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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의 시대 - 일, 사람, 언어의 기록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가 범상치 않은 이 책, 정체가 뭔지 책을 펼쳐보기 전엔
당최 감이 안 오더라구요.
<훈의 시대> 훈.... 하면 한자 문화권에 속한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訓 가르칠훈 이 한자어가 바로 생각이 나긴 했는데
훈의 시대라니.....!
알고 보니 이 낯설지 않은 겉표지, 1972년 문교부에서 펴낸 제2차 교육과정
초등학교 국어 1학년 1학기 표지였습니다.
일단 저부터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세대이지만
이 겉표지는 제 학창시절보다 그 이전의 표지였던걸로 기억해요.
이 또한 가물가물 확실치 않습니다만 ......
저의 어린시절 기억은 지금도 때때로 집안에서 얘기할 때면
기억하는 게 별로 없을 정도로
그냥 시간이 흐르고 저도 그냥 그 시간에 몸을 맡긴채로 살아간거 같아요.
제가 주체적으로 순간순간을 붙잡아 지금처럼
생각과 감정을 몸소 체험했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너무 어렸고 주변에서 또 삶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말들도 듣질 못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이 굉장히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우리의 몸을 지배해 온 시대의 언어들"
"일, 사람, 언어의 기록"
"나쁜 훈, 이상한 훈, 우아한 훈"
4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인생을 조금은 알거 같고
그래서 고개를 숙이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전까지는, 더군다나 제가 학창시절일때는 더더욱
학교, 회사, 아파트에서 마주하는 시대의 욕망에 대해서
어디 시야에 들어올 나이였나 말이죠.
우리가 이미 살아온 과거의 시간이지만 그 옛날에도,
그리고 그 옛날의 관습들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짚어주고 있어서 저로서는 참 흥미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더불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변하지 않는 모습이 있었는가 하면,
반면에 훈 (訓), 언어의 기록들을 통해서 현재에 와서 변화하는 세태들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때는 세상 참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와이즈베리에서 펴낸 이번 신간 <훈의 시대> 에서는
크게 학교, 회사, 개인 (아파트) 에서 나타나는
개개인이 모여 이룬 총합인 그 사회, 그 시대의 욕망 마주하게 하고
감추어진, 때로는 드러나 있어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이 책이 그런 욕망들을 들추어낸것이라고 느껴질만큼
잘 몰랐던 훈의 기록들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서문에서 김민섭 저자의 생각을 굉장히 솔직담백하게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먼저 발표한 이 두권의 책은 만나보지 못했고
<훈의 시대> 를 처음으로 저는 저자와의 인연이 시작된 셈인데요.
제목 자체만으로든 시리즈의 느낌이 전혀 없었지만
<훈의 시대> 를 저자가 어떤 생각으로 쓰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앞서 발표한 두 권의 책이 깊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구나 알게 되었어요.
의도치 않았다고는 하나 머리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가고 있던 큰 그림은 분명 있으셨을 테지요.^^
그렇게 3권의 책까지 연작처럼 긴밀하게 이어가신 것, 얼마나 기쁘실까요.
축하의 박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ㅎㅎㅎ
나에서 타인, 타인에서 사회로 넘어가는
이 연작시리즈의 세번째 <훈의 시대>를 통해서 비로소
나와 내 주변을 포함한 이 사회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주름잡았던 "말씀" 들에 주목할 수 있게 해줬어요.

어린 시절 인지하지 못했으나 많이 들어봤던 여러 담론들이나
학교에서 들었던 것들은 우리의 미래의 삶에 굉장히 큰 실천적 지분을 부여했죠.
그것이 개개인의 삶에 유리하고 긍정적인 것이었다면 좋았겠으나
형체가 없었던 그 시대의 욕망들은
개개인이 미처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고
그냥 끌고 간 느낌마저 들죠.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자의 비판적인 사고로 인해 저 역시 인지하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나의 시간"들을 나쁜 훈, 이상한 훈에 의해 자각하지 못하고 잃어버렸구나~~~
학창시절에 익혔던 국민교육헌장도 이제는 변해가는 시대인데
예전에는 성실, 슬기, 봉사, 협동, 지혜..... 수 많은 訓 이 제시했던 것으로 인해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해야 함으로써
개인을 가두는 것은 이제 바람직하지 않아요.
개개인의 정체성과 자율성에 이제는
우리 모두 과거보다는 좀 더 눈을 뜨지 않았나요?^^
분명 우리의 몸을 지배해 온 그 시대마다 언어들은
학교, 회사, 아파트에서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존재할 텐데요.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그 시대의 욕망들을 나타낸 수많은 訓 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까를 생각합니다.
가려진 것들을 걷어낼 줄 알고,
들추어내서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인간의 거대한 욕망들이 뭉쳐있는 이 사회,
<훈의 시대> 속에서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 할 때.
그동안 언어에 의해 규정되었던 삶이었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하겠죠.
언어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사회의 모습은 마치 관성처럼 아마도 계속 흘러갈 거예요.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우리는 과거와 달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책속에서 제시했던 과거 학교에서 보여줬던
교훈과 교가들, 그리고 회사에서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사훈과 슬로건, 기업정신, 경영목표와 같은 수많은 훈(訓) 의 기록들.
한 시대를 포위하고 있고 집단을 하나의 덩어리처럼 움직이게 하는 그 훈(訓)의 힘 속에서
온전한 개인은 존재감을 무시당했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시대의 언어들을 잘 걸러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수많은 훈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책에서 예로 들어서
쉽게 와닿았던 거 같아요.
여전히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 속에서도 존재하고 있고
인지하는 순간 바로 발견할 수 있는 일들이죠.
분명히 시대는 변해가고 있죠.
고여있는 물은 썩기 마련인지라 쇠퇴하는 것도 있고
예상치 못하게 발전하는 것도 목도하며 살아갑니다.
긍정적인 변화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세태는 참으로 변화를 마주하기에 버거울 때도 있어요.
이럴 때 우리는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저자처럼 개인으로서 제안이라도 해볼 것인가.
책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고백하듯 제안이라도 해볼 수 있는 저자가
어쩌면 용감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드러나진 않겠지만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이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자 소중하고 온전한 개인으로서
앞으로는 비판적인 사유를 하면서 깨어있다 보면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속에서 지혜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