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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쪽으로
이저벨라 트리 지음, 박우정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9월
평점 :

원제 Wilding 처럼 이 세상의 모든 생태적 관계 속에서
인간은 그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야생 상태 그대로 자연을 둘러싼 그 모든 것을 되돌리자는
"재야생화 프로젝트" 를 중심에 둔 생태학 에세이이다.
평소에도 가볍지 않은 인문학적 담론들을
얕지 않게 소개하는 글항아리의 신간 <야생 쪽으로> 는
어느 영국인 부부가 '넵' 이라 불리는 자신들의 대농장 사유지를 쟁기로부터 해방시켜
토양을 쉬게 하고 회복하게 하여 나아가 야생동물들에게 돌려주자는 이야기이다.
저자인 이저벨라 트리는 작가이자 여행 저널리스트이며
그의 남편 찰리 버렐과 함께 넵 황무지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다.
찰리가 물려받은 대농장 '넵' 은 찰리 버렐의 조상인 3대 준남작 찰스 메릭 버렐 경이
대략 장미전쟁 때 생을 시작해서 수령이 550년쯤 되었을 나무에게
'넵 오크' 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당시 유명한 건축가에게
나무 바로 옆에 저택을 지어달라고 의뢰한 때가 1800년대 초.
그렇게 '넵 캐슬'과 지금의 넵 사유지가 생겨났다.
인간 문명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던 대초원들은
인간의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야생 동물들의 서식지를 갈아 엎어 농사지을 땅으로 바뀌었다.
어떠한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삶의 터전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
저자와 그의 남편이 17년 전부터 야생을 복원하게 된 이유는
야생동물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현실적으로는
대농장을 유지함으로써 돌아올 손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재야생화 프로젝트" 를 시작하고 보니 점점 일이 커지게 되면서
그들의 넵이 더이상 사유지가 아니라
지구의 탄소를 격리시키면서 자연스럽게 기후 위기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공공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확장해 나갔다.
토양에게 어떤 인위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자연에게 돌려주게 되면
수자원 및 수질 정화는 물론이고 인간이 그 땅을 통해 얻게 될 식재료들과
풍부한 식량, 인간의 건강과 나아가 동물 보호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은 30년 전에 이렇게 말했었다.
"생물의 다양성은 천연자원들과 종간 관계의 복잡한 그물망에 의지한다.
전반적으로 한 생태계에 더 많은 종이 살수록
생태계의 생산성과 회복력은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경이로움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자연 생태계는 스스로 문제를 풀어갈 능력이 있음에도
인간은 자연의 재생, 재활 능력을 믿지 못하는 듯하다.
인간은 자연에 애정도 없고 게다가 염치까지 없어 그저 빨대만 꽂고 있다.
어떻게든 착취해서 욕망을 채우며 인간 문명을 사방으로 뻗쳐 나가기에 급급하다.
이렇게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만 일방적으로 자연에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점점 길을 잃어가기도 하지만
이저벨라와 찰스 부부처럼 진정 인간 문명이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간에 의해 재배되거나 사육되지 않는 상태로,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자연의 상태로 되돌아가자는
"재야생화 프로젝트 rewilding" 은 그래서 영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가야 할 바람직한 캠페인이 되어야 한다.
원래 자연이 가던 그 길을 인간이 더 이상 집약적 농업과 공장식 축산으로 가로막지 말고
모든 생명체가 경계 없이 안정적인 시스템에 의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갈 길을 터주는 것이 곧 자연에게 원래대로 주도권을 돌려주는 일이다.
재야생화 프로젝트는 주로 영국의 현실을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멸종 위기에 처했던 영국의 새들이 넵 사유지로 돌아와
그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저자 부부의 감동이 오롯이 전해졌다.
초식동물, 야생동물들이 있어야 할 곳에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자연을 돌려주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드는 인간의 개입보다 훨씬 경제적으로도 이롭다.
넵 사유지의 자연주의적 방목 실험을 통해 현실적인 한계도 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야생화 프로젝트에 대한 이로움과 가치를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영국의 정부 기관인 잉글리시 네이처도, 공무원 사회에도
그들의 의사결정 방식에 자연적이라는 개념을 인식시키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예산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공무원 사회는 어딜 가나 굉장히 보수적이구나....;;)
지방 당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거나 기업의 기부에 의지해야 하는
환경 생태적 실천 프로젝트는 상상하는 모습에 닿기엔 여전히 요원해 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멧비둘기, 맷돼지, 나이팅게일, 들소, 번개오색나비, 비버, 조랑말, 지렁이들이
넵 사유지로 돌아와서 생물 다양성을 안정시키는 데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물다양성의 주도자라면 인간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계속 자연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이 혼자 힘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한다.
그런데 생물다양성이 자연에서 오지 않았다면
애초에 어디에서 왔겠는가.
우리는 자연이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수세기 동안의 착취와 기술적 오만 뒤에
토양으로 다시 눈을 돌림으로써
우리 종들이 어떻게 단지 다음 수십 년 동안이 아니라
다가올 수천 년 동안 생존할 수 있을지,
우리의 창의적 지능과 전문 기술을 우리와 달리
수백만 년의 연구 개발로부터 도움을 받아온 이 시스템과
결합시킬 수 있을지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토양은 우리의 기반이고
재야생화 프로젝트에서 토양은 동그라미의 완성이다.
인간의 농업이 등장하기 전에 땅을 지배했던 동물들의 생존방식과 행동양식을
더이상 외면하면 안되겠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채집수렵문화의 원시 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인간과 포식동물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지만
야만 시대가 이제는 문명 시대로 바뀌었으면
다툼과 투쟁 말고 얼마든지 모두에게 이로운 공존의 지혜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인간 중심적인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멈추기 어려울만큼 팽창되어버린 개발을 위한 집약적 농업에서
재야생화로 방향키를 돌려 자연이 회복되기까지
인간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지켜만 봐주면 좋겠다.
자연이 우리보다 더 알아서 잘 한다.
인류세가 자연에게 가한 부담이 이미 너무나 막대하다.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