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평점 :

움베르토 에코 하면 따라오는 작품 <장미의 이름> 상하편을 읽을 요량으로
진작에 사두고도 아직 전면책장에만 꽂혀 있는데
그보다 더 최근 소설을 만났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그의 마지막 소설 <제0호>.
이탈리아 소설에 분류되어 있지만 그러기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세계관과
시공간을 다루는 능력이 너무 방대하죠.
작가로서의 유명세만 접했지, 실제로 소설을 읽으면서 움베르토 에코라는 작가를 만나긴
<제0호> 가 처음이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순간순간 드는 생각들과 느낌들을 필사노트에 적어가면서
읽게 되었던 소설이었어요.


<제0호> 가 아니더라도 움베르토 에코의 책은 허구의 소설과
사실적인 역사가 수시로 교차함을 느끼게 합니다.
페이지 아래에 보충설명이 따르는 주석 하나가 전체적인 소설의 흐름 속에서
독립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을 만큼
에코의 소설은 허구인지, 사실인지 가끔 헷갈리게 할 정도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인간군상들의 모습에 많이 닿아 있어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중세 철학과 문학을 공부한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이 췌장암에 걸린 걸 알면서도 이 작품을 써나갔다고 하죠.
이탈리아에서 그간 있었던 정치적 이슈와 저널리즘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비틀고 빈정대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그 진위가 무엇일까 궁금하게 만들고
그저 맹신했던 저널리즘에 대해서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좋은 저널리즘보다 나쁜 저널리즘을 찾기가 더 빠를 정도로
요즘은 기사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자극적이면서
그들에게 이로운 프레임만 주입하는 경향이 너무 짙어졌어요.
움베르토 에코의 <제0호> 를 읽으면서 이런 일이 비단 이탈리아에만 해당되는 일이겠나 싶습니다.
전 세계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이번 소설은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힘과 영향력이 대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0호> 의 마지막 장면.
이세욱 역자도 직접 이곳 산 줄리오섬에 다녀왔다는 에피소드를 내놓기도 했는데요.
발행인의 의뢰에 따라 일간신문 『도마니』 를 발간하려고 하고
그 신문사에서 인연을 맺은 주인공 콜론나와 마이아.
기자로서의 업에 정체성 혼란을 함께 겪으며 삼촌 조카뻘의 연인이 되요.
하지만 이 두 남녀주인공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제0호> 소설속 주된 흐름은 발행인의 의도에 따라 신문에 낼 기사를 궁리하는데
그 의논하는 내용들이 정상적인 저널리즘의 방향으로는 보이지 않아요.
"뉴욕타임즈" 매 호의 왼쪽 상단에 실린다는 이 한 문장을 보여드릴께요.
"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
-인쇄하기에 알맞은 모든 뉴스-
저널리즘의 모범과 다르게 『도마니』 에서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데도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기사를 만들라고 합니다.
어떤 관념, 경보, 주의를 주는 신문이 아니라
어떤 일에 있어서 수상해 보이게 만들고 (조작),
독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리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신문 내용을 몰고 가는 것 (왜곡) 이죠.
권력이 머무는 곳과 마찰이 생기는 걸 피하기 위해
기사 제목도 타협하는 모습들은 작금의 시대에 불특정 다수의 신문사들도
그러지 않을까 싶은 합리적인 의심마저 들죠.
의혹만 퍼트리면 되고 나중에 돌아올 이익을 기대하며
소신있는 저널리즘은 찾기가 어려운 『도마니』.
『도마니』 를 이렇게 설정하고 소설을 풀어가면서
움베르토 에코는 나쁜 저널리즘의 진정성을 비틀며 풍자의 힘을 드러냅니다.
"진정성"이란 상식적이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있고 그렇게 믿는 것이니까요. ㅋㅋ
나쁜 저널리즘은 펼치는 그들에게도 진정성은 있었을 거예요.^^;;
의롭지 못한 일에 타협하고 합리화시키면서 진심을 진정성이라고 포장하는......
처음과 다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도마니』 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기자로서의 저널리즘을 펼치게 되고,
그 중 한 인물이 살해되면서 그간 『도마니』 편집부에서의 굴욕적인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계기를 만들게 되죠.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속 주인공의 입을 통해
살아오면서 지켜봤던 일련의 역사를 고발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이 부분은
소설가라기 보다는 제게 사상가의 일침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이런 착각이 들게 하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기에
사상가의 일깨움을 얻은듯한 느낌에 개인적으로 소설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습니다.
이래서 움베르토 에코, 움베르토 에코 하는 거구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같은 그리스로마 고전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언급하며
1900년대 중후반 유럽의 현대사를 움베르토 에코의 탄탄한 지식체계와 버무려
허구의 소설과 절묘하게 사실적인 역사적, 정치적 이슈들을 접목시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은 언제나 주제를 따라가는 문체를 취하고 있어서
사건이 긴박하게 돌아간다기 보다는 오히려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비틀기와 풍자를 통해 소위 편향된 의식과 불순한 의도를 갖고
기사를 써가는 '기레기' 들의 나쁜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고 의심을 품으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보여지는 것과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날것의 진의, 그 사이에는 분명
께름칙한 속내가 있을것이라는 의심.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고정관념, 환상을 뒤흔들고
전율과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진짜 저널리즘의 살아있는 기능이 되어야 할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을 의견과 구별하는 안목을 키워야 겠다는 개인적인 목표도 가져보구요.
뭐 늘 그래왔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제0호> 를 읽고 나니 더더욱!!!
재미를 능가하는 소설의 깊이는 제게는 역시 깨달음과 영감이 더 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