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 -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채사장의 책은 인문학이 맞습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이라고 처음 나왔을 때부터 신박함은 있었는데

1권과 2권은 소장하고 북토크 가서 사인까지 받았으면서 여전 못 읽고 있다가

이번에 지대넓얕 제로를 통해서 처음으로 채사장의 책을 마주했어요.

그 전에는 북토크에서의 만남이 워낙 인상적이었고 채사장 작가의 책마다

조금씩 읽어보긴 했지만 한 권을 완독하진 못했었습니다.

처음으로 완독한 채사장 작가의 책이 지대넓얕 제로라니~~!!

이 두꺼운 책을, 그렇다고 내용이 녹록치도 않은 책을 완독했다는 기쁨은 참으로 적지 않네요.

물론 책을 완독했다는 그 자체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만은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제게 다가온 성취감이라는 것,

그리고....!!!

이 책은 감히 제목에도 썼지만 여러분이 지금까지 내가 전부라 믿고 있었던

"그 세계관"을 넘어서는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채사장 작가도 이 점을 꾸준히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고 있고

지적 대화를 위한 지식을 제공하면서 이런 지식을 우리가 접하는 이유를 중간중간 상기시켜줍니다.

 

 

 

 

영화에 프리퀄이 있는 건 알았는데 책도 그런 빅픽쳐를 그리고 써갔다니

채사장 작가가 한편 무섭기도 한데요. ^^;;

지대넓얕 1권과 2권을 내고 시민의 교양, 열 한 계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차례로 내면서

채사장 작가의 머리 속에는 세계와 자아, 그리고 세계와 자아의 관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바로 이전에 채사장 작가가 냈던 책들 하나하나가 영화라면

지대넓얕 제로는 그 모든 것들의 프리퀄과도 같은 책이죠.

 지금 5년만에 낸 지대넓얕 제로에서 그동안 했던 이야기들은

사실 지대넓얕 제로에서부터 시작했어야 하는 것들이라고.

지대넓얕 제로가 모든 지식의 시작이자 완성이라고 말하는 이 책을

세상에 흩뿌려진 진리와 사상을 하나로 연결해서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한번 손에 쥐어 보시길 강추해요.

고대 이전부터 138억 년 전까지 모든 지식의 출발점부터 시작하는 지대넓얕 제로에서는

그 시기에는 우리가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원론의 시대와는

또 다른 일원론의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대넓얕 제로에서 다루는 핵심, 일원론의 시대는

세계와 자아가 하나라는, 세계와 자아의 본질은 같다는

범아일여에 대해서 이 책에서 자주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지대넓얕 제로가 다루는 시간의 범위가 이러합니다.

간결하게 설명할 수 조차 없는 이 길고 결정적인 시기를 1장과 2장에 걸쳐서

시간의 흐름으로 쭉~ 훑어갈 수 있게 구성했더라구요.

시간의 흐름으로 가다가 3장부터 7장까지는 시간과 공간으로 확장됩니다.

결코 며칠만에 읽어낼 수 있는 책이, 최소한 제게는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고 느끼다 보니

모든 책을 정독해야 한다는 틀에서부터는 나름 자유롭다고 생각해 왔는데요.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이 아니라도 예상치 않게

유익한 책이 될 수도 있기에 마음을 열고 읽곤 합니다.

제가 관심있는 것들만 읽겠다는 생각에 빠지면 그야말로 편독을 하게 되니까요.

그래도 어쩌다 가끔 ..... 그동안 읽었던 이력이 있어

너무 뻔한 얘기로만 다가오는 책들은 스킵, 스킵하며 읽기도 하는데

지대넓얕 제로는 내용도 어렵고 두께감도 상당해서 작가 조차도

힘을 좀 빼거나 쉬어가는 코너처럼 부실하게 쓴 부분도 있겠지 생각했다가.....왠걸.....

다 그냥 넘어갈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내용들 투성이.

식견이 깊은 분들에게는 어떤 책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정말 몇 군데 빼고는

553페이지에 이르는, 일명 벽돌책 속 지식들을 다 알고 싶더라구요.

앎의 욕구가 제 안에 늘 도사리고 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채사장 작가가 지대넓얕 제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인문학적 소양이

제 삶의 가치관과도 아주 맞아 떨어지기에 작가가 이끄는 대로 한번

책 속에서 여행을 해보자 맘먹고 읽어갔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일원론이라는 것.....정말 어둠 속에서 한 걸음조차 내딛지 못하는 상태였다면

이제는 등불 하나 들고 더듬더듬 걸어갈만한 여유가 생긴 정도랄까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하나 봅니다.

조금 알듯 말듯 해지니까 더 알고 싶어졌어요.

너무 막연하고 어려웠던 고대 사상들이 방향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하게 연결되는 느낌입니다.

​일원론은 현대인에게는 더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더라구요.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귀를 기울여야 하기에.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 2개를 기억하며 읽어가야 하는 지대넓얕 제로.

그것은 바로 거대 사상위대한 스승들입니다.

철학과 종교를 일어서게 했던 현명한 사람들이

인류에게 올바름이 뭔지 말해주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르쳐주고 있음을

채사장 작가의 체계적인 흐름으로 비교적 한 눈에 다 들어오게 보실 수 있어요.

 

 

​이 책에서 다루는 지식의 범위가 워낙 방대해서 어렵게 느껴집니다, 물론.

과학 / 역사 / 동양사상과 동양철학 / 서양사상과 서양철학 / 종교

138억년이라는 시간을 여행하듯 지혜를 얻기 위해

고전을 펼치고 위대한 스승을 만나는 이 여정은

곧 현재 당신의 세계관을 넘어서는 여정과도 같습니다.


 

지대넓얕 제로는 위대한 스승들과 거대 사상을 중심 축으로 7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우주 / 인류 / 베다 / 도가 / 불쿄 /철학 / 기독교

우주에서 세계의 탄생을 말하고, 인류에서 인간과 문명,

베다에서 우주와 자아, 도가에서는 도리와 덕성을, 불교에서는 자아의 실체,

철학에서는 분열된 세계, 기독교에서는 교리와 신비를 이야기합니다.

우주에서 인류까지는 시간적인 흐름으로 짚어가고,

베다, 도가, 불교는 동양 사상과 철학을 다루며,

철학과 기독교에서는 서양 사상과 철학을 다루게 되는데요.

세계에 대해서 먼저 1,2장에서 시간적 구성을 다루고 나면

 3장부터 마지막 7장까지는 세계와 자아의 관계, 즉 공간적인 구성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이 7가지 주제들은 각각의 주제를 한 권에 담기도 벅찰 정도의 지식의 범위를 갖고 있지만

웨일북에서 나온 지대넓얕 제로에서는

거대 사상과 위대한 스승들을 축으로 해서 지식을 펼치는 것이다 보니 제가 보기엔

군더더기, 지루한 내용들은 거의 없다고도 보여집니다.

(참고로, 지대넓얕 1,2권이 출판사를 바꿔서 웨일북에서 개정판으로 곧 새롭게 나온다고 해요.^^)

 사실 저도 어려워서 몇 번을 거꾸로 다시 가서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더군다나 잘 접해보지 않았던 과학, 우주의 탄생 부분은

제 관심 주제와 좀 멀어서 더 어렵게 느껴졌는데요.

세상에 이런 내용들이 있었구나....한편 호기심있게 읽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렵지만 더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자꾸 거꾸로 가곤 했었죠.

2장까지 읽고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서 있었으니까요 ㅋ

 


 

 

 

우주의 탄생을 말할 때 등장하는 빅뱅이론,

나의 본질, 인도 사상의 뿌리가 된 베다와 우파니샤드,

불교, 노자와 공자의 사상에서 서양으로 넘어오면

일원론으로 시작되었던 동양과 달리 서양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인해 이원론의 세계가

이후 2천년 이상 서양의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까지.

그리스의 역사와 동,서양 세계관의 차이를 다루는 지점이나

 

 

 

서양에서 아주 중요한 기점이 되는 칸트의 출연과 그의 사상이

그 전까지 플라톤 주의가 지배하던 이원론적인 세상에서

외부 세계가 내면 세계로 모여지면서 관념론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제는 일원론의 세계가 서양에서도 이루어지게 되는 과정들이 보여집니다.  

​지금도 전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인 기독교의 시작을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역사로 들여다보며

제가 관심있어 하는 아이네이아스도 살짝 짚어주고 넘어가구요.^^

 로마 제국 변방으로 시선을 옮겨서 유대인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접합니다.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알렉산드로스, 로마제국, 아랍까지

모두 다 유대 지역을 점령하겠다고 나서니 나라가 없이 흩어져 떠돌게 된

 유대인들의 삶을 상상해 보고 잠시 그들에 대한 연민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왕국 다윗 왕의 혈통과 이어지는 예수이지만

마구간에서 태어난 뒷이야기들도 알고 보니 로마 제국의 정세와

연관있는 부분이었다는게 흥미로웠어요.^^

예수의 사상과 행적, 그리고 그를 따르는 무리 속에 제자였던 바울이 현재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내용들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사후 초기만 해도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리가 엄밀하지 않았을 때이고

예수를 유대교 전통 안에서 탄생한 인물들 중 하나로 여겼던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바울은 예수가 왜 그리스도, 즉 메시아인지 설명하고 있고

유대교와 다른 기독교만의 정체성을 확립했던 인물이었더라구요.

오늘날의 기독교를 존재하게 한 핵심인물인지는 몰랐거든요..... %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바울, 바오로, 바울로, 파울로, 파울로스, 바우로.

 

 

 

 

 

 

현재 서양 문화의 코드 읽을 수 있으려면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를 알아야 합니다.

서양의 세계관은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까요.

서양의 철학에 있어서 이데아와 현실로 구분하고, 세계와 자아를 구분했을 때

기독교에서는 천국과 지상, 신과 인간으로 구분하여 사람들은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이원론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지만 서양의 사상들 역시

철학과 기독교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으며 이원론의 세계관을 극복하고자 했고

그런 세계관을 의심하면서 칸트의 관념론도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서양 세계관의 두 축인 그리스*로마 정신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기원인 헤브라이즘으로 접근한 부분도 유익했습니다.

 

 

이 많은 참고도서들을 읽고 이렇게 지대넓얕 제로 한 권에 담아낸 과정이

작가로서 참 녹록치 않았을텐데 채사장 작가 스스로 자신을 향한 도전이자,

공익적인 목표를 갖고 한 일이 독자들 또한 또 귀하게 여겨주면 그걸로 보답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 에서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는

범아일여, 일원론,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여정 이 모두가

 자연사제인간이 있을 때

특정 존재가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고

이들은 긴밀히 공존하며 순환론적 모형으로 인식해야 함을 새롭게 배웁니다.

하지만 현재 이원론적 세계에 사는 우리들은 인간보다 신이 우월하다고 믿거나,

때로는 인간이 자연위에 군림한다고 착각하기도 하죠.

이 책의 가치는 지금까지 나의 세계관이 저 너머의 세계관과 너무나 달랐음을

깨닫게 되는 것부터 시작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모든 지식의 시작이자 완성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어요.

개인적으로 그 어떤 책보다 오랜 시간 공들여 읽은 책이고

한번 읽을 때 또 다시 반복해서 읽는 경우가 드문 제 독서 습관을

리셋시켜가며 읽게 한, 마력이 있는 책이었어요, 제게는.^^


 

 

인류 사상사의 밑바탕을 이루는 거대 사상들에 대해

인류는 하나의 주제, 담론, 질문을 던져왔고 그것을 탐구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학과 역사, 철학과 종교, 동양과 서양을 관통하는 거대한 사유들을 다루고 있고

모든 지식의 목차에 해당되는 책이기에,

여러분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지대넓얕 제로를 읽고는 싶은데 ​어려울 거 같아서 그냥 포기하고 제쳐 두기엔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정말 풍부하고 얕지 않다는 것을 저는 경험하고 알게 되었어요.

사실 책 한권으로 어떤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깊이있는 탐구는 개인이 확장해 나가는 것이구요.^^

자신의 선입견을 떠나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보려는 분들께도

훌륭한 마중물로써 지대넓얕 제로 정도면 저는 충분히 만족감을 줄거라 생각합니다. ​

 

 

이 책을 읽기 전과 읽기 후는 분명히, 한 개인의 세계관에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라 단언합니다.

​우선 저부터 그것을 경험했는데 여기서 경험했다는 것은

당연히 읽었다고 다 이해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읽었다고 해서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저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읽고 경험하고 사유하는 모든 과정들이 수차례 일어나야

비로서 이해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다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아는 지식이 다 맞았던 것도 아니라는 것은 최소한 알았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책을 가까이 하면서 깨달은 저만의 지혜는 있었지만​요.

​사람의 세계관이 바뀐다는 것은 결코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죠.

​주변 사람을 통해서도 충격에 의해서든 감화에 의해서는 사람은 변화할 수도 있겠지만

지대넓얕 제로는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지게 할만큼 충분히 위력이 있었습니다.

현재 나의 세계관이 어떠했나 돌아보고 내가 모르던 세상에는 무엇이 있나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개인의 삶까지 변화시켜 줄 거예요.

내가 모르던 세상은 시공간적인 개념은 아닐 겁니다.

우주의 실체와 자아의 본질은 모두 각자의 내면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2020년이 시작되는 지금, 내 삶의 영토를 넓혀가는 일에 지대넓얕 제로의 덕 톡톡히 봅니다.

 채사장 인문학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 를 읽고 나서

한 번 더 채사장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면 좋겠네요.^^

이제는 책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조금은 더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ㅋㅋㅋ

작가가 마치 책 한권을 탈고하듯 미력한 제게는 이 책에 대한 리뷰 또한 그러했습니다.

나름의 큰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에 훨씬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이 느낌.

마음이 동~했다면 이 책은 꼭 펼쳐 보시길 바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터프 이너프 -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에 관하여
데보라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날 오전 11시에


책세상 독서모임 지원 프로젝트 <터프 이너프> 신간으로 저까지 6명 모두 모였습니다.^^


우선 책부터 받아보고 나서는 역시 쉬운 책은 아니라는 의견에 한 목소리. ㅎㅎㅎ


하지만 잘 안 읽히는 어려운 책도 그 와중에 유익한 지점은 분명히 있거든요.


처음 읽을 때 들어오지 않았던 내용이 두번째 읽으면 또 새롭게 들어올 수도 있어서


다음에 또 읽게 되면 어떤 책으로 다가올까 한편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책세상의 신간 <터프 이너프> 는 20세기 후반 정치 분야와 미국문화를 주로 연구하는


시카고대 영문학 교수 데보라 넬슨이 쓴 인문교양서예요.


저자가 "터프한 마녀들" 이라고 불렀던 6명의 여성작가, 지식인, 그리고 예술가들에 관한 책이죠.


시몬 베유 / 한나 아렌트 / 메리 매카시 / 수전 손택 / 다이앤 아버스 / 조앤 디디온


이들은 모두 1차와 2차 세계대전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시대의 영향을 받으며


전쟁으로 인해 수난을 겪는 사람들에게 비정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감상주의를 배제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자고 말합니다.


그래서 <터프 이너프> 책의 부제도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에 관하여".


모두들 그랬죠. 이 책을 처음으로 넘기기 전까지 Tough Enough 라는 영어제목 만으로는


뭘 얘기하고자 했는지 알 수 없었을텐데 부제가 있어서 그래도 좀 가늠해볼 수 있었다구요.


쉽지 않은 인물들이었고 시대상황까지 이해했어야 해서


보충이 필요한 책이긴 한데 실제로 사진자료도 더 뽑고 관련책도 빌려보는 열정도 보여주셨어요.


독서모임 지원 프로젝트에 신청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마련한 저로서는 너무나 뿌듯했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ㅎㅎㅎ


저렇게 준비한다는 건 정말 알고 싶은 열정이 반영된 모습이거든요.

 

 앎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고 싶은 저 마음을 저도 알기에~~~​

 

 

실제 생활 속에서 관련된 이슈를 접했던 내용들이나


어떤 지점에 흥미를 느끼면서 보기로 맘 먹었는지, <터프 이너프> 라는 제목에 대한 느낌,


6명의 인물마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등등


이야기 하다 보니 시간 확인하니까 어느새 1시간이 훌쩍.

 

 

 

 


"Tough Enough" 충분히 터프한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단순히 이 책을 여성들의 지위 현주소나 신장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무나 좁게 본 것이라는 얘기를 했었어요.


6명의 여성 지식인, 작가, 예술가가 하는 이야기는


여자뿐만 아니라 전시중에 수난을 겪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씩씩함과 강인함이라는 키워드는 더이상 남성들만의 키워드는 아니라는 얘기로도 들려요.


남성 중심적 가부장 사회의 인식하에 있는 여성들에게 주어진 사회의 편견은


따뜻함, 포용, 정서적 안정, 감상적인 것들을 요구하지만


이들은 과감히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성들은 물론이고 모두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전시 상황하에서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며 살아온 사회 속 개개인들에게.


여성들이 이런 이야기를 던지다 보니 사회가 오히려 더 더프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닌지.


이들이 말하는 "비감상주의"는 환상이 없는 시각, 절제, 통찰, 명징함을 지녀야만


비정하고 눈치없고 공격적이고 심지어 잔인하기까지 하다는 세상의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과다한 감정으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라보게 될 때,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될 때


오히려 공포의 감정이 사유를 지워버릴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고


더 깊은 다른 상처를 덮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며


"감정이 마취제가 될 수 있다"는 표현이 인상깊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저로서는 ​노동운동가이자 좌파 저널에 에세이를 기고했던 시몬 베유에 대한 "발견" 이었던 책이 되었어요, <터프 이너프>.

34세라는 매우 어린 나이에 사망했지만 그녀가 남긴 기고들이 사후에 50편이 넘는 책으로 발간되기도 했거든요.

수난을 기꺼이 포용하는 작가로 대중적인 인기까지 있었고

시몬 베유의 사상이 영향을 미친 현재 유명한 작가들이 또한 적지 않아요.

알베르 까뮈, 그리고 영국 시인 ​


그리고 그녀가 다룬 주제들의 폭이 좁지 않아서 무슨 책부터 봐야할지 사실 고민스럽기도 합니다.


(시몬 베유라는 여성 지식인에 대해 파고들었던 분들 지나가다 보시면 추천도서좀 .....%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찾아보니 <시몬 베유 노동일지> 가 좀 땡기더라구요.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보는걸로.^^

 

수전 손택한나 아렌트는 평소에 관심있던 사상가들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재발견" 했구요. ㅎㅎㅎ

 

​앎을 추구하는 일이 하면 할수록 더 깊이 알고 싶은 욕망이 .... %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3명의 여성들 외에 생소하지만 또 각자의 자리에서 터프한 마녀들이 되어


세상에 연대보다는 고독을, 공감보다는 현실 직시를 얘기했던 20세기 여성 지식인들을 기억하려구요.


6명의 여성 지식인들 사이에 관련성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저자가 생전에 서로서로 얽힌 인연들을 넣어두니 더 흥미롭게 읽게 되었어요.


감정에 휘둘려 판단력을 잃지 않고 힘든 현실이지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


그런 강인함을 갖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부제가 책을 읽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비판적인 지성의 힘으로 여성에게 할당된 적절한 온도의 감정을 넘어설 수 있도록


목소리들을 내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들이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즘과 결을 같이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 꽤 인상깊었습니다.


감정을 앞세우고 대중을 오도하는 정치의 또 다른 형태로 페미니즘을 보았기 때문에


당대의 페미니즘과 오히려 거리를 둔 사람들이었다죠.


연대보다는 고독을 택하며 스스로 소외된 삶, 자신만의 길을 갔던 여성 지식인들의 차가운 지성.....!


이를 행동으로 옮긴 이들의 삶이 비난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도 않았을텐데 쉽지 않은 행보를 한 사람들이네요.

 

 

 

 

 

 

 

개인으로서 신념을 가지고 사회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일은 얼마나 많은 수난을 감수해야 했을까요.

 

이들은 기꺼이 수난을 감수한 용감한 사람들이었어요.


여자여서 더더욱 표현은 비록 비정하고 차갑다고 비난을 받았을지라도.

 

​<터프 이너프> 덕분에 궁금했던 시몬 베유, 한나 아렌트, 수전 손택을

 

 

더 알게 되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들을 통해 동정과 연민에 기대어 공감해주기에 급급해 감상주의에 매몰되지 않도록


저 자신도 균형을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차가운 지성으로 뜨거운 휴머니즘을 보여줬던 여성 지식인들의 행보를 보면서


현실을 마주보는 방식에 대해, 저의 신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책세상 출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작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주년 리커버 특별판으로 만나봤어요.

유대인계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벨기에 영화배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파트릭 모디아노는 이 소설로 권위있는 공쿠르 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소설가들은 어떻게 해서 소설을 잘 쓰게 되었을까?

소설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늘 궁금했고

파트릭 모디아노에게는 어떤 특별함이 있었을까 싶더라구요.

역시.....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자질을 보였던.....^^;;

주변에 글쓰기 관련 전문가 어른이 있었고 그 도움을 받으며

22세에 첫 소설을 쓰기도 했던 소설가였어요.^^

우선 떡잎부터 달라야 하는건가 봅니다. ㅎㅎㅎ 

그리고 2014년의 파트릭 모디아노는 69세의 나이로 노벨문학상도 받게 되는데요.

궁금해서 찾아보니 수상 당시 "기쁘긴 한데 내가 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됐는지 모르겠다"

소감을 밝힌 게 특이하더라구요.

작가 자신부터 지난 노벨문학상 수상작들과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웠을까요......

하나 분명한 건 가독성이 막 좋아서 스토리에 빠져들어

재미를 느끼며 읽게 되는 소설은 아니었다는 것.

물론 가독성이 있다고 해서 작품성이나 상품가치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은 분명 권위나 이슈에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은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제게도 사실 그렇게 자꾸 들려오는 소설이었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읽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이었거든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세상과 다른 인물의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 보는 일이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늘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인데요.

거기에 소설가를 알아가는 재미도 제게는 적지 않은 일이라

파트릭 모디아노 또한 어떤 소설을 쓰는 작가인지 궁금했습니다.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를 드디어 만나보네요~~^^


 


 

소설이 갈수록 좋아지게 되고 그래서 알아갈수록

새로운 소설을 만나게 되면 꼭 소설의 제목과 첫 문장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소설의 제목은 사실 끝까지 다 읽어본 후에 감을 잡게 되는 것이지만

소설의 첫 문장......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소설의 첫 문장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로 시작합니다.

​대략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는 소설인지 책 구매 페이지를 보면 나오는 키워드들 중에서

"인간 존재" 가 가장 크게 와닿아요.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는 소설의 주제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설마다 문체나 접근하는 방식들은 조금씩 다르겠죠.

이 소설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끝날까? 라는 호기심을 이 첫 문장이 강렬하게 이끌었습니다.

물론 소설에서 처음의 호기심이 끝까지 유지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

​이 소설은 어땠을까요? ㅎㅎ

 

 

 

 

 

"어린 시절에 나는 이곳에서 할아버지나 혹은 내 또래의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했을 것이고

쥐똥나무와 소나무 냄새가 나는 이 마술의 미궁 속에서 아마도

내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느낌상 그렇습니다.....

주인공 "기 롤랑​" 은 자신의 이름까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상실증에 걸렸어요.

그의 이름은 그를 마음으로 잘 챙겨줬던 흥신소 동료 사설탐정 위트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서

새로 신분증을 만들어주면서 지어준 이름일 뿐이었어요.

기 롤랑이 기억하는 자신의 과거는 위트를 만나고

사설탐정으로 일해온 지난 10년이 전부입니다.

기는 위트와 흥신소에서 사설탐정이 되어 사교계의 정보들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일을 해왔지만

흥신소가 문을 닫게 되면서 위트도 니스로 떠나게 되고

기는 그때부터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소설은 이렇게 주인공 기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가는 것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요.  

 

 

 

 

 

​위트는 니스로 떠나지만 기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찾아가는 여정에

나름의 도움을 주기는 해요.

그것이 정말 그런 만한 가치가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고는 하지만..... 

위트의 이 지나가듯 던진 말이 참 의미심장하게 와닿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다 한들 그것이 기의 행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면 더 불행한 과거를 알게 되서 현재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은 알 수 없는 미래를 따져가며 현재를 사는 것도 아니고

따진다 한들 그렇게 미래가 설계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듯이

과거 역시 내가 알고 모르고에 따라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본능적으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있다면 당연히 찾게 되지 않을까.....!!!

나의 존재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게 알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인간의 보편성이 여러가지가 있을 때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진실이라고 믿지만 정작 기억이 진실을 다 말해준다고도 할 수 없는.....

믿을 수 없을 인간의 기억에 대해서 이 소설이 생각하게 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었어요.

그 누가 자신의 기억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을까요?

유난히 기억을 잘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저처럼 기억력이 저질(ㅋㅋ) 인 사람도 있겠지만

그 누가 자신의 과거를 100%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기억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구성되고 편집되어지는 것이 아닌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흩어진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파트릭 모디아노 작가 자신은 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하지만

문학에 대해서 잘은 몰라도 독자의 내면에 파동이 일게 하는 이런 문장은

정말 아무나 쓸 수는 없는 것이죠!!!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처음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작가마다 독보적인 매력을 끄는 지점이 있는데

이 소설가는 문장 하나의 힘이 아니라 몇 개의 문장이 만들어내는

그 지점마다의 인상깊은 전달력이더라구요!!!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는 서사가 선명하지는 않습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기 롤랑이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추적하는 일.

줄거리는 아주 간단한데 그 과정 속에서 만나는

 인물 하나 하나를 매우 중요하게 볼 부분은 아닌 거 같아요.

그저 기가 사진 속에 인물 중 누가 나인지,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추척해 가는 과정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의 만남에서 단서를 찾아가지만

추리소설처럼 결국에 답을 손에 쥐어주진 않습니다.

모호한 결말에 어쩌면 확실하고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게 뭔가? 싶을수도 있는 소설이예요.

​기 롤랑이 만나는 사람들의 기억은 또 100% 믿을만 할까?

당연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기억은 단편적이고 또한 불확실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 그래도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단서들로

그래도 결말로 갈수록 사진 속의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찾아내기도 해요.

이마저도 없으면 이 소설을 어떤 힘으로 읽어가야 할지 참 난감할 것 같기도 하거든요.


 

 


​자신의 이름은 무엇인지, 나의 어린시절과 젊은시절은 어떠했는지 주변인들을 찾아가며

조심스럽게 아주 약한 끈을 살살 잡아당겨가는 여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나일거야..... 상상하고 추측해가며 자신의 과거를 그려보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런 예상과 바램은 조심스럽게 잡고 있는 끈이 끊어진 것처럼 보일 때도 적지 않아요.

그런데도 주인공의 반응은 놀랍도록 담담합니다.

자신이 예상한 인물이 아니었을 때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 것을 봐도.....



 

 

기 롤랑이 만나는 주변인물들의 파편적 기억을 수집하고 연결해서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구성해 가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줄거리를 파악하기에는 난해한 소설이었고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기억에 의존해서

연결하는 일이 얼마나 허무한가 싶기도 한데

박진감이 넘치거나 기승전결이 있어서 막 흥미로운 소설은 아닌데도

희한하게 끝까지 기 롤랑의 과거를 추적하는 일에 같이 가고 싶기는 하더라구요. ㅎㅎㅎ

순간 순간의 지루함은 독자의 몫입니다.

극복하셔야 해요..... ㅋㅋ

저도 잘 극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완독은 했으니 반은 극복한걸로. %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소설은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축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겠어요 이제는. ㅎㅎㅎ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서 읽어갈 것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주제를 드러나지 않게, 하지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기도 하죠.

첫 문장에서부터 느껴지는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하여,

소멸된 과거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또한 어떤 의미가 있을까도 생각해볼 문제이고

인간의 기억이란 믿을 만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도 얘기해 봤었구요.

거기에 한국 독자가 깊이 공감하기는 어렵겠지만 프랑스의 독자들은

자신의 나라가 겪었던 현대사를 이 소설이

건드려주고 있다는 것에 더 흥미를 느낄수는 있겠다 싶기도 했어요.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던 시절, 전쟁으로 인한 역사적 아픔을

주인공과 그의 주변인물들이 몰래 도미니카인으로 위장해서 프랑스를 탈출해

국경을 넘어가는 과정으로 묘사하기도 하거든요.

여러 가지 축으로 생각해볼만한 소설인건 분명합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명징한 소설은 아닌데 제게는 여운도 남고 사유해볼만한 주제도 던져주었기에

좋은 소설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리고 소설의 매력을 말할 때 가독성은 극히 부분일 뿐이니까요. ㅎㅎ

가독성이 좋지 않은 소설도 자꾸 극복해보는 시도는 권장하고 싶습니다.

저도 물론 그런 과정속에 있구요 ㅋㅋㅋ
독서능력에도 근육이 있다고 하잖아요.

들어본 말은 많아서 %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인상깊었던 구절들로 마무리 할께요.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나를 알아볼 것인가? 매번 나는 같은 희망을 품고 매번 실망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잠시 동안 나의 생각은 함수호로부터 멀리, 세계의 다른 끝, 오랜 옛날에

그 사진을 찍었던 러시아의 남쪽 어느 휴양지로 나를 실어갔다.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으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소녀가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만큼이나

빨리 저녁 빛 속으로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로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오브리 비어즐리 그림, 권오숙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라는 작가도 저의 관심 작가중 한 명이어서


우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을 영화로 먼저 보긴 했는데 자막 없이요 ㅋㅋㅋ


열린책들 버전의 소설을 소장하고 있어서 물론 책으로 읽어봐야죠.


그 전에 제가 생각지 못하게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 를 먼저 만났습니다.


지금은 끝났지만 셰익스피어 강좌를 가을 학기때 10회에 걸쳐서 들었는데


권오숙 교수님이 이번에 <살로메> 책을 새롭게 내시면서


외대카페 이문일공칠에서 작은 강의를 하게 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무조건 이번에 가서 들어야겠다 싶어서 다녀왔죠.

 

 

 

목요일마다 실낙원 강좌 들으러 갔던 한국외대인데 이곳 강좌도 이젠 끝나서 갈 일이 없네요.


내년 봄학기에 또 맘에 드는 강좌가 있으면 가게 될 수도 있지만요.^^


그래서 외대 갈 때마다 근처 스타벅스를 갈 때면 늘 지나쳤던


외대카페 이문일공칠을 이번에 처음으로 들어가봅니다.


책도 많이 보이고 카페도 꽤 넓어 보여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외대카페 이문일공칠에서 이렇게 문화강연까지 하는 줄 몰랐어요.


따로 신청하지 않고 그냥 가서 앉으면 되서 넘 좋더라구요.


카페를 이용하니까 음료 하나쯤은 구매하는 게 매너인거 같아서


이문일공칠 카페라떼 맛 한번 보고 왔지요.


 

 

 


6시 강연 시작전에 도착해서


이문일공칠의 카페라떼 주문하고 구경도 좀 하구요. 


성서에서 유명한 여성으로 유디트가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살로메 역시 못지않게 다양한 작품들의 소재로 쓰여지는 인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그림 참 인상깊게 봤는데


오스카 와일드가 성서를 통해 가져온 인물 "살로메" 역시 평범한 인물은 아니더라구요.

 

 

 

 

 

화가나 작가들이 조금씩 자신의 해석을 넣어서

 

 

현재 우리가 문학작품으로 만나게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살로메 자체가 평범한 인물들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보바리 부인> 으로 유명한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도

 

 

 "헤로디아, 살로메의 이야기" 를 쓰기도 했습니다.

 

온갖 규범과 도덕에 얽매어 있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근엄하고 가면에 가려진 사회에 대해 조롱하고 공격했던 오스카 와일드.

 


겉으로는 점잖 빼지만 들여다 보면 퇴폐적이고 향락적이었던 영국 사회에 대한 반항으로


심미주의, 탐미주의 문학을 표방했던 작가의 정체성을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여준 작품이 극작가로서 쓴 희곡 <살로메> 인것 같습니다.


"살로메" 라는 이름은 원래 성서에는 안 나오고 '헤로디아의 딸' 이라고만 나왔었는데


유대 역사가의 책에 "살로메"라는 이름이 언급이 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유대의 왕 헤로데는 살로메의 의붓 아버지,

 

 

친어머니의 현 남편이자 전 남편의 동생이 되기도 하구요.


살로메의 엄마가 원래는 헤로데의 형과 결혼했었는데


이후 동생인 헤로데 왕과 다시 근친상간적 결혼을 하게 되고


헤로데 왕은 아름다운 살로메를 계속 바라보면서 늘 욕망하면서


자기를 위해서 춤을 춰달라고 하는 인물.


당시 유대 율법에 따라 근친상간적 결혼을 한 것은 비난받을 일이었고


선지자라고 불리던 요한이 이것을 비난하자

 

 

 살로메의 엄마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을 몹시 싫어하게 됩니다.


이 점이 살로메로 하여금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닌거 같아요.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 를 읽어 보면 모두가 자신을 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살로메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하지만 세례자 요한이

 

 

살로메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히 뭇 사람들과 달랐거든요.


오히려 살로메를 향해서 근친상간을 범한 여인의 딸이라며


저주를 받을것이라고 욕하며 다가오는 살로메를 철저히 거부합니다.


이 점이 살로메를 자극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원래 인간에게는 새롭고도 탐하지 못하는 것일수록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으니까요.


어제 메가박스에서 보고온 뮤지컬 웃는 남자

 

 

조시아나 여공작의 모습도 비슷하게 떠오릅니다.^^


뮤지컬 웃는 남자를 보신 분들은 어떤 느낌인지 대충 짐작하실수도 있을 거예요.

 

세례자 요한, 예언자, 이오카난이 모두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비극 <살로메> 는 수많은 대사를 성서에서 차용했기 때문에


 이사야서, 복음서, 아가서, 계시록 이 출처가 되기도 하죠.


헤로데 왕처럼 젊은 시리아인도 살로메를 쳐다보면서 계속 욕망하고


헤로디아와 헤로디아의 시종은 각각 헤로데 왕과 젊은 시리아인에게


살로메를 너무 많이 본다고, 그만 좀 쳐다 보라고, 무슨 일이 날거라고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극 전체가 길지도 않을 뿐더러 반복적인 대사가 많이 나와서


분량도 적고 각 캐릭터를 읽어내는 것도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닌데


오스카 와일드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집착과 탐닉, 미적 쾌락을 추구했던 유미주의의 철학들은


더 선명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구요.

 

 

 

 



 

오스카 와일드가 쓴 <살로메> 는 처음에는 불어로 쓰여졌다가


나중에 그의 애인 알프레드 더글라스 경이 영어로 번역해서 쓴 책에


오브리 비어즐리가 삽화를 그려 넣었어요.


그는 당시 보수적인 영국이 받아들이기에 파격적인 그림을 그렸던 삽화가였는데


불어판이 나온 것을 보고 그것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서 살로메를 잡지에 실었었고


오스카 와일드가 오브리 비어즐리의 살로메 그림을 보고는


자신의 작품을 잘 이해했다고 평가하면서 영역본에 그림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권오숙 교수님의 이 책에도 역시 오브리 비어즐리의 삽화가 들어가 있고


살로메의 치명적일 정도로 사악하고 잔인하고 에로틱한,

 

 

 때로는 괴기스러운 캐릭터를 살려주고 있어요.


비어즐리의 그림을 보면 살로메가 남성을 압도하는 그림들도 적지 않은데요.


이 부분은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 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남자들은 늘 여성에게 거세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성 심리를 지니고 있고


<살로메> 가 이런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권오숙 교수님의 분석에 수긍이 가요.

 

 

 

 

살로메나 유디트가 욕망하고 파괴하고픈 대상의 머리를 자르는 것은


바로 머리가 성기를 대신하는, 상징적인 전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거든요.


순결함의 전유물은 젊고 예쁜 여성이었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살로메> 에서


살로메가 아니라 세례자 요한에게 순결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가는 몸매, 하얀 피부, 빨간 입술, 풍성한 검은 머리 를 소유한

 

 

세례자 요한으로 그리고 있거든요.


여러가지로 <살로메> 를 통해 전통적인 도상들을 거부하고

 

 

또한 전복시키는 오스카 와일드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입에 키스할 거라고 말하는 살로메를 견디지 못하는


젊은 시리아인은 자결하게 되고 그의 피를 밟으며

 

 

헤로데 왕 앞에서 베일을 벗으며 춤을 추는 살로메.


헤로데 왕은 살로메에게 나를 위해 춤을 춰달라며 왕국의 절반을 주겠다고까지 합니다.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말을 듣고 살로메는


어머니인 헤로디아가 추지 말라고 하는데도 춤을 추겠다고 해요.


춤 추고 나서 살로메의 소원은 바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갖다달라는 것이었고 


사람들 대부분 세례자 요한을 선지자로 여겼기 때문에


유대왕 헤로데 역시 요한을 어찌하지 못하고 가둬두고 있던 거였거든요.

 

 

그 소원만은 거둬달라고 간청을 해도 살로메는 흔들림없이 요구하고


결국 처형 명령을 내리며 세례자 요한이 참수되는 성서 속 사건이 이렇게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속에서 차용이 되었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참수된 머리는 은쟁반 위에 놓여져서 살로메에게 전해지고


잘린 머리를 보면서 살로메는 살았을 때 못했던 키스를 하며 희열을 느낍니다.


자신의 사랑을 거부한 세례자 요한에 대한 복수심과

 

 

그의 육체를 소유하려는 욕망이 요한의 목을 요구한 것이죠.


이런 괴기스러움이라니..... 시체에 대고 ..... ;;


이후 헤로데 왕은 더이상 살로메를 욕망하지 않고

 

그녀의 행동을 괴물처럼 바라보게 되면서 두려움에 살로메를 죽이게 되고 연극은 막을 내립니다.



인간의 욕망이 마치 괴물과도 같고 그래서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헤로데왕의 세례자 요한 참수 사건과


오스카 와일드가 그린 살로메의 최후는 정말 강렬했습니다.

 

여러 번을 반복해서 욕망하는 대사들을 말하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억압적인 사회에 대해서 오스카 와일드는 퇴폐적인 에로티시즘을 보여줌으로써

 

작가가 당시 사회에 저항의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정말 인상깊게 남는 작품 <살로메> 그동안 참 궁금했는데 이렇게 드디어 완독하는 날도 오네요.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역시 매력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린 미트 - 인간과 동물 모두를 구할 대담한 식량 혁명
폴 샤피로 지음, 이진구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Clean Meat 깨끗한 고기? 어떻게 이름을 붙여야 하는건지 감이 안 잡히는 건

이 새로운 용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지 못하니까 그런걸테죠.

책표지에서 소개해 주는 말은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고기', '두 개의 미래', '유발 하라리' 라는 표현들이 눈길을 좀 끌긴 하네요.

그리고 곳곳에 있는 소, 돼지, 닭  그림들.

다 읽고 나니 이런 sign 들이 뭘 얘기하는지 이젠 알겠습니다.^^

책이란 게 이렇게 속을 들여다보고 나면 겉을 읽어낼 수 있어서 참 재밌고 매력있어요!!!

겉만 봐서는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진리에 잠시 생각이 미치기도 하구요.

 

 

 

 

​책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키워드들을 잘 파악하는 것이

책 전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볼 때,

클린미트를 읽다 보면 목차에 보이는 단어들 중에서만 해도

 배양 / 고기 / 청정고기 / 세포 / 전 인류 / 축산업 / 과학 / 녹색혁명 쯤이

 중요하게 쓰인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볼수록 클린미트가 뭘 말하는 건지 궁금하시죠? ㅎㅎㅎ

이거슨 아는 자의 여유.....



 

"클린미트" 는 그야말로 생명과학, 첨단과학의 발전에 의한 부산물임에 틀림 없습니다.

동물에게서 얻는 고기를 이제는 과학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고기가 우리의 식탁위에 올라오는 날이 머지 않았고,

그것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전문가들조차 확신할 수는 없어요.

배양 고기가 슈퍼에 나오기까지 5년을 예상하고 있고

이 책을 그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고 바라고는 있지만요.

그렇다면 클린미트에 대해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건 개인의 선택의 문제!!!

"두 개의 미래,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라는 문장은

<클린 미트> 에 유발 하라리가 써준 추천 서문의 제목입니다.

저자 폴 샤피로는 유발 하라리의 추천 서문에 큰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세계 최초로 청정고기를 시작한 저자 폴 샤피로는

동물권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온 여정을 확장하여 동물복지와

나아가 전 인류가 더 나은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클린 미트>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출연한 이래로 고기를 탐하는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달리고 있고

이로서 지구상의 척추동물 상당수가 호모 사피엔스에게 지배 당하고 있죠.

동물들이 기계 취급을 당하며 모든 생명체의 복지가 호모 사피엔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그 방향은 현재 호모 사피엔스 만을 위한 복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비효율적인 공장식 사육을 통해 동물권이 보장되지 않는 이 사회에 저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을 밟고 인간이 군림하려는,

마치 노예제도를 방불케하는 형국으로 묘사하기도 하죠.

동물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고

인간은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들을 길러낼 경작지와 목초지를 늘려감으로써

환경파괴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삶이 나아질수록 채식보다는 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구촌 상황을 볼 때

이런 추세라면 동물복지와 환경보존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희망을 잃어갈지도 모를 일이죠.

<클린 미트> 에서 말하는 청정고기는..... 네 "클린 미트" 를 우리는 청정고기라고 통칭합니다.

여기서 잠시 청정고기 라는 이름의 탄생을 얘기하자면,

이름 공모를 통해 시험관 고기부터 시작해서

합성 고기, 수경 재배 고기, 처칠 고기, 배양 고기, 청정 고기가 언급되었었고
순수 고기, 안전한 고기 등등 거쳐서 결국은 전에 한번 나왔었던 청정 고기로 확실히 정해졌어요.

처칠 고기 라는 이름은 '50년 뒤의 세계' 라는 책으로 미래를 예측했던 처칠의 생각을 담아서

나왔었고 윈스턴 처칠 뿐만 아니라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나 스타트렉 시리즈에서도

폴 샤피로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예측했던 선례가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청정고기를 꾸준히 개발해서 시장에 내놓는 일은

동물복지도 향상시키고 우리가 사는 지구의 환경도 지키는 일이라는 주장에 저로서도 마음이 동해요.

사람만이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동물권 역시 인권도 다름없이 보장해주고 싶은 마음이고,

영원히 살 수 없는 지구이지만 후손들에게

더 나빠지지 않는 지구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클린 미트> 를 읽고 나면 라이프 스타일이 조금 바뀔수도 있어요.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계속 동물의 생명을 해치면서 나오는 고기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동물의 골격근에서 채취한 줄기세포 하나로부터

수없이 세포분열하여 만들어진 배양고기, 청정고기를 먹을 것인가.


청정고기가 자연스럽지 않은 먹거리로 보일수도 있어요.

실제고기는 혈액, 지방, 결합조직들이 있어서 풍미와 질감이 좋아

사람들은 고기를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지만

청정고기는 순수한 단백질 덩어리이고 지방이 없어서 다소 퍽퍽할 수도 있거든요.

스테이크조차 칩으로 먹어야 할 수도 있어요.

스테이크처럼 두꺼운 조직은 아직 청정고기는 불가능하다고 하니까요.

식감과 질감은 비교적 비슷하지만 육즙은 할 수 있는 청정고기 이지만

고기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제외하고는

청정고기를 먹을 때 느껴지는 정신적인 포만감은 이보다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정고기를 먹게 되면 동물로부터 나오는 고기를 멀리함으로써 여러가지 해악들을 줄일 수 있죠.

 

 

 

 

 

청정고기를 선택했을 때 장점은 동물복지와 환경보호라는

아주 간단하고도 거대한 이슈를 들 수 있지만,
청정고기를 선택하지 않고 고기를 계속 찾고자 할 때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여러가지가 보여요.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문제점들을 인식하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청정고기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지구 온난화를 야기하는 것으로 차량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모두 합친 것보다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더 많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축산업은 온실가스를 배출함은 물론이고 항생제와 독성물질의 주요 사용처이며

대기, 육지, 해양오염의 주범으로 얘기됩니다.

결국 저자는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로부터 지구를 도울 방법으로

청정고기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현재 가축의 사육과 도축을 멈출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세포농업을 통해

뉴욕에 자리잡은 여러 스타트업 기업들이 배양 고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2013년에는 소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햄버거용 패티 만드는 데 성공한 사례가 있었고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생산비용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에는 빌 게이츠도 청정고기 분야에 투자를 시작했다고도 하죠.

이 외에도 많은 사회적 리더들이 청정 고기에 투자를 하고 있어요.

그런 결과로 점점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고

2016년에는 배양 고기로 미트볼을 최초로 만들기도 했어요.

감자칩이나 육포조각처럼 얇은 조직으로 만들어진 스테이크도 칩도 만들어졌다죠.

실제로 오랫동안 채식을 했던 저자는 최초로 청정고기를 시식해본 사람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사실 기존에 고기를 먹던 사람들도

이 청정고기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의문을 갖기도 하죠.

맛에 있어서는 동물에게서 온 고기 맛을 청정고기가 능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예요.

고기..... 저도 워낙 좋아하는 거라.....

고기를 대체하는 식물성 고기는 진작에 나와 있지만 저자는 식물성 고기가 시장을 평정해서

청정 동물 생산물이 불필요해 지기를 꿈꾸기도 합니다.

식물성 고기를 먹기만 해도 목초지와 경작지를 숲으로 돌려줄 수 있으니까요.

청정고기의 모든 공정은 배양기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투명해서

고기가 나오기까지 전염병이나 동물의 분변이 고기를 오염시킬 걱정도 안해도 되죠.

청정 고기를 먹게 되면 더이상 조류독감, 아프리카 돼지 열병, 구제역 등등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서

예방에만 급급한 문제들로부터 전전긍긍 하지 않아도 되고,

동물들의 안타까운 죽음도 최소화할수도 있을 테구요. 


 

생명과 감정을 가진 동물들을 배제하고 배양 공정을 통해 고기를 만들자는

폴 샤피로의 청정고기 이야기는 더 나은 지구를 위한 첨단과학의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감정을 느끼는 동물들을 산업용으로 써야 할 이유가 없으며

세포농업은 청정에너지 운동이라는 생각으로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어요.

청정고기가 도덕적으로 선호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청정고기를 찾게 되는 일은 전 인류와 지구를 위해서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는,

식량 혁명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신선한 충격과 흥미로움이 공존했던 책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