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여행하는 수렵채집인을 위한 안내서 - 지나치게 새롭고 지나치게 불안한
헤더 헤잉.브렛 웨인스타인 지음, 김한영 옮김, 이정모 감수 / 와이즈베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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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부부 진화생물학자의 공저인데 분류는 인문교양서.

코로나 19를 거쳐간 현재를 이들은 '새로움의 가속화 시대',

'WEIRD시대'라고 재정의한다.

위어드 세계, 위어드 삶은 "서구의 교육 수준이 높은 산업화된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 의 환경을 의미하며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인간이라는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환원주의, 과학만능주의를 경계하며 진화에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의 최신이론들을 소개한다.

진화입문서로 우리 삶을 바꾸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며 시종일관 그 바탕에는

호모 사피엔스를 폭넓게 보는 관점과 인간탐구가 깔려 있다.

과학, 자녀교육, 사회학, 과학철학 등등 장르를 포괄하며

인문교양서로서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고

풍부한 인사이트를 뿜어내는 와이즈베리 신간이다.

탈공업인으로, 다시 구석기인들의 수렵채집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와 같은 결을 가진 생활방식과 질서를 꿈꾸며 제안하는 저자들의 의도가 선명해서

가독성도 좋았다. 풍요와 선택권이 도처에 깔려있는 주변을 

천천히 한 바뀌 돌아보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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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부당합니다 - Z세대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
임홍택 지음 / 와이즈베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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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갔다가

입구부터 시작된 통로 매대에서 발견한

와이즈베리 인문교양책 <그건 부당합니다>.

마침 요즘 읽고 있는 책이어서 들고 다니다가 이렇게 한 프레임에 담아본다.^^

<90년생이 온다> 로 한 때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임홍택 저자의 신간이다.

이번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세대담론의 차이와

Z세대가 바라본 공정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 다뤘다.

나 또한 기성세대에 속하고 젊은 세대의 인식 구조가 다름을 요즘 들어 체감하던터라

저자가 바라보고 문제 제기한 이슈들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책을 펼쳤다.

우선 서문이 너무 길지 않아서 맘에 든다...ㅋㅋ

사실 저자가 설파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라서

정독을 하는 곳이긴 하지만 너무 길면 때로는 지치기도 한다.

핵심만 짚어주니까 뭘 말하고자 하는지 대략 감 잡고 시작할 수 있었다.




2020년 전후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 공정담론의 예열 과정을

저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한 가지 논란에서 발견하고 가져온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추진됐을 당시 기성 정치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20대 젊은 세대들의 극렬한 반발이 있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예상하지 못한' 기성 세대이다.

MZ세대가 희한하고 까칠하고 이기적인 게 아니라

젊은 세대는 진보적일 것이니까 통일이라는 역사적이고 평화로운 이벤트를

반대할 리가 없다는 기성 세대 중심적인 어이없는 예측이 문제인 것이다.

공정담론이 젊은 세대에서 이슈가 되어 다양한 논쟁거리가 양산되는 데는

무엇보다도 동시대를 살면서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권을 가진

기성 세대와의 불화가 결정적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젊은 세대가 왜 '공정' 에 이렇게 집착하듯 매달리는지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

그런 노력은 커녕 예측이 어긋난 이후 당혹스러워함에서 끝나지 않고

미성숙하며 젊은 세대가 보수화됐다고,

심지어는 개인주의가 득세한다며 이기적이라고까지 몰아부친다.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4년을 기다려온 젊은 선수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외적인 권력에 의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기성 정치권에게 정확히 표현하고 전달했을 뿐이다.

젊은 세대는 단일팀 추진으로 인해 자신의 위치를 박탈당할 위기에서

통일이라는 민족적인 대의를 위해 가만히 앉아서 자신을 희생할 이들이 아닌 것이다.

이것을 자칫 기성세대와 MZ세대의 갈라치기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에 있어서 길을 잃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우리가 공정담론에 대해 어떻게 마주해야할지 그것을 함께 고민할 때이다.


젊은 세대가 바라보는 공정의 기준에 대한 반감은 잠시 내려놓고

그 기준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공정'이란 단어 그 자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책 제목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공정을 외치고 있긴 하지만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불공정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자신들이 마주하는 현상과 상황들이

'이치에 맞지 않고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저자는 이 사회에 '부당에 대한 담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다소 까칠하다 해도 MZ세대의 당당한 목소리가 어쩌면

고정관념, 편견, 관행, 새치기, 침묵적 카르텔이 지배했던

불공정한 시대로부터 이제는 변할 때가 되었다고 외치는 듯 하다.

시어머니가 호된 시집살이로 고생했으면서

고스란히 자신의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처럼

기성세대가 그렇게 살았다고 해서 젊은 세대에게

절차와 기준의 부당함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라고 일방적으로 강요할 이유는 없다.

가만히 앉아서 그 부당함을 떠안을 Z세대도 더이상 아니다.



당신들의 공정이 진짜 공정인가요?

애초에 불가능한 완벽한 공정이라는 개념

그들의 언어는 단지 '부당하다'는 것이다

현세대가 공무원과 중소기업을 원하지 않는 공통의 이유

조직 안에서의 새로운 외침 '그것은 부당합니다'

국가의 정책 차원까지 파고든 부당함의 외침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부당하니까!

그동안 누구도 묻지 않았던, 자격에 대해 묻는다

태생적인 불평등에 대한 반대급부

부모보다 가난해지지 않는 세대가 되는 방법

그들이 받아들이는 또 다른 방식의 줄 서기

조직 사회에서 부당함 논란을 줄이는 방법

이걸 칭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게 소제목을 너무 잘 뽑았다. ㅎㅎㅎ

완독한 1인으로서 소제목만 봐도 저자가 같이 생각해보자는

이슈의 핵심을 고스란히 모아 놨으니 말이다.

절대적으로 위 소제목들 만으로 이 책을 다 봤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Z세대의 인식의 기저에는 무엇이 깔려 있는지 그걸 들여다보고

이 불공정한 세상에서 그들이 부당함을 느끼는 지점과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인문교양책 <그건 부당합니다> 의 독서가 마무리될 것이다.

같은 성인인데도 나이가 어리거나 사회적 지위의 서열로 인해

처음 보는 자리에서 반말하는 상대에게 역지사지의 정신을 보여주는

Z세대의 대응에 당돌하다는 반응부터 보이기 일쑤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손윗사람의 위엄을 반말로 과시하는

관습적인 한국만의 특수성을 배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그들의 행동이 이해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그들에게는 당연한데

그 이전 세대에게는 그렇지 않음에서 오는 불화가 이렇게

인간관계속에서 사부작사부작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보편적 진리를 거꾸로 젊은 세대가 꼰대에게

알려줘야 하는 이 상황이 그들 입장에서 참 피곤할 법도 하지 싶다.

그간의 관행이나 권력화 때문에 잘못된 걸 잘못됐다 말하지 못해서 힘겨웠던 기성세대의 시간은

이제 MZ세대로부터 변화의 기점으로 향하는 반환점을 맞이했다.

괘씸하고 당돌하다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그들의 논리, 인식의 구조를 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세대가 거듭되면서 이 사회는 분명 변하고 있으니까.

그 변화의 방향이 퇴행인지, 진보인지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하기에 달려있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점진적으로 개선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투명성 인식이 그보다 약간 앞선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나아졌다는 분석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이 책의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 를 논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공정' 이라는 키워드의 본색을 들여다보면서 서서히 마무리하고자 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캐릭터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어서

드라마를 본 사람도, 보지 않은 사람도 Z세대의 부당하다는 외침을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는 예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아가 공평, 공정, 평등... 다 비슷한 의미인 것 같은 이 키워드들을

그림으로 쉽게 접근해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워낙 많이 알려진 그림인데 중요한 것은 각각의 단어 정의를 아는 것도 아니고

어떤 그림이 어떤 키워드를 정확히 반영했는지 구분짓는 매칭은 더더욱 아니다.

개개인이 소유한 재산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참고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따라 다르고

자신의 신념이나 정치적 이념에 따라서도 다른 관점으로 그림이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회의 평등을 중시하는 관점과 결과의 평등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에 따라

공정함은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하다는 착각> 를 거론하면서

수능과 학종, 무엇이 공정한지에 대한 이 사회의 쟁점에 대해

MZ세대를 한 걸음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시험에 기반한 능력주의 시스템의 '예측가능성'을 선호하는 것이다.

저자는 '통제가능성' 이라는 표현을 더 중점적으로 사용하는데 큰 차이는 모르겠다.

예측이 될 때 통제로 연결되는 것이니까.

원칙이 있고 통제가 가능할 때 자신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반대로 교란이 발생한다 싶을 때

예민하고 까칠해 보이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라기 보다는 개인이 가진 권리를 지키고 싶은

'개인보호주의' 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자신의 의무와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주장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감도 없지 않다.

개개인이 하나의 전체이자 덩어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각각 다른 태도를 보이긴 하지만

이기주의로 전체를 치부하는 것 또한 곤란하고 위험한 시선이다.

젊은 세대에게 통일이나 민족 문제같은 대의, 직장에서 늦은 시간까지 희생하는 일의 미덕은

실질적으로 그들의 삶에 연관되지 않기 때문에

강요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저자가 제시한 세대담론의 불화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로 놓고 제로의 시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관행이라는 총체적 부당행위가 이 사회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에

시간은 좀 많이 필요해 보인다.

관행이나 적폐는 좋고 나쁨이 없고 그냥 없어져야 할 것들이다.

젊은 세대에게 줄 서기의 원칙은 공정함의 또 다른 상징과도 같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규칙을 위반하는 문화를 조금씩 지워나가는 사회 구성원의 인식이 요구된다.

부당하다 싶을 때 저항하는 것은 사회 공정을 바로 서게 하는 데 중요한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공정함을 부르짓는 행위의 본질은 경쟁 사회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한다.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 저항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90년생이 온다> 보다 인문교양책 <그건 부당합니다> 가 훨씬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었다.

독서토론 주제 도서로는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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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쪽으로
이저벨라 트리 지음, 박우정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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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Wilding 처럼 이 세상의 모든 생태적 관계 속에서

인간은 그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야생 상태 그대로 자연을 둘러싼 그 모든 것을 되돌리자는

"재야생화 프로젝트" 를 중심에 둔 생태학 에세이이다.


평소에도 가볍지 않은 인문학적 담론들을

얕지 않게 소개하는 글항아리의 신간 <야생 쪽으로>

어느 영국인 부부가 '넵' 이라 불리는 자신들의 대농장 사유지를 쟁기로부터 해방시켜

토양을 쉬게 하고 회복하게 하여 나아가 야생동물들에게 돌려주자는 이야기이다.

저자인 이저벨라 트리는 작가이자 여행 저널리스트이며

그의 남편 찰리 버렐과 함께 넵 황무지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다.

찰리가 물려받은 대농장 '넵' 은 찰리 버렐의 조상인 3대 준남작 찰스 메릭 버렐 경이

대략 장미전쟁 때 생을 시작해서 수령이 550년쯤 되었을 나무에게

'넵 오크' 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당시 유명한 건축가에게

나무 바로 옆에 저택을 지어달라고 의뢰한 때가 1800년대 초.

그렇게 '넵 캐슬'과 지금의 넵 사유지가 생겨났다.

인간 문명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던 대초원들은

인간의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야생 동물들의 서식지를 갈아 엎어 농사지을 땅으로 바뀌었다.

어떠한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삶의 터전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

저자와 그의 남편이 17년 전부터 야생을 복원하게 된 이유는

야생동물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현실적으로는

대농장을 유지함으로써 돌아올 손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재야생화 프로젝트" 를 시작하고 보니 점점 일이 커지게 되면서

그들의 넵이 더이상 사유지가 아니라

지구의 탄소를 격리시키면서 자연스럽게 기후 위기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공공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확장해 나갔다.

토양에게 어떤 인위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자연에게 돌려주게 되면

수자원 및 수질 정화는 물론이고 인간이 그 땅을 통해 얻게 될 식재료들과

풍부한 식량, 인간의 건강과 나아가 동물 보호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은 30년 전에 이렇게 말했었다.

"생물의 다양성은 천연자원들과 종간 관계의 복잡한 그물망에 의지한다.

전반적으로 한 생태계에 더 많은 종이 살수록

생태계의 생산성과 회복력은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경이로움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자연 생태계는 스스로 문제를 풀어갈 능력이 있음에도

인간은 자연의 재생, 재활 능력을 믿지 못하는 듯하다.

인간은 자연에 애정도 없고 게다가 염치까지 없어 그저 빨대만 꽂고 있다.

어떻게든 착취해서 욕망을 채우며 인간 문명을 사방으로 뻗쳐 나가기에 급급하다.

이렇게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만 일방적으로 자연에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점점 길을 잃어가기도 하지만

이저벨라와 찰스 부부처럼 진정 인간 문명이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간에 의해 재배되거나 사육되지 않는 상태로,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자연의 상태로 되돌아가자는

"재야생화 프로젝트 rewilding" 은 그래서 영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가야 할 바람직한 캠페인이 되어야 한다.

원래 자연이 가던 그 길을 인간이 더 이상 집약적 농업과 공장식 축산으로 가로막지 말고

모든 생명체가 경계 없이 안정적인 시스템에 의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갈 길을 터주는 것이 곧 자연에게 원래대로 주도권을 돌려주는 일이다.

재야생화 프로젝트는 주로 영국의 현실을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멸종 위기에 처했던 영국의 새들이 넵 사유지로 돌아와

그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저자 부부의 감동이 오롯이 전해졌다.

초식동물, 야생동물들이 있어야 할 곳에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자연을 돌려주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드는 인간의 개입보다 훨씬 경제적으로도 이롭다.

넵 사유지의 자연주의적 방목 실험을 통해 현실적인 한계도 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야생화 프로젝트에 대한 이로움과 가치를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영국의 정부 기관인 잉글리시 네이처도, 공무원 사회에도

그들의 의사결정 방식에 자연적이라는 개념을 인식시키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예산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공무원 사회는 어딜 가나 굉장히 보수적이구나....;;)

지방 당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거나 기업의 기부에 의지해야 하는

환경 생태적 실천 프로젝트는 상상하는 모습에 닿기엔 여전히 요원해 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멧비둘기, 맷돼지, 나이팅게일, 들소, 번개오색나비, 비버, 조랑말, 지렁이들이

넵 사유지로 돌아와서 생물 다양성을 안정시키는 데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물다양성의 주도자라면 인간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계속 자연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이 혼자 힘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한다.

그런데 생물다양성이 자연에서 오지 않았다면

애초에 어디에서 왔겠는가.

우리는 자연이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수세기 동안의 착취와 기술적 오만 뒤에

토양으로 다시 눈을 돌림으로써

우리 종들이 어떻게 단지 다음 수십 년 동안이 아니라

다가올 수천 년 동안 생존할 수 있을지,

우리의 창의적 지능과 전문 기술을 우리와 달리

수백만 년의 연구 개발로부터 도움을 받아온 이 시스템과

결합시킬 수 있을지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토양은 우리의 기반이고

재야생화 프로젝트에서 토양은 동그라미의 완성이다.




인간의 농업이 등장하기 전에 땅을 지배했던 동물들의 생존방식과 행동양식을

더이상 외면하면 안되겠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채집수렵문화의 원시 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인간과 포식동물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지만

야만 시대가 이제는 문명 시대로 바뀌었으면

다툼과 투쟁 말고 얼마든지 모두에게 이로운 공존의 지혜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인간 중심적인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멈추기 어려울만큼 팽창되어버린 개발을 위한 집약적 농업에서

재야생화로 방향키를 돌려 자연이 회복되기까지

인간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지켜만 봐주면 좋겠다.

자연이 우리보다 더 알아서 잘 한다.

인류세가 자연에게 가한 부담이 이미 너무나 막대하다.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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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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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삶을 사랑한다면 삶 또한 사랑을 되돌려 준다."

한 달에 한 번 중2 둘째 아이의 학교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에 갔던 날,

학교 벤치에 적힌 이 문구를 발견하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혹자는 그냥 지나쳤을 이 문장 하나가

 

나에게는 가던 길을 붙잡아 세워 두고는 음미하게 한다.

삶을 의인화하며 내가 베푼 사랑을 다시 내게 돌려준다 하니

이 문장을 보고 기분 좋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말이다.

정말 그럴지 사실 인간은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지금 당장 확인할 수도 없지만 이 문장 하나로

 

따뜻한 햇살이 축복과도 같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문학작품 속에 담긴 문장들은 이렇듯

언어라는 도구로 인간의 마음 속까지 깊이 파고든다.

파고들어 가만히 있지 않고 기분좋은 파동을 만들어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이번에 만난 문학 에세이 속 문장으로 이렇게 화답하고 싶다.

"네가 세상을 보고 미소 지으면 세상은 너를 보고 함박웃음 짓고,

네가 세상을 보고 찡그리면 세상은 너에게 화를 낼 것이다."

<정글북>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말이다.

위 문구와 왠지 결이 겹치는 듯한 느낌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라 일컫는 '상상력'이 빗어낸 소설을 너무나 사랑하고

나아가 문학덕후를 자처하는 나에게 그러한 책이 왔다!

 

 

2020년 겨울에도 어김없이 나혼자 제주도여행을 했던 나.

매년 안식일처럼 혼자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주 동안 제주도의 겨울을 느끼면서

여행을 하는데 그 중심에는 책방투어가 있다.

따로 블로그 내에 <탐서가의 책방투어>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전국의 책방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그렇게 쌓인 게 어느덧 61개나 되었다.

같은 책방을 두 번, 또는 세 번쯤 남긴 것은

 

정말 애정하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이번에 문학덕후인 나의 인생책에 등극한 책을 여기에서 만났다고

얘기하려다 보니 서론이 길었다.

제주도 동부 세화리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서점 제주풀무질에서

장영희 교수의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 를 만났더랬다.

그 때는 개정되기 전 버전이었고,

샘터에서 장영희 교수의 책들을 차례차례 개정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 책에게 그 차례가 온 것이다.

장영희 문학 에세이 개정판은 진짜 못 참지!!!

(개정판이 훠~~~얼씬 낫다... ㅋㅋ)

요즘 읽어야 할 책들이 줄을 섰지만 이 책은 절대 뒤로 미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문학덕후가 오랫동안 묵혀둔 기대감으로

 

이 문학 에세이를 펼쳐본 결과,

장영희 교수의 글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장영희 교수는 사람과 삶을 사랑하는 영문학도였다.

반갑게도 나 또한 영문학도였다.

그리고 나 또한 사람과 삶을 사랑하며 살고자 노력중이다.

그래서 이 책 속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감동이었나보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 속 문장을 인용하며

장영희 교수가 생의 마지막에 암과 싸우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이 글은

적잖은 울림을 전한다.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저항하며,

때로는 버텨가며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간다.

평소에 온화한 장영희 교수도 생의 마지막을 앞둔 이 시점에서

자신의 삶 앞에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 한편 눈물겹기도 하다.

오랫동안 문학의 힘을 믿으며 수혜를 입었던 자는

이렇게 남은 이들에게 고스란히 그 힘을 남김없이 물려주려는 듯이.

 

어떤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글인지 작은 제목에서

가늠이 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런데 확실한 것은 다 가독성 너무 좋고

 

다 의미와 책 읽는 즐거움을 갖춘 글들이다.

유명 일간지에 3년 가까이 연재한 문학칼럼을

단행본으로 엮었다는 게 개인적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서문까지 이렇게 버릴 게 없는 61개의 글을

 

단숨에 읽을 수 있게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 는 하버드대 방문 교수 자격으로

보스턴에서 1년이라는 안식년을 보내는 해에 쓴 글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의 말미에 미국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다행히 바로 수술을 해서 완치가 되었다고 하더니

다시 시간이 흘러 유방암이 목 뒤 경추로 전이되어

척추암 진단을 받게 되었던 장영희 교수.

생후 1년만에 소아마비를 앓게 되면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의 삶을 살아왔지만

운명에 저항하며 자신의 딸을 사랑으로 지켜냈던 부모님 덕분에

지금의 장영희 교수가 있었다고 에세이 속에 고백하기도 했다.

특히 장영희 교수의 아버지는 수 많은 작품들을 번역하고

 

글을 썼던 영문학자였고,

그 영향으로 장영희 교수 역시 영문학자가 되어

번역과 글쓰기, 중고교 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잠실 지역의 중고교 학생들의 영어 교과서를

디테일하게 분석하며 내신 대비를 해줬던 내가

이 경력을 접하자 마자 '장영희' 라는 이름은

 

이 문학 에세이의 저자가 아니라

영어 교과서 집필진의 이름으로 탈바꿈된다.

정말 그랬다....장영희라는 주 집필진 이름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랑, 행복, 희망의 축복을 전하고 싶었던 장영희 교수의 메시지처럼

사랑에 관한 전 세계 위대한 작가들의 한 마디를 모아둔 페이지가 인상깊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추앙하는 작가의 문장이

역시 내 눈에 가장 깊이 박힌다.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빅토르 위고-

사는 게 고통스럽다 해도 결국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라면

사랑이 남지 않는 죽음보다 사랑이 남아 있는 삶이 좋다는

문학 작품 속 문장을 인용한 것에서도

장영희 교수의 삶에 대한 애정이 온전히 느껴진다.

 

 

 

 

 

음률이 살아있는 영미시, 영미 문학 속 멋진 문장들을

아름다운 그림과 나란히 배치한 구성도 완전 취향 저격이다.

진짜 알맹이가 되는 장영희 문학 에세이 속에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내면 세계를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의 말과 행동, 사건들을 통해서

 

거울 보듯 들여보게 한다.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갖는 약점들, 연민들,

슬픔과 좌절을 깨닫고 주인공을 바라보며

 

나와 내 주변의 타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문학 작품들의 힘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 였다.

주인공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삶의 다양한 경험도 해보고

그들의 시행착오도 함께 겪으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고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인지,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하게 했다.

장영희 문학 에세이를 읽으면서

문학을 통해 내 삶에 눈을 뜨게 해주는 힘이 있음을 깨달았다.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 에서는

 

딤즈데일, 헤스터, 칠링워스를 보면서

미로와 같은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에서는

 

개츠비 앞에 왜 'Great' 를 붙였는지

장영희 식 해석 덕분에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이 해소된 시간이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에서는 원시와 문명 세계 사이에서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조명할 수 있었고

과도하게 발달한 과학이 과연 인간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개인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러시아 문학, 그 중에서도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은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경험하고 느끼기 어려운 그들의 사상을

 

장영희 교수의 따뜻한 해석 덕분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인간과 인간의 삶에 신이란 어떤 존재인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선과 악은 어떤 관계이며

사랑은 어떤 힘을 미치고 있는지 작중인물들을 통해서

도스토옙스키의 메시지를 어렴풋이 접했던 시간이었다.

황당무계하지만 아름다운 이상주의자 ​<돈키호테>​는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기 위해 누가 뭐래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꾸던 꿈이 깨져서 좌절하게 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괴로워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면 그것마저도 받아들이겠다는

돈키호테의 삶에 대한 자세는 접할 때마다 너무나 눈물겹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작품인데

장영희 교수의 해석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더 좋아지게 만들어 버렸지 뭐야....^^

이 밖에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허먼 멜빌의 <모비딕>,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펄 벅의 <대지>,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대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이렇게 위대한 작품들을 이 책 한 권으로 다 만날 수 있다.

아름답게 살다 간 한 인간의 인문학적 시선이 담긴

온화한 문체는 이런 것이구나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현실세계의 아름다움, 누추함, 비루함을

비평이라는 장르로 고전적인 문학세계와 비교 분석한 훌륭한 글의 모음집이다.

​​

 


시종일관 종교와도 같이 추앙하듯 써내려 가는 나의 이 책리뷰는

사실 장영희 교수의 서문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미 시작부터 무릎 꿇고 두 손 모은 격이지.....^^;;

그래도 괜찮다.

그녀의 글로 인해 나는 충분히 구원받은 느낌이니까.


문학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또는 상처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추구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서문 중에서




살면서 끊임없이 부조리한 세상을 목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

이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문학이 이런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서문에서 이미 이러한 나의 인생관과 딱 겹치니

<문학의 숲을 거닐다> 문학 에세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순간적으로 감동해서 눈물이 맺히는 내 모습에 나도 놀랐다.

문학덕후의 인생책으로 등극하기에 손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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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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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의 필력과 따뜻한 시선을 접하면 추앙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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