보이긴 하지만

​

이기주의로 전체를 치부하는 것 또한 곤란하고 위험한 시선이다.

​

젊은 세대에게 통일이나 민족 문제같은 대의, 직장에서 늦은 시간까지 희생하는 일의 미덕은

​

실질적으로 그들의 삶에 연관되지 않기 때문에

​

강요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

​

​

​

​

저자가 제시한 세대담론의 불화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로 놓고 제로의 시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

관행이라는 총체적 부당행위가 이 사회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에

​

시간은 좀 많이 필요해 보인다.

​

관행이나 적폐는 좋고 나쁨이 없고 그냥 없어져야 할 것들이다.

​

젊은 세대에게 줄 서기의 원칙은 공정함의 또 다른 상징과도 같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

규칙을 위반하는 문화를 조금씩 지워나가는 사회 구성원의 인식이 요구된다.

​

부당하다 싶을 때 저항하는 것은 사회 공정을 바로 서게 하는 데 중요한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

공정함을 부르짓는 행위의 본질은 경쟁 사회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

공존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한다.

​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 저항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

개인적으로 <90년생이 온다> 보다 인문교양책 <그건 부당합니다> 가 훨씬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었다.

​

독서토론 주제 도서로는 더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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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쪽으로
이저벨라 트리 지음, 박우정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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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Wilding 처럼 이 세상의 모든 생태적 관계 속에서

​

인간은 그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

야생 상태 그대로 자연을 둘러싼 그 모든 것을 되돌리자는

​

"재야생화 프로젝트" 를 중심에 둔 생태학 에세이이다.


평소에도 가볍지 않은 인문학적 담론들을

​

얕지 않게 소개하는 글항아리의 신간 <야생 쪽으로> 는

​

어느 영국인 부부가 '넵' 이라 불리는 자신들의 대농장 사유지를 쟁기로부터 해방시켜

​

토양을 쉬게 하고 회복하게 하여 나아가 야생동물들에게 돌려주자는 이야기이다.

​

저자인 이저벨라 트리는 작가이자 여행 저널리스트이며

​

그의 남편 찰리 버렐과 함께 넵 황무지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다.

​

찰리가 물려받은 대농장 '넵' 은 찰리 버렐의 조상인 3대 준남작 찰스 메릭 버렐 경이

​

대략 장미전쟁 때 생을 시작해서 수령이 550년쯤 되었을 나무에게

​

'넵 오크' 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당시 유명한 건축가에게

​

나무 바로 옆에 저택을 지어달라고 의뢰한 때가 1800년대 초.

​

그렇게 '넵 캐슬'과 지금의 넵 사유지가 생겨났다.

​

인간 문명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던 대초원들은

​

인간의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

야생 동물들의 서식지를 갈아 엎어 농사지을 땅으로 바뀌었다.

​

어떠한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삶의 터전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

​

저자와 그의 남편이 17년 전부터 야생을 복원하게 된 이유는

​

야생동물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현실적으로는

​

대농장을 유지함으로써 돌아올 손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

"재야생화 프로젝트" 를 시작하고 보니 점점 일이 커지게 되면서

​

그들의 넵이 더이상 사유지가 아니라

​

지구의 탄소를 격리시키면서 자연스럽게 기후 위기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

공공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확장해 나갔다.

​

토양에게 어떤 인위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자연에게 돌려주게 되면

​

수자원 및 수질 정화는 물론이고 인간이 그 땅을 통해 얻게 될 식재료들과

​

풍부한 식량, 인간의 건강과 나아가 동물 보호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은 30년 전에 이렇게 말했었다.

​

"생물의 다양성은 천연자원들과 종간 관계의 복잡한 그물망에 의지한다.

​

전반적으로 한 생태계에 더 많은 종이 살수록

​

생태계의 생산성과 회복력은 높아진다.

​

이것이 바로 생명의 경이로움이다."

​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자연 생태계는 스스로 문제를 풀어갈 능력이 있음에도

​

인간은 자연의 재생, 재활 능력을 믿지 못하는 듯하다.

​

인간은 자연에 애정도 없고 게다가 염치까지 없어 그저 빨대만 꽂고 있다.

​

어떻게든 착취해서 욕망을 채우며 인간 문명을 사방으로 뻗쳐 나가기에 급급하다.

​

이렇게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만 일방적으로 자연에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

점점 길을 잃어가기도 하지만

​

이저벨라와 찰스 부부처럼 진정 인간 문명이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고

​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

인간에 의해 재배되거나 사육되지 않는 상태로,

​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자연의 상태로 되돌아가자는

​

"재야생화 프로젝트 rewilding" 은 그래서 영국 뿐만 아니라

​

전 세계로 퍼져나가야 할 바람직한 캠페인이 되어야 한다.

​

원래 자연이 가던 그 길을 인간이 더 이상 집약적 농업과 공장식 축산으로 가로막지 말고

​

모든 생명체가 경계 없이 안정적인 시스템에 의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갈 길을 터주는 것이 곧 자연에게 원래대로 주도권을 돌려주는 일이다.

​

재야생화 프로젝트는 주로 영국의 현실을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지만

​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

멸종 위기에 처했던 영국의 새들이 넵 사유지로 돌아와

​

그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저자 부부의 감동이 오롯이 전해졌다.

​

초식동물, 야생동물들이 있어야 할 곳에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자연을 돌려주는 것이

​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드는 인간의 개입보다 훨씬 경제적으로도 이롭다.

​

넵 사유지의 자연주의적 방목 실험을 통해 현실적인 한계도 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재야생화 프로젝트에 대한 이로움과 가치를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

영국의 정부 기관인 잉글리시 네이처도, 공무원 사회에도

​

그들의 의사결정 방식에 자연적이라는 개념을 인식시키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

(예산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공무원 사회는 어딜 가나 굉장히 보수적이구나....;;)

​

지방 당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거나 기업의 기부에 의지해야 하는

​

환경 생태적 실천 프로젝트는 상상하는 모습에 닿기엔 여전히 요원해 보이기도 하다.

​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

멧비둘기, 맷돼지, 나이팅게일, 들소, 번개오색나비, 비버, 조랑말, 지렁이들이

​

넵 사유지로 돌아와서 생물 다양성을 안정시키는 데

​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





인간이 생물다양성의 주도자라면 인간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계속 자연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이 혼자 힘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한다.

그런데 생물다양성이 자연에서 오지 않았다면

애초에 어디에서 왔겠는가.

우리는 자연이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수세기 동안의 착취와 기술적 오만 뒤에

토양으로 다시 눈을 돌림으로써

우리 종들이 어떻게 단지 다음 수십 년 동안이 아니라

다가올 수천 년 동안 생존할 수 있을지,

우리의 창의적 지능과 전문 기술을 우리와 달리

수백만 년의 연구 개발로부터 도움을 받아온 이 시스템과

결합시킬 수 있을지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토양은 우리의 기반이고

재야생화 프로젝트에서 토양은 동그라미의 완성이다.




​인간의 농업이 등장하기 전에 땅을 지배했던 동물들의 생존방식과 행동양식을

​

더이상 외면하면 안되겠다.

​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채집수렵문화의 원시 시대부터

​

생존을 위해 인간과 포식동물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지만

​

야만 시대가 이제는 문명 시대로 바뀌었으면

​

다툼과 투쟁 말고 얼마든지 모두에게 이로운 공존의 지혜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

이 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

인간 중심적인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

멈추기 어려울만큼 팽창되어버린 개발을 위한 집약적 농업에서

​

재야생화로 방향키를 돌려 자연이 회복되기까지

​

인간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지켜만 봐주면 좋겠다.

​

자연이 우리보다 더 알아서 잘 한다.

​

인류세가 자연에게 가한 부담이 이미 너무나 막대하다.

​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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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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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일 삶을 사랑한다면 삶 또한 사랑을 되돌려 준다."

​

​

한 달에 한 번 중2 둘째 아이의 학교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에 갔던 날,

​

학교 벤치에 적힌 이 문구를 발견하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

혹자는 그냥 지나쳤을 이 문장 하나가

 

나에게는 가던 길을 붙잡아 세워 두고는 음미하게 한다.

​

삶을 의인화하며 내가 베푼 사랑을 다시 내게 돌려준다 하니

​

이 문장을 보고 기분 좋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말이다.

​

정말 그럴지 사실 인간은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

지금 당장 확인할 수도 없지만 이 문장 하나로

 

따뜻한 햇살이 축복과도 같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

문학작품 속에 담긴 문장들은 이렇듯

​

언어라는 도구로 인간의 마음 속까지 깊이 파고든다.

​

파고들어 가만히 있지 않고 기분좋은 파동을 만들어

​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

이번에 만난 문학 에세이 속 문장으로 이렇게 화답하고 싶다.

​

"네가 세상을 보고 미소 지으면 세상은 너를 보고 함박웃음 짓고,

​

네가 세상을 보고 찡그리면 세상은 너에게 화를 낼 것이다."

​

<정글북>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말이다.

​

위 문구와 왠지 결이 겹치는 듯한 느낌이다.

​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라 일컫는 '상상력'이 빗어낸 소설을 너무나 사랑하고

​

나아가 문학덕후를 자처하는 나에게 그러한 책이 왔다!

​

 

​

 

2020년 겨울에도 어김없이 나혼자 제주도여행을 했던 나.

​

매년 안식일처럼 혼자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주 동안 제주도의 겨울을 느끼면서

​

여행을 하는데 그 중심에는 책방투어가 있다.

​

따로 블로그 내에 <탐서가의 책방투어>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

전국의 책방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그렇게 쌓인 게 어느덧 61개나 되었다.

​

같은 책방을 두 번, 또는 세 번쯤 남긴 것은

 

정말 애정하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

이번에 문학덕후인 나의 인생책에 등극한 책을 여기에서 만났다고

​

얘기하려다 보니 서론이 길었다.

​

제주도 동부 세화리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서점 제주풀무질에서

​

장영희 교수의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 를 만났더랬다.

​

그 때는 개정되기 전 버전이었고,

샘터에서 장영희 교수의 책들을 차례차례 개정하고 있는데

​

이번에는 이 책에게 그 차례가 온 것이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개정판은 진짜 못 참지!!!

​

(개정판이 훠~~~얼씬 낫다... ㅋㅋ)

​

요즘 읽어야 할 책들이 줄을 섰지만 이 책은 절대 뒤로 미룰 수가 없었다.

​

그리고 문학덕후가 오랫동안 묵혀둔 기대감으로

 

이 문학 에세이를 펼쳐본 결과,

​

장영희 교수의 글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

장영희 교수는 사람과 삶을 사랑하는 영문학도였다.

​

반갑게도 나 또한 영문학도였다.

​

그리고 나 또한 사람과 삶을 사랑하며 살고자 노력중이다.

​

그래서 이 책 속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감동이었나보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

 

 

윌리엄 포크너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 속 문장을 인용하며

​

장영희 교수가 생의 마지막에 암과 싸우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이 글은

​

적잖은 울림을 전한다.

​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저항하며,

​

때로는 버텨가며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간다.

​

평소에 온화한 장영희 교수도 생의 마지막을 앞둔 이 시점에서

​

자신의 삶 앞에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 한편 눈물겹기도 하다.

​

오랫동안 문학의 힘을 믿으며 수혜를 입었던 자는

​

이렇게 남은 이들에게 고스란히 그 힘을 남김없이 물려주려는 듯이.

​

​

 

​

어떤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글인지 작은 제목에서

​

가늠이 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

그런데 확실한 것은 다 가독성 너무 좋고

 

다 의미와 책 읽는 즐거움을 갖춘 글들이다.

​

유명 일간지에 3년 가까이 연재한 문학칼럼을

​

단행본으로 엮었다는 게 개인적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

서문까지 이렇게 버릴 게 없는 61개의 글을

 

단숨에 읽을 수 있게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 는 하버드대 방문 교수 자격으로

​

보스턴에서 1년이라는 안식년을 보내는 해에 쓴 글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

공교롭게도 이 기간의 말미에 미국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

다행히 바로 수술을 해서 완치가 되었다고 하더니

​

다시 시간이 흘러 유방암이 목 뒤 경추로 전이되어

​

척추암 진단을 받게 되었던 장영희 교수.

​

생후 1년만에 소아마비를 앓게 되면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의 삶을 살아왔지만

​

운명에 저항하며 자신의 딸을 사랑으로 지켜냈던 부모님 덕분에

​

지금의 장영희 교수가 있었다고 에세이 속에 고백하기도 했다.

​

특히 장영희 교수의 아버지는 수 많은 작품들을 번역하고

 

글을 썼던 영문학자였고,

​

그 영향으로 장영희 교수 역시 영문학자가 되어

​

번역과 글쓰기, 중고교 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잠실 지역의 중고교 학생들의 영어 교과서를

​

디테일하게 분석하며 내신 대비를 해줬던 내가

​

이 경력을 접하자 마자 '장영희' 라는 이름은

 

이 문학 에세이의 저자가 아니라

​

영어 교과서 집필진의 이름으로 탈바꿈된다.

​

정말 그랬다....장영희라는 주 집필진 이름이 있었던 것 같다.

​

 

​

 

​

사랑, 행복, 희망의 축복을 전하고 싶었던 장영희 교수의 메시지처럼

​

사랑에 관한 전 세계 위대한 작가들의 한 마디를 모아둔 페이지가 인상깊다.

​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추앙하는 작가의 문장이

​

역시 내 눈에 가장 깊이 박힌다.

​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

-빅토르 위고-

​

사는 게 고통스럽다 해도 결국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라면

​

사랑이 남지 않는 죽음보다 사랑이 남아 있는 삶이 좋다는

​

문학 작품 속 문장을 인용한 것에서도

​

장영희 교수의 삶에 대한 애정이 온전히 느껴진다.

 

 

 

 

 

음률이 살아있는 영미시, 영미 문학 속 멋진 문장들을

​

아름다운 그림과 나란히 배치한 구성도 완전 취향 저격이다.

​

진짜 알맹이가 되는 장영희 문학 에세이 속에는

​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내면 세계를

​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의 말과 행동, 사건들을 통해서

 

거울 보듯 들여보게 한다.

​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갖는 약점들, 연민들,

​

슬픔과 좌절을 깨닫고 주인공을 바라보며

 

나와 내 주변의 타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

문학 작품들의 힘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 였다.

​

주인공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삶의 다양한 경험도 해보고

​

그들의 시행착오도 함께 겪으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고

​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인지,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하게 했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를 읽으면서

​

문학을 통해 내 삶에 눈을 뜨게 해주는 힘이 있음을 깨달았다.

​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 에서는

 

딤즈데일, 헤스터, 칠링워스를 보면서

​

미로와 같은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에서는

 

개츠비 앞에 왜 'Great' 를 붙였는지

​

장영희 식 해석 덕분에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이 해소된 시간이었다.

​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에서는 원시와 문명 세계 사이에서

​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조명할 수 있었고

​

과도하게 발달한 과학이 과연 인간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

개인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러시아 문학, 그 중에서도

​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은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

경험하고 느끼기 어려운 그들의 사상을

 

장영희 교수의 따뜻한 해석 덕분에

​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

인간과 인간의 삶에 신이란 어떤 존재인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선과 악은 어떤 관계이며

​

사랑은 어떤 힘을 미치고 있는지 작중인물들을 통해서

​

도스토옙스키의 메시지를 어렴풋이 접했던 시간이었다.

​

황당무계하지만 아름다운 이상주의자 ​<돈키호테>​는

​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기 위해 누가 뭐래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

꾸던 꿈이 깨져서 좌절하게 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괴로워하는 게

​

인간의 숙명이라면 그것마저도 받아들이겠다는

​

돈키호테의 삶에 대한 자세는 접할 때마다 너무나 눈물겹다.

​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작품인데

​

장영희 교수의 해석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

더 좋아지게 만들어 버렸지 뭐야....^^

​

이 밖에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허먼 멜빌의 <모비딕>,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펄 벅의 <대지>,

​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대지>,

​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

이렇게 위대한 작품들을 이 책 한 권으로 다 만날 수 있다.

​

아름답게 살다 간 한 인간의 인문학적 시선이 담긴

​

온화한 문체는 이런 것이구나 경험하게 될 것이다.

​

현실세계의 아름다움, 누추함, 비루함을

​

비평이라는 장르로 고전적인 문학세계와 비교 분석한 훌륭한 글의 모음집이다.

​​

 


​

​

시종일관 종교와도 같이 추앙하듯 써내려 가는 나의 이 책리뷰는

​

사실 장영희 교수의 서문에서부터 비롯되었다.

​

이미 시작부터 무릎 꿇고 두 손 모은 격이지.....^^;;

​

그래도 괜찮다.

​

그녀의 글로 인해 나는 충분히 구원받은 느낌이니까.

​


문학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또는 상처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

<문학의 숲을 거닐다> 서문 중에서




살면서 끊임없이 부조리한 세상을 목도하고 있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

​

이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

문학이 이런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

서문에서 이미 이러한 나의 인생관과 딱 겹치니

​

<문학의 숲을 거닐다> 문학 에세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순간적으로 감동해서 눈물이 맺히는 내 모습에 나도 놀랐다.

​

문학덕후의 인생책으로 등극하기에 손색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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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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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의 필력과 따뜻한 시선을 접하면 추앙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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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10만 부 기념 리커버) - 뇌과학과 정신의학이 들려주는 당신 마음에 대한 이야기
전홍진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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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을만한 심리학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은

​

미국과 한국의 우울증 환자 비교 연구,

​

치매와 스트레스에 대한 치료 및 연구를 해온

​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의 베스트셀러이다.

​

십만 부 기념 리커버가 나오고 나서야 만나게 되었는데

​

이것도 글항아리 서포터즈여서 주어진 기회.^^

​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곤 했었다.

​

'나는 예민한 사람인걸까?'

​

내가 나를 생각해 보면

​

상대방의 언어와 표정을 통해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유추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고

​

정서적으로 섬세한 편이긴 한 거 같은데

​

예민하다는 단어를 평소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늘 궁금했었다.

​

뇌과학으로 접근해서 예민함에 대한 처방전을 내려준

​

이 책을 읽고 나니까 비로소 판단의 기준이 선 듯 싶다.

​

저자는 "매우 예민한 사람들 Highly Sensitive Person" 에 대해서

​

대인관계에 매우 민감하고 다른 사람들보다는 자신을 피곤하게 하며

​

보통 사람보다 좀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 이라고 정의했다.

​

한마디로 '외부 자극에 민감한 사람들' 이다.

​

인간의 특징 그대로 이 정의를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다 보면

​

예민함이 자칫 유별나고 까탈스러움이라는 부정적인 특징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예민함은 그냥 느낌으로 그렇게 형성된 것이 아니다.



우리 뇌는 마음을 담고 있는 기관이다.

인간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은

뇌의 신경 회로망에 담겨 있고

수억, 수조 개의 회로가 모여 그 사람의 마음의 구조를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필요 없어지거나 오래된 신경 회로는

망각 과정을 통해 사라지는 반면,

자주 경험되거나 강렬한 트라우마와 연결된 신경망은

더 강화되어 단단해진다.

반복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매우 예민한 뇌'는

'매우 예민한 사람'을 만들게 된다.

​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중에서





뇌의 서로 다른 역할과 그 상관관계를 제대로 알면

​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 여타 기본적인 욕구를 관장하고 조절함으로써

​

자신의 예민함을 스스로 통제, 관리할 수 있다.

​

인간의 뇌는 처음부터 완전히 만들어진 상태가 아니다.

​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일이 각자 다르고

​

그 영향에 의해 평생에 걸쳐 인간의 뇌는 수정, 변형되어간다.

​

살다가 스트레스를 견딜 에너지가 바닥나게 되면

​

인간에게는 바로 우울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온다.

​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만성적 긴장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게 되고

​

이것이 예민함으로 강화되면서 심해지면

​

정신적인 문제, 병적인 상태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

그렇게 진행되지 않도록 타고난 것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예민함을

​

잘 조절해서 선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하지만 무엇이든지 동전의 양면이 있듯이

​

'예민함'이라는 특성이 꼭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민성을 잘 극복한 유명인들의 사례를 들어 이를 증명해주기도 한다.

​

저자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의 출생과 성장과정으로 인한

​

결핍과 슬픔이 스티브 잡스로 하여금

​

버튼에 대한 공포증(환 공포증) 을 갖게 했다고 추정한다.

​

만성적인 불안, 우울증, 노이로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관련이 깊다.

​

어린 시절 자신을 거부한 것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이

​

어머니의 모성을 형상하는 둥근 모양에 대한 공포에


담겨 있을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승화시켰던 스티브 잡스 외에

​

자신의 우울증을 대놓고 black dog 이라고 불렀던 윈스턴 처칠은

​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알려진다.

​

마음은 신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

예민함은 유독 그러한 듯 싶다.

​

우리 뇌의 기억하는 부분을 이렇게 예민한 사람들은

​

보통 불안으로 강화시키는 성향을 갖고 있긴 하지만

​

그럴수록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라는 처방전을 제시한다.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에 집중할 것.

​

예민한 사람들은 각성 수준이 높아서

​

뇌가 그것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경우에 생긴다고 한다.

​

너무 많은 외부적 자극들을 다 신경쓰다 보면

​

예민성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해서 항상 긴장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

과거 일이 자꾸 생각나면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지 체크하고

​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라고 조언한다.

​

예를 들면 책을 읽거나 나에게 맞는 운동을 하나 정해서 꾸준히 하기.

​

전문가가 추천하는 방법 둘 다 내가 지금 현재 집중하고 있는 것들.

​

혹여 내가 예민한 사람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중이니까

​

나는 지금 괜찮은 상태라고 스스로 진단해도 되겠지? ㅎㅎㅎ

​





​

심리학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이라는 제목 답게

​

이 책을 읽는 데 할애한 시간이 아깝지 않을 좋은 정보들이 제법 들어 있다.

​

긴장 이완 훈련, 트라우마에 대한 정보와 극복하는 방법,

​

매우 예민한 사람들의 다양한 정신과 상담 사례와 전문가의 처방전,

​

예민성을 잘 극복한 사람들의 좋은 예, 스트레스 지수에 대한 정보,

​

예민함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




누구나 살다 보면 감정적 상처가 있는데

​

그걸 잘 다스리면 마음의 평정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고,

​

그렇지 않을 때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된다.

​

부정, 왜곡, 자신의 결점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남탓하는 투사,

​

대상을 비판없이 수용하는 내재화,

​

퇴행, 불안과 우울 같은 정신적 문제가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는 신체화,

​

자신의 문제 행동에 대해서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고 재해석하는 합리화,

​

자신의 욕구나 태도, 사고를 외부 대상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외부화.

​

이렇게 다양한 방어기제들이 있는데

​

자신에게는 어떤 것이 강화되어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를 삼는 것만으로도

​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은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은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

자신의 예민성을 인정하고 줄이려는 노력으로

​

저자가 조언하는 방법 중에 가장 설득력있는 내용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

​

​


​

일상생활에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다양한 갈등 상황을 줄이는 것!

​

갈등 상황이란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경우나

​

갈등을 유발하는 사람과의 관계 모두를 말한다.

​

나아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에너지를 충전한 느낌이 드는지,

​

갖고 있던 나의 에너지가 소진된 느낌이 드는지

​

내 예민함의 근원을 확인하고 리셋하는 과정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예민한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설정이 특히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

예민한 사람들의 심리를 지배하는 근원을 이해하게 되면

​

외부의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에너지를 잘 지킬 수 있다.

​

나아가 예민함을 나의 장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

노력하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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